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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90화 (190/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0화]

급히 정신을 차린 천사들이 다시금 하늘로 올라갔다.

결국 총에 맞아 유효타를 낸 건 2명뿐이었다. 그 중 하나는 즉사했으나 다른 하나는 아직도 목을 부여잡고서 몸부림치며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석민은 몸을 웅크린 채 흐느끼는 아영에게 다가갔다.

환상에 빠진 사이 자전거에서 떨어져서 굴렀는지 석민의 온몸은 찰과상을 입은 것 마냥 쓰라렸다.

“아영아, 일어나.”

그는 처음으로 아영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오 상사님,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여러분들을 다 죽게 만들었어요. 용서해주세요.”

아직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영이 낮게 흐느끼면서 옛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석민은 그녀를 흔들어보다가 안 되자, 그녀의 따귀를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아?”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석민이 시야에 잡히자, 곧 경악으로 얼굴이 물들어 갔다.

석민은 아영이 정신을 차린 듯하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들의 몸에 그늘이 졌다.

석민이 재빠르게 눈동자를 돌리자, 목에 총을 맞은 천사가 한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끅끅거리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 석민을 노리고 창을 찍으려고 했다.

석민은 아영을 밀치고 자신도 반대편으로 몸을 굴러 창을 피했다. 창은 바닥에 박히지 않았지만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석민은 몸을 굴리면서 신체가 무너지고 있던 천사를 향해 조준했다.

이제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버림받은 오르바의 둘째 형인 오르나가 분명했다.

세찬 바람에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르바의 창을 가지고서 석민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던, 그 천사.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감사의 인사였다.

오르나는 힘없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석민을 응시했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오르나는 무언가 감정이 생긴 듯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목을 부여잡은 손의 틈새로 피가 심장박동에 맞춰서 줄줄 새어 나왔다.

그냥 놔둬도 죽을 것 같은 모습에 석민은 굳이 탄약을 써야 할까 생각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석민이 방심하기 무섭게 오르나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창을 낚아채고는 석민을 베려했다. 석민은 급히 몸을 숙여 간신히 자신의 허리를 노리던 창날을 피했다.

잘못했다가 그대로 두 동강이 날 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있는 힘을 다 실었는지 창이 콘크리트 벽면을 횡으로 베고 들어가다가 이내 멈췄다.

오르나는 벽에 콱 박힌 창을 뽑아내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결국 포기하고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오르나 기준으로 단검일 뿐이지, 석민의 기준으론 길이 70센티쯤 하는 커다란 칼이었다.

천사가 단검을 거꾸로 잡고 그대로 엎어지듯이 상체를 숙이며 석민에게 찍으려던 순간, 석민은 누운 자세로 천사의 팔다리를 노리고 총을 쏘았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에 피가 튀었고, 양팔이 떨어져 나갔다.

“끄아아.”

천사가 미약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니들도 비명을 지르는구나.”

흉갑을 입고 있었기에 석민은 입을 노리고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천사의 신체가 착탄의 충격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꺄아아아악!”

하늘 높은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민은 적의로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공중에서 2명의 천사가 말리는 와중에 4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래, 큰형 오르곤이구나.’

당장이라도 석민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좌우의 천사가 말리고 있었다.

“꼽냐, 이 새끼야? 꼽냐고!”

석민이 분노 가득 담아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칠 때 아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천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내려와 봐! 이 새끼야!”

그는 오르나의 단검을 붙잡아서 들었다.

오르나는 한 손으로도 쉽게 잡던 검의 손잡이가 석민에겐 두 손으로 잡아야 할 만큼 길었다.

“잘 봐!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감히 내 동생을 가지고 이 짓거리를 해!? 똑똑히 봐!”

오르곤의 아름다운 얼굴 가득 핏대가 바짝 섰고  분노로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괴이한 모습이었으나 석민의 눈엔 자신을 피해 하늘로 올라간 쫄보 새끼에 지나지 않았다.

석민은 총을 내리고 메스보다도 날카로운 단검을 단단히 잡은 채 오르나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칼날을 목에 가져다 댔다.

“니 동생 머릿결 죽이네? 어? 머리를 잘라서 헌팅트로피에 장식하기 딱이겠어? 이 쓰레기야! 잘 봐! 이….”

역린을 건드려서 이성이 마비된 석민이 그대로 오르나의 목을 베려던 순간, 아영은 경악 어린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도망쳐야 합니다!”

아영이 억지로 석민의 옷깃을 잡아 흔들어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전동 자전거에 올라탔다.

석민도 이성을 되찾고 재빠르게 자신의 전동 자전거가 있던 쪽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등에 멘 무기와 가방 때문에 행동이 아영보다 굼떴다.

오르곤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베르가 쓴 마법처럼, 오르곤 주변이 플레이아데스성단처럼 빛무리가 생겨났다. 빨간 빛은 점점 크게 부풀었다.

석민과 아영이 전동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무섭게 빛 중 하나가 그들을 노리고 작렬했다.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자리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석민의 전동 자전거 뒷바퀴가 충격으로 크게 들썩였다.

다행히 파편은 그리 크지 않아서 부상은 면했으나, 엄청난 열기를 뒤집어쓴 가방에서 그은 연기와 함께 매콤한 냄새가 풍겼다.

“사가정역으로!”

아영이 소리치면서 양손을 자전거 핸들에서 떼더니 상체를 돌려 천사에게 3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천사들에게 닿긴 했으나 거리가 멀어서 힘이 부족했는지 총탄은 박히지 않고 힘없이 떨어졌다.

석민이 역의 입구에 도착할 때쯤 2번째 화구가 작렬했다.

자전거에 내려서 계단을 내려갈 시간이 없다 판단한 석민은 그대로 자전거에 탄 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아영 또한 이미 그렇게 내려간 상태였다.

화구는 입구에 착탄했고, 뒤에서 화염의 충격이 그대로 석민을 엄습했다. 폭풍이 그와 자전거를 날려 벽에 부딪히게 만들었다.

지하철 입구가 반쯤 무너지고, 마감용 타일 파편들이 석민의 머리와 몸을 강타했으나 다행히 무사했고, 정신도 잃지 않았다.

아영은 낮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석민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석민이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대답하자, 아영은 석민의 몸 곳곳을 살피며 다친 데가 없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그때 다시 큰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석민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어서 이동해요. 빨리요!”

용케 전동 자전거도 무사했다.

폭발의 영향으로 진동이 크게 울리고 지하의 기둥에 균열이 생겨났다.

잔뜩 화가 난 오르곤이 지하터널을 무너트릴 요량인지 연속해서 자신의 주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철도를 따라 사가정역을 벗어나야 했다.

석민은 뇌진탕을 겪은 것 마냥 머리가 아프고 울리는 비몽사몽한 정신 속에서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아영의 뒷모습을 따라 자전거와 검을 둘러메고 달렸다.

끝없이 부서지는 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다. 어느 덧 바로 뒤에서 소리가 석민과 아영을 쫓아왔다.

진짜로 역이 무너지는 듯했다.

승강장으로 들어선 그들은 면목역 방향으로 다시 달렸다.

전철로를 따라 달리기 무섭게 뒤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승강장 천장이 무너지고 콘크리트와 파이프 조각들이 쏟아졌다.

“빌어먹을 놈들”

아영이 이를 악물며 화를 억누르듯 말을 내뱉었다. 그들의 뒤에서 회색 먼지가 덮쳤다.

방한용 발라크라바가 입과 코를 가려준 덕분에 기침을 쏟진 않았지만, 눈을 통해 콘크리트 가루가 들어가 시야가 흐렸다. 먼지는 그들이 상봉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상봉역에 도착했을 땐 전동 자전거의 배터리가 방전된 후였다.

***

“그건 왜 챙기셨나요?”

잠시 후 안정을 되찾고 정비를 마친 아영과 석민이 한시름 놓았을 무렵, 아영은 석민이 아직 오르나의 단검을 가지고 있자 살짝 웃음을 터트리면서 물었다.

“전리품.”

석민은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예? 그걸 진짜로 쓰시게요?”

칼날 길이는 50센티, 손잡이 길이까지 합치면 70은 족히 넘어보였다.

“그놈들 무기는 콘크리트 벽도 자르던데. 이것봐봐, 날의 이가 나가지도 않았잖아.”

그가 말한 대로 단검은 마치 새것마냥 반짝였다.

“철로 만든 건 아닌 거 같네요.”

아영은 그것을 건네받아 찬찬히 살폈다.

손잡이 부분은 상아처럼 보이는 재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영이 보기엔 아마 상아보단 괴수의 이빨을 깎아 만든 게 아닐까 추측됐다.

검신과 크로스가드, 그리고 폼멜이 일체형이었다.

‘특이하게 만들었네. 어떻게 손잡이 부분을 끼워 넣은 거지?’

잠깐 가벼운 의문을 가지다가 그녀는 도신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표면은 유약을 바른 자기처럼 매끄럽고 반짝였다.

전체적으로 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일 때는 오팔처럼 다색으로 반짝였다.

처음 보는 금속이었다.

‘설마 지구의 주기율표에 없는 건가?’

단단했고 탄력은 별로 없었다. 거기다 칼날은 매우 날카로웠다.

문뜩 좋은 생각이 난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벽면에 가볍게 휘둘렀다.

눈앞에서 물리 법칙이 부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영은 손에서 작은 저항을 느꼈지만, 칼은 두부 썰듯 벽을 베었다.

하지만 도중에 벽에 꽉 박혀 빠지지 않았다. 아영은 칼을 빼내려다가 힘에 부쳐, 석민과 함께 잡아당겨서 겨우 빼냈다.

“와우.”

아무리 도검류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흥미를 가질 법했다.

“이런 걸 가지고 있고 마법 같은 주문을 쓰면서도 종족이 멸종위기라니.”

“뭐, 글쎄. 아무리 좋은 도검이라도 노도같이 몰려드는 것들을 일일이 베어내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받아 들었다.

지금 당장 쓰기엔 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오르곤을 도발하거나 유사시에 써먹을 순 있을 것이다.

그는 이걸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하다가 대충 가방 위에 올리고 고정시켰다. 날이 너무 날카로워서 고정용으로 둔 벨크로가 살짝 베였다.

“다른 무기들은 다 멀쩡해요?”

“어, 너는?”

“저도 멀쩡하긴 한데….”

아영은 자신의 AKS-74U의 장전손잡이가 말썽이었다.

“어디 한 번 보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가 얼른 말했다.

“손잡이만 휜 거라 서요.”

그녀는 알림글에 시선을 두었다.

“잠깐 시간 좀 주세요.”

“어.”

아영이 총기를 분해해서 휘어버린 장전손잡이를 악력으로 피는 동안, 석민은 자리에 앉아 이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아영은 손잡이가 제대로 펴졌는지 확인하고는 고민에 빠진 석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여기 있을 거야.”

“음, 왜죠?”

“놈들은 우리가 가려는 길을 잘 아는 것 같아서. 그놈들 분명히 역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역을 통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럼 더 멀리 흩어져서 찾으려고 하거나,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거야. 개인적으론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해.”

“네? 어째서요?”

“내가 오르곤의 동생을 죽였잖아.”

석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놈들은 우리를 하등생물쯤으로 보고 있는데 그 하등생물한테 동생이 죽었고 시신이 모욕당할 뻔했으니까 반드시 날 죽이고 싶어 할 거야.”

“정말 그 이유만으로 그렇게 행동할까요?”

아영의 물음에 석민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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