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76화 (176/226)

[게이트 오브 서울 176화]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지만, 석민은 아영한테 장담한 대로 그날 저녁에 돌아왔다.

제법 고생한 탓에 군복은 더러웠고, 팔꿈치와 무릎은 터져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탄약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달했다.

석민이 알렉산드라에게 받은 장비를 걸치고 돌아오자, 아영은 놀라운 눈으로 그의 새로운 장비를 보았다.

“정말 구해오셨네요.”

사실 별로 대단한 건 없었다.

유탄발사기가 달린 AK-203 소총에 탄약 360발이 담긴 탄창 12개, 그리고 러시아제 유탄 6발이었다.

탄입대에 비해 탄창이 너무 많아서 석민은 여분의 탄창을 주머니에 가득 넣어 왔다.

조금 아쉬운 점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9.3mm 탄약을 쓸 수 없다는 것이지만, 석민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샤가 이렇게 잘 챙겨 줄 줄은 몰랐네요.”

아영이 말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얼굴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정말로 그 여자에게 약점 잡았어요?”

“어.”

“괜찮은가요? 그런 여자의 약점을 잡았다는 건, 원한을 사서 나중에 보복이라도 오면….”

“그런 약점이 아니야.”

석민이 말했다.

“무기도 괜찮을 것을 받아서 나쁘지 않네. 한 번 봐봐.”

석민이 내미는 총을 받아든 아영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글을 보았다.

[AK-203]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7.62X39MM

러시아,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사제 차세대 소총. 아직 한 번도 사용 안 한 신품이다.

총기 핸드가드 아래에 GP-34 유탄발사기가 달려있다.

아영도 만져본 적 없는 총이었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소총을 만져보았다.

인체공학적인 손잡이, 길이 조절이 가능한 개머리판. 그리고 레일이 달려 결속력이 강해진,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는 윗총몸(먼지덮개).

예전처럼 사이드레일을 달 필요가 없으니 무게도 감소했다.

하지만 총밖에 없었다. SVDK가 망가질 때 조준경과 도트사이트도 망가졌는데, 염치없이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유탄발사기가 달린 게 좋긴 하지만, 걸쇠 장전 방식의  AK탄창에 유탄발사기가 많이 걸리적거렸다. 거기다 파지할 때도 생각보다 불편했다.

달려있는 손잡이는 탄창 장전할 때 걸리적거리지 말라고 최대한 짧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렇다 해도 사격 시 반동을 잡아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났겠지. 우리 수류탄 다 썼잖아. 그리고 아래쪽에 무게가 실렸으니 반동은 잘 잡아 주겠지. 이 소염기? 컴펜세이터? 분간은 못 하겠지만, 반동 제어는 더 좋을 거 같은데. 게다가 따로 말한 적은 없지만, 7.62mm AK 소총탄은 저지력이 워낙 좋아서 괴수들에게 효과적이고. 큰 놈의 경우 한 발론 못 죽인다 해도 한 탄창 그대로 풀로 갈기면 죽어버리더라.”

아영은 개인적으로 7.62mm 나토탄을 더 높게 치고 있었지만 한가하게 그런 걸로 토론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탄창에 장전이 되어 있는 탄환 하나를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7.62x39mm 7N23]

내구도: 99%

품질: 상

러시아에서 생산한 철갑탄.

이왕이면 철갑소이탄이면 좋겠지만 이 철갑탄이면 적어도 150미터, 아니, 200미터 내에선 무리 없이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 가면 무리겠지만, 5.45mm보단 났겠지.’

그녀는 화젯거리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알아보라고 해서 알아봤습니다.”

“어때? 전부 다 둘러봤어?”

“전부 다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아영이 목소리를 살짝 낮췄고 전처럼 무전기를 이용해서 음악을 키웠다.

“상당히 놀라운 걸 보았습니다, 같이 행동하던 분이 내부를 친절하게 살펴보도록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구옥희 씨가 막았습니다만 그래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건 다 보았습니다.”

아영은 예찬과 둘만 남아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별 시답지 않은 분위기가 그에게서 나왔지만, 이상한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대화 또한 그녀가 원하는 정보로 충만한 진지한 내용이었다.

단지, 그자는 젊고 건강한 이성과 단둘이 같은 공간에 있고 싶어 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영은 그것을 이용했다.

“뭘 보았는데?”

아영의 목소리가 약간 흥분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석민은 의문이 들었다.

“엄청난 양의 드래곤하트입니다.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더군요.”

“드래곤하트 그렇게나 많이?”

“네. 이 건물 지하에 창고로 쓰는 장소에서 엄청난 양의 드래곤하트를 봤어요.”

아영은 매우 황홀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석민도 아영의 진지한 음성에 사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걸 포장했대? 그냥 두면 공기 중에 기화하듯이 줄어든다고 하지 않았나?”

“이곳에서 온갖 봉투를 구해서 묶어두었더군요. 아무래도 그건 교단인들을 위해 모아 둔 것 같아요.”

그 말과 동시의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직접 보고 싶긴 하지만 힘들겠지?”

“예. 구옥희 씨가 기겁한 것을 봐서 기밀인 것 같은데….”

“도와준 사람이 찬열 씨?”

“예찬 씨요. 그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이름 까먹으면 어떡해요?”

그 말에 석민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었다.

짧게 깎았다 해도 기름진 데다 오래 못 감은 머리를 긁어대니 비듬이 후둑 떨어졌다.

더러운 모습에 아영은 애써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도 같은 상태이니까.

그 생각이 들자 아영도 머리가 가려운 것 같아,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많은 호의를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외부인을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놈을 이용한 건 잘했어. 나중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영이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까요? 거의 여기서 6년 넘게 자기들끼리 지냈을 테니 바로 제게 호감을 보이는 게 안쓰럽긴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게 큰 도움이 될 테니 고마운 상황이죠.”

이윽고 그들은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다른 것은?”

“무기들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보았는데, 확실히 총기들은 전부 망가져 있더군요. 공이가 부러지거나 닳았거나 강선이 완전히 마모되거나, 괴수들에 의한 손, 망실을 보건데 무기를 따로 빼 두진 않았어요. 하지만, 탄약은 엄청납니다. 전진기지라고 해서 그렇게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엄청 많더군요.”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우리가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네.”

그는 잠시 이들을 전부 죽일까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이들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 이제 휴대폰을 수리하려고 하지 않아?”

“네, 2시간 전쯤에 이미 사람들을 파견해서 준비 중입니다.”

그 말은 즉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석민과 아영의 핸드폰 수리에 최소 하루는 걸려서, 바로 이곳을 뜰 수 없었다.

“이제 돌아오셨으니까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구옥희 씨에게 이미 말을 해두었습니다. 5명의 인원이 길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5명씩이나? 1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석민은 잠깐 ‘흐음’거리다가 언성을 아주 많이 낮췄다.

“혹시 우리를 팽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토사구팽말인가요? 그럴 리가요. 일단은…. 그들은 우리를 완전히 믿고 있다고 볼 수 있잖아요. 적어도 베르 때문에 우리를 배신할 리 없어요. 그것은 베르에 대한 배신일 테니까요. 자신이 믿는 천사를 배신하는 종교인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5명인 건 신경 쓰이네.”

아영의 말도 납득이 가지만 무언가 목에 걸린 것처럼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보급도 받았고, 이제 다시 왕십리로 갈 것이다.

일단 그 전에 할 것이 있었다.

“다음 레벨은 어떻게 올리는 것이 좋을까.”

“상태창.”

석민의 물음에 아영은 상태창을 불렀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8

지구력:5

체력:4

활력:6

시력:4

스탯:1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18

지구력:5

체력:5

활력:5

시력:4

스탯:1

“항상 궁금했는데 우리 레벨은 왜 항상 같이 오를까?”

석민의 바보 같은 질문에 아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야 같이 활동하니까 그렇겠죠. 어떤 걸 찍을 생각이십니까?”

“이번엔 체력으로. 지난번에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거든.”

“그래요? 저는 지구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두 사람은 따로 스탯을 찍었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8

지구력:5

체력:3

활력:6

시력:4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18

지구력:4

체력:5

활력:5

시력:4

석민의 체력은 이제 3이 되었고 그는 시험 삼아서 책상다리의 철제 파이프를 손으로 쥐어보았다.

그저 연필을 잡듯 쥐었을 뿐인데 연철이긴 하지만 그래도 단단한 파이프가 그대로 손자국을 새기며 구겨졌다.

“잘못하면 총도 구겨버리겠어요.”

아영이 말했다.

“힘만 올렸다가 얼마 싸우지 못하고 지칠까 걱정되네요. 다음에는 지구력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새끼 놈에게 휘둘리고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거든. 거기에 유사시에 천사나 베르 같은 놈들 처리하려면 힘이 더 필요할 테고. 그 녀석들, 이미 우리 총 맛은 여러 번 보았으니까 날개로 감싸는 것 말고도 대응책을 준비했을 거야.”

“원거리에서 그 마법 같은 주문들을 사용할까 염려하는 건가요?”

흥미가 있는지 아영이 적극적으로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 주문이라는 거 외우다가 머리에 바람구멍 날 것 같거든. 저놈들이 쓰는 무기도 그렇고 여태까지 보았던 방식을 보면 근접전을 걸 거야.”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석민은 쓰라린 기분을 느꼈다.

“빌어먹을, 내 대검이 부러져서는 안 되었는데.”

그는 인상을 가득 쓰며 투덜거렸다. 혜원에게서 받았던 그 대검, 정말 유용했는데, 이제는 아니게 되었다.

알렉산드라에게 지원받은 무기 중에 대검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천사들과 근접전을 하게 되면 매우 곤란했다.

“게다가 저놈들은 팔다리도 길고 덩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근접전 벌이면 백이면 백 우리가 질 거야. 근접 격투는 결국 피지컬 싸움이잖아.”

조만간 그들과 교전을 벌일 거라 석민은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대비된 상태였으면 싶었다.

‘뭐, 적어도 그놈들이 여기까지 오진 않겠지. 베르의 말대로 여기는 드래곤의 주문으로 가득하니까. 그래도 혹시나 접근하다가 자칫 잘못해서….’

석민은 자신의 새로운 소총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아직 잔 기스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마치 새것처럼 매끈한 표면이 만져졌다.

‘용을 깨우게 되면 어떡하지?’

고작 5.45와 7.62mm로 죽일 수 있을까? 유탄이 있긴 하지만 RPG로 통하지 않던 것인데.

내면의 이성이 둘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고생한 게 아깝지만 퇴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과, 시간을 끌면 감염자들에게 들켜서 유일한 길마저 막힌다는 쪽.

그러다 다시 퇴로를 주장하던 이성이 생각을 떠올렸다. 왕십리로 가서 바로 문을 닫을 수 있나? 드래곤 몰래 접근한다고 해서, 그것의 방해를 뚫고 바로 여닫을 수 있냐고.

‘나도 알아 이번 건 너무 무리수라는 거.’

최악을 가정해도 일단은 길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고 그랬기에 그는 인내심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좁은 길.

“무전기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구옥희 중령이 말했다.

“전농동 사거리에서 부품을 모으던 우리 대원 몇몇이 길을 잃어서 본대와 합류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전기가 있었으면 벌어질 일이 아니었는데… 일단 왕십리로 가는 길이니 저희 성도들이 돌아올 때 연락해서 길 안내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석민과 아영의 얼굴표정이 많이 안 좋아졌다.

“미안합니다만, 그것은 안 됩니다. 우리도 무전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죠.”

석민은 구옥희가 되도 않는 이유로 무전기를 얻으려고 하자, 그들이 이들에게 조금의 신뢰도 받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무전기를 챙기려는 거지?

신뢰를 받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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