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80화]
석민은 만일을 대비해서 유탄을 유탄발사기에 끼워서 조준해보았다. 게임에서 나오는 에임 마냥 눈앞이 녹색 선이 포물선을 그리고 착탄하는 위치에 작은 원을 그렸다.
‘이 정도면 대충 지향사격자세를 취하면 잘 맞겠네.’
준비를 마친 그들을 바로 캠퍼스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기지방호훈련 때 그렇게 뚫은 사람이 있다고요?”
“딱 한 번 있었지. 대부분 침투였지만.”
석민은 안 좋은 기억에 몸을 살짝 떨었다.
“사령부 인원 600명이 단 3명에게 농락당했어. 진짜야. 3.5미터짜리 펜스를 단숨에 뛰어넘고 폭파딱지를 붙이고 떠날 때까지 아무도 눈치 못 채서 마지막으로 떠날 때 유디티 대원들이 일부러 CCTV 앞에 나와서 피날레까지 했다니깐?”
아영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석민이 농담이라도 하나 싶은 얼굴로 쳐다봤다.
“…진짜라니깐?”
“직접 겪은 것입니까?”
“아니고 동기한테 들은 거야. 확실한 것은 그것 때문에 전대장이 1달 동안 특별훈련을 하게 하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어. 하루에 8시간 당직 들어가고 2주에 한 번 당직을 쉬었는데, 과업에 훈련에 당직에….”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아영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눈초리였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 것 같았지만,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
서울시립대에 남은 감염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리더인 구옥희 중령이 교주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들이 적그리스도이자, 배교자, 그리고 적이라고 통보를 받았고 전투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명령이라 다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6년 동안 같이 지낸 그들은 매우 숙련된 모습으로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은 시야가 잘 보이는 곳에 보초를 두고, 시립대 출입구에도 경비를 세웠다.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일단 명령받은 대로 각자 위치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베르의 설교도 들었고 증오스러울 정도로 짜증나던 괴수들도 처리해 주지 않았던가.
“그 괴수들 때문에 죽은 우리 성도들이 몇 명인데, 설마….”
“아무리 그래도….”
속닥거리던 그들의 눈앞에 우뚝 솟은 그림자가 나타나자, 그들은 잡담을 멈추었다.
너무 여유로운 모습에 순간 어디 순찰갔다 돌아오는 동료인 줄 알았으나, 그에 비해 몇 배나 큰 베르의 모습을 보고선 얼른 은폐를 하면서 뱅스틱을 조준했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걸 보고 감염자들의 머릿속엔 의아함이 생겨났다.
“정지! 정지! 정지!”
그들이 30미터쯤 가까워지자, 감염자 하나가 소리쳤다.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앞서가던 베르가 소리쳤다. 그는 평소보다 날개를 조금 더 부풀려서 그 뒤에 있는 석민과 아영의 모습을 최대한 가렸다.
어떻게 보면 허세 부리려는 수탉처럼 보여서 웃겼으나, 감염자에겐 제대로 먹힌 듯했다. 위협적이었는지 기세가 한풀 꺾여있었다.
석민은 날개 깃털을 살짝 들춰서 당황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조정간을 연발에서 단발로 두었다. 아영은 연발로 둔 채 대기하고 있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베르의 목소리에 묻혔다.
“아까 전에 쏜 신호탄은 뭐지? 그거 때문에 괴수들이 나타나서 우리만 겨우 살아 돌아왔다!”
“정…지?”
당황한 나머지 계속 정지하라고 소리치던 감염자의 소리가 의문문으로 바뀌었다.
“나를 배신한 것이냐?”
베르가 소리치며 빠른 걸음으로 감염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때문에 석민과 아영도 보폭을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빠르게 해야 했다.
“너, 구옥희를 불러와라. 나머지 사람들도 불러와.”
“예?”
베르의 말에 감염자가 바보같이 되물었다.
“그자의 변명을 들어야겠다. 이거 치워라!”
베르는 여전히 자기를 조준하고 있던 뱅스틱의 끝을 들고 있던 자신의 창으로 쳐서 조준 방향을 돌려냈다.
그의 힘에 뱅스틱을 들고 있던 감염자가 힘없이 넘어졌다.
‘연기 진짜 잘하네.’
석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른 녀석들이 저런 식으로 교단 놈들을 속였을 테니, 어쩌면 그가 익숙한 것은 당연했다.
“일어나라! 일어나.”
베르가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을 몰아붙이자, 그자들은 서로를 보다가 이내 그의 말에 따라 몸을 일으키고는 뱅스틱의 끝을 하늘로 돌렸다.
‘우리가 잘못 안 건가?’
‘타천사가 맞아?’
그들 머릿속엔 혼란으로 가득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이미 소란이 전달되었는지 캠퍼스 안쪽에서 감염자들이 뱅스틱을 쥐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베르는 근엄한 표정으로 상체를 펴고 창대를 바닥에 찍으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대다수가 몰려왔는지, 얼추 그들이 파악했던 숫자에 이르는 인원이 모였다. 그들은 베르 주변으로 마치 포위하듯이 빙 감싸 돌려고 했다.
“뭐하는 짓이냐?”
베르의 호령에 움직이던 감염자들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그렇다 해도, 뱅스틱은 여전히 석민과 아영, 그리고 베르에게 겨눠져 있었다.
“너, 옥희야.”
그들 속에 구옥희가 보이자, 베르는 기다란 창으로 그를 가리켰다.
“설명해 보아라.”
“설명?”
구옥희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았다. 타천사 주제에 이 상황에서도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게 기가 찼다.
“방금 교주와 연락이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당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베르를 쏘아보다가 석민과 아영도 한 번씩 노려보았다.
“당신은 타천사이고, 당신이 데리고 있는 저들은 우리 교단의 적이라고 교주께서 말했습니다. 이만 무기를 버리시지요. 저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무기를 버리고 우리와 합류를….”
“무엄하다.”
베르는 창대로 바닥을 3번 찍었다.
아스팔트 바닥인데도 그가 창대로 바닥을 찍자, 약간 부서지면서 큰 소리를 냈다. 그 소리 때문에 감염자들은 몸을 더 떨었다.
“그리고 무슨 소리하는 것이냐? 네가 쏜 신호탄에 맞춰서 갑자기 괴수들이 나타나 우리를 덮쳤다. 설명하라, 너는 드래곤의 하수인이냐?”
“무슨…?!”
구옥희 중령이 놀라 소리쳤고 그 말에 주변에 있던 감염자들이 그를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동료를….”
“너는 나를 배신했고, 네 동료들을 배신했으며, 위에 계신 분을 배신했다.”
베르가 그의 말을 자르고 속사포같이 말을 빠르게 토해냈다.
“교주가 나보고 타천사라 하였다고? 나를? 무슨 근거로? 아니, 애초에 교주와 통화한 것이 맞느냐?”
석민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싸웠고 괴수들을 처리해 주었다.”
“다 우리를 속이기 위해 한 것이겠지!”
구옥희가 대항하듯 소리쳤다.
단호한 말투였으나, 주변의 귀엔 아니었다.
베르와 석민, 아영의 일행이 우리를 속인 적이라고 구옥희 중령이 말했기 때문에 베르가 천사라는 찝찝함에도 무기를 준비하고 대기하긴 했으나, 오히려 그들이 당당하게 걸어오고 되레 호통을 치고 있으니 감염자들의 마음에 존재하던 작은 불안을 틈타 구옥희 중령의 명령 자체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적이라 규정된 베르는 떠나기 전 훌륭한 설교를 설파했고, 비록 감염자의 몸으로 눈물은 흘리지 못했으나 마음 깊이 감동받은 이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그가 타천사라고?
저리도 당당한 타천사가 있나?
무슨 적이 이렇게 당당하지?
뱅스틱을 조준하던 자들 중 몇 명은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 조준하던 것을 멈추고 뱅스틱 총구를 위로 두었다.
“이분의 말씀이 맞아.”
석민이 베르의 날개를 들추고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우리가 적이었으면 뭐하러 너희들을 돕지? 교주와 연락할 수 있게, 휴대폰 배터리를 구하기 위해 골몰했지? 없는 머리 쥐어짜 내면서 그 고물 휴대폰를 고치려고 하냐고?”
“맞습니다. 중령님.”
아영도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확실히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게 맞았지만, 우리가 만약에 적이었으면 여러분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테고, 도와드리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다 죽이거나 한두 명 잡아서 길잡이 역할을 했겠지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적이면 이런 짓 안 합니다. 솔직히 정말 억울합니다. 목숨 걸고 괴수들을 잡았는데 이런 식으로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우다니요?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매우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연기에 어색한 아영은 너무 떨린 나머지 말의 끝부분에선 발음이 뭉개졌으나, 다행히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진 않았다.
구옥희 중령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교주를 믿었고, 저들이 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뱅스틱을 조준을 멈추지 않았다. 여차하면 바로 던질 생각이었다.
“너희 저주받고 버림받은 자들아.”
베르가 창대를 천천히 휘두르면서 그 끝을 감염자들에게 일일이 지목했다.
“구원의 길에 가기 싫은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들 속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저들이 말을 들을 필요 없어!”
그 대답에 놀란 구옥희 중령이 소리쳤다.
“한 번만 더 입을 놀리고 내게 창을 겨누면 너희 모두를 죽이겠다.”
베르가 더욱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이러다가 괴수들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고 겁 많은 자들이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할 정도였다.
“너희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모두 다 모여서 내 말을 들어.”
“이미 우리 모두 와 있습니다.”
누군가가 성실히 대답했다.
“그래?”
베르가 아닌 석민의 대답이었다.
화들짝 놀란 구옥희 중령이 석민의 가슴을 노리고 창을 던졌지만, 석민은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공격해!”
그 말과 동시에 구옥희를 향하던 석민의 총 방아쇠가 당겨졌다.
머리에 묵직한 7.62mm탄환을 맞은 구옥희 중령의 머리가 썩은 계란마냥 박살나서 더러운 파편을 흩뿌렸다.
“저!”
석민의 바로 옆에 있던 자가 놀라 뱅스틱을 고쳐 잡으려는 순간, 석민이 재빠르게 그자의 가슴을 밀치고 뱅스틱을 잡은 손을 발로 짓누른 다음 다른 감염자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석민의 발아래 깔린 감염자는 아무리 반항해도 석민의 힘에 짓눌려 그 아래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영은 자신이 가진 카빈소총을 연발로 갈기면서 화망을 만들었고, 베르는 창을 휘둘러 사거리에 닿는 감염자의 머리를 잘랐다.
감염자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거미떼마냥 사방으로 흩어졌다.
용감하게 뱅스틱을 던지거나, 그걸로 찌르려고 달려드는 자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자들이 먼저 쓰러졌다.
순식간에 45발짜리 탄창을 비워버린 아영은 새 탄창을 꺼내서 장전손잡이를 당겼고, 바로 틈을 타 달려드는 자의 머리를 쏴버렸다. 연발로 3발이 박힌 감염자의 머리가 Y자 모양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런 직후 그녀는 조정간을 바꿔 도망치는 자들의 등을 노리고 단발로 사격을 가했다. 먼저 달려간 자들이 죽는 걸 봐서 그런지 반격하는 자들은 없었다.
‘불쌍한 사람들.’
아영은 인상을 쓰면서도 총을 멈추지 않았다.
스탯 덕분에 총기의 반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추위도 익숙해질 데로 익숙해져서 버틸 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바짝 말라서 미라나 해골 같은 이들이라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총알이 박혀 들어갈 때마다 빈 깡통을 발로 차는 것처럼 힘없이 굴러가거나 모레성처럼 신체가 박살났다.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총성 속에서 누군가 신음소리를 내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이들도 쉬이 부러지고 흩어졌다. 아영은 눈물까지 언뜻 비칠 정도로 그들을 동정했다.
석민은 차가운 눈으로 남은 자들을 쏘아서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