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69화]
비늘이 절묘하게 주변의 색과 동화되면서 괴수의 모습은 무너진 건물의 돌무더기처럼 보였다.
그것은 눈을 감은 듯 보였으나, 실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오른쪽 눈으로 주변을 살폈으며 왼쪽 눈으론 자신의 둥지를 예의주시했다.
기괴한 모습이었으나 이런 능력을 통해 괴수는 상당히 넓은 구역을 감시할 수 있었다.
바람이 크게 불고 있는데도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바위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괴수는 작게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했다.
바람 속에서 희미하지만 녹슨 쇠 냄새와 화약, 그리고 콘크리트 같은 돌가루 냄새가 풍겼다.
괴수가 숨을 내쉴 때마다 코에서 더운 김이 나왔다. 공기 깊은 곳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냄새가 풍겼으나, 쇠 냄새가 너무 강해 드레이크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가끔 멀리서 흘러들어오던 냄새로 판단한 것이다.
괴수들은 많으나 서로의 영역은 너무 작았기에, 멀리서 불어오는 이질적인 냄새를 자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괴수의 모습을 석민은 바짝 긴장 한 채 보고 있었다.
괴수는 완벽하게 숨었지만, 석민의 눈에는 야광색으로 밝게 빛났다.
‘스탯을 안 찍었으면 얄짤없이 죽었겠어.’
거리는 대략 300미터.
저녁 6시에 출발해서 저 괴수의 눈치를 보며 괴수 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거나, 콘크리트와 폐허의 더미 속에 몸을 숨겨 목표를 노리는 부엉이마냥 계속 괴수를 주시했다.
그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온몸에 쇳가루를 발랐다.
감염자들이 입었던 옷을 입는 방법도 있었지만 저 괴수는 자기의 영역에 들어오는 감염자들도 죄다 물어 죽인다고 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무생물의 냄새를 풍기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는 가까이 접근할수록 압도적인 크기의 그 괴수에 기가 질렸다.
‘저거 완전 진짜로 티라노잖아’
드론으로 봤을 때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랩터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크기가 완전 티라노 수준이었다.
다만 앞발이 티라노보단 크고 길어서, 마치 티라노와 랩터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드래곤보다는 한참 작지만, 생긴 건 저게 더 무서워 보이네.’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람이 불기 무섭게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지금 이 짓거리를 시작한 지 4시간 가까이 지났다. 석민은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진짜 스나이퍼는 사흘간 1.4킬로미터를 기어가서 저격을 했다던데.’
너무나도 천천히, 지루하게 접근해야 하는지라 그는 온갖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훈련받고 정신수양을 마친 군인이라면 이렇게 산만한 상태로 집중하지 않은 채 접근하지 않을 테지만, 석민은 아니었다.
바람 소리가 크게 불자, 석민은 다시 발걸음을 살며시 움직였다.
그는 이미 그가 가지고 있는 SVDK의 유효사거리 안으로 충분히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이왕이면 최대한 괴수 가까이 접근할 생각이었다.
SVDK에 사용하는 9.3x64mm 탄환은 추천을 해준 혜원의 말대로 거대한 동물들을 잡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탄환이지만, 저 괴수의 비늘 강도나 생명력 그리고 골밀도는 알 수 없었기에 막연하게 원거리에서 사격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원샷원킬하지 않으면 그가 위험했다.
괜한 실수를 해서 족히 30센티는 될 것 같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물리거나 찢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단 한 걸음으로 고작 10센티 정도 이동했다.
돌무더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그의 체중을 지탱해 줄 발판을 찾는 것도 너무나 고역이었다.
그는 이왕이면 100미터까지 접근해서 쏘고 싶었다. 탄환을 먹여줄 때 대가리, 그것도 눈을 맞추길 원했다.
‘쓸데없이 두개골 뼈에 맞아서 탄환이 튕기거나 하는 것보단 지금 좀 더 고생하는 게 낫겠지.’
그리 생각하며 그가 다시 발걸음을 떼는 순간 유리가 방한화에 밟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그는 얼른 몸을 바짝 엎드리고 눈을 감은 채 숨을 참았다.
난데없이 들려온 작은 소리에 딴 곳을 보고 있던 랩터의 두 눈동자가 석민이 있는 곳을 향해 주시했다.
그것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려고 했지만, 의심할 만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잠시 더 석민이 있던 방향을 쳐다보던 랩터 수컷은 곧 다른 곳으로 경계를 돌렸다.
석민은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입김이 나왔기 때문에 혹시 저놈이 자신의 입김을 보거나 냄새 맡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후각이 발달하지 않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포탄에 맞아 생긴 작은 크레이터의 경사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포격 당시에 수도관을 건들었는지, 밑바닥엔 물이 고여서 그대로 꽁꽁 얼어있었다.
그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정말 조심해서 걸었다. 개머리판을 접어서 등에 멘 SVDK가 흔들거리지 않게 주의했다.
혹여 금속 소리가 날까, 감염자들에게 얻은 군복을 찢어서 총기 전체를 감았다. 회색빛 신형 전투복은 이런 폐허 더미에서 매우 훌륭한 위장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앞에 좁아터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건물의 지하인 듯싶었는데, 상부에 있던 건물은 사라지고 지하만 온존하게 남은 듯했다.
다만, 들어가는 입구 부분이 콘크리트 덩어리들 때문에 너무 좁았다.
그는 몸을 넣어보려고 했지만, 추위 때문에 꽁꽁 싸맨 덕분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군장과 방한복을 벗었다.
그나마 내부는 넓었기 때문에 그는 얼른 옷을 다시 입었다
옷을 벗고 입는 사이 엄청난 양의 철가루가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석민은 가려움을 느꼈다.
‘제기랄, 냄새가 이상하네.’
철가루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사람 냄새를 가릴 수 있을 만한 건 전부 바르거나 주머니에 넣어서 그런지 좀 역한 냄새가 풍겼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코를 씰룩거렸다.
그나마 이쪽으로 바람이 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지하 복도는 괴수가 있는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지하주차장이었던 것 같았다.
석민은 돌무더기를 따라 창틀의 구멍이 난 곳으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
대단히 절묘한 위치였다.
반지하 집의 창문마냥 환기와 조명을 위해 둔 창가를 통해 괴수의 동태를 살필 수 있었다.
유리창의 가로길이가 고작 1미터밖에 안 됐고, 앞에 쌓인 콘크리트 파편으로 인해 매우 시야는 좁았지만, 절묘한 총안을 만들어 주었다.
석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괴수의 동태를 살폈다.
여기라면 1방에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괴수에게 반격을 당하진 않을 듯싶었다.
석민은 접었던 개머리판을 펴고 탄입대에서 탄창 하나를 꺼낸 직후 장전손잡이를 천천히 당겨서 약실 안으로 탄약을 넣었다.
그는 스코프를 통해 괴수를 보다가 능력의 영향으로 보이던 HMD십자선이 보이지 않자 눈을 뗐다. 그리고 확인해보니 총구가 돌멩이에 가려져 있었다.
석민은 천천히 총을 빼낸 뒤 돌멩이를 치웠다.
보통 땐 창틀 밖으로 총구를 내민 채 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괴수가 있는 위치가 그다지 높지 앉은 것이 다행이었다.
사격을 하기 전 석민은 무전기의 수신 버튼을 3번 눌렀다.
매복하고 있는 아영과 베르에게 신호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세를 잡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돌무더기 중 하나가 그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렀고, 석민은 긴장으로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괴수를 살피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던 순간, 그 소리를 들은 괴수와 눈이 마주쳤다.
석민은 숨을 들이마신 채 괴수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가 조금 엉성한 바람에 반동이 조금 강하게 왔다.
괴수의 왼쪽 눈에 총탄이 박히면서 피가 튀었고, 고통에 찬 괴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석민은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비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주둥아리 쪽에도 총탄이 박히면서 괴수의 뒤통수로 피가 튀고 살점과 비늘이 튀어나왔다. 총탄이 관통을 한 것이다.
석민은 저것이 즉사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괴수는 입과 눈으로 피를 뿜어내면서도 석민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미처 석민이 준비하여 반응하기도 전에 눈앞까지 다가온 드레이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석민의 총기를 잡아챘다.
석민은 그대로 질질 끌려나가야 했다. SVDK에 연결해둔 건슬링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창틀에 몸이 껴서 척추가 부러질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그는 얼른 군용대검을 꺼내서 건슬링을 잘랐다.
족히 1미터 정도 되는 것이라 급히 꺼내다가 방한장갑을 살짝 베고 말았다.
나일론으로 된 튼튼한 건슬링이었으나 다행히 사전에 군용대검을 날카롭게 갈아둔 덕에 쉽게 자를 수 있었다.
석민은 금방 자유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안타까운 눈으로 끌려가는 SVDK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석민의 총기만 꺼낸 괴수는 그것을 자신의 앞발로 쥐었다. 그러자 총기가 깡통 찌그러지듯 V자로 그대로 구겨졌다.
“세상에.”
석민은 저게 자신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총을 여러 방 맞았잖아. 어떻게 살아있어?”
그것은 석민은 죽이기 위해 석민이 있던 구멍을 잡고 미친 듯이 파내려고 했다. 앞발이 닿을 때마다 깊은 발톱 자국과 함께 콘크리트조각들이 떨어져 나갔다.
석민은 뒷걸음질 쳤다. 그에게 남은 무기라고는 고작 1미터짜리 대검뿐이었다.
“미친놈.”
석민은 그것이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어오자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밖에서 폭음과 함께 괴성들이 울려 퍼졌다. 석민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괴수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비명을 지르며 둥지 쪽으로 뛰어갔다.
한시름 놓은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레이크가 들어오려고 난리를 피운 곳은 드레이크의 피로 가득했다. 막 뿜어져 나온 피는 더운 김을 피우며 안으로 떨어져 석민이 신발의 밑창을 적셨고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
“총성이다!”
석민이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아영이 소리쳤다.
베르는 아영을 감싸 안고 날개를 활짝 펴 초저공으로 비행을 시도했다.
잘못하면 비행하다 드래곤에게 들킬 수도 있지만, 덩치가 큰 베르가 석민처럼 몰래 접근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그래서 조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렇게 접근하자는 게 베르의 의견이었다.
아영은 어쩔 수 없이 코끝을 스칠 듯, 말 듯 지나가는 바닥 구조물들을 보며 실시간으로 원하지 않는 스릴과 중력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한 그녀는 수류탄 다발을 품에 꼭 안았다.
베르 혼자서 날아가 수류탄을 던질 수도 있었지만, 베르의 손은 그들의 손에 비해서 지나치게 커서 수류탄의 안전핀을 신속하게 뽑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베르의 비행 덕분에 아영은 순식간에 랩터의 둥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에 맞은 괴수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베르는 순식간에 고도를 올렸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던 아영은 고개를 올린 괴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아영은 수류탄들을 둥지 안으로 던졌다.
난데없이 머리 위에 수류탄이 떨어지자, 암컷 괴수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마치 수류탄 다발이 무엇인지 아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