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89화]
석민과 아영은 다리에 들어서기 전부터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와이번의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드레이크 무리의 이동할 때 나는 땅울림도 없었다.
단지 추위와 세찬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매서운 바람 사이로 폐허 속에서 누군가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석민은 이상한 낌새에 주변을 둘러보았고 아영도 마찬가지로 걷다말고 주변을 살폈다.
“너도?”
“네.”
하지만 스탯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스코프의 렌즈반사광을 잘 찾아내던 그들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많이 날카로워진 모양이네.”
석민의 말에 아영이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무언가 살벌한 기분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맹수가 등 뒤로 달려들 것만 같은 오싹한 기분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부서진 건물 속으로 들어가 엄폐했다.
“뭐야?”
분명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신 혼자만 느낀 것이라면 그냥 기분 탓으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아영 또한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은폐와 동시에 자신들을 쏘아보던 시선이 사라지더니 곧바로 숙취마냥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듯 한 두통이었지만, 석민과 아영은 고통을 간신히 참았다.
고통은 몇 분간 지속되었다.
석민과 아영은 동시에 이 일이 천사들의 농간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고 있을 드래곤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순 없었고, 괴수들한테 이런 일을 당한 경험은 없었다.
‘그놈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건가?’
감시할 만도 했다.
석민은 구름 속에서도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했던 베르의 말을 떠올리며 폐허 속 구멍을 통해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 이상으로 눈이 좋을 테니 고지대나 좋은 길목에 서서 우리들을 찾을 것이다.
석민이 그들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꽤나 조급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수인들을 부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이제 직접 나설 때가 되었지.’
“몸은 좀 어때?”
생각을 정리한 석민이 두통으로 머리를 흔들고 있는 아영을 향해 물었다.
“…괜찮아요.”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낌새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 상태론 상황이 매우 불리했다. 상대는 마치 레이더를 비롯한 모든 탐지수단을 갖추고 쓰는데 이쪽은 육안밖에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천사들이라….”
석민은 자신의 돌격소총의 장전손잡이를 당겨서 장전을 한 후 조정간을 격발로 두었다.
조정간이 2개, 안전과 격발, 그리고 단발과 연사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세심하게 관리해야 했다.
그는 유사시에 바로 반격을 할 수 있도록 방아쇠울에 손을 넣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어.”
석민은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폐허 속을 나와 구리암사대교 쪽으로 걸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주변이 조용했다.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돌리면서 주변을 살폈고, 가끔 머리 위를 보기도 했다.
석민은 구름 속에서 기다란 창을 뻗으며 급강하하던 베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도 그렇게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설마 부비트랩이나 지뢰를 쓰진 않겠지?’
석민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리 초입부에 들어섰다.
주변은 누군가 먹고 버린 깡통들이 굴러다녔고, 오래되지 않은 탄피들이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교전의 흔적이 분명했다.
‘샤샤의 말이 사실이었나?’
괴수가 자주 나타난다는 말은 오래 있어봤자 좋은 게 없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이제 비장의 무기인 전동 자전거를 쓸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석민이 먼저 자전거를 꺼내 들자 아영도 준비했다.
전동 자전거는 무게 때문에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며 나아갔다.
설계상 200킬로미터까지 버틸 수는 있지만 강추위에다가 많은 짐을 가지고 있는 석민의 몸무게는 못 버티는 듯했다.
석민은 자기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아영의 뒷모습을 멋쩍게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그들은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옛날에 괴물과 싸웠던 톨게이트까지 지나치려던 때였다.
석민의 눈에 반파된 지상형 드론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것은 마치 면도칼마냥 대각선으로 깔끔하게 잘려있었고, 전원은 꺼져있는 것 같았다.
그에 의아한 생각이 들 무렵, 아영이 달리는 지면과 자신의 지면이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석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머리 위에!”
아영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침착하게 전동 자전거를 지그재그로 몰았다.
“내리지 말고 안으로!”
그녀가 소리쳤다.
“알았어!”
석민도 그녀를 따라 행동했다.
2명의 천사가 창을 겨누고 무서운 속도로 급하강해, 그들이 있던 자리에 창을 박아 넣었다.
콘크리트에 아스팔트를 포장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창은 매우 깊숙하게 박혔다.
석민은 고개를 돌려, 창을 빼내고 이쪽을 쳐다보는 천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석민과 아영을 추격하지 않고 창을 뽑은 채 가만히 서서 응시할 뿐이었다.
“멈춰.”
석민이 그렇게 말한 뒤 자전거에서 급히 내려 총을 겨누자 천사들이 쏜살같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런 씨.”
방아쇠를 당길 틈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 버리자 석민은 닭 쫓던 개꼴이 되어버렸다.
“터널에선 자기들이 불리하단 걸아는 것 같습니다.”
아영이 석민 쪽으로 전동 자전거를 몰아오며 말했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대기할 것 같은데.”
“일곱 천사가 다 밖에 있으면 우리도 곤란하겠죠. 저놈들, 우리보다 크고 숫자가 많으니까요.”
그들은 반대편 터널 말고 다른 출구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하고 움직였다.
그렇지만 결국 다른 출구는 찾지 못했다.
반대편 터널로 이동하는 비상구는 발견했지만 다른 출구가 없자 그들은 난감해졌다.
“일단 나가서 교전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사가정역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하지만 아영은 저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 걱정돼서 석민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싸우죠.”
“싸우자고?”
석민은 아영의 대담한 결정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탄약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여기서 농성하는 것도 무리고 도망칠 수 없잖아요? 분명 원래 왔던 길도 감시하는 자가 있을 테고, 그 감시를 뚫고 돌아갈 수도 없어요.”
“좋아.”
그 말에 석민은 약간 신난 어조로 대답했다.
도망치는 것도 지겹던 차였다. 차라리 맞붙었다가 기회를 노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러자. 우리 탄약도 많으니까 이참에 짐의 무게도 좀 줄이고.”
무리수와 허세에 가까운 긍정의 말이 나오자 아영은 그가 자기의 말에 비아냥거리는 게 아닌가 하고 순간적으로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석민은 그런 아영의 시선도 눈치 채지 못하고서 고개를 숙인 채 보조무기로 둔 9A-91 소총의 장전에 들어갔고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렸다.
“여기서 너무 주춤거리면 녀석들이 주문을 사용해서 터널 앞뒤를 막아버리면 우리는 여기에 생매장당하는 꼴이야. 그러니까 신속하게 행동하지.”
아영은 저도 모르게 자기혐오를 느끼고 말았다.
“괜히 나 혼자만 적대하는 건가….”
“뭐라고?”
“아뇨, 아니에요.”
아영은 얼른 얼버무린 다음에 자신의 총을 언제든지 쏠 수 있게 준비했다.
“자전거를 버려선 안 돼요. 이걸 잃어버리면 우리 기동력을 잃게 되니까요.”
“알았어.”
그들은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시 움직였다.
터널은 이상하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고 먼지도 흩날리지 않았다. 단지 전동 자전거에서 나는 모터 소리와 바퀴가 움직이는 묵직한 소리만 날 뿐이었다.
석민은 예상했던 대로 천사들과 교전이 벌어지게 되자 조금 흥분한 상태였다.
‘마법만 조심하면 돼. 창, 칼 따위 총 앞에선 무용지물이지.’
그가 마음을 단단하게 잡고 출구에 다다른 순간, 검은 기운이 매서운 속도로 자신에게 엄습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그의 눈도 눈동자와 흰자위에 상관없이 검게 물들었다.
“무슨?!”
머리가 조각나는 것처럼 엄청난 두통과 함께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ㅏㄹ 버렸어.
“응?”
-오빠가… 날 버렸어.
어둠 속에서 이젠 가슴 한구석에 잠들어있던 애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누구야?! 설마….”
-오빠가 날 버렸다고!
석민의 몸이 크게 동요하듯이 떨려왔다.
“현정아? 현정이야?”
눈앞에 처참한 모습의 여동생이 나타났다.
팔다리는 너덜거리고, 얼굴은 총에 맞아 반쯤 박살난 몰골의 여동생이 천천히 기어왔다.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턱과 축 늘어진 기다란 혀가 보였다. 목구멍 대신 반쯤 들어 난 식도의 구멍으로 색색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켜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왜 그랬어?
“내가 뭘….”
석민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 간신히 대답했다.
-벌써 잊은 거야? 식량 구해온다고 해놓고 날 혼자 두고 떠났잖아!
“아니야. 널 버린 게….”
-지금 내가 어떻게 된 줄 알아?”
그래도 핏기가 있던 육신이 급 속도로 쪼그라들더니 감염자의 육신마냥 바짝 말라버렸다.
하루 종일 봐도 지겹지 않던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모습이 더 끔찍하게 변해버리자 석민의 얼굴이 희게 질리더니 눈에 눈물이 고여 갔다.
“아, 아….”
여동생의 시신이 천천히 일어났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아, 아니야, 아니라고.”
석민은 항변하듯 말했다.
“거기는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어. 서울에….”
-그럼 뭐해? 결과가 이런데? 나 버리고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좋아?
석민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깨질 듯 한 두통과 가슴을 에는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만 벌리고서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날 죽인 거야 날 죽여서 시체도 안 찾고….
“그래, 내가 미안해.”
그는 눈물콧물을 흘리며 동생에게 용서를 구했다. 잠깐 동안 그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나와 가자.
“…어디를?”
그가 힘없이 물었다.
-나와 가자고. 여기가 아니라 천국으로.
“천, 국에?”
석민은 눈물에 젖은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와 동생은 무교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엄마 손잡고 주말마다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믿음을 버렸다.
특히 여동생은 자신보다 더 신앙심이 없었다.
신은 없다. 그땐 그것이 어린 그들이 절망을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랑 아빠가 기다리고 있어 같이 가자. 같이 가서 만나자. 다 잊고 거기서….
“너 누구야!”
머릿속에서 유리가 깨지는 듯 한 소리와 함께 여동생이 사라지고 대신 자신을 찌르기 위해 창을 조준하고 있던 천사가 보였다. 석민은 급히 총을 조준하고 당겼다.
천사의 얼굴에 12.7mm탄환이 박히면서 퍼석하고 소리가 나더니 뒤통수가 터져나갔다. 그리곤 그대로 거대한 신체가 뒤로 넘어갔다.
백색의 깃털과 옷, 갑주가 피로 물들었다.
석민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석민과 아영의 주변을 천사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때 자신처럼 아영을 처리하기 위해 창을 치켜든 천사가 보였다. 석민은 천사의 머리를 노리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총구 섬광이 번쩍이고, 천사의 목에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천사는 컥컥 거리면서 자신의 목을 붙잡으며 쓰러졌다.
“이 개 같은 새끼들!”
석민은 천사들을 노리고 계속 총을 쏘았다.
석민의 총격에 천사들은 바로 피하지 않고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날개로 신체를 가렸다.
석민과 아영은 천사의 텔레파시나 환상에 면역이 있었다. 그래서 천사들은 자신들의 정신력을 이용해 억지로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힘을 무력화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이 깨지면서 반동이 천사들을 덮쳤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