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70화]
상황이 매우 안 좋은 것 같은데도 새끼가 그것을 보더니 장난감인 줄 알았는지 아니면 먹이라고 착각했는지, 그것을 향해 달려들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암놈은 냉큼 새끼에게서 그것을 뺏더니 그대로 삼켜버렸다. 새끼를 죽일 수 없다는 모성애에서 급하게 행동한 듯했고, 암놈이 삼키기 무섭게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밤중에도 보일 만큼 육편과 피가 잔뜩 튀었다.
“성공인가.”
그것을 본 수놈이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지르며 아영과 베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베르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괴수를 피해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재빠르게 피하다가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 못해 반쯤 무너진 건물에 등과 날개를 부딪쳤다.
아영은 낮게 비명을 지르며 살짝 놓친 뱅스틱을 다시 쥐었다.
하지만 수놈은 아영과 베르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영과 베르가 물러나자, 그대로 자신의 둥지로 가서 반려와 새끼의 상태를 확인했다.
드디어 상황을 인식한 새끼는 미약한 울음소리를 내었고 수놈은 죽은 자신의 반려를 주둥아리로 툭툭 두드렸지만 몸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던 암컷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가슴엔 큰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뼈와 살점, 피가 흘러나왔다.
수놈이 분노에 가득 찬 괴성을 질렀다. 치명상을 입은 채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도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여전히 달려들지 않았다. 새끼의 존재 때문에 그런 듯했다.
이대로 새끼를 데리고 물러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괴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아영과 베르, 그리고 자기 새끼를 번갈아 보았다. 아마 갈등하는 것이 분명했다.
괴수의 눈과 목에서 여전히 피가 잔뜩 흘러내렸고, 아마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보였다.
석민은 지하에서 기어 나왔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이상,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알아서 죽어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깨어졌다.
수컷은 곧 자신의 반려 쪽으로 고개를 내리더니 무언가를 물어뜯어댔다.
“아!”
그것을 본 베르가 창을 쥐고 둥지 쪽으로 달렸다. 석민과 아영은 무슨 일인지 분간을 못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수놈이 자신의 배필의 몸을 뜯어 자수정색으로 밝게 빛나는 드래곤하트를 꺼내 삼켰다.
순식간에 수컷 드레이크의 몸이 조금 커지더니 눈앞에서 상처가 아물어갔다.
“아니, 저게 가능한 거야? 이런 젠장!”
놀란 석민과 아영도 각자 무기를 바로 쥐고 달려들었다. 몸이 완전히 낫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석민 씨!”
아영은 석민에게 남은 무기가 기다란 대검뿐인 걸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뱅스틱 한 개를 던졌고, 석민은 간신히 그것을 받아냈다.
자칫 잘못하다간 석민에게 격발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다.
베르는 그대로 크게 점프를 해서 괴수의 목을 노리고 자신의 창을 찔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괴수가 입을 쫙 벌리고는 베르의 창을 물더니 그대로 베르를 집어던졌다. 그 충격으로 베르는 창을 놓쳤고 반대편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그런 괴수를 노리고 아영이 뱅스틱을 던졌다.
창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괴수의 등에 착탄하기 무섭게 격발하면서 폭음과 함께 괴수가 비명을 질렀다.
뱅스틱 자루는 폭발과 함께 튕겨 나갔다.
아영은 자신의 카빈소총을 꺼내 자신 쪽으로 시선이 몰리도록 난사를 했다.
괴수의 몸에서 작은 불꽃들이 터졌다. 탄환들이 비늘을 뚫지 못한 채 깨져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괴수가 아영에게 시선을 돌리자, 석민도 그것의 목을 노리고 뱅스틱을 던졌다.
몸을 일으킨 베르 또한 놓친 창을 되찾기 위해 움직였다.
석민이 던진 뱅스틱은 괴수가 금방 눈치 채고는 팔로 뱅스틱을 쳐냈다.
“이런, 씨!”
아영은 새 탄창을 끼운 후 다시 괴수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마구 총을 쏴댔다.
탄환을 잔뜩 뒤집어쓴 괴수는 낮게 으르렁거릴 뿐, 이번엔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석민은 일반적인 탄환이 통하지 않고 뱅스틱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자 접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베르를 보았다.
베르는 창을 오른손으로 다시 쥔 후 왼손을 뻗은 채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석민은 대검을 휘두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고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자연스레 괴수의 시선이 석민 쪽으로 향했다.
괴수의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와 마주하자 가슴이 살짝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그러나 시선은 확실하게 끌 수 있었다.
석민은 더욱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우아악!”
그것에 반응하듯 괴수가 입을 벌려 고성을 질렀다.
그 순간, 베르의 왼손에서 푸른색 광선이 나와 괴수에게 작렬했다.
괴수가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불꽃을 내는 광선은 비늘을 태우긴 했으나 큰 타격을 주진 못한 것 같았다.
베르가 괴수를 향해 달려들면서 광선을 두 번 더 쏘았으나, 충격에 움찔거릴 뿐 해치우지 못했다.
석민 또한 베르와 함께 달려들었다.
광선이 괴수의 비늘을 태우며 주변으로 빛을 산란시켰고, 괴수의 시야를 가렸다.
베르가 먼저 창을 들어 괴수의 가슴을 노리고서 찔러 들어갔다.
주변 건물에 제약을 받아 비행하는 것을 포기했으나 키도 크고 용력도 강했기에 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할 수 있었고, 괴수가 다시 주변을 살필 수 있었을 땐 이미 베르의 창이 괴수의 몸 앞까지 도달한 뒤였다.
괴수의 단단한 비늘을 뚫고 가슴 깊숙이 창이 박혀 들어갔다. 괴수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앞발로 창대를 잡았다.
심장, 혹은 폐가 있는 부위인 듯했다.
괴수의 입에서 다시금 피가 흘러나왔다.
괴수가 몸부림치면서 창과 함께 베르가 이리저리 흔들렸으나, 아까처럼 창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찔린 부위의 상처가 늘어갔다.
그때 둥지에서 새끼가 나타나더니 베르를 공격하려고 달려들었다.
비록 새끼이나 키가 인간의 키만큼 큰 놈이었고, 이빨과 발톱이 성체에 비해 작다곤 하나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베르는 새끼까지 감당할 순 없었는지 또다시 창을 놓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석민이 대검을 들고서 달려들었다. 아영이 뭐라 소리를 쳤으나 괴수만 보고 집중하던 석민은 미처 듣지 못했다.
석민은 둥지 코앞까지 도착했고 괴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놈은 둥지를 벗어나 베르에게 달려들려 하는 자기 새끼를 뒷발로 밀고는 창대가 박힌 상태에서 석민을 죽이기 위해 앞발을 치켜들었다.
그때, 옆에서 뱅스틱 하나가 날아와 괴수의 오른쪽 어깨에 박혀 작렬했다.
충격이 큰지 괴수의 오른쪽 팔이 축 늘어졌다.
석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둥지를 단숨에 뛰어 올라 대검으로 오른쪽 목을 노리고 찌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비늘에 막혀 박히지 않았다.
애초에 비늘 아래쪽에서 찔러 넣었어야 했는데, 부주의했다.
비늘에 막힌 대검의 도신이 크게 휘는 것 같더니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석민은 손목에서 큰 고통을 느꼈다. 욕을 할 시간도 없었다. 괴수의 앞에 떨어진 그는 몸을 굴러 괴수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자기 다리 사이로 석민이 들어가자 괴수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굽히려고 했지만 창대에 걸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가로막는 창대를 왼발로 뽑으려 했으나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오자 당황하여 이도 저도 못했다.
둥지가 비교적 큰 편이지만, 괴수와 새끼 그리고 석민이 들어차니 좁았다.
새끼가 석민을 보더니 입을 벌리며 달려들어 등을 물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굉장한 치악력을 가졌으나 두꺼운 방한복 때문에 이빨이 옷을 완전히 뚫지 못했다.
“아, 뭐야!”
석민은 자신의 등을 문 새끼 때문에 제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짜증이 치솟았으나, 그래도 그 덕분에 창을 뽑지 못한 괴수가 새끼를 밟을까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는 사이 베르가 다시금 마법 같은 것을 준비했고, 이번엔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불이 크게 뿜어져 나와 괴수의 얼굴을 태우려고 했다.
화염이 괴수의 얼굴에 닿자마자 괴수는 몸을 웅크리며 피했다. 그대로 불기둥은 허공을 지나 주변의 모든 것들을 환하게 밝혔다.
그 빛은 노원구에 있는 산자락과 아차산, 용마산에서 망을 보고 있던 자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 빛을 바라보는 눈들 중에 인간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깐!”
둥지 바로 아래쪽까지 도착한 아영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 뒤로 예찬이 따라왔다.
그녀는 뱅스틱을 분해해서 비어버린 탄피를 빼내고 새로운 탄약을 꺼내서 끼웠다. 아까 괴수에게 뱅스틱을 던진 사람은 다름이 아닌 예찬이었다.
“하지만, 위험해 보이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호흡을 맞춰 본 것도 아닌데.”
씨근덕거리던 아영은 더 뭐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둥지 안에 있는 석민을 구출하는 게 더 급했다.
뱅스틱 장전을 마친 그녀는 뱅스틱을 꼬나 쥐고 둥지를 오르기 위해 움직였다.
석민은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드레이크 새끼에게 휘둘렀다. 칼이 비늘을 뚫지 못했지만 성체보다 비늘이 얇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험이 미흡한 새끼는 석민의 단검에 베일 뻔 하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새끼의 비명을 들은 괴수가 몸을 굽혀 공격하기 위해 뒷다리로 석민을 찍어 내리려 했으나, 석민은 잽싸게 몸을 굴러 그것을 피했다.
그 틈을 타 둥지에 오른 아영이 함성을 지르며 괴수의 시선을 유도하려고 했지만, 새끼가 더 중요했던 드레이크는 아영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놈은 남아있던 왼쪽 앞발로 석민을 낚아채려고 했다.
석민은 그것을 피하고 괴수의 앞발 발톱 부분을 거꾸로 잡은 단검으로 크게 베었다.
비늘이 괴수의 온몸을 덮은 건 아니었다. 그곳은 비늘 대신 두꺼운 가죽으로만 이루어진 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깊게 베어냈으나 치명상을 주진 못했다.
괴수의 앞발만 다시 위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본 아영은 경악에 물들었다.
괴수의 공격을 피해서 고작 작은 단검으로 맞서다니! 무모해도 너무나도 무모했다.
“피해요!”
아영이 소리치며 뱅스틱을 괴수의 두개골에 노리고 던졌다. 스틱 끝이 두개골에 박히기 무섭게 폭음과 함께 뼈와 비늘이 박살났다.
머리에 총탄이 박힌 괴수가 크게 몸부림치면서 발을 굴렀고, 석민은 그 발길질에 맞아 튕겨 나가 둥지 벽면에 부딪혔다.
두꺼운 의류를 입고 있었는데도 폐가 찌그러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새끼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석민이 눈을 뜨자 길게 찢어진 파충류의 눈과 마주쳤다.
지 애비가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새끼는 그것을 요리조리 피하더니 아가리를 쫙 벌리고 발톱을 보이며 석민에게 달려들었다.
석민은 가지고 있던 단검을 그대로 괴수의 입천장에 찔렀다.
칼이 깊숙하게 박혀 들어가서 손잡이만 남았다.
새끼가 입을 닫으면서 석민의 팔을 물고 앞발로 할퀴며 저항을 했으나 석민이 입은 방한복에 막혀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방한복이 손톱자국으로 찢어지면서 거위털이 눈처럼 흩날렸다.
새끼의 턱이 연신 움직였으나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지 석민의 팔이 뜯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 안으로 들어간 팔을 따라 새끼의 피가 흘러내렸다. 석민은 단검을 꽉 쥐고 비틀었고 새끼가 낮게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그것의 눈동자가 점점 위로 까뒤집어졌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석민은 전후좌우로 비틀어서 칼을 뽑았고 새끼는 뒷걸음질을 치더니 쓰러지면서 나약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석민은 그대로 몸을 돌려 둥지를 올라갔다.
다행히 아직 체력이 남은 덕분에 그는 단숨에 둥지 위로 뛰어 올라갈 수 있었다.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단검을 쥐고 있던 오른손엔 아직 뜨끈한 새끼의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고통의 몸부림을 치던 괴수가 새끼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을 알자 고통을 느끼면서도 새끼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을 놓칠 아영과 베르가 아니었다.
베르는 괴수가 한눈을 판 사이 아직 박혀있던 창대를 잡아 크게 비틀었고 아영은 예찬에게서 뱅스틱을 받아 녀석의 머리를 다시금 노리고 몸에 체중을 실어 찔렀다.
베르의 창이 뽑히면서 피가 튀어나왔다. 그때 아영의 뱅스틱도 격발하며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다.
괴수의 동공이 위로 향하더니 신체가 천천히 무너지고는 이내 쿵하고 커다란 충격을 일으키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