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84화 (184/226)

[게이트 오브 서울 184화]

약간의 시간이 지난 직후, 석민은 SR-1과 9A-91 그리고 ASH-12.7을 챙겼고 혜원도 뒤따랐다.

석민이 총기를 점검하는 동안 그녀는 석민을 위해 탄창에 총탄을 넣었다.

“ASH-12.7부터.”

석민은 그 말을 한 직후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초음속탄부터.”

가만 보니 이것도 20발짜리 탄창이었다.

탄 구경이 탄 구경이다 보니까 30발짜리 탄창을 달기 힘든 듯했다. 30발짜리 탄창에 익숙해진 상태인데 걱정이 들었다.

‘위력이 좋다면 괜찮으려나.’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장전손잡이를 당겼다가 뗐다.

혜원이 센스있게 그의 귀에 귀마개를 씌워주었다.

“아, 잊고 있었네. 고마워.”

석민이 눈만 돌려 혜원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앞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묵직한 반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소음기를 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총구 화염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폭음과 함께 그의 어깨가 살짝 뒤로 움직였지만, 그의 몸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제법 반동이 심한 총인데도 그것을 발사하는 석민의 모습은 목석같았다.

석민은 평소와 다르게 반동이 큰 6킬로그램짜리 총이 가볍게 느껴졌다.

‘초음속탄이라서 그런가?’

석민은 장전손잡이를 여러 번 당기고 약실 확인을 한 직후 탄창을 뺐다.

“이번엔 아음속탄.”

혜원이 탄창을 내밀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것도 견착할 때 뺨을 바짝 붙일 수 없어서 불편했다.

캐링핸들은 피카티니 레일을 통한 탈착식이라서, 이것을 떼어내고 간단한 조준경을 올린다면 그나마 쓰기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엔 반대로 소음과 반동, 그리고 총구 화염이 없어졌다.

결론은, ‘쓸 만하다.’였다.

12.7의 묵직한 탄두라면 기존의 빈토레즈의 탄약보다 효율적인 저지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소음기를 반드시 끼고, 초음속탄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약실에 남은 화약 가스가 눈에 닿으면서 석민의 눈꼬리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그는 이 총을 총평했다.

충분히 빈토레즈의 대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괜찮네.”

“그렇지?”

그렇긴 하지만, 과연 아영이 마음에 들어 할지는 의문이었다.

“이번에 SR-1을.”

석민은 30발짜리 탄창을 직접 끼운 후 노리쇠 멈치를 눌렀다. 버튼이 방아쇠울 앞에 몰려있으니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다.

그는 견착을 해보고 숨을 들이마시고 방아쇠를 당겼다.

눈앞에서 섬광들이 번쩍였다. 반동은 꽤 약했다.

실탄총을 쏘는 게 아니라 가스총을 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단발로 연신 쏘는데 한 발, 한 발마다 총구 화염이 너무 컸다.

12발만 쏘고 나서 석민은 탄창을 빼고 장전손잡이를 당겨 약실에 담긴 탄약을 빼낸 직후에 총구를 살폈다.

장전손잡이가 양쪽에 달려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총구에 기다란 머즐 브레이크가 달려 있었고 좌우에 큰 구멍, 위로 작은 구멍이 각각 3개씩 뚫려 있었다.

총열의 길이가 M16시리즈보다 짧은 AK정도 수준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불완전연소가 심했고 총성이 지나칠 정도로 컸다.

석민이 보기엔 이 물건은 오로지 반동만을 잡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머즐 브레이크라서 당연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 나오는 것들은 이러지 않는데.

‘예전부터 그러긴 했지만 러시아 놈들은 총구화염은 신경도 안 쓰고 반동만 잡는 걸 좋아한다니까.’

혹은 민수용이라서 오로지 반동만 잡으려고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이걸 들고 쓰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마음에 안 든 점은 총구 화염이 측면뿐 아니라 후방까지 나와서, 폭풍(爆風)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걸 가지고 서울 폐허 속에서 사격했다가는 총구화염 때문에 1발 이후에는 바로 반격당할 것 같네. 게다가 귀마개 꼈는데도 소리가 너무 커.’

“머즐 브레이크를 바꿔야겠어.”

민수용답게 사격스포츠용으로는 적합하지만 군용으로는 부적합했다.

“총구 화염이 너무 커. 반동 제어에 조금 손해 보더라도 총구 화염은 줄이는 머즐 브레이크를 다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예 소염기를 다는 방법도 있지만, 석민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머즐 브레이크로 반동을 줄이는 게 좋다고 여겼다.

“좋은 게 하나 있지.”

혜원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기면서 창고로 들어가 머즐 브레이크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VG6 엡실론 556, 이거 아주 명품이야.”

그녀는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아는 것 중에 이것만큼 좋은 건 없어. 가격도 아주 저렴하지.”

“얼만데?”

가격을 듣자 석민의 머릿속엔 그게 저렴한 가격인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곤 경계 어린 시선으로 머즐 브레이크를 쳐다보았다.

K2나 M16에 달리는 일반적인 소염기보단 길었지만, 석민의 눈에 그다지 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머즐 브레이크라고 하긴 했는데 길이가 너무 짧아서 총구 화염을 제대로 잡을지 의문인데.”

석민이 생각하는 요구 조건에 맞는 건 AK12에 달리는 기다란 머즐 브레이크였다.

좌우의 큰 구멍과 위쪽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반동을 억제하고 길이를 늘려, 불완전 연소가 된 화약을 내부에서 연소시켜 화염도 줄이는 놈으로 말이다.

무게나 무게 배분 같은 건 이미 스탯을 찍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민은 총구 쪽이 무거우면 반동 잘 잡을 수 있어서 환영하는 편이었다.

“내가 괜히 추천하는 거겠어?”

그 말에 혜원이 샐쭉하게 대꾸했다.

“556이라고 명칭이 붙은 거 봐서 M16 같은 총기에 쓰는 거 같은데. SR-1은 총열 M16보다 짧지 않아?”

“맞긴 한데, 아까 그거보단 나을 거야. 그리고 내가 추천한 것 중에 별로인 거 봤어? 일단 한 번 써봐.”

이제껏 그녀가 추천해서 피본 적은 없었다. 반박할 이유가 없어서 석민은 일단 껴보기로 했다.

‘에이, 한 3센티만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속으로는 투덜거려도 손은 멈추지 않은 채 기존에 달린 머즐 브레이크를 빼서 새것으로 교체했다.

“좋아, 다시 삽탄하고.”

“알았어.”

못 미더운 표정으로 무기를 힐끔 쳐다본 석민은 약실에 뺀 1발을 제외하고 나머지 17발을 발사했다.

의심은 곧바로 신뢰로 바뀌었다.

아까 쓴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전등을 켠 상태에서도 눈앞이 번쩍일 정도로 컸던 총구 화염이 많이 사라지고, 반동도 쉽게 잡혔다.

순식간에 탄창이 비워지고 석민은 경이로운 눈으로 자신의 총기를 바라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명품이었다.

“어때? 좋지?”

얼굴로 드러나는 석민의 반응에 혜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석민은 말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단발이라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매우 훌륭했다.

“머즐 브레이크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 게다가 명중률도 더 좋아졌고.”

넓은 표적지에 고작 5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구멍 하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한 탄창을 쏟아부었는데 그 정도 구멍만 난 게 더 대단한 거 아냐?”

혜원이 말했다.

“네가 보는 봐와 같이 이거 정말 물건이야. Made in USA이지만, 사장은 한국인이야. 미국에서도 인기가 아주 많은 물건이고. 다른 물건들과 다르게 머즐 브레이크 내경이 탄두랑 딱 맞아서, 잔여 가스가 엄한 곳에 안 새고 설계된 구멍으로만 나가니까 반동제어 효과도 타사제품에 비해 탁월해.”

‘이게 연발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분명 연발로 쏘면 더 놀라운 효과를 볼 것이다.

그리고 총신이 M16이나 K2처럼 18인치 이상이었으면 분명 1도 총구 화염이 없었을 것이다.

총열을 늘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는 탄창을 빼내려고 탄창멈치를 누른다는 것이 노리쇠 전진기를 누르고 말았다.

‘이건 익숙해져야겠네.’

석민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9A-91을 들었다.

마지막 무기였다.

그는 가철식 개머리판을 핀 후 조준에 들어갔다. 총성이 여럿 울렸다.

혜원은 인상을 쓰며 그것을 보았다.

‘사람이 맞나?’

새로 갈아 끼운 표적지 한가운데, 단 한 곳으로만 총알들이 박히고 있었다.

소염기나 컴펜세이터, 소음기 하나도 안 달린 짧은 총열의 총이었다. 게다가 저거, 연사력이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인데.

‘저런 거 본 적 없어.’

그녀는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를 통해 특수부대들이 무기를 쓰는 걸 보았지만, 저렇게 반동을 잡는 사람은 보진 못했다.

‘9X39mm가 원래 약한 탄이던가? 반동이 작은 건 아닌데.’

겉으로 보기에 석민의 어깨에 전해지는 진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함에 혜원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석민이 개머리판을 접은 후 지향사격자세를 취했다. 총을 발사하는데도 총이 흔들리지 않았다.

‘악력으로 버티는 건가?’

혜원이 머리를 굴리며 석민이 총 쏘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석민은 자신감을 얻고서 권총을 쏘듯이 한 손으로 팔을 쭉 뻗어서 단발로 방아쇠를 당겼다.

잘 맞았다. 표적지 가운데에서 계속 탄환들이 박혔다.

“잘… 쏘네.”

이 정도까지 오자 혜원은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극단적으로 줄인 것이라지만 단축소총을 권총 쏘듯이 할 수는 없었다.

‘나름 괜찮네.’

석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내려 보았다.

“개머리판은 필요 없겠어.”

쓸데없이 무게를 차지하게 된 그것은 조금 있다가 혜원의 손에 제거되었다.

“다 합쳐서 얼마야?”

혜원은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펴 보였다.

적절한 값을 치른 후에 석민은 무기들을 가방에 넣었다.

“밥이나 먹을까?”

혜원의 말에 석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시간을 확인하니 정오가 다 되었다.

“그러면….”

“아니, 내가 밥할 거야.”

석민이 휴대폰을 들자, 그녀가 제지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지. 그리고 어쩌다가 SVDK가 망가졌는지나 말해 봐.”

석민은 속으로 혀를 낮게 찼다.

역시 혜원은 그게 마음에 걸렸던 듯했다.

***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석민은 딱 1개 남은 조미김을 마저 입에 넣고선 입맛을 다셨다.

정말 맛있는 식사였다.

겨우 둘이서 같이 밥을 먹는데, 3색 나물에 소고기전,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한 파개장국까지 차려졌다.

“아아, 그래?”

석민의 말에 혜원은 새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석민 나름 최대한 안전한 말로 포장해서 별다른 위협을 받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

설령 상대방이 총을 쐈더라도 조준은 자신과 한참 벗어나 있다거나, 자잘한 부상은 아예 없는 셈쳤고, 적들을 죽인 이야기에선 잔인한 장면은 다 뺐다. 그럼에도 산전수전 다 겪고 눈앞에서 오빠를 잃은 그녀 앞에선 아주 사소한 부분도 큰 위협으로 다가가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요리는 다 어디서 배운 거야? 정말 맛있네.”

그는 약간 탐욕 어린 시선으로 전들이 담겨있던 접시를 보며 말했다.

“예전에 배운 거야.”

혜원은 별다른 설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석민의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너….”

한숨을 내쉰 석민이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시키자, 부담스러운지 그녀는 시선을 돌리더니 머뭇거리던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그 일 그만둘 수 있어?”

“뭐라고?”

석민은 설마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줄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다.

“그냥 해보는 소리야.”

석민의 반응이 부정적이라 금방 꼬리를 말았지만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닌 건 분명했다.

“내가 하는 일도 완전히 안전하고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적이야. 돈도 적당히 굴리고 있고, 여차하면 다 때려 치고 건물 월세 받으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세입자들도 괜찮은 사람들이고.”

석민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입만 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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