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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95화 (19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5화]

옆이 어수선하니 비실비실 석민도 눈을 떴다.

피곤한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마치 좀비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여전히 돌침대 위를 굴렀다.

잠시 후, 살짝 부운 눈으로 눈곱을 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뭔…. 일이야? 응?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아뇨, 별거 아닙니다.”

아영은 부서진 휴대폰 파편을 침대 밑에다가 털었다.

석민은 하품을 크게 하더니 그대로 다시 누웠다. 아직 침대가 따뜻해서 누워있으니 포근했지만, 공기는 차가워서 코가 시렸다.

그는 침랑에 얼굴을 깊게 파묻었다.

“슬슬 일어나야지요.”

아영이 말했다.

“한 10분만. 나도 오래 잘 생각 없어.”

“지금 일어나셔야 합니다.”

“왜? 정말 뭔 일 있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되묻는 석민의 질문에 아영과 베르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쉿 자세를 취했다.

“…뭔 일 있나보군.”

여전히 목소리가 한결 낮았지만 번쩍 뜬 석민의 눈에선 졸음이 사라져 있었다.

아영은 손바닥에 흐른 피를 닦기 위해 짐을 뒤지며 말했다.

“천국의 문 교단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에 있는 중요 관공서와 군부대, 경찰 같은 시설이 교단의 공격을 받았고 전국이 대혼란입니다. 대통령이 계시던 대전의 임시 정부청사도 공격을 받아서 대통령님이 피신 중입니다.”

“…그래?”

석민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전한 말에 의외의 반응이 돌아오자 아영은 물티슈로 피를 닦아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휴대폰이 부서지면서 생긴 파편에 찔리고 베였던 상처들은 어느새 나아져 있었다.

“석민 씨?”

“어차피 목표는 여기일 테고 우리가 여기서 호들갑을 떨어봤자 그놈들을 못 막겠지.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한숨을 푹 내쉰 석민은 잠을 깨려는 듯 말을 어물거렸다.

“우리 둘이선 그놈들이 서울에 오는 걸 못 막아.”

그리고는 잠시 고민에 빠지는 것 같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이라면 가능하겠지.”

***

교주와 교단의 수뇌부가 도착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 교단의 연구소였다.

연구소를 호위하는 사도대와 연구원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교주를 맞이하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그렇습니다.”

그의 물음에 연구원들과 사도대의 대원들이 대형 냉동 트럭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몇몇 연구원들의 눈엔 두려움이 떠올랐다 사라졌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교구장들은 덤덤한 시선을 그곳에 던지고 있었다.

“그의 상태는?”

“안정적입니다.”

안정적이라고 대답하기까지 3명의 연구원과 1명의 사도대 대원의 희생이 필요했지만, 이를 언급하는 게 옳지 못하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 부활자들은?”

“준비를 마쳤고, 차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냉동 트럭 뒤에 주차된 소형 버스를 바라본 교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면을 벗었다. 수혈을 받은 덕분에 그의 모습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아.”

교주는 조금 부산하게 움직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있을 테니 대기하도록.”

굳이 여기서? 교인들은 서로를 보았지만, 감히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알겠습니다.”

박재만은 교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도 준비를 하고 있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단인들이 방탄복과 방탄모를 가지고와서 그들에게 내밀었다.

“고맙네.”

박재만은 방탄복을 몸에 걸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중년의 나이인 그가 쓰기엔 너무 무거웠다.

군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방탄모와 방탄복이었는데, 방어력을 높이다 보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이었다.

몇몇 교구장들도 그것을 쓰기 무섭게 인상을 찡그렸다.

“좀 더 가벼운 거 없나?”

나이가 많고 투실투실한 교구장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성전에 나서는데 그에 적합한 갑주와 투구를 쓰는 건 당연합니다. 너무 투덜거리지 마세요.”

박재만이 턱 끈을 조이며 말했다.

“모든 교인들이 성심성의껏 헌금하여 마련한 것이고, 최고의 장비입니다.”

그 말에 그 교구장은 낮게 투덜거리면서도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군대에 코앞에도 못 가봤는지, 어설프게 걸친 모습은 박재만에게 짜증을 일으켰다.

“무구는 제대로 착용해야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모두 잘 착용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낮게 윽박지르듯 내뱉은 박재만의 말에 그자는 코를 움찔하면서도 다시 손을 움직여 방탄복과 방탄모를 다시 착용했다.

박재만은 그자를 쏘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지휘 버스에 올랐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교구장들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같은 교구장 주제에 너무 나대는군.”

“자기가 교주인 줄 알아.”

그들은 서로 한마디씩 하며 꽉 조이는 방탄조끼를 슬금슬금 풀었다.

하지만, 나름 교주의 총애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그이기에 절대로 앞에선 할 수 없는 말이었다.

***

교주 백은호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엔 천사 오르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곤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까닥하며 그를 기다렸지만 교주는 그의 무구가 더러워지고, 투구는 사라진 데다 머리도 정돈되지 못한 걸 알아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용이 일어났고, 우리가 중과부적으로 밀렸음을 알거라.

그 말에 교주는 몸을 숙였다.

그는 오르곤의 흉갑에 총탄 자국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용이 깨어났으니 성전이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매우 힘든 일이고, 수많은 영혼들이 희생될 것이다.

“감내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대답은 넙죽했지만, 교주는 천사가 평소보다 조급함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너희가 이끄는 짐승으로 용과 대적할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또한 부활자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들어라, 아이야. 적이 문과 아주 가까워졌다.

그 말에 교주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던 감염자들이 죽었다.

거기는 왕십리와 아주 가까웠다.

-일이 매우 시급하니 이 만남을 끝으로 너는 속히 성전을 개시하라. 너를 위해 내가 하늘의 무기를 내리겠다.

오르곤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교주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50센티 정도 되는 길이의 검이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오르곤에겐 주머니칼에 지나지 않았지만, 교주에겐 충분히 길었으며 레이피어처럼 폭이 좁았다.

-이걸로 성전군을 진두지휘하거라.

“가, 감사합니다.”

무한한 영광에 교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천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알라. 그분께서 너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분께서 너를 좌편에 앉게 하시리라. 또한 믿고 따르는 자들도 낙원에서 편히 쉬게 할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나는 위에서 너희를 인도하겠다. 길을 찾기 힘들 때 항상 하늘을 보도록 하거라.

“네.”

이윽고 오르곤의 신체가 사라진 뒤 백은호는 검을 들었다.

어두운 방인데도 검은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휘둘러보았다. 그 순간, 더 강렬한 광체가 검에서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백은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나왔다.

빛은 끊이질 않았다.

이는 백은호에게 대단한 용기와 믿음, 그리고 굳은 결심을 하게 했다.

우리야말로 정의이고, 가장 진실한 믿음이다.

거짓된 믿음과 불신자들은 우리를 이단이라 업신여기지만, 오늘부로 아니게 될 것이다.

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사, 최후의 승리는 바로 우리이리라.

그 어떤 고난이라도 반드시 뛰어넘을 것이다.

잠시 후, 방이 열리면서 교인들은 강렬한 빛과 함께 백은호가 칼을 든 채 걸어 나오는 볼 수 있었다.

백은호가 굳이 입을 떼지 않아도 검이 신께 하사받은 것이란 걸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았다.

교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낮추고 탄성을 내뱉었다. 믿음의 또 다른 증거가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휴대폰을 내려놓으시죠.”

넋을 빼고 교주를 바라보던 무리들 사이, 슬그머니 휴대폰을 들고 기적을 남기던 연구원에게 사도대 대원이 말했다.

“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를 제외하고는 다 적입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적이 우리의 위치를 찾을 것입니다. 휴대폰을 파기하거나 전부 끄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몰래 찍고 있던 다른 연구원들도 폰을 내려놓았다.

투덜거리던 교구장들은 어느새 교주의 모습에 흠뻑 심취한 채 풀었던 방탄복을 다시 바르게 착용했다.

“차에 오르자, 이제 시작이다.”

교주가 차에 오르자, 후광으로 버스 안이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믿음과 신이 자신들의 편이란 증거였기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다들 눈만 찡그리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버스가 출발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성전의 시작이었다.

***

잠에서 깬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스탯과 함께 따뜻한 바닥에서 잔 덕분에 충분히 원기가 회복되었고, 몸도 매우 가볍게 느껴졌다.

“이대로 바로 출발하면 될까?”

교단인들이 성전을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낌새를 눈치 챈 이상 그들은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아영은 무기와 탄약을 준비했다.

드래곤과 싸울 예정이라 그들은 최대한 무기들을 챙겼다.

석민은 자신의 AK-203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나한텐 RPG가 있으니깐 이건 네가 쓰는 게 옳은 것 같아. T-5000은 볼트액션이고 aks-74u는 소구경 탄약이니까 용한테는 별로 안 먹힐 거야.”

구구절절 맞는 말이어서 아영은 석민이 건넨 무기를 챙기면서도 만일을 대비해서 aks-74u 역시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휴대폰은….”

“파기하지.”

선호석에게 찍힌 이상 그걸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파기를 하면 대통령님이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밖에 안 됩니다.”

“안보실장과의 통화는?”

그녀는 단언하듯 말을 딱 잘라 말했다.

“독단이에요. 대통령님은 지금 피신 중이라 저희와 연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데?”

“휴대폰들은 전부 여기에 두고 가죠.”

“응?”

“도청을 다시 할진 모르겠지만, 휴대폰들을 전부 여기에 두고 가면 그 사람들은 기만일지 아닐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은….”

그녀는 잠깐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분은 사람 좋은 분이라서, 분명… 음…. 우리가 부당한 처우를 받아 연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 겁니다.”

“그걸로? 다 녹화되었고 그걸 들었다며?”

“그 대화를 통해 의심할 순 있어도, 반드시 우리가 정부를 배신했다고 추론할 순 없습니다.”

아영은 확신에 차서 말했으나, 석민은 그녀가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저런 판단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자신과 알렉산드라의 대화라면 정부를 배신한 증거로 충분했다.

게다가 그는 알렉산드라에게 국가안보 실장의 동태를 살펴달라고 했었다.

러시아어는 외국어 과목 중에서 비주류인 언어이니, 그 국가안보실장이라는 놈이 러시아어를 할 줄은 모르겠지만 조만간 알아낼지도 몰랐다.

그래,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석민은 굳이 그 사실을 아영에게 말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라와의 관계, 그리고 그녀와의 거래는 아영도 모르는 것이었다.

아영에겐 배신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국을 판 건 아니지만, 간첩이라는 알렉산드라의 신분이 문제였다.

석민은 그냥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고 아영의 말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그나저나 아영은 마음이 너무 약하군.’

석민은 마음씨 좋은 대통령을 이용한다는 죄책감에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휴대폰은 두고 가지.”

석민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모두 꺼내서 침대 위에 올려놓았고 아영 또한 그렇게 했다.

다만, 석민은 아영의 비화폰이 박살난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베르, 준비됐어?”

“준비되었다.”

베르도 창을 쥐며 말했다.

그는 창 말고도 5자루의 뱅스틱을 챙겼다.

여차하면 그는 그것을 쓸 생각인 듯했다.

“통로가 좁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거야. 그러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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