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81화]
마지막 감염자가 총에 맞아 상체가 하체와 분리되면서 한 바퀴 구르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직 짧은 명을 이어가는지 감염자는 상체를 허우적거리면서 가망 없는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석민은 냉혹하게 그의 상체를 향해 3발 더 쏘았다.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박자를 맞추듯 바닥에서 튀어 오르던 상체는 기어이 얼어붙은 조경수에 부딪혀 떨어지고는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새 탄창을 꺼내 장전을 마친 석민은 아직 발로 밟고 있던 감염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자는 밟히지 않은 손을 들어서 항복의사를 보였으나 석민은 말없이 그자의 머리를 조준했다.
“제발….”
감염자의 그 말을 끝으로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
아영은 소매로 눈을 훔쳤다. 유독 오늘따라 그녀는 감정적이었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이건 이거다.
“전부 다 처리한 건지 알 수 없으니까 과학관 건물부터 확보하죠. 특히 탄약고와 드래곤하트를 먼저 확보해야 할 겁니다. 가죠.”
“응.”
석민은 앞장서서 움직이는 아영을 따라 달렸다.
***
“휴대폰, 휴대폰.”
감염자 하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교주님께 보고해야합니다.”
“그건 구 중령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화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감염자들은 발을 동동 굴렸다.
“우리는 이길 수 없어요. 당장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목숨 챙기기에도 바쁜데 어리석게도 짐을 챙기려고 했다.
“일단 먼저 성물을 옮겨야 합니다. 어서요.”
과학관에 남은 감염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석민과 아영의 발이 더 빨랐다.
물건을 챙기던 자가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치며 가지고 있던 물건을 내팽개쳤다.
“아! 왔어!”
석민과 아영은 과학관 로비에 들어서기 무섭게 날아오는 뱅스틱을 몸을 돌려 피한 직후 그자를 노리고 총을 쏘았다. 총성들이 연발아 울렸다.
실내에서 쏘는 총성이라서 그런지 총소리가 고성의 총소리가 계속 울리는 바람에 귀가 아팠다.
“으억!”
뱅스틱을 던진 감염자는 낮게 비명을 지르며 가구들을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 뒤로 숨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총알에 꿰뚫려 뼈가 박살나 으스러졌다. 비명소리는 총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한 명 도망간다!”
석민은 탄창이 비자, 재장전을 하며 소리쳤다.
뒤따라 들어온 아영이 석민을 지나서 달아나려던 자를 쏘았다. 등에 총을 맞은 자가 앞으로 힘없이 처박혔다.
그 사이 마지막으로 남은 감염자가 로비에 설치된 예배당에서 성물같이 생긴 황동 물품들을 한 아름 챙기고는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시야에 안 보이는지라 아영은 직접 달려가서 그자를 추격했다.
요란하게 들리는 금속음을 따라 복도 쪽으로 달린 그녀는, 때마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자를 발견하고는 총을 쐈다.
총에 맞아 비틀거리던 감염자는 안간힘으로 몇 걸음 더 움직이는 거 같더니, 그대로 쓰러지면서 유리문에 부딪혔다.
총성 몇 발이 더 울리면서 유리창이 부서졌고, 그자의 시신은 깨지다만 유리문 난간에 걸렸다.
그것으로 끝났다.
감염자 품에 잔뜩 들려있던 황동물품들이 쏟아지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동시에 석민과 아영의 눈에 알림글이 떠올랐다.
[‘생존자들’을 처치하셨습니다.]
[헌팅트로피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뭐?’
석민과 아영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액자에 걸린 괴수들의 머리가 생각나자 석민은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드래곤이나 천사도 아닌 일에 헌팅트로피가 갱신될 줄 생각지 못했다. 그들은 새로운 액자가 걸릴 거란 사실에 기분이 급속도로 저하되었다. 특히 아영은 화까지 치밀었다. 더더욱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시스템이 방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들은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렸다.
석민에게 돌아온 아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짧은 침묵 사이로 두 사람은 어색한 시선이 오고갔고, 결국 둘 다 실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고했어.”
“수고했어요.”
아무도 헌팅트로피 창을 열어볼 생각을 안 했다.
석민과 아영은 말없이 탄약고와 드래곤하트들이 보관된 창고로 이동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직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비트랩이나 기타 폭발물을 설치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양이야.”
석민은 진공포장 된 드래곤하트를 들어다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석민은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차후에 모든 사명이 끝났을 때 이것들을 가지고 정부와 거래를 하면 사면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도리질을 했다. 혼자 혹은 아영과 같이 이것들을 따로 숨기거나 보관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네.”
“네?”
그의 혼잣말을 들은 아영이 되묻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러면 짐을 여기에다가 두고 드래곤하트를 최대한 많이 챙겨서 돌아가자. 정부에게 핑곗거리를 둘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님은 우리가 강북에 있는 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잖아? 이걸 대량으로 가져간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실적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잘 되었네.”
“좋은 생각입니다.”
아영도 조금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예찬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이것들만 있으면 국가에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담하건데 국가에서 보유 중인 드래곤하트만큼,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석민은 무심하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이걸 지킬 사람이 필요한데.”
두 사람은 동시에 간신히 여기에 들어온 베르를 보았다.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여기를 지켜 줄 수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론 접근하기 힘들어. 무기를 다시 챙겨 와야 해.”
그는 알렉산드라에게 지원받은 AK-203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이 상태로라면 원래 목적인 길 찾기는 불가능했다.
죽은 구옥희가 1회용 길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 몇몇 구간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이용 불가능한 게 분명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고작 이런 무기로 용이나 다른 괴수들을 상대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탄약이 부족했다.
“새로운 무기와 탄약을 보충하는 후에 바로 돌아오도록 하지. 적어도 지난번보다 일찍 돌아오도록 할게. 알았지?”
“알았다.”
베르가 순순하게 대답을 해주니 석민으로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번 일을 통해 베르가 큰 도움이 되어 주었고, 지난번보다 더 서로 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석민은 제법 호의가 담긴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다음에 올 때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커피? 홍차나 녹차?”
베르는 무언가 먹진 않았지만, 차 종류는 종종 마셨었다. 석민 나름의 친근이 표시이자 배려였다.
“지난번에 마신 재스민을 가지고 왔으면 좋겠군.”
“그러지.”
“지금 바로 이동하실 건가요?”
아영이 물었다.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늦은 것 같네. 지금 당장 출발을 해도 저녁 늦게는 돼야 말리나에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리나라는 생각이 들자, 석민은 헛기침을 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도록 하지.”
석민은 짐을 뒤져서 차를 꺼냈다.
“베르, 국화차라도 한잔할래?”
“그렇게 하지.”
석민은 물을 끓이며 차를 준비하는 동안 불퉁한 표정의 아영을 힐끔거렸다.
아까 전부터 그랬다. 그래, 예찬을 죽였을 때부터일 것이다.
평소엔 그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예찬을 통해서 정보를 알아내다 보니, 과도하게 정을 주고 동정한 모양이었다.
‘평소엔 안 그랬는데, 이번엔 왜 그러는 거지?’
그는 아영의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그녀가 왜 저렇게 속앓이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영이 굳이 입 밖으로 자신의 불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석민은 가볍게 넘겼다.
불만이 있다손 쳐도 말을 하지 않으니 결국 자신의 행동에 찬동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시발점으로 그동안 누적되었던 아영의 불만이 터지게 될 것이라곤, 이때 석민은 예상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스탯 찍어야지? 상태창.”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9
지구력:5
체력:3
활력:6
시력:4
스탯:1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19
지구력:4
체력:5
활력:5
시력:4
스탯:1
두 사람은 스탯을 무엇으로 찍을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체력으로 가야죠. 이것들 최대한 많이 옮기려면 체력이 필수 아니겠어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9
지구력:5
체력:2
활력:6
시력:4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19
지구력:4
체력:4
활력:5
시력:4
‘체력이 2로 올랐네.’
석민은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다.
스탯을 올렸지만, 시력 스탯마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전에 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잡아서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딱히 마땅한 게 없었다.
석민은 아쉬운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방 비우고 꽉꽉 채우면 되겠어요.”
아영은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대용량 가방엔 최대한 서울에 오래 있기 위해 모아둔 보급품과 여벌의 옷들이 대부분인지라, 일찍 서울로 돌아가는 이상 전부 다 베르가 지키기로 한 이곳에 두고 가기로 했다.
“이곳으로 돌아올 때 5.56mm탄이 사용 가능한 무기를 챙기면 좋을 것 같네요.”
아영이 말했다.
“여기 엄청난 양의 탄약이 있으니까 탄약만 호환된다면 탄약 걱정은 없을 테니까요.”
“탄약만 호환된다면 정말 그래도 되겠어. 여기 무기들 다 고장 났다고 했지?”
석민도 경의에 가득 찬 눈으로 그것들을 보았다.
“네, 그렇긴 하지만, 살짝 개조만 하면 k1a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아영은 전에 자기가 생각했던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게 가능해?”
“네.”
진지하게 생각을 거듭하던 석민은 결론적으로 설령 그 무기를 쓸 수 있다 해도 위험 부담을 안고서 오래된 무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5.56mm탄을 쓰는 총을 새로 장만해야겠어.’
그는 예전에 혜원에게서 사려다가 바꾼 AK-108이 생각났다.
‘처음부터 그거 샀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새 탄창들로 가득한 나무상자를 열어보았다가 도로 닫았다.
바티그
안전가옥에 짐을 풀게 된 석민은 암청색 캡모자에다가 방한복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고선 검정색 천 마스크도 낀 상태였다.
“어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아영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위아래를 쏘아보았다.
거기에 청바지, 그리고 등산화를 신었는데 아영이 보기엔 매우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거수자 한 명이 지금 눈앞에 서 있네요.”
“아, 제발. 그러지 말자고.”
석민은 양손을 들어 보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네 차를 이용하는 건 힘드니까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잖아.”
아영은 조금 쉬었다가 대통령께 대면보고를 하기 위해 경기도를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
“적어도 마스크 하나 쓰고 다니면 되겠지요. 신종 독감이 퍼져 있다고 하니까 마스크를 써도 누가 뭐라 안 할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캡모자를 쓰면 너무 수상해 보이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지.”
석민은 한숨을 내쉬며 캡모자를 벗고는 외투의 후드를 눌러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