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91화]
“가족이잖아. 형제를 소중하게 여기는 놈이니까 반드시 그럴 거야. 날 죽이려고 혈안이 되겠지.”
“그렇지만, 자기들의 이점을 포기하고 들어오는 거라면, 그놈들도 대책을 세웠다는 소린데요. 그리고 그놈들이 우리 주요 루트를 알고 있다면, 저라면 다리 쪽에서 기다릴 것 같아요. 날개의 이점을 세울 수 있고 딱 하나밖에 없는 길이니까,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가?”
석민은 잠깐 고민에 들어갔고 아영은 그런 그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가족의 복수를 위해 반드시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다리에서 기다린다면 반드시 만날 텐데 불리하게 지하로 들어오지는 않을 거 같아요. 다리에서 다시 교전을 벌인다면 자기들 이점도 살릴 수 있잖아요? 그리고 숫자가 아직은 저쪽이 많으니까, 숫자의 이점을 세우기 위해선 전장이 넓을수록 좋겠죠.”
그리고 아영의 예상이 맞았다.
***
대략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이후에 석민과 아영은 천천히 중앙선 노선의 상봉역으로 몸을 옮겼다. 주변에 천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석민은 정면 180도를 감시했고, 아영은 후면을 감시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몰살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간의 거리를 대략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걸었다.
석민과 아영은 속보로 중랑역을 지나 다리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거대한 천사의 형상 3구가 늘어서 있었다.
“…내가 틀렸네.”
석민의 말에 아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다리고 있었고 저렇게 대놓고 서 있는 것을 보니 결전을 원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총을 조준했다. 거리는 200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 2놈은 어디에 있는 것이지?
“내가 쏠 테니까, 너는 사주경계.”
석민은 가장 키가 크고 유일하게 4쌍의 날개를 가진 빛을 뿜는 천사를 보았다. 이 어두운 지옥구렁텅이 같은 곳에서 유일하게 별처럼 빛나는 놈이었다.
어찌 보면 거룩하고 성스러운 장면처럼 보였지만, 상대가 인상을 잔뜩 쓰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석민은 천사가 저렇게 자기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낸 것이 의외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건 함정이야.’
그의 내면의 자아가 말했다.
이쪽은 총을 가지고 있는데 대놓고 저렇게 서 있는다?
일단 지난번처럼 머리 위에서 급하강하여 기습할 것처럼 보이진 않아서 석민은 아영에게 산개 수신호를 보냈다.
갑작스런 석민의 산개 신호에 아영이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피던 그때, 바닥에서 칼날이 튀어나왔고 석민과 아영은 재빠르게 좌우로 움직여 피했다.
“에라이!”
설마 바닥에서 공격할 줄 몰랐던 석민은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힘도 세고 칼날이 날카롭다곤 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고가도로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데.
석민과 아영의 시선이 칼날에 집중되는 순간, 맞은편에 있던 3명의 천사가 일제히 자신의 무기들을 들고 석민과 아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날개를 활짝 펴고, 바닥에 밀착하여 비행하면서 창과 검, 그리고 방패를 들었다.
석민은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ASH-12.7을 견착하고서 자세를 잡았다.
가장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오르곤을 노리고 석민이 조준한 순간, 오르곤의 눈과 날개에서 후광이 뿜어져 나왔다. 일시적인 강렬한 빛에 석민의 시야가 막혔다.
“이런!”
석민이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졌다. 아영도 인상을 쓰면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다른 손으로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안전핀을 뽑아 천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러시아제 방어용 수류탄으로 지연신관도 있지만, 어딘가 부딪히면 바로 격발되도록 충격신관도 있는 물건이었다.
수류탄은 오르곤의 오른쪽에 있던 천사의 날개에 정확하게 맞았고, 폭발이 일어났다.
천사들은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빛이 사라진 덕분에 시야를 되찾은 석민은 앞으로 달려가 무너진 다리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천사 2명을 노리고 총을 쐈다.
투구에 총알을 맞은 천사가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그 옆에 있던 오르곤은 자신의 날개로 몸을 가렸다.
석민은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던졌다. 그 사이 아영은 다시 수류탄을 던졌다.
폭음과 함께 아래쪽에서 숨어있던 천사 2명이 석민과 아영의 좌우에서 튀어나와 창을 휘둘렀다.
“피해!”
석민의 외침에 아영도 재빠르게 몸을 던져 창을 피했다. 석민은 땅으로 몸을 굴리면서도 총을 들어 천사 한 명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흉갑의 등판에 맞은 천사가 그 충격으로 몸이 튕기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다른 탄환 한 발이 날갯죽지에 맞으면서 찬사의 한쪽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잘린 단면에서 피가 비처럼 뿌려졌다.
석민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무리를 위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탄창이 비어있었다.
급히 재장전에 들어갔고, 그 틈을 타 아영은 다른 천사를 노리고 연발로 총을 쐈다.
묵직한 12.7mm탄환이 연달아 발사되었다.
급히 쏜 거라 견착 자세가 올바르지 못했던 그녀는 5발 이후로 총구가 하늘로 들렸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흉갑에 연달아 4발이 박히고, 마지막 한 발이 천사의 얼굴에 박히면서 뒤통수가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한쪽 날개를 잃은 천사가 떨어진 자신의 날개를 방패삼아 탄환을 막으며 뒷걸음질쳐 다리 아래쪽으로 몸을 던졌다.
석민은 급한 마음에 탄창을 제대로 장전하지 못했다.
“제길.”
익숙하지 않은 조작감과 20발짜리 탄창에 석민이 약간의 짜증과 아쉬움이 들 무렵, 뒤쪽에서 그림자가 짙어졌다. 석민은 오싹한 기분에 얼른 몸을 돌렸다가 자신의 하복부를 노리고 찔러오는 창끝을 보고 몸을 크게 뒤로 뺐다.
그는 SMG홀스터에 넣어두었던 9A-91소총을 꺼내 한 손으로 쐈다.
탄환이 자신의 뒤를 노리던 천사의 어께와 허벅지에 맞아 피가 튀었다. 천사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인상을 쓰면서 무너진 다리 아래쪽으로 쓰러졌다.
그때, 옆에서 아영이 던진 수류탄에 정통으로 맞은 천사가 나타났다.
얼굴은 파편으로 찢기고 손 하나가 크게 훼손되었으나 전의는 상실하지 않은 듯했다. 천사는 다친 손을 방패를 고정시켜 앞세웠다.
석민은 자신의 탄창이 20발짜리라는 걸 속으로 다시 되새기며 방패를 향해 연달아 3발 쐈다. 탄환은 방패에 부딪혀 작은 불꽃들을 만들어냈다.
천사는 아직 성한 날개로 아영의 사격을 막는 한편, 석민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다 생각한 석민은 그대로 다리에 힘을 줘 뛰어오른 다음 방패에 몸을 박았다. 덩치가 크고 몸무게도 제법 나가는 자신이 부딪혔는데도 천사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석민이 뒤로 밀렸다.
다만 바짝 붙어있는 상태라 천사의 검이 석민을 베진 못했다. 약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고, 석민이 조금 밀리긴 했지만 시간을 끌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영이 새 탄창을 끼워 다시 천사를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빗나간 탄환 한 발이 바닥에 튕겨 도비탄이 되어 보호대에 감싸지지 않은 무릎 부분에 닿아 박혔다. 덕분에 천사의 신체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석민은 왼손으로 단검을 뽑아 높은 방패를 타고 넘어 천사에게 달려들었다.
천사의 얼굴을 노리고 체중을 실어 단검으로 코를 찔렀다. 단검이 절반쯤 박혀 들어갔을 때 손을 떼어내고 주먹으로 단검 손잡이를 향해 찍어 내렸다.
퍽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동시에 천사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뒤로 엎어졌다.
단검은 손잡이만 빼고 천사의 얼굴에 완전히 박힌 상태였다.
이걸로 천사가 죽었으리라 생각지 않은 석민은 소총으로 얼굴에 총알을 몇 발 더 갈겼다.
얼굴이 완전히 박살나 형상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 천사의 시체 위에서 석민은 얼른 재장전에 들어갔다.
어느새 석민의 옷은 피로 붉게 젖어 있었다. 이제 천사는 3명만이 남았다.
석민은 9A-91을 다시 홀스터에 넣은 직후 버렸던 ASH-12.7 소총을 다시 집었다.
“날개 뜯긴 놈을 찾아!”
석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재장전을 마친 후 무너진 다리 아래에서 부상당한 천사를 옮기고 있던 오르곤을 노리고 총을 쐈다.
오르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날개를 이용해 부상 입은 천사를 보호하려는 한편, 석민을 향해 창을 던졌다. 석민은 상체를 옆으로 굴려서 그것을 피했다.
천사의 센 힘에 창이 목표를 잃고 지나치면서도 작은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창 공격이 막히자 오르곤은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석민은 견제를 위해 계속 사격을 했다.
그러나 견제는 실패했다. 오르곤의 주문은 석민과 아영이 서 있는 다리의 무너지지 않은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부서져서 경사진 다리의 바닥 부분을 뚫고서 주문이 기둥에 작렬했고, 석민의 발이 닿은 부분이 들썩였다.
서 있는 다리 상판이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전의를 상실하고 중랑천의 도로를 따라 뛰어서 도망치던 날개 잘려나간 천사의 등 뒤를 노리던 아영도 그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리 상판과 함께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폐가 눌려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못했던 아영은 곧 흙먼지 속에서 기침을 하며 다시 일어났다.
눈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내기 위해 손으로 비벼서 시야를 확보하고 조정간을 단발로 둔 직후 먼저 정신을 차리고서 도망치는 천사의 등을 향해 조준해서 쐈다.
왼쪽 대퇴부에 정확하게 맞았는지, 천사는 잠깐 몸을 움찔거리더니 강가 쪽으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져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던 천사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필사적으로 강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 순간, 강에서 검은 기운이 올라와 천사를 옭아맸다.
“뭐야?!”
급박한 데도 당황한 아영은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석민은 아직 그러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오르곤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는 중이었다.
몸은 날개로 가리고 있었지만, 머리는 내민 채 석민을 주시하고 있었다.
석민이 쏜 총알이 투구에 박히면서 오르곤의 머리가 튕겨지듯 뒤틀렸고, 투구의 뿔 장식과 보석들이 떨어져 나갔다. 오르곤 또한 뒤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오르곤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천사가 급히 주문을 외우려 할 때, 석민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제대로 된 치명상을 주지 못했지만 주문을 막는 데는 충분했다.
사지, 특히 다리에 연달아 총이 박힌 천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군홧발에 짓이겨진 지네 마냥 꿈틀거렸다.
오르곤은 다시금 방어자세를 취하고 뒤로 물러섰다.
쓰러진 천사가 오르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찌 보면 처절한 모습으로 보일 법하지만, 석민은 감흥 없이 천사를 향해 총을 쐈다. 이윽고 사타구니에 천사가 미친 듯 몸을 펄떡이더니 곧 미동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
“끄아아아아!”
강에서 튀어나온 검은 기운들은 강가에 근접해 있던 천사들을 옭아매 강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강물 속으로 사라진 천사의 신체는 잠시 후에 검게 물든 채 떠올랐다.
그자가 죽은 것으로 판명한 아영은 짐가방에서 자신의 저격총을 꺼내서 오르곤을 조준했다.
오르곤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몸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기 때문에 그녀가 쏠 곳을 없었다.
“RPG를 가지고 올까요?”
그녀의 물음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