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79화 (17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79화]

“어? 어?”

일신의 자유를 얻은 아영은 그대로 다른 감염자에게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감염자의 썩어 문드러진 코를 뚫고 손잡이만 남기고 깊숙하게 박혔다. 짐승이 내지르는 비명과 같은 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베르에게 뱅스틱을 빼앗긴 감염자는 그대로 붙잡혀 들어 올려졌다.

꽉 쥔 베르의 손아귀 아래 감염자의 장작 같은 팔다리가 꺾여 뒤틀린 모양새를 보였다.

“천사님….”

감염자가 미약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불렀으나 베르는 무표정한 시선 한 줄기 흘리더니 그대로 뒤틀어서 찢어버렸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감염자는 절명했다.

그 모습을 본 석민은 인상을 쓰고선 시선을 예찬으로 돌렸다.

“저, 저….”

“그냥 둬요.”

예찬이 겁에 질려 뒷걸음을 치자 베르가 잡아채려 했으나 아영이 먼저 말렸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석민과 아영은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베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르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살짝 끄덕였다.

“왕십리로 가는 길을 알아?”

아영이 예찬에게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길을 모른다고 하는 순간 살아서 이곳을 떠날 수 없단 걸 깨달은 예찬은 세차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예찬은 길을 다 알고 있기도 했다.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베르의 물음에 예찬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 전우들은….”

“나에게 용서를 빌지 마라. 나는 그저 위에 계신 그분의 선택을 받은 영일 뿐이다. 저들의 방종은 이제 돌이킬 수가 없다. 네게 남은 선택은 2개다. 저들과 함께 죽든가, 아니면 우리를 도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찬으로서는 선택지는 고작 한 개에 지나지 않았다.

“따르겠습니다. 천사이시여.”

“좋아.”

하지만 석민은 탐탁지 않았다. 그의 눈에 예찬은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말하는 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늘 중으로 왕십리로 가는 것은 무리겠어.”

석민은 짜증났다는 표현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바닥을 차면서 내뱉은 말에 예찬이 움찔거렸다.

“이 하찮은 잔재주는 이제 그만 부리지.”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금방 들킬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석민은 진단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놈들을 남겨둘 수 없어.”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그 말뜻을 알아챈 예찬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예찬이 뭐라 반박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석민이 손을 들어 막았다.

“배후에 저것들을 둘 수 없지. 너는 우리를 따른다고 했지? 그러면 이제 행동으로 보여. 저들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면 널 데리고 경기도로 나가게 해줄게.”

그러나 예찬은 자신의 목숨이 달렸다 해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다. 수년 동안 같이 동고동락한 전우를 죽이라는 말에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니, 최소한 예찬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저와 수년 동안….”

화들짝 놀란 아영이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아영이 보기에 이건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그런 대답을 하는 순간 석민이 보일 행동은 단 하나였고 그것은 아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 말고 함께 석민이 총을 겨누자, 예찬은 뒷걸음질 쳤다.

“잠깐!”

아영과 예찬이 동시에 소리쳤다.

잔뜩 겁에 질리고 놀란 예찬이 벌벌 떨며 도망치지도 못하였고 아영은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석민의 사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팔 하나가지고 사격을 막는 건 무리였다.

“안….”

아영이 입을 열기 전에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총알이 예찬의 복부에 박혔다. 뱃속을 뚫고 정확히 척추 뼈에 관통한 총알에 예찬의 몸이 우드득 소리를 내더니 몸이 반으로 조각나며 상체는 앞으로, 하체는 뒤로 쓰러졌다.

예찬은 주변의 시신들처럼 다신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석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탄환이 아영의 팔을 스쳐서 박혔다. 자칫 잘못하다가 그녀에게 맞출 뻔했다.

“위험했잖아.”

그는 툴툴거렸다.

“…왜 그러셨습니까?”

아영이 분노를 삭이며 물었다.

“주저하는 거 너도 봤잖아? 그저 현 상황만 면피하려고 지껄이는 것뿐이야.”

하지만 아영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래도 예찬과 약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정이 들어 그럴 수도 있지만, 상황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유일하게 우리에게 호감을 가진….”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였으면 계속 그렇게 행동했을까? 사보타주, 아니 나중에 우리를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지.”

석민은 조정간을 다시 안전으로 두었다.

“계속 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찰나의 순간에 망설였어. 나는 그런 불확실성에 내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영은 석민의 말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그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렇지만, 길은 아는 건….”

“그것은 걱정하지 마.”

석민이 말했다.

“이놈들, 따로 길에 표식을 해두었어.”

석민은 원래 내려가려던 맨홀 구멍 측면에 그어진 빨간 매직 자국을 가리켰다.

“아까 전부터 보았던 거야. 이걸 찾아서 가면 걱정할 거 없어.”

언제 그런 것을 다 알아보았지? 놀란 눈으로 표식을 보던 아영은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거고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 예찬을 죽인 건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이 들었다.

빨간 표식이 있다곤 하나 놓칠 수도 있었고, 치료와 원대복귀,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잘 구슬리면 예찬에게 협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에 예찬이 중요한 정보원으로서 역할을 할 거란 기대도 있었다.

게다가 그와 대화를 통해 열성적인 신도가 아닌 사실도 알았었다.

‘이걸 말했어야 했나?’

아영은 씁쓸함과 아쉬움으로 입맛이 썼다.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불만을 속으로 삼켰다.

팀 안의 불화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그녀로선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놈들 그냥 둬선 안 돼.”

석민이 말했다.

“그 막대한 양의 군수품, 그냥 지들이 쓰려고 뒀겠어? 교단 애들에게 넘겨서 싸울 수 있게 하려는 거지. 그러니 그걸 그냥 둘 수 없어. 적어도 우리가 차지하든가 아니면 파괴해야 해.”

석민은 이미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의 의견은 맞는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석민의 행동이 너무 독선적으로 비췄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나는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애초에 내가 [전달하는 자]잖아.’

아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석민의 말이 맞았다.

‘전달하는 자’라면 마땅히 자신이 나아갈 바를 찾아 석민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아영은 생각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러지 못해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찬찬히 생각을 더듬어 봐도 석민의 말이 맞았다. 예찬은 대답을 망설였고, 배신 안 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 불쌍한 영혼은 표정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미숙한 이였다.

그렇다 한들, 자신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까지 어쩔 순 없었다.

예찬과 나누었던 대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그녀는 예찬의 시신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강풍이 그들에게 엄습했다.

처음부터 저 불쌍한 자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저들이 처음부터 교단 쪽 인물인 것을 알았다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냥 처음부터 공격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막대한 양의 군수품과 드래곤하트를 그냥 둘 수도 없는 거고.’

그 정도 양이면 적어도 몇 년 이상은 발전시설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판단할 만큼 방대했다.

그것들을 전부 국가에서 확보한다면 혹여 우리의 사명으로 인해 문이 닫힌다 해도 어느 정돈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아영이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녀의 앞에 새로운 알림글이 나왔다.

[‘생존자들’을 잡아 사명을 완수하라.]

‘이런.’

아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석민의 말이, 생각이 옳다는 게 이로써 완전해졌다.

원래 전쟁이, 아니 전투가 그랬다.

현 상황에선 그들은 포로를 둘 수 없었다. 본인들이 숫자가 부족하다면 더더욱 그랬다.

전달하는 자이니 그녀는 이제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무장도 변변찮은 자들이니 금방 끝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능력을 준 절대자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작은 의구심과 불만이 싹텄다.

‘무슨 생각이 들든 무슨 선택을 하든, 결국엔 이럴 거면 우린 결국 부처님 손바닥, 혹은 꼭두각시와 다름이 없지 않나?’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내내 그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다시 원래의 위치에 돌아오자 석민은 베르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뱅스틱의 위력이 제법 강하니까 절대로 접근을 시도하거나 저들이 뱅스틱을 던지지 못 하게 해야 해. 우리야 괜찮기는 하지만, 너는 위험하니까.”

베르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한 걱정이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자들은 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해. 내 동료들이 나를 온전하게 생포하기 위해 죽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듯하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

석민이 말했다.

“놈들이 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어떻게 침투하실 생각이죠?”

질문하는 아영의 목소리는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석민은 잠깐 그녀를 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침투는 안 해. 정면에서 여유롭게 들어갈 거야. 우리 셋이서 같이.”

“네?”

아영이 놀라 반문했다.

“이미 우리는 들켰잖아요? 그런데도 바로 들어가는 건….”

석민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뱅스틱이 위력적이긴 하지만 냉병기와 다름이 없고 결국 1회용 창에 지나지 않잖아? 그렇다는 건, 되도록 숨을 곳이 없는 개활지에서 모이게 만들면 우리가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단 말이겠지? 누가 뭐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접근하면서 감염자들을 모으면 되고.”

석민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연신 굴렸다.

“우리의 정체가 설령 뽀록났다고 해도… 명령이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우리에겐 ‘천사’인 베르가 있잖아? 전부 그 말을 믿을지도 아직 모르고, 어쨌든 모으기만 잘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석민의 말에 베르가 귀를 기울이고, 아영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일단 베르를 앞세워서 신호탄이 터지더니 괴수가 습격했다, 혹은 주문의 함정에 걸려서 겨우 살아남았다 같은 거.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뭐라 소리치면서 되레 화를 내면 지들도 뭐가 뭔지 잘 모른 채 우왕좌왕하지 않을까? 아, 왜? 있잖아? 기지방호훈련 때 그런 거 안 해봤어? 나 예전에 현역일 때 UDT 3명이 기지방호 훈련 때 그런 식으로 뚫은 적 있는데.”

그 말에 아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거의 모든 작전을 대담하게 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녀도 기지방호훈련 때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긴 있었다.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그렇긴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베르가 앞장서는 것으로 하죠. 그러면 베르 때문이라도 바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에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 좋아, 그렇게 하지. 무기 준비하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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