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87화]
“햇빛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모르겠습니다.”
아영의 말에 선호석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담긴 뜻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영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일부러 아영이 좀 더 햇빛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치졸한 행동이었고 이는 아영이 분을 삭히게 만들었다.
“그래, 서울 경기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고생을 하고 있으니 그 애국심 참으로 믿을 만하겠군. 그래, 알았어. 이만 나가봐.”
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묵례를 한 직후 밖으로 나갔다.
저쪽에서 감시라도 붙인다면 국내의 여건이라든가 기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피하거나 무마시킬 방법이 없었다.
‘빨리 끝내지 않으면 꼬리를 밟히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부청사로 두고 있는 호텔을 나왔다.
아영의 보고는 대통령을 만족시켰다.
대부분의 진실 속에서 일부의 정보, 엄청난 양의 드래곤하트를 보유한 이지를 가진 감염자들 대신 헌터들로 둔갑하여 보고로 올라갔고, 대통령은 매우 흡족해했다.
하지만, 아영은 의도적으로 천사의 존재와 감염자들의 치료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정답이었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은 것이라고 그녀는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은밀한 배신은 금세 들통날 것 같았다.
나라에서 준 비화폰 또한 이제 도청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만큼 국가안보실장의 권한은 막강했다.
예전부터 권한이 셌지만, 사태 이후론 더욱 커졌다.
전임자는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행동했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괜찮아. 서울에는 이제 단 한 번만 가면 끝이야. 이제 다 됐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차량에 올랐다.
아영의 차가 나가는 것을 창문을 통해 지켜본 선호석은 혀를 낮게 찼다. 대통령이 어째서 저런 자를 기용을 했는지 그로선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정적들이 아는 순간 끝장이야. 행정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리 편도 아닐 텐데.’
이 사안은 단순히 정권 문제로 끝날 것이 아니라 관료라고 할 수 있는 자신도 끝장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걸 묵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아영의 우려대로 대통령 몰래 알아볼 생각이었다.
천국의 사자들.
안전가옥으로 돌아온 석민은 아영에게 자신의 새로운 무기들과 방어구, 그리고 혜원의 선물을 꺼내서 아영에게 보여주었다.
“ASH-12.7?”
아영은 놀라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9밀리짜리 아음속탄환에 이어서 12.7밀리라니. 게다가, 이거 좀 무겁네요.”
스탯을 찍은 덕분에 그녀에게 별 부담은 아니었지만, 무게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영은 그것을 들어서 견착해 보았다.
“혜원 씨가 이걸 주실 줄은 몰랐어요.”
“나도 놀랬어. 전에 우리가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담이라고 하더라. 안부인사도 전하고.”
그 말에 혜원은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석민의 예상과 달리 직업 특성이기도 하고 천성으로 총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에게 이 불펍식 아음속 탄환은 흥미를 끌기 매우 충분했다.
“한 번쯤 이런 거 써보고 싶었어요.”
“마음에 들어 하니 다행이네.”
석민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어서 이번에 새로 산 SR-1을 보여주자, 아영이 거기에 달린 머즐 브레이크를 보고선 탄성을 질렀다.
“VG6 엡실론 556이네요?”
“이걸 알아?”
석민이 물었다.
“그럼요. 저희 쪽도 잘 썼고, 특전 쪽에서도 잘 사용했죠.”
그녀는 오랜만에 추억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소염기를 바꾼 것인데 반동을 잡는 게 매우 훌륭한 녀석입니다만, 단점이 너무나도 명확했죠. 머즐 브레이크 측면에 달린 구멍 때문에 CQB나 차량 작전 같은 좁은 공간에선 총구 압력이 옆 대원의 뺨을 때린다든가, 낮은 사격자세, 특히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할 때는 흙먼지를 일으키는 게 유독 심해서 추가적으로 다른 장비와 함께 사용해야 효율적이었죠.”
비슷한 이유 때문에 머즐 브레이크를 바꾼 건데 석민은 미련하게 흙먼지 일어나는 문제는 잊고 이걸 채용하고 말았다.
‘총구 화염은 많이 줄여주니까 괜찮으려나?’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말 들으니까 걱정되네.”
다른 건 몰라도 포복이나 엎드려 쏴 할 때 흙먼지가 많이 일어난다면 서울에서 쓰기엔 많이 곤란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유사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둬야겠어.’
그는 그렇게 판단하며 그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아영이 말했다.
“이번에 새로 임명받은 국가안보실장님이 있는데, 우리의 존재를 많이 껄끄러워하시는 것 같더군요.”
“우리 일을 방해할 정도야?”
석민의 질문에 아영은 얼른 도리질했다.
왜인지 그가 바로 안보실장을 처리하러 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아영은 석민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제가 비선실세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생각을 해보니 그 정도일 것 같네.”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아영은 억울한지 얼굴까지 붉히며 항변하듯이 말했다.
“저와 대통령님과의 사이는 단지 개인적인 관계일 뿐입니다. 사태 때 주요 정부요인들과 국회의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걸 보통 비선실세라고 하지 않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영향을 주는 거잖아.”
“그건….”
아영은 반박하지 못 하고 입만 어물거렸다. 그러다 주제를 돌리려는 듯, 석민이 가지고 온 회색 바디아머를 꺼냈다.
“이거 너무 큰데요?”
방탄복을 입었더라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주요장기만 보호하는 플레이트 캐리어만 쓰는 건 활동하기에 부적합해 보였다.
사타구니 보호대부터, 그리고 목보호대, 어깨보호대가 있었는데, 보통 아영이 알기론 케블라 소재의 방탄재만 들어가는데 이건 뭔가 달라 보였다.
“방탄판이 추가적으로 들어가 있어. 혜원이 그랬지.”
어떤 철판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간단한 공작기계와 프레스기계를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NIJ 레벨 3까지 막을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걸로 봐서 성능은 확실할 거라고 석민이 덧붙였다.
하지만 아영은 못미더운 눈으로 그것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내려놓았다.
혜원이 제법 무기를 잘 만든다곤 하지만 검증된 것도 아니고, 속된 말로 야매로 철판 잘라서 모양만 그럴 듯하게 찍어내 방탄판이라고 우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겠지.’
“무게가 대충 10킬로 될 것 같은데요?”
아영은 그것을 잡아 위아래로 흔들면서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겨우 그 정도라면 다행이겠지.”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나갔다. 아영은 혜원이 꽤 세심하게 석민의 안전을 신경 쓴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어깨 쪽 플레이트를 확인해 보았다. 검정색 페인트칠이 된 금속 플레이트가 드러났다.
“무게가 엄청납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 스탯 덕분에 활동하는 덴 크게 문제가 없을 거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최소 탄약만 40킬로그램은 챙겨야 하는데, 이것까지 챙겨 입으면 평소처럼 기민하게 움직이기 힘들 게 뻔했다.
“적어도 이동 중에 공격받으면 안 될 것 같네요.”
“걱정할 필요 없어.”
석민은 자신감 넘치게 말하며 방탄조끼에 탄창파우치를 끼웠다. 그는 최대한 탄창을 많이 끼우기 위해 탄창파우치를 세밀하게 채워 넣었다.
“식량은 많이 챙길 필요가 없으니까 최소한으로 챙기자. 시립대 기준으로 반나절이면 갈 수 있을 거야.”
“네.”
탄입대를 잔뜩 끼운 직후 그들은 바지도 주머니가 잔뜩 달린 컴뱃 팬츠를 구해다가 거기에도 탄창을 넣었다.
“권총이 필요할까?”
가슴 부분에 권총집을 끼워 붙인 아영을 보고 석민이 물었다.
“미래는 항상 모르니까 대비를 해야지요.”
이미 SMG홀스터를 허벅지에 단 상태고, 방탄쪼끼의 몰리시스템에 대형파우치들이 주렁주렁 달린 데다가 더 이상 자리도 없었다.
애초에 권총을 대신해서 보조무기로 쓰려고 이걸 샀는데 권총을 또 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했다. 그래도 아영의 말에 혹한 석민은 권총을 어디에다가라도 달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는 SMG홀스터의 옆에 달린 몰리를 주목했다. 여기라면 보조무기를 달 수 있을 것 같았다.
“뭐해요?”
아영이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오른쪽 허벅지에 2개의 보조무기가 달리게 된 것이다. 무게 때문에 아무리 꽉 줄여도 축 쳐져서 보기에 안 좋았다.
“좀 그래보여도 네 말대로라면 이것도 나쁘지 않지.”
대신에 그는 1개 탄창만 생기기로 마음먹었다.
무기가 너무 많았다.
유탄발사기가 달린 AK-203과 ASh-12.7, 거기에 9A-91, 그리고 CZ권총, 거기에 RPG-7과 탄두 4발. 거기에 SR-1까지.
“이거 말도 안돼요.”
혜원은 석민이 탄약상자를 뜯어서 탄약을 그대로 대형가방에 부어버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가지고 온 탄약들을 전부 탄창에 끼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옛날 베트콩들 마냥 가방에 탄약만 잔뜩 넣는 방식을 택했다.
“보통은 이렇게 탄약을 넣지 않았다고요.”
조임끈 덕분에 RPG발사기는 가방 왼쪽에 단단하게 고정되었고 SR-1은 오른쪽에 고정되었으며, AK-203은 가방 위쪽에 고정되었다.
“누가 봐도 미친놈이라고 할 거야.”
완성된 작품을 보며 석민이 자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봐도 기가 막힌 군장이었다.
“헌터들도 이러지 않을 거고, 운반꾼들도 이러지 않을 거야.”
예전처럼 무기를 단 하나만 아니, 2종류만 챙기면 간편하겠지만, 석민은 SVDK를 잃었던 기억으로 약간의 강박증이 생긴 터였다. 더군다나 드래곤과 교전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도 무기를 주렁주렁 챙기는 데 한몫했다.
그나마 무게 때문에 수류탄을 챙기지 않은 게 이 모양이었다.
사실 석민을 지적하는 아영도 꽤나 과무장이었다.
저격총으로 쓰는 T-5000과 AKS-74U, 거기에 ASh-12.7, 그리고 권총과 수류탄 12발.
남들이 보면 반드시 미친놈들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은 전부 필요한 거라고 여겼다.
그 외 비상식량이나 물은 가방의 보조주머니에 최대한 구겨 넣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의 가방은 박음질 한 부위들이 터질 듯 꽉꽉 차면서 실이 꿰인 부분들이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방탄조끼를 입어보고 가방을 어께에 메어보았다.
엄청난 무게가 엄습할 만했지만, 석민과 아영은 예상했던 것만큼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대충 일반인이 10킬로그램짜리 무게의 가방을 든 것 같은 체감이었다.
석민과 아영은 허리를 숙여보거나 앉았다 일어나보고, 걷거나 제자리에서 뛰기도 했다.
무릎이나 허리에 큰 부담이 가지 않았다.
특히 석민은 전부 다 합쳐서 족히 60은 넘을 텐데도 말이다.
“스탯이 마음에 든 것은 이것이 처음이네.”
석민이 말했다.
“마치 뭐랄까요. 강화외골격을 착용한 기분입니다.”
“강화외골격?”
석민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시험해보라고 해서 써본 적이 있지요.”
“그거 아직 시험단계로 알았는데.”
석민은 그것이 미국도 아직은 막대한 개발비용 때문에 사용화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요 아직은 문제가 많아요. 특히 배터리 문제가 아주 심해요.”
“성능은 어떤데?”
“아주 좋아요. 가방 무게를 70킬로그램까지 버틸 수 있다더군요.”
그 말에 석민은 휘파람을 불렀다.
“우리는 생체 강화외골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네.”
“강화병인 거죠.”
아영이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석민은 그런 아영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오랜만에 한잔할까?”
그는 아영에게 괜히 평소보다 친근한 말투로 말했다.
안전가옥엔 아주 좋은 위스키들이 있었고, 이제껏 그들은 한 번도 그것들을 마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로 마시고 싶지 않네요.”
“그래? 별수 없지.”
석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아영은 석민과 혜영의 관계가 떠올라 그와 술 마시는 것이 꺼려졌다.
그 속마음을 그녀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어색한 웃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가는 석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에게 반감이 생긴 이후, 그녀의 머릿속엔 석민의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가득했고 석민과 어울리는 것에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을 가졌다.
하지만, 석민이 그것을 눈치 채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