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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97화 (197/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7화]

“문을 여는 의식을 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너희의 시간 기준으로 10분 정도.”

지금 바로 문을 여는 건 막아야 했다. 석민은 머리를 굴리며 입을 열었다.

“다시금 물어보자.”

석민이 말했다.

“문을 여는 의식을 할 때 드래곤이 방해를 하면 어떻게 되지?”

베르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문이 닫힌다.”

“정말? 그게 전부야?”

그는 베르가 괜한 의심을 할까 봐 말을 덧붙였다.

“문이 폭주해서 완전히 열리거나 그러진 않아?”

그 말에 베르는 평소와 달리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 잘못하다가 석민과 아영의 도움을 못 받을까 봐 그런 듯했다.

“확실하게 말한다. 의식의 실패로 문이 폭주해서 열리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렇군.’

석민은 그마나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면 문이 열릴 때까진 드래곤이 방해하진 않을지도 모르겠네. 문제는, 방주가 나온 직후 문을 닫을 땐? 얼마나 걸리지?”

“그것도 10분이다. 그때 의식이 방해를 받으면 문이 닫히지 않고 영구히 열리게 된다.”

그러면 총 20분 동안 의식이 진행되고, 닫히는 의식 10분 동안은 용이 방해할 것이다.

석민은 크게 숨을 내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 그러면….”

석민은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았다.

“어쩔 수 없네요.”

아영이 말했다.

“드래곤과 먼저 싸우죠.”

“드래곤과?”

베르가 물었다.

“솔직히 우리는 지상에서 의식이 거행될 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베르, 당신이 하늘에서 올라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없어요. 드래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우리는 당신을 보호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오르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어요. 방주에 있는 이들을 깨워서 정복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죠?”

“그것은 그들 생각일 뿐이지….”

“방주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전사들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들 생각이 막연하게 당신과 같을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아영이 베르의 말을 딱 잘랐다.

아영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가 다시 베르에게로 옮겼다.

“방주가 여기로 오고 당신 뜻대로 하려면 방주에 있는 이들을 절대로 깨워선 안 됩니다. 하지만 오르곤은 깨우려고 하겠지요. 맞습니까?”

“…그러면 오르곤과 드래곤을 처치하지 않고는 의식을 할 수 없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드래곤과 싸울 생각이지? 용의 주문을 건드려서 드래곤의 주의를 끌어 유인할 건가?”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준비는 잔뜩 했지만 드래곤과 싸울 자신은 없어.”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강심장인 그들도 드라니트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처음 드라니트와 마주했던 그 날,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껴안기도 했었다.

게다가 알렉산드라의 드론들과 베르의 지원이 없었다면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지금 마주할 드래곤은, 그 드라니트보다도 더 큰 붉은 드래곤이었다.

심지어 드라니트와 달리 주문을 잔뜩 사용하지 않던가?

직접 상대하기 전에 드래곤의 힘을 빼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잠결에 한 말 기억해?”

“예? 교단인들요?”

아영이 놀라 물었다.

“몇 명 올지 모르겠지만 작정하고 준비했으니까 꽤나 많은 준비를 했겠지. 그리고 그것들도 드래곤과 싸울 준비는 했을 거야.”

“뭐… 그렇겠죠.”

아영은 석민이 다음에 할 이야기가 뭔지 눈치 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의견대로 하다가 대학살이라도 벌어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이비에 빠진 광신도들이라곤 해도, 정부를 공격하는 반정부 단체이긴 해도, 결국 지켜야 할 국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드래곤과 교단을 싸우게 만들자.”

“어떻게요?”

역시나 예상했던 말이 석민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영은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방법을 물었다.

석민은 좋은 생각을 이미 떠올렸다.

자신이 좀 고생할 것 같지만, 이것 말고는 드래곤과 교단 사이에 싸움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발라크라바랑 장갑, 그리고 여분의 양말 있으면 빌려줄 수 있을까? 아, 그리고 너 방한 조끼를 안에 입고 있지?”

그 말에 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석민 씨랑 저와 사이즈가 안 맞….”

“그거 없으면 나 동태 돼.”

***

호텔 말리나의 사람들은 분주했다.

고용했던 점원이나 여자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고, 알렉산드라는 마지막으로 남은 경비 인원들의 수를 체크하고 있었다.

숫자는 고작 8명.

이들은 고용된 사람으로, 전의를 가진 이들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라 또한 그들을 가지고 싸울 생각이 없었고.

그나마 도망가지 않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야 할 입장이었다.

마지막 남은 드론이 있긴 했으나, 자신과 경비 인원을 완벽하게 지켜줄 순 없을 것이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따뜻한 방한복에 방탄복과 방탄모까지 입고 있었다. 무기를 곳곳에 챙기고, 마지막으로 군화끈을 조여 맸다.

“하라쇼(Хорошо), 호텔 정리에 들어가고, 현금이랑 여기 있는 물자는 포기하니까, 아까우면 알아서들 잘 챙겨.”

그녀의 말에 경비들은 조금 흥분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그녀가 빠르게 사라져가는 그들의 뒤에다 소리쳤다.

라운지에 있던 계산기 금고가 열리고 경비 인원들 사이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공평하게 돈을 나누었다. 비싼 술이나 귀금속 장식들 또한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러는 사이 알렉산드라는 패닉룸에 들어가 무전기를 켰다. 밖에서 동태를 살피고 있던 자기 사람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교단인들이 빠르게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무전기 속의 남자 목소리가 그녀에게 보고했다.

-뭐, 예상은 했어. 박재만인가? 그 자식이 여길 눈여겨 보았었으니깐. 장비는? 어떤데?

-아주 대단합니다. 군용 차량과 장갑차에 탱크도 보았습니다.

그 정도까지? 알렉산드라의 양미간의 주름이 깊게 잡혔다.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 군대가 전부 돌아선 것은 아닐 거 아냐?

-한국군 내부에서도 교단인들이 좀 있었던 듯한데, 숫자는 많지 않고 탱크는 딱 1대입니다.

비록 고작 전차 1대이지만, 전차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그래도 그 정도면 아주 큰 세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얼마 뒤면 도착할 듯한데?

-길어봐야 1시간 정도입니다. 군이 정리한 도로를 따라 온갖 차량과 무장한 인원들로 빽빽합니다. 다만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라서 정체 중이고, 그 사이 괴수들이 나타나서 교전 중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네. 알았어. 이제 퇴각해.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그녀는 무전기 발신 버튼을 떼고 상부와 연락할 때 쓰는 통신기를 켰다.

-보고해.

-네, 사태가 확실히 벌어졌습니다. 경기도 쪽에서도 연락을 받았는데 대혼란이라는군요. 교단인 말고도 분노한 군중들이 정부 시설을 공격하고 경찰을 린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 정도는 뉴스를 통해 이미 나오고 있겠지만 사이비 교단인들은 정말로 그 천국의 문이라는 곳에 가려나 봅니다.

그 말에 상관은 한숨을 쉬었다.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담당하는 지구에 아주 큰 일이 터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한반도는 겨우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해 그 균형이 틀어지면 이쪽도 곤란해졌다.

-우리 쪽 피해는?

-없습니다. 아, 저 그리고 전에 말씀하신 무기 유출자를 경기도 지역에서 잡았습니다.

그녀는 무기가 어디로 빠졌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유출된 총기가 석민의 손에 있었다는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지만, 아무튼 보고해야 했다.

-잡았다고? 잘했어. 마침 잘되었군.

-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알렉산드라는 놀라서 반문했다.

-상황이 변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대사관을 통해서 연락을 했다.

-네.

알렉산드라는 힘없이 대답했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갔고,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어. 그리고 자네가 나한테 보고하지 않고 벌인 일이 있던데.

날선 말에 알렉산드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평상시의 저라면 절대로 믿을 수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는….

-그만.

상관의 단호한 어조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알렉산드라는 입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괜히 석민의 말을 들어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자조했다.

-몇 시간 전이었으면 믿지도 않았을 테지만, 이젠 안 믿을 수가 없게 되었지. 천사고 용이고 구원이고 나발이고,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라도 자네처럼 그랬을 테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익에 맞게 행동한 것이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게.

-네.

각오한 것보단 긍정적인 답변에 그녀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새로 명령을 내리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들을 처리해.

-네? 누구 말씀입니까?

-그 최석민과 아영이라는 사람. 우리는 한국과 거래하기로 했어. 경기도에서 잡힌 우리 블랙요원들을 풀어주는 조건이야. 또한 그들에게 귀관의 신분이 노출되었으니, 네 안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일을 완수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알렉산드라는 인상을 썼다.

-블랙요원들이야 뭐 그렇다 쳐도, 저는 이 혼란을 이용해 본국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상부에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한 원인이 그것이었다.

한국의 방첩부서에서 근래에 엄청 목을 조이고 있었고 요원 2명과 포섭된 현지인 3명이 체포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조국은 절대로 우리 사람들을 버리지 않는다.

상관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 정부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어.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소요가 끝날 거야.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진심으로 놀랬다.

-그 정도입니까? 한국이 그렇게 대단한 행정력과 공권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게 안 보았는데.

-사이비 놈들이 대충 머리들만 쳐내면서 혼란을 유도한 것 같은데. 주요 정부요인들은 전부 멀쩡하고 시설들도 마찬가지지. 그리고 사상자도 그렇게 많지 않아. 어중이떠중이 광신도들이 뭐 다 그렇지.

상관은 언짢음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혀를 찼다.

-체포한 그 친구를 잘 이용해봐. 그 무기를 취급하는 게 전직 특수부대나 요원 출신일 테지? 그런 놈들은 대부분 군에서 방출돼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무기 밀수나 용병 일을 하지. 군에서 다시 복직하겠다고 제안하면 받아들일 거야.

-잘 알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모든 장비와 흔적을 파괴하고 임무수행을 한 직후에 본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본국에 복귀할 때 어떤 방식으로 올지 사전에 정한 코드를 보내면 바로 지원하지. 통신종료.

통신기를 끈 알렉산드라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석민과 끝을 볼 때가 된 것이다.

그녀는 통신기에 달린 다이얼 중 안전장치로 감긴 버튼과 다이얼을 풀고서 시간을 조정한 뒤 버튼을 눌렀다.

앞으로 30분 후엔 이 방에 있는 물건들 전부 박살나거나 불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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