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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77화 (177/226)

[게이트 오브 서울 177화]

‘무언가 의심을 받고 있는 건가?’

하지만, 저렇게 신뢰를 가득 담고서 베르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 석민과 아영에게 일말의 의심을 가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납득이 가는 추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석민은 단순하게 저들이 우리한테 물건을 계속 뜯어내려고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첫 출발은 뒷맛이 매우 썼다.

석민과 아영은 부담스러운 눈으로 앞서가는 군인 감염자들을 보았다.

“김 병장님,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알았어.”

김 병장이라 불린 감염자가 말했다.

그들은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군대에서 쓰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들은 군복과 야전상의 그리고 군화에다가  풀 바디아머 형태 목과 팔의 상박, 사타구니 보호판이 있는 방탄복.

의 방탄복에 사태 당시에 보급을 시작하던 신형 방탄모까지 쓰고 있었는데, 옷은 그럴싸하게 보여도 잔뜩 비틀어지고 말라버린 감염자들이 입고 있으니 큰 옷을 입은 어린애 같아 보이는 데다 체격도 왜소해 보였다.

그렇게 잘 차려입었음에도 무기는 고작 뱅스틱이었으니 부자연스러웠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감염자들은 조금 부러운 눈으로 석민과 아영의 소총을 보았다.

“따라오세요.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매우 친절한 감염자들의 행동에 석민과 아영의 마음이 불편했다.

그와 달리 베르는 자신의 오만한 성격을 그대로 그들에게 드러내며 여기 있는 자들 중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 움직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들의 뒤로 와라. 우리가 해결할 테니.”

베르의 말에 감염자들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들은 전농동 사거리를 지나 바로 사가정로 방향으로 향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바로 청계천이 나오고, 마장역을 지나 왕십리역으로 갈 수 있었다.

“언뜻 보면 매우 가까워 보이지만, 좁은 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멉니다. 게다가 미로처럼 돌아가는 곳이 있어서 청계천에만 도달하는 데도 오래 걸릴 것입니다.”

“오래 걸려도 어쩔 수 없지.”

석민이 말했다.

“그럼 가죠.”

“이쪽으로.”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예찬이 껴 있었다.

***

구옥희 중령은 그들이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석민이 알았다면 매우 놀라겠지만, 그는 석민과 아영, 심지어 베르까지 처음 본 순간부터 의심을 했고 여전히 의심을 했다.

그는 신실한 신도였고 비록 몸이 미라처럼 변했다 해도, 교주에게 들은 설교 말씀을 전부 기억할 만큼 기억 능력은 여전했다.

그의 놀라운 기억의 기준에 따르면 석민과 아영의 존재는 여태껏 들은 설교와 위배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의 의심은 타당했다.

천국의 문 교단의 교리에선 신도들을 구원으로 이끌 선지자는 교주 백은호뿐이고, 천사들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 계시를 내렸으며, 다른 선택을 받은 자들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옥희는 대놓고 석민 일행을 적대하지 않았고, 성도들에게도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 다른 성도들에게 신성모독으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저들에 대한 미심쩍은 부분들을 어물쩍 넘길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단도 아닌 저놈들에게 우리가 6년 동안 고생해서 알아낸 길을 이렇게 알려주는 건 너무 아까워.’

이미 반 미라 상태에다가 생존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라는 게 그리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건 아니었다.

이제 모든 재료를 준비했고 부하들을 시켜서 휴대폰 수리에 들어갔다.

석민과 아영의 예상과 달리 끽해야 2시간이면 고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빨리 고쳐서 저들이 가짜인지 밝혀내고 싶었다. 그리고 가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선반에서 휴대폰을 고치고 있는 감염자에게 다가갔다.

“조진우 중사, 어떻게 되었나?”

그의 물음에 납땜용 인두를 만지고 있던 조진우 중사는 그것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예, 생각보다 쉽게 배터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

좋은 소식이었기에 되묻는 구옥희 중령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네, 이 난리통에 부품이 어떻게 무사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다만, 휴대폰 본체가 손상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기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건 기도해야겠군.”

구옥희 중령은 다시금 창밖을 보았다. 고지이긴 했지만, 석민 일행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그냥 되도록 빨리 되었으면 좋겠군.”

그는 허리춤에 찬 권총집을 만지작거렸다.

안에는 응급용 조명탄 발사기가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적그리스도라면 그는 빨간색 조명탄을 쏠 것이고 아니라면 녹색 조명탄을 쏠 것이다.

딸려 보낸 5명 중 4명은 그가 믿을 수 있고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 잘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전을 못 얻은 것이 아쉬워서 은근 그들이 적이길 바랐다. 그럼 죽이고 무전을 취하면 되니까.

사실 의심의 여부를 떠나서 그는 처음부터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천사에게 격의 없이 편하게 반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석민과 아영은 주의를 했지만,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격의 없는 만큼 천사와 그들이 친한 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위아래 구분이 뚜렷한 구옥희 중령으로선 절대로 용납 못 할 일이었다.

하여튼, 이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

“돌아버리겠네.”

석민이 말했다.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길 안내자를 따라 처음엔 상부가 완전히 박살 나서 1층만 형태를 간신히 보존하고 있던 어느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을 꽉 채우던 콘크리트 파편 덩어리와 부비트랩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철근들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자 의도적으로 뚫은 것처럼 보이는 토굴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을 기어 나와야 했다. 나름 잘 파놓은 곳이라 덩치가 큰 베르가 지나가는데도 문제가 없었지만, 굴과 맞닿아 있던 반파된 비좁은 지하 복도는 베르가 머리를 내밀기 무섭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만들어 둔 길은 정말 절묘했다.

드래곤이 걸어놓았다는 주문의 틈새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길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폐허였고 어지럽게 폐자재들이 널려 있었지만, 적어도 사람이 한 명이 지나갈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통로들이 감염자의 체형에 맞춰져 있어서 이러다가 베르가 지나가지 못하는 곳이 나올까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폐허 속에서 숨어있던 괴수가 튀어나올까봐 신경도 예민하게 날 섰다.

길을 따라갈수록 통로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렇게 한 200미터쯤 전진을 했을 때, 앞서가는 자들이 폭 80센티가 채 되지 않는 콘크리트 벽의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영조차도 방한복을 다 벗어야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구멍이었다.

석민은 어깨가 넓고 덩치가 있더라도 억지로 구겨 들어갈 순 있을 거 같은데, 베르는 턱도 없었다.

“구멍을 넓혀야겠어.”

석민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내력기둥이 있거나, 천장이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멍을 넓혀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는 구멍 주변에 표시된 빨간색 매직자국에 시선을 잠깐 두었다가 다시 도구로 쓸 만한 것을 찾았다.

석민은 주변을 뒤지다가 끝에 철퇴마냥 콘크리트 덩어리가 박힌 철근을 들었다. 그리고는 안에 입은 야상을 벗어서 그것을 감싸서 벽에 휘둘러 쳤다.

급조된 망치가 콘크리트 블록에 부딪치기 무섭게 박살나면서 부서졌다.

“좀 도와줘.”

석민의 말에 베르는 가지고 있던 창을 내려놓은 뒤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콘크리트 벽돌 3개가 박살나면서 흙먼지가 잔뜩 일어났다.

“조용히! 힘자랑해 달라는 거 아니니까.”

석민이 주의를 주었다.

아영과 감염자들은 그들이 구멍을 넓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와.”

예찬이 낮게 탄성을 질렀다.

한번 칠 때마다 벽돌이 빠지고, 박살 났다.

석민은 등산화로 파편을 발로 차서 옆으로 치웠다.

“자, 들어가지.”

석민은 돌가루가 잔뜩 묻은 옷을 다시 입고 군장을 결속했다.

“언제까지 지하로 가야 하는 거지?”

그는 반쯤 얼어버린 물통의 뚜껑을 열어서 목을 축였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예찬이 말했다. 김 병장이 뱅스틱으로 복도 너머 계단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거 참 잘됐네.”

코를 한 번 훌쩍이던 석민은 코에 먼지와 돌가루가 가득 묻어 나오자 코를 풀었다.

그것을 본 아영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냈고, 석민은 코를 닦은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리고서 발라크라바를 다시 제대로 썼다.

“가시죠.”

베르도 창을 챙기고 따라 나왔다.

이윽고 계단이 나왔고 석민은 계단 벽에 표시된 빨간색 화살표에 잠깐 시선을 고정시켰다가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힘차게 올라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무섭게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석민은 그것을 만끽하기 위해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면서 따끔한 고통과 머리가 아파왔지만, 돌가루와 먼지 속에서 뒹군 것보다 상쾌해서 좋았다.

그는 자기들이 넘어갔던 건물을 확인했다.

“뭐야? 겨우 100미터밖에 안 지났잖아?”

지하에서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직선거리로 겨우 100미터밖에 안 지나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렇다, 1시간이 지났다.

‘시속 0.1km라니.’

생각을 해보니 거의 지그재그로 갔던 것 같았기에 그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마저 가지.”

전농동 사거리에서 청계천까지 대략 1.3에서 1.2킬로미터였는데, 이 대로면 시간이 부족했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뒤로 지나가는 길은 지상이었고, 무너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기만 하면 됐다.

‘이대로라면 빠르게 가는 건 불가능할 거야. 돌아갈 때는 서울 시립대를 들리지 않고 가는 것이 좋겠어.’

잠시 후 그들은 무너져서 서로 기대게 된 건물들의 옥상에 올랐다.

옥상 벽면에도 빨간색 화살표가 나와 있자, 그의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길 표시를 해두었어.’

“저쪽으로 뛰어야 합니다.”

“좀 불안한데.”

석민은 불안한 눈으로 반대편 옥상을 보았다.

무너지다가만 폐허인 건 똑같았지만, 콘크리트 바닥 속에서 무언가 솟아오른 것마냥 균열이 잔뜩 일어나 있었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건물의 기둥이 뚫고 나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건물이 그 정도로 손상을 입은 거라면, 점프를 하는 건 무리일 게 분명했다.

“베르, 너는 뛰지 말고 조심히 오는 게 좋겠어.”

석민은 손에 쥐고 있던 총기를 뒤로 멨다.

“내가 먼저 가지. 내가 가서 안전하다면 나보다 가벼운 너희도 괜찮겠지.”

원래 체중에다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옷의 무게를 합치면 100킬로그램은 간단히 넘었다.

“조심하세요.”

아영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뒤 다시 빠르게 앞으로 달려 그대로 도약해서 반대편 건물로 뛰어넘어 갔다.

그가 밟았던 자리가 마치 스펀지를 밟은 것마냥, 쉽게 꺼지면서 석민은 휘청거렸다.

부식되어서 이렇게 된 건진 몰라도 시멘트가 아니라 마치 물에 적셔 뭉쳐 놓은 모레를 밟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길.”

그의 하체가 완전히 바닥에 꺼졌다. 원래 건물을 지을 때 부실시공한 건물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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