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88화]
석민과 아영은 차량에 짐을 싣고 예전처럼 군부대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이동했다. 짐이 많은 덕분에 차량 뒷바퀴 서스펜션이 깊게 눌렸다.
이날따라 유독 게이트를 지키는 군인들이 석민과 아영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짐들은 다 뭡니까?”
고작 이병 계급장을 단 위병이 싸가지 없는 말투로 물었다.
“그 무기들은 다 어디서 난 거죠?”
같이 있던 상병도 물었다.
위병소에서 석민과 아영은 6명쯤 되는 군인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석민은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살폈고, 아영은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하사를 노려보았다.
“얼굴 보이세요.”
발라크라바에 싸여 얼굴이 가려진 석민과 아영에게 하사가 말했다. 석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우리가 여기 몇 번 왔었는데….”
“그래서요?”
아영이 상황을 무마하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기 위해 꺼낸 말을 하사가 단칼에 잘랐다.
“배그합니까? 이 방탄모는 어디서 난 것입니까?”
병장 하나가 석민의 헬멧 바이저를 톡톡 두드렸다.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석민은 가만히 있었다. 괜히 국군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야, 이거 진짜 3뚝 아냐?”
그자는 이가 보이도록 실실 웃으면서 석민의 헬멧을 만지작거리다가 석민의 발라크라바를 잡아서 올렸다.
“얼굴 가리지 말고 어디 한번 면상을 좀 봅시….”
그러나 국군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인내심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그 병장의 팔을 잡아 꺾은 직후 그대로 주먹을 안면에다가 박아 넣었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병장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그것을 본 이병이 착검을 한 총을 석민에게 겨누고 그대로 찌르려고 했다.
석민은 대검의 옆을 왼쪽 손등으로 쳐낸 뒤 k-2소총의 핸드가드를 붙잡아 그대로 쭉 잡아당겼다. 힘의 영향으로 이병은 소총을 석민에게 빼앗겼다. 석민은 그대로 그자의 하복부를 발로 차서 쓰러트렸다.
피탈방지끈이 그대로 길게 늘어졌다. 석민은 소총을 쓰러진 이병의 반대편으로 던지고 보조무기로 두었던 기관단총을 꺼내 자신을 조준하려던 병력 하나에게 겨누었다.
조정간은 이미 단발로 돌려져 있었다.
“움직이면 쏜다.”
그가 말했다. 위병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총을 어깨에 메고 있던 덕분에 행동이 늦었다.
“진정하세요.”
아영의 말에 석민이 잠깐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자신을 조준하고 있던 위병을 쳐다보았다.
딱 봐도 잔뜩 겁을 먹었다.
안면에 한 방 맞은 병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이병 놈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질 못했다.
상황이 끝난 뒤 주변을 돌아본 석민은 섣불리 화를 못 참은 스스로에게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이건 명백히 스스로 잘못이었다.
군인들은 일부러 석민과 아영을 도발했다.
그러나 석민은 발라크라바를 벗을 수 없었다.
그는 교단에 지명수배를 당한 거나 다름없었고,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번의 경험을 통해 군대 내에서도 교단에 협력하는 자들이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절대로 얼굴을 보일 수 없었다.
군인 하나가 눈치를 보면서 총을 고쳐 잡으려고 하자, 석민은 그자의 가랑이 사이로 총을 한 발 쏘았다.
총탄이 그자의 바지를 스쳐 지나가 바닥에 부딪혀 깨지면서 파편과 작은 불꽃을 만들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가!”
하사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지만, 말과 다르게 두려운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해당 상황을 확인했는지 멀리서 중위 계급장을 단 사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멀리서도 그자의 철제 계급장인 다이아몬드 2개가 반짝거렸다.
“야, 위병소. 니들 뭐하냐.”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간신히 말을 한 직후 숨을 고르고는 아영에게 경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한테 전파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중위가 먼저 경례를 하자, 아영도 경례를 해주었다.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도 경계를 풀고 총을 다시 어깨에 멨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잘 알겠습니다.”
아영이 석민을 힐끔거리며 대답하자 석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중위와 위병들의 인사를 받으며 석민과 아영은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석민은 자신이 도발에 넘어가긴 했으나 그래도 불쾌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일이 설마 선호석 국가안보실장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설마요.”
아영은 애써 부정했지만, 그녀 또한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뒷맛이 쓴 출발이었다.
그러나 강동구 지역을 지날 때까지 괴수의 울음소리 하나 없이 순조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대신 군용 디젤엔진 소리를 내는 육중한 차량들과 마주쳤다.
“장애물개척전차네요.”
석민과 아영은 몸을 숨기고 전술잠망경으로 상황을 살폈다.
5대가 넘는 장애물개척전차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폐차들을 좌우로 밀어내고선 그 주변을 4대의 전차와 8대의 보병전투차들이 지키고 있었다.
“저 전차 처음 보는 건데.”
석민이 말했다. 차체는 보병전투차와 똑같았으나 포탑이 다르게 생긴 것이었다.
“몇 달 전에 새로 제식으로 채용된 것인데 벌써 실전에 투입된 줄은 몰랐네요.”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났는데도 괴수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네.’
석민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양재대로, 강동역이랑 가까웠다.
작업을 하는 속도를 보건데 하루면 도로 하나 정도는 전체적으로 개척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석민과 아영은 저것들과 괜히 조우하면 곤란해질 것이라 판단하고 몸을 숨겼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이 길은 국군의 계획상 서울 수복작전 때 쓸 진격로가 아닌데.”
“계획이 바뀌었나 보지. 작계가 뭐 항상 고수되는 것도 아니고.”
석민은 그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나저나 강동역이랑 아주 가까운데 나중에 알렉산드라네 호텔 사업이 틀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
⌜나한테는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너한테는 좋은 소식이 여럿 있어.⌟
호텔 말리나로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알렉산드라는 석민과 아영을 이끌고 바로 향했다.
아영과 떨어진 자리로 석민을 데리고 간 그녀는 매우 심각한 목소리로 서두를 끊었다.
⌜너희 정부가 군대를 서울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어.⌟
그 말에 석민은 짐짓 몸을 떨었다.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어?⌟
⌜별건 아니고, 서울 수복을 준비하는 것 같더군.⌟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떨리는 눈동자를 보니 동요가 심했다.
⌜여기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야.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계속 안 좋아지겠지. …미련이 남기는 하지만, 별수 없지.⌟
⌜군대가 움직이는 게 내 일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지금은 없어. 하지만, 언제든지 1개의 기갑여단, 1개의 포병여단이 서울 진격 준비 후 대기상태라면 신경 쓰이겠지? 혹시 아는 정보 있어?⌟
⌜없어.⌟
단호한 대답에 알렉산드라가 눈을 굴리며 석민을 살폈으나 석민은 이미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는 처음엔 혹시 대통령이 강북에 있는 드래곤하트를 확보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석민과 아영의 힘이 강하다 해도 둘만으로는 그것들을 전부 옮기는 것은 무리였고, 대통령이 따로 그것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추측일 뿐인 가정을 석민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나중에 혹시 국가안보실장에 관한 정보가 모이면 줄 수 있나?⌟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석민을 힐끔거리던 알렉산드라가 작은 기류를 눈치 챘다.
⌜국가안보실장이 낌새를 맡았나보네?⌟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어.⌟
⌜상황이 변한다는 의미는?⌟
그녀는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대답에 대해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이 이상 말하면 나도 곤란해. 아무튼 할 수 있는 대로 연락하지. 전화해도 되지?⌟
⌜어.⌟
알렉산드라와의 거래는 아직 유효했지만, 그녀의 상부에서 무언가 새로운 훈령을 내려 받거나 어떤 기류를 감지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설마 국가안보실장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피어오르는 의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석민은 비화폰을 내려다보았다.
도청의 위험 없이 쓰기 위한 것이지만, 반대로 국가에서 원한다면 역으로 도청당하거나 원격 제어를 통해 위치가 파악될 수 있었다.
석민은 휴대폰을 꺼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 호텔의 방비가 최근에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다리와 터널을 지키는 드론들의 수를 줄였어. 다리 쪽은 근래에 괴수들이 조금 꼬이고 있으니까 조심해.⌟
헌신자 괴수의 냄새 영역 빨이 다 되었나?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많은 짐을 가지고 들어왔던데, 왕십리에 빨리 들어갈 생각인가 봐?⌟
알렉산드라의 물음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되도록 빨리 가도록 해. 교단 놈들이 준비를 다 마쳤어.⌟
⌜뭐라고?⌟
⌜지금 최종 준비단계에 들어갔고 거기도 오늘내일 중으로 서울에 올 것 같거든. 원래 계획과 다르게 최대한 서두르는 것 같더군. 이건 서비스로 알려주는 거야.⌟
알렉산드라의 말에 석민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정보 감사해.⌟
아무래도 교단과 연결되어 있던 감염자들을 처리하니 교주 놈이 조급해진 게 분명했다.
알렉산드라와의 미팅이 끝난 후 석민은 아영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비화폰을 꺼놓자.”
“걱정되시는 건가요?”
“어.”
아영은 별말하지 않고 그의 말대로 자신의 비화폰을 꺼내서 전원을 껐다. 석민도 자신의 비화폰과 개인 폰까지 껐다.
‘이렇게 하면 도청이나 위치 추적당할 일은 없겠지.’
“무슨 일 있어요?”
“다리랑 터널 쪽에 근래에 괴수들이 많이 나타나서 거길 지키는 경비 드론의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뭔가 이상하군요.”
“뭐가?”
아영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강남 지역을 돌아다닐 땐 괴수들을 보지 못했잖아요. 군대도 대놓고 진출로를 확보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다리와 터널 쪽에는 괴수들이 나타난다? 이상하지 않아요?”
“터널이랑 다리 쪽은 강남 지역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이상해요. 언제부터 괴수들이 강남과 강북을 나눠서 행동했지요?”
“그건 그렇긴 하네.”
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이 갈 곳은 아직 멀었고, 베르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자.”
“뭐, 어차피 기다리든 말든 상관없죠. 어차피 죽일 놈인데.”
날선 말에 석민도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불편해 하진 않았다.
석민은 그녀가 이해가 갔다.
아영은 분명 훈련받은 정예화 된 군인이었고, 애국심을 비롯해서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석민이 하는 더러운 행동들은 그녀로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기에 말이다.
‘그래도 대놓고 뭐라 하진 않으니까.’
호텔 말리나에서 기름진 식사를 끝낸 그들은 다시 강북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