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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68화 (168/226)

[게이트 오브 서울 168화]

망설이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구옥희 중령이 나서서 말을 하니 예찬이라 불린 군인 감염자는 바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군인 시절에 남은 습관이 그대로 있는 듯했다.

“너도 뱅스틱 2개를 챙겨.”

선임으로 보이는 감염자가 그에게 창 2개를 내밀었다.

“네.”

그것을 받은 예찬이 준비를 마치자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쉴 만한 방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찬아, 2층에 203 강의실로 안내해드려.”

“알겠습니다.”

“그러면 갑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드레이크가 얼마나 센진 모르겠지만, 절대 방심해선 안 되겠다 생각했다.

석민과 아영, 베르는 예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석민은 그 틈을 타 작은 목소리로 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아영도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만, 이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포섭한다면 왕십리로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쉴 곳도 있고. 운이 좋다면 용이 깨어나기 전에 문에 도달할 겁니다.”

아영은 용이 생각났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는 잠깐 주변을 보다가 작게 귓속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알림글이 나오는 거로 봐서는 여기로 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요.”

“그것은 맞긴 하지만 난 아직 걱정이야.”

석민도 작게 소곤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는 감염자들은 두 사람의 사이가 참 좋다고 여겼다.

감염자들은 살아있고 자신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들에게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무례한 줄 알면서도 그들의 뒤를 따라왔다.

***

석민과 아영은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예찬이라 불린 감염자는 그들을 위해 옛 강의실을 안내한 후 나가지 않고 자연스레 그 강의실에 들어와서 구석에 앉았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앉았기에 석민과 아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짐을 풀어야 했다.

석민과 아영은 우선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강의용 책상을 털어내고 그 위에 침낭을 폈다. 바닥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일부 필요한 것들은 빼고 나머진 전부 책상과 의자 사이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 직후 점심식사를 위해 전투식량을 데웠다.

베르를 위해 재스민 차를 끓일 무렵, 문이 열리면서 감염자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빤히 보았다.

냄새도 못 맡을 텐데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석민과 아영은 애써 모르는 척하며 점심을 먹었다.

쫓아내자니 지금 눈칫밥 먹는 입장은 그들이었다.

차를 다 끓인 아영이 베르에게 넘기자, 베르는 매우 경건한 자세로 군말 없이 차를 마셨다.

마치 종교적인 의식의 한 장면 같았고, 구경하던 감염자들조차 절로 경건한 마음을 먹게 만들며, 즐겁게 했다.

“천사는 재스민을 좋아하나 봐.”

누군가의 속삭이는 소리가 석민의 예민한 귀에 들려왔다.

저들은 최소 6년 동안 무언가를 먹거나 마신 적이 없었을 것이다.

먹거나 마신다는 것은 단순하게 삶을 영위하게 해 나가는 수단일 뿐 아니라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가지게 되는 욕구였다. 그런 것이 결핍된 감염자들은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상 매우 부러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이들은 석민이 턱을 움직이는 박자에 맞춰서 자기 턱을 움직였다. 그에 맞춰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턱이 딱딱거리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입맛 뚝 떨어지게 시리.’

석민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서 밥 먹는 데 집중했다.

감염자들이 베르가 건넨 혈액을 맞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는 하나 일단 지금은 죽어서 썩어가는 시체였다.

즉, 냄새가 지독하단 말이었다.

죽었으니 단 한 번도 씻지 않았을 것이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밥을 먹자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석민은 그래도 최대한 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아마 이곳의 날씨가 춥지 않았다면, 마른 장작 같은 몰골이 아닌, 스스로 썩어 문드러져 벌레들이 들끓는 꼴을 봤어야 할 이들이다.

‘그래, 어디 한 번 봐라.’

식사를 마친 석민은 오랜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석민의 주머니에서 담배가 나오자 탄성은 좀 더 노골적이 됐고, 아영은 식사를 빨리 끝마치기 위해 턱과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듀퐁 라이터가 기분 좋은 금속음을 내면서 뚜껑이 열렸다. 석민은 입에 물고 있던 궐련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에 감염자들은 마치 어른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석민의 모습을 흉내 냈다.

특히 그 모습에 열광하는 감염자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중 제일 가관인 게 예찬이라고 불린 감염자였다.

마치 송장이 붕어마냥 뻐끔거리는 꼴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식 웃음이 난 석민은 한 번 더 담배를 빨고는 입을 열었다.

“얼마 안 남았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감염자들과의 분위기가 더 훈훈해져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영과 베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환풍기가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태웠으니 강의실 전체가 연기로 가득했다.

적어도 시체 썩은 냄새보다 낫긴 했지만 아영은 두 개의 냄새를 맡으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환기 좀 시키죠?”

불만으로 가득해진 그녀가 감정을 섞어 말하자, 그제야 석민과 감염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

“그 괴수들이 금속 냄새까지 맡는다고 하긴 하지만.”

점심식사가 끝난 이후 감염자들을 전부 내보낸 석민과 아영은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석민은 자신의 계획이 실현되도록 계획을 준비해야 했다.

“금속 냄새를 맡을 정도면 후각 능력이 거의 시베리아 호랑이급인 거 같은데.”

석민은 예전에 읽은 책에서 본 한 구절을 떠올렸다. 시베리아 호랑이들은 사냥꾼을 피할 때 사냥꾼이 든 총기의 금속 냄새를 통해 도망친다고 했다.

하지만, 아영은 반론을 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미 그 주변은 폐허잖아요. 주변에 철근이며 기타 여러 것들이 있으니 따로 금속 냄새를 숨길 필요는 없어 보여요. 다만, 문제는 우리 냄새예요.”

그녀의 말에 석민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감염자들과 다르게 ‘신선한’ 고기들이었다.

드레이크들은 기본적으로 후각이 매우 뛰어났다. 다른 괴수들보다도 더 예민한 편이라, 자칫 어설프게 접근하다가는 공격도 하기 전에 자신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갈 것이 분명했다.

석민은 베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가 쓰는 주문 중에 냄새 같은 거 숨기는 건 없어?”

“없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을 하니 석민으로서는 더 물어볼 말도 찾지 못했다.

“거참 도움이 되는구만.”

석민이 빈정거렸지만, 베르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우리는 너희처럼 신체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주문을 만들 일이 없지.”

자연스레 두 사람은 괴수의 후각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에 빠졌다.

“최선의 방법은 역시 옷을 갈아입는 것이겠죠. 이왕이면, 우리의 체취가 아니라….”

아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감염자들이 입었던 옷을 입자는 말인가? 석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지난번에도 개들의 내장 냄새를 맡으면서 대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방한복 위에 덧입으면 불쾌한 기분이 좀 덜할 것입니다.”

“아니, 아니야.”

석민이 반론했다.

“아까 감염자들이 말했잖아. 감염자들의 냄새만 맡아도 공격한다고. 내가 보기에는 아까 쇠냄새 이야기도 했으니까 옷에다가 녹슨 쇳가루를 잔뜩 바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냄새 문제가 일단락된 것 같자 석민은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베르, 랩터들 습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봐. 특히 저녁 시간쯤 말이지.”

“암수가 교대로 자면서 새끼를 품어 지킨다. 안 자는 개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지. 너희도 보았겠지만, 둥지는 주변에 비해서 높은 곳에 있다.”

베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선에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석민은 고민에 빠져갔다.

둥지가 높은 것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포격의 영향으로 평탄화되어서 높은 지대가 없었다. 그에 따라 둥지 안을 살피기 힘들었고, 괴수들을 기습하여 처리하고 싶었으나 그 계획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작정해서 어디 고지대에 올라 먼 거리에서 저격을 한다면 어찌저찌 명중은 할 수 있겠지만, 저 단단한 비늘을 뚫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이러나 저라나 근접전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꽤나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밖에서 파수꾼으로 감시하는 녀석도 있는 데다 둥지 안에 있는 녀석도 마음만 먹으면 머리만 내민 채 주변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사거리에서 둥지를 튼 이유가 있네. 하늘에서 보면 주변 색과 동화되어서 와이번들 눈을 피할 수 있고, 주변이 탁 트여 있어서 멀리서 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네.”

석민은 둥지가 아니라 마치 성벽, 혹은 보루 요새 같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렇다면 둥지에 숨은 것을 제외하고 감시하는 개체부터 조용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소음기가 없는데….”

“그러면 기습은, 혼자 떨어져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 2마리는 같이 처리하는 것으로 하지요.”

아영이 말했다.

“아니, 혼자 있는 건 내가 접근해서 처리할 테니까, 너랑 베르는 같이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석민은 여분의 수류탄을 확인했다,

“수류탄이 딱 7발 있네. 이걸 집속 수류탄처럼 한 번에 그 둥지에다가 던지면 되겠지.”

“좋은 생각이네요.”

죽진 않더라도 치명상은 분명히 입을 것이라고 보았다.

작전계획을 마친 그들은 사전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휴대폰을 그냥 수리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그걸 바로 수리해버렸으면 그냥 우리 휴대폰을 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겠지.”

석민이 말했다.

“우리는 단순하게 빨리 길만 알아내고 가면 돼.”

그 말에 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들키면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거야.”

석민과 아영이 작전회의를 마칠 무렵 가만히 듣고만 있던 베르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에는 석민과 아영이 들고 있는 수류탄이 보였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되겠는가?”

그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석민은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석민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아까 던진 빈정거림이 베르에게 인생의 어떤 도움이 된 거라 여겨졌다.

***

밤이 되었다.

그 어느 때처럼 서울은 짙은 어둠이 깔렸고 적막감이 감돌았다.

석민과 아영이 랩터라고 이름 붙인 괴수의 수컷이 둥지에서 벗어나 대략 100미터쯤 떨어진 반파된 건물의 위로 올라 바위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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