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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64화 (164/226)

[게이트 오브 서울 164화]

석민과 아영, 그리고 베르는 숨죽인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행동이 익숙하면서도 민첩했고, 대형을 갖추는 것을 보아 지능도 일반인들처럼 뛰어나 보였다.

“전에 보았던 지성을 가진 감염자들 같네.”

석민이 말했다.

“그리고 뱅스틱을 만들어서 쓰는 자들이 누구인지도 알 것 같고요.”

석민은 지난번 오르바와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사람의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것들도 지성을 가지고 있었고 지난번에 만났던 감염자 김경원 씨는 사람의 말까지 할 수 있었다.

저들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한 번 가볼까?”

석민이 말에 아영은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감염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봐서 저쪽 길목에는 주문이 안 걸린 것 같은데.”

애초에 드론은 주문의 대상이 아니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석민의 의견은 빈약했다.

“그래도 접근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석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난번 있었던 여러 가지 경험 덕분에 지성을 가진 감염자에 큰 악감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드론부터 귀환시키고 가지.”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오전 9시밖에 되지 않아서 시간은 충분했다.

“커피 한 잔 마시자.”

“알겠습니다.”

“베르도 한 잔?”

“좋아.”

베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어떻게 봐, 저들을?”

그의 물음에 베르는 잠깐 고민을 하고 입을 열었다.

“운이 좋은 자들이지, 드래곤의 권속이 되면 빠져나오기 힘들 텐데.”

“혼자 있었을 때 저런 자들을 본 적이 있나?”

“아니.”

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 동료들은 여럿 보았을 것이다. 멀리서 그들이 저들에게 대화 시도하는 걸 몇 번 보았었다.”

“그런가?”

천사들이 대화를 시도했다는 사실에 석민은 약간의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자들이 없을 것이다. 여기는 천사들도 접근하지 않아. 날아서 올 수 없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최소한 교단이나 천사들과 만나본 적 없는 자들이 분명하니 접촉해볼 것이다.

***

혹여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그들은 단독군장차림에 무기를 챙기고 움직였다.

최악을 대비해서 빠르게 도망갈 수 있게 가장 가벼운 무장을 했고, 도주로까지 따로 체크하며 준비했다.

“아마도 일반인을 만나는 건 우리가 처음일 거야.”

석민이 말했다.

“그놈들에게 지성이 있으면, 굳이 우리가 적대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니면 오히려 배척할지 모르죠.”

아영이 말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말라는 의미로 준 경고였기에 석민은 그녀의 뜻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이번엔 자신의 SVDK에 대검을 끼우지 않았다.

“베르, 할 수 있으면 창을 거꾸로 잡아주었으면 좋겠어.”

“알았다.”

석민의 말에 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굳이 저들과 접촉을 할 필요가 있나?”

베르의 물음에 석민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래 거주했을 테니 그놈들이 길을 더 잘 알겠지. 만약에 그놈들이 안전한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한테는 큰 도움이 될 테니깐.”

“네가 말하는 감염자들은 주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뭐라고?”

석민이 놀라 되묻자, 베르는 덤덤하게 덧붙였다.

“그게 가능했으면 여기에 걸린 주문들이 진즉에 전부 풀렸겠지.”

베르는 매우 무심하게 말했으나, 그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석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과 접촉해야 합니다.”

아영이 말했다.

“길이 시립대 방향 말고는 막힌 상태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야 하거든요.”

그녀는 홀아비를 모시던 김경원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파왔다.

“또 만약에 예전의 기억과 자각을 가지고 있고 지능 또한 있다면, 그들을 설득해서 서울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아볼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녀는 이미 저들을 어떻게든 서울 밖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을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치료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능은 하다.”

더더욱 무심하면서도 중요한 말이 나왔다.

“뭐라고?”

이번엔 두 사람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영의 안면근육이 심하게 떨렸고, 석민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피를 수혈하면 된다. 우리의 의지를 담은 주문을 건 피여야 하지.”

석민과 아영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도 베르는 말을 이었다.

감염자(권속)들은 기본적으로 드래곤의 주문에 걸린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 주문을 중화시키는 새로운 주문을 걸면 된다는 소리였다.

“왜 그런 걸 말해주지 않은 거야?”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베르의 말에 두 사람은 황당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설명을 하고 싶지만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군.”

그러면 더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석민과 아영은 만약에 저들과 교류를 쌓게 된다면 한번 실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추위는 여전히 강력했다.

그들은 드론으로 확인했던 길을 따라 움직였다.

촘촘하게 주문이 걸려있던 다른 곳들과 달리 그들이 가는 길엔 주문이 걸려있지 않아서 마치 길조 같았다.

다만 어디선가 계속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와이번이 비행할 때 나는 날갯짓 소리가 끊임없이 나서, 그들은 무너진 건물이나 반파된 건물 그늘 밑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좁은 곳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베르는 전에 썼던 방식으로 몸을 숨기고 거리를 걸었다.

이윽고 그들은 시립대 입구 쪽에 도착했고, 길을 따라서 움직였다.

“좌측 낮은 관목에.”

아영의 말에 석민은 눈만 돌려서 아영이 말한 곳을 보았다. 갈색으로 변한 조경수 사이에 해골 같은 사람의 얼굴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바람에 의해 땅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와 썩은 잎사귀에 의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석민과 아영을 감시하는 듯했으나, 스탯 덕분에 눈과 귀가 좋은 그들에겐 그대로 보였다.

딱히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자들은 손엔 뱅스틱이 있었기 때문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축구장 쪽으로 움직이지.”

석민이 말했다. 그들은 경계심을 지우지 않은 채 축구장으로 움직였다.

축구장에도 폐허나 구석에 숨은 자들이 보였다.

석민과 아영, 그리고 베르는 축구장 한가운데 있는 H자 모양의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축구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감염자들에 의해 석민과 아영이 포위된 형국이었다.

다른 때였으면 사방에 총을 쏘면서 어떻게든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겠지만, 석민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었다.

석민은 흙바닥을 지나와 발자국 남는 것으로 베르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주머니에서 물티슈 한 장을 꺼냈다.

석민은 꺼내기 무섭게 얼어버리는 물티슈를 총구에 묶어 총을 높게 들고서 흔들었다.

지능이 남아있다면 그 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주변에서 움직임이 점점 많아졌다. 그것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분명했다.

“베르, 모습을 보여.”

석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르는 자신의 몸을 보였다.

난데없이 그들 사이에서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움직임은 이제 노골적으로 변했고, 감염자들은 은폐를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자들은 천천히 석민과 아영, 베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대충 40은 되어 보이는 수가 사방에서 나타나 걸어오자 아영은 총구를 들 뻔한 걸 간신히 참았으며, 석민은 긴장을 애써 감추며 총구를 하늘에 두었다.

감염자들는 뱅스틱을 쥐고 있었지만 창끝을 아래로 내리거나 위로 두는 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이윽고 감염자들이 3미터 앞까지 접근해 그들을 완전히 포위했다.

뼈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회색 혹은 거무죽죽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천천히 엎드려서 절을 했다.

갑작스레 절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 행동을 본 석민과 아영은 깜짝 놀라 움찔거렸다.

석민은 내심 이번 접촉을 매우 좋게 여겼다.

감염자들 사이에서 군복을 입은 자가 나타났다.

그자는 감염자들 사이에서도 말쑥한 차림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형 디지털 무늬 전투복에 야전모를 쓰고 있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철제 사관용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그자의 계급은 중령이었다.

“환영…합니다.”

잔뜩 쉰 목소리였지만 그자는 분명 사람의 말을 했다.

그들이 절을 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전부 베르에 향해 있었다. 베르 덕분에 안전했던 것이다.

[‘생존자들’과 조우하였습니다.]

눈앞에 새로운 알림글이 나타나자, 석민은 역시 옳았던 판단이었다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고 앞으로 있을 일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

그들은 안내를 받아 과학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시지요.”

안내하는 감염자의 목소리는 마치 칠판을 긁는 듯 소름 끼쳤으나, 행동은 친절로 가득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훈훈한 공기가 석민과 아영의 얼굴을 보듬었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아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공기, 친절한 감염자들, 물론 먹는 것이나 마실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저주받은 곳에서 따뜻한 공기만큼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었다.

어느 정도 기대를 하며 들어온 석민과 아영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과학관 건물 메인 로비는 감염자들이 마치 교회의 예배당처럼 꾸며놓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 건물을 종교시설마냥 꾸민 것이지?

두 사람은 불편한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았고 마음속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샘솟았다.

‘이거 불안한데.’

석민과 아영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연단에 세워놓은 십자가를 보았다.

“여기 앉으시죠.”

감염자들은 조금 부산을 떨며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석민과 아영은 감염자들이 권하는 의자에 앉았으며 물과 음식을 받았다. 물론 베르 또한 받았다.

하지만 전부 유통기한이 심하게 지난 것들이라 먹을 수 없었다.

“감염자인 우리들을 보고 총을 쏘지 않으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것에 감명받은 듯했다.

“예전에 여러분과 같은 사람을 만났었습니다. 그분은 이성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분처럼 말을 할 줄 알더군요.”

“그러면….”

기대에 찬 질문이 나오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안타까운 탄식이 나왔다.

“천사분과 계신 것을 보니 혹시 교단에서 보내신 것입니까?”

맞은편에 앉은 중령 감염자가 말했다.

‘역시….’

석민은 애써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도대체 그놈의 사이비들이 어디까지 손을 뻗었는지 석민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갑작스레 교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영은 살짝 움찔거렸지만, 먼저 기민하게 반응했다.

“교단은 아니지만….”

아영은 눈동자를 돌려 기다란 의자에 착석한 베르를 보았다.

“우리는 천사님을 따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왕십리역으로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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