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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93화 (19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3화]

‘입 안에다 이걸 쏴서 터트릴 수 있다면, 한방에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탄두를 가지런히 놓고는 방탄복을 벗었다. 무거운 방탄복까지 벗으니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바짝 졸아든 몸으로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스탯을 찍었는데도 체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나른함과 졸음이 몰아쳤다.

그러나 지하라서 바람이 막혔다 해도 추웠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켜놓고 따뜻하게 잠을 청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베르를 위해 재스민차를 끓인 석민은 그에게 잔을 건넸다.

“우리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어?”

석민은 언제 화냈냐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없었다. 방문객이 있었지만, 적절하게 인사했다.”

“인사했다라.”

석민은 뭐 적당하게 처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용이 일어났으니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놈은 시각과 후각이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냄새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 그래?”

석민은 털었던 피딱지 가루를 다시 뒤집어쓸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베르는 500ml나 되는 뜨거운 차를 물마시듯이 금방 삼켰다

“약점 같은 것은 없는 건가?”

“알다시피….”

그러면 최소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영은 제대로 말도 못한 채 크게 하품을 했다. 그녀도 피곤한 듯했다.

“낮잠이나 잘까? 바로 출발하지 말고 내일 출발하지. 오늘 하루치 일은 다 한 것 같아.”

제법 좋은 제안이라 생각한 아영은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아영은 감염자들이 숙소로 지냈던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깨끗했고 이부자리도 좋았지만,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로서는 꺼려졌다.

이유는 다르지만 석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살아있던 시체나 다름없던 그들이 누웠던 자리에 몸을 눕는 것을 꺼렸다.

“내가 좋을 것을 찾았다.”

“좋을 이 아니라 좋은 이야.”

베르는 탄약고 구석에 있는 돌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석민은 인상을 쓰며 그것을 빤히 보았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네모 반듯한 자국 몇 개가 있는 것을 봐선 아마 선반 대용으로 쓴 듯했다.

“나는 뭐 좀 가지고 올게. 너는 걸레로 쓸 것 좀 가지고 와줘.”

“알겠어요.”

어디에서 아영이 수건 하나를 가지고 돌아오자, 석민이 식수로 적신 후 돌 침대를 닦아냈다.

그리고 석민이 찾아온 것은 반쯤 녹은 초 5개였다.

“그걸로 뭘 하려고요?”

“바닥 따뜻하게 하려고.”

돌 침대이니까 틀과 다리를 제외하면 나머진 평평한 돌판이었다.

석민은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인 직후에 그것들을 침대 밑에 두었다. 돌이 골고루 달아오를 수 있게 그는 초들의 간격을 넓혔다.

“이 정도면 2, 3시간은 거뜬하게 탈 거야. 너무 많이 놔두면 왜인지 쿠키처럼 구워질 것 같단 말이지.”

그는 초를 놓은 직후 밑에서 기어 나왔다.

“옛날엔 온돌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고 마루와 침상 생활을 하던 시절엔 침상 밑에다가 화로를 둬서 아래를 따뜻하게 데웠다고 하더라고.”

“오, 그런 것도 있군요.”

아영은 신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조선시대 명종 임금 때이던가? 그거 때문에 불이 난 적이 있었지. 뭐, 적어도 이건 바닥이 돌이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들은 미리 마련해 두었던 침랑을 돌 침대 위에 깔아두었다.

“설마, 애인 있는 외간 남자 옆에서 자는 걸 껄끄럽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장난삼아 한 고약한 질문에 아영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서로 끌어안고 자는 것도 아닌데요.”

“그렇지?”

석민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그대로 누웠다.

바닥은 금방 따뜻해졌고, 석민은 바로 눈을 감겼다.

“베르,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미안하다. 조금만 눈 좀 붙일게.”

“괜찮다.”

베르는 새로 따른 차를 홀짝였다. 그를 위해 석민이 재스민차를 3리터나 끓여놓은 상태였다.

아영도 침랑에 들어가 돌 침대 바닥에 누웠다.

석민은 잠들었지만, 아영은 졸린 와중에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베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정말로 대립한다는 이유로 동족이나 옛 동료들을 죽일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못할 것 같은데….’

동시에 죽은 옛 전우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또 눈에 눈물이 고일 듯하자 그녀는 얼른 생각을 지우고서 잠을 청했다.

***

석민과 아영이 잠든 지 2시간쯤 지났을 무렵, 임시정부 청사에서 국가안보실장 선호석은 대통령 성현제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국정원장도 독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시점에서 그가 대통령과 독대를 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 때문에 급하게 소집된 안전보장회의 덕분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를 파할 때 선호석이 알아낸 정보로 대통령을 넌지시 떠보았다.

쉽게 동요한 대통령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대통령과 독대의 자리를 마련한 선호석은 추궁 끝에 알고 싶었던 모든 정보를 듣게 되었다.

“제정신입니까?”

선호석이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국민들을 죽이라고 했단 말입니까?”

“우리나라의 자원이 걸린 일이었어.”

그 말에 선호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례하게 대통령을 노려보았다.

“이 작전을 기획한 자가 누굽니까? 아영 대위입니까?”

“아니, 바로 나야.”

“그 대답을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성현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선호석을 노려보았다.

“결정권자는 결국 나였어. 이 일에 책임을 피하지 않을 거야.”

“제가 지금 취조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대통령님.”

“아니면 뭔가? 이걸 들춘 이유가?!”

“이 정부가! 이 정권이 적어도 저 야당 놈들보다는 정의롭고 민주적이며 국민들을 배신하지 않은 정부로 끝나길 원했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선호석은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저 야당 놈들 보세요! 사태 때 그놈들의 정권은 국민을 버리고 자기들끼리 도망치려다 죽었고 결국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잔당들은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있어요!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토록 뻔뻔한 놈들을 보았습니까? 그런데 그놈들에게 건수를, 그것도 아주 큰 약점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그 말에 성현제는 불편한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차기 대권 후보님도 그렇고 이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전부가 위험해지는 일입니다. 적어도 놈들은 자기 국민들을 버렸지만, 죽이진 않았어요!”

“그 놈들은 매국노들이야!”

대통령이 가볍게 주먹을 탁자에 쳤다.

“매국노면 적발해서 적법하게 처리를 했어야지요. 그게 법치 아닙니까? 그 매국노들이라는 놈들, 아시잖아요? 너무 적은 돈을 주니까 다른 나라나 기업의 유혹에 빠지는 거 아닙니까!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게 아니라 빈 지갑 때문입니다!”

잔뜩 얼굴이 상기된 그들은 서로의 의자에 깊게 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당장은 몰라도 20년, 30년이 지나면 언젠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성현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래서 멈추길 원하는 건가?”

“네, 그리고 아영 대위를 비롯해서 이 최석민이라는 자를 반드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야 합니다.”

“뭐라고? 입막음을 위해서 그러는 건가? 그들은 절대로 그런….”

“아뇨, 대통령님. 그들은 절대로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눈을 치뜨고 선호석을 노려보았다. 선호석은 품속에서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그놈들이 가진 비화폰을 원격 조종해서 대화내용을 엿들었습니다. 아, 뭐라하시든 저는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녹음된 내용을 틀었다.

거기엔 석민과 아영의 대화, 석민과 알렉산드라의 러시아어로 하는 대화, 그들과 천사들의 싸움, 석민과 아영 그리고 베르의 대화 전부가 다 녹음되어 있었다.

“이 대화를 듣고 추정하건대 이들이 임무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난데없이 러시아어에 처음 아는 대화에 그리고 천사 이야기가 나오니 성현제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 대화를 언제 녹음한 건가?”

“오늘입니다. 그것도 마지막 녹음은 2시간 전에 한 것입니다. 이놈들, 비화폰도 끄던데요?”

그리고 그걸 원격으로 다시 전원을 켜서 도청을 한 것도 선호석이었다.

“이런.”

적어도 러시아어가 나온 것을 보건데 예전에 아영이 보고했던 러시아인이 서울에 무단으로 설치한 호텔 업소가 분명했다.

선호석은 대통령 쪽으로 다가가 상체를 숙였다.

“복귀 명령을 내리시지요. 그런 다음 나머지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대통령님. 국정원장에게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서 끝장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잠시 시간을 주겠나? 아직 이 대화만으로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증거를 가지고 오게.”

“대통령님!”

성현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선호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선호석이 다시 입을 열던 순간, 그들이 있던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비서실장이 급히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뭔가? 용이 서울을 빠져 나오려고 하나?”

그러나 비서실장을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경호실의 요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밖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뭐야? 방금? 대전에서 총성이라니?”

성현제가 놀라 물었다. 선호석은 뒷걸음질치며 경호요원들이 대통령을 호위할 수 있게 했다.

요원들은 대통령을 일으켜 세우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는 권총과 기관단총을 꺼내 경계했다.

“코드 1 확보완료, B루트로 이동!”

“도대체 무슨 일인가?”

계속 연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기관단총의 소리가 아니라 기관총 특유의 총성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꽤 되었다.

“사람들을 대피시켜!”

“대통령님, 일단 움직이셔야 합니다.”

벌들의 호위를 받는 여왕벌마냥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은 그대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있는 헬기장으로 올라가 헬기에 올랐다.

만일을 대비해서 옥상에는 항시 3대의 헬리콥터가 대기 중이었다.

임시정부청사가 위치한 임페리얼 호텔 1층 로비를 무장 괴한들이 타고 온 버스가 들이받은 상태였다. 버스에 치인 육군 경비중대 군인 2명이 그대로 숨졌다.

버스에서 내린 괴한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격을 가했다. 때문에 엄청난 총성이 호텔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방탄복에, 방탄 기능이 있는 안면 마스크를 쓴 채 무차별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대통령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천천히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일련의 사태를 무마시키고자 온 지원부대며, 각 방마다 들어찬 인물들을 기관총으로 난사하거나 수류탄을 던져서 제거했다.

호텔 임페리얼에 상주하는 인원들은 대부분 옛 정부서울청사의 공무원, 대통령비서실 인원 혹은 기자실의 기자나 임시국회의 의원들이었다.

업무시간인 터라 그들 모두가 괴한들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였다.

헬기가 이륙한 직후 대통령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검은 연기와 불꽃이 흘러나오는 임페리얼 호텔 건물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헬리콥터들은 처음엔 정부대전청사 방향으로 향했다.

비화폰을 가지고 상황파악을 위해 통화 중이던 비서실장이 보고했다.

“대통령님, 정부대전청사 쪽도 괴한들이 습격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크게 낙심을 한 성현제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국가안보실장은 어디에 있나?”

“모릅니다.”

헬기 안에 탄 사람들은 경호실과 비서실의 일부 인원들뿐이었다.

대통령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헬리콥터에 탑승하지 못했고, 경호요원들의 경호도 받지 못했다.

대통령은 영부인이 없었기 때문에 영부인이 탑승할 일도 없었다.

“…정부세종청사 쪽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헬리콥터들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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