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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67화 (167/226)

[게이트 오브 서울 167화]

크기는 예상보다 커서 석민 만했다. 웅크리고 있어서 두족 보행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3개의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기다란 앞발이 보였다.

비늘은 주변 회색 콘크리트와 똑같은 색이었다. 새끼로 추정되는 그것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드론을 주시했다.

“생긴 게 완전….”

그 순간 카메라의 시점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무언가의 이빨에 드론이 물린 듯, 화면 앞에 검은 그림자가 오가더니 이내 화면이 노이즈로 바뀌었다.

드론을 잃었다.

“역시 부모가 있었네.”

석민이 말했다.

잠깐 살펴본 것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둥지 색과 완벽하게 같은 비늘색을 가진 것으로 보아 카멜레온처럼 비늘색을 조정할 수 있는 듯했다.

‘좀 까다롭겠는데?’

저 녀석의 부모 또한 그렇다 치면, 이 돌무더기 속에서 드레이크를 찾는 건 상당히 힘들 것 같았다. 아마 상당히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은 대단히 절묘해 찾기 힘들 것이다.

감염자의 정보대로 만약 머리까지 좋다면 꽤나 처치하기 곤란할 것이다.

“생긴 게 꼭 영화에서 보던 공룡, 랩터 같네요.”

아영이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 이것들을 본 적 있어?”

그 말에 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우리 세계에서 넘어온 것들 중 걸어 다니는 건 전부 드레이크라 불렀으나, 우리 쪽에서는 너희가 서로 다르게 이름을 부르듯, 드레이크의 종을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그러면 저것들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

이윽고 베르의 입에서 발음을 할 수 없는 단어가 나와 버렸다.

“음? 뭐라고?”

석민은 다시 물었지만, 그를 비롯해서 아영도 발음을 따라 하지 못했다.

“그냥 랩터라고 치자. 많이 닮았으니깐.”

영화에서 보던 그 공룡보다는 크기가 훨씬 큰 것 같지만, 그들을 임시로 랩터라 부르기로 했다.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

“맞다.”

베르가 말했다.

“너희가 랩터라고 부르는 그것은 무리생활보다는 단독생활을 하지만, 번식기가 되면 암수가 같이 살고 출산, 새끼의 양육 이후엔 또 따로 살게 된다. 아까 영상을 보건데 저것들은 지금 양육 중인 것 같군.”

“사냥 실력이 좋나?”

석민의 물음에 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영상으로 보았듯이 이것들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다. 그것 말고도 후각 또한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랩터를 사냥할 때 우리 동족들은 금속으로 된 무기와 갑주를 입지 않고 사냥에 임했지. 게다가 앞발을 잘 사용하고 발톱 또한 날카롭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사냥을 하지 않을 것처럼 말해서 석민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

아마 진심으로 참여하고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설마 드래곤도 같이 잡았던 놈이 저걸 못 잡겠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불쾌한 생각이 들 무렵 석민은 아까 본 영상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비늘을 보건데 일반 드레이크보다 더 크고 단단해 보이는군.”

“맞다.”

베르가 답했다.

“그렇다면, 너는 빠져줘.”

아영은 설마 석민이 자신에게 빠지라고 할 줄 몰랐다. 베르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서 베르만 쳐다보다가 베르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화들짝 놀라 석민을 보았다.

“제가요?”

“응, 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는 총이 5.45잖아. 저것들 크기도 크고 비늘이 더 강하다니까, 그 무기로는 도움이 안 될 거야. 만일을 대비해서 후방에서 엄호를 하는 건 어때?”

단순하게 그녀의 무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아영으로서는 저런 위험한 놈들을 석민과 베르 둘이서만 처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영은 감염자들에게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는 사태 때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기에 다른 무기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기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구옥희 중령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무기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전엔 무기를 썼지만, 망가지거나, 내구도가 닳거나, 고칠 수 없어서 방치되었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을 해보니 총기가 제대로 있었다면 저들이 급조한 티가 나는 뱅스틱을 만들어서 쓸 이유가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우리 무기고로 내려가서 한 번 보시겠습니까?”

구옥희 중령은 석민과 아영이 자신의 말을 못 믿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듯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들에게서 무기를 얻을 수 없는 이상 방법이 없었고, 아영 또한 괜히 우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뱅스틱은 어떻습니까?”

감염자들 사이에서 삐져나온, 다른 감염자들에 비해 어려 보이는 감염자였다.

“뱅스틱을?”

일행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군복을 입은 감염자가 나와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쓰는 뱅스틱 중에 가장 좋은 것이 k-6 기관총에 쓰던 50구경 탄환을 쓰는 것인데 그것만  있으면 충분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정말?”

그것이 있다면 아무리 뱅스틱이라도 쓸 만할 것이다.

“그거라도 주시면 감사히 쓰겠습니다.”

석민이 대답하기 전에 아영이 먼저 말했다.

갑작스레 이병인 감염자 하나가 나서서 말한지라, 다른 감염자들은 당황한 나머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구옥희 중령은 그 병사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뱅스틱 2자루와 50구경 탄환 10개를 주었다.

겨우 10발? 하고 의문이 들 무렵 그것을 가져다준 어린 감염자가 입을 열었다.

“탄약을 많이 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석민과 아영은 받은 50구경 탄환을 들어서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12.7×99mm KM8]

내구도:90%

품질:상중

대한민국, 풍산에서 생산한 철갑소이탄.

생산을 한 지 오래되었지만 관리를 잘한 덕분에 격발에 문제가 없는 상태.

탄약을 보관할 때 그늘지고 서늘하며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그 조건에 딱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50구경의 위력이야 확실하긴 하지만, 고작 이것만으로 괜찮을까?

“정말로 이것으로 되겠어?”

석민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게다가 50구경이면 충분한 화력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aks-74u도 들고 갈 거예요.”

그녀는 탄약들을 전부 바지의 건빵주머니에 넣었다.

‘카빈총에다가 뱅스틱을 2개나 들고 어떻게 움직이려고?’

석민은 의문이 들었지만, 아영이 괜찮다고 하니 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뱅스틱을 들어봤다.

탄약이 들어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시스템에선 총기로 분류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혹은 감염자들이 철 파이프를 가지고 만든 조잡한 물건이라 그런지-아무래도 후자 같았지만- 눈앞엔 알림창이 나오지 않았다.

‘에이, 그래도 탄약이 들어가는 건데.’

애초에도 실망스러운 능력이었지만, 서비스가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석민은 그것을 한 번 분해해 보았다.

조잡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지만, 나사를 돌리는 방식으로 여는 약실과 간단하면서 튼튼하게 만든 격발기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약실 몸체는 어느 총기에서 뜯어낸 물건 같았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다룰 때 상당한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말한다면 하는 수 없지.”

석민의 말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 두고 가면 섭하죠.”

그 말에 석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단지 무기 때문에 그런 거야. 내가 널 모르겠어?”

석민의 말에 아영은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러면 무기 문제는 어떻게든 된 것 같고.”

석민이 베르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베르는 잠깐 멈칫거렸다.

“난 가기 싫다.”

베르는 감염자들을 살짝 눈치 보다가 허리를 숙여 석민의 귀에 가까이 입을 두고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명색의 전사이면서 같이 드래곤도 잡았는데, 그게 무서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무서운데.”

농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기에 석민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게 드래곤보다 강한가?”

“그건 아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데?”

“상당히 많이 위험하기 때문이야.”

그가 말했다.

“번식기와 양육기의 랩터들은 매우 사나워진다. 게다가 새끼를 가진 것들은 물불 안 가리고 새끼와 둥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움에 임하지. 그래서 우리도 양육기의 랩터들은 건들지 않았다.”

베르는 더더욱 낮은 목소리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드래곤은 단순하게 자신의 유희나 자존심 때문에 싸우지만, 자기 새끼를 끔찍하게 아끼는 랩터들은 그렇지 않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행동하는지 알지 않는가?”

그 말에 석민의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대단히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보건데 진심이 분명했다. 베르는 정말로 그것들이랑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쓸모없는 녀석.’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꽤나 중요한 전력으로 보이는 베르를 안 데리고 갈 순 없었다.

아영은 빠지라고 하는데도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하는데, 자기 종족들을 구해야 한다고 우리와 손잡은 이놈은 도대체가….

“네 경고는 알겠는데….”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닌지, 석민은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끼리만 갈 수 없잖아.”

저들의 협조를 받아 왕십리에 가려고 한다면 그 괴수 놈들을 처리해야 했다.

“우리가 함정에 걸려서 죽는 꼴 보고 싶어? 왕십리 안 갈 거야? 네 동족들은?”

그 말에 베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도 힘들어져.”

“알았다. 같이 따라가도록 하지.”

석민과 베르 둘이서 속닥거리는 걸 기다리다 지친 구옥희 중령은 눈치를 보다가 베르와 시선을 마주치자, 용기를 내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언제 가실 생각이십니까?”

구옥희 중령이 물었다.

“밤에 가서 놈들을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구옥희 중령은 잠깐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밤에 말입니까? 그놈들은 야행성이 아니지만, 이 폐허 속에서 그것들을….”

“다 방법이 있습니다.”

석민의 의도를 깨달은 아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들은 스탯 덕분에 야간 시력이 좋아서, 아무리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해도 열상은 남을 것이다.

‘설마, 냉혈동물은 아니겠지?’

그는 베르의 경고를 받았지만, 나름 방법을 구상해 둔 터였다.

야간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기습으로 치명타를 가한다면, 그것들이 아무리 거칠고 죽을 각오로 싸운다고 해도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까지 기다려주시지요. 그리고 역시 길 안내가 필요한데….”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다 아까 당돌하게 입을 열었던 어려보이는 감염자를 지목했다.

“당신이 길 안내를 해주시죠.”

“제, 제가요?”

그 감염자는 자기가 지목당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면 우리만 혼자 갑니까?”

“그래, 예찬아. 네가 다녀와라.”

구옥희 중령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일단, 길 안내만 하는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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