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63화]
결국 교단은 마지막 한순간까지 그들의 소모품이었던 것이다.
베르는 말을 이어나갔다.
“문을 닫는 의식은 그것을 시전하는 자가 많을수록 빨리 닫힐 수 있다. 내 동료들의 목적은 교단인들을 통해 안전하게 입구에 도달하고, 문을 연 뒤 방주를 들이고 문을 안전하게 닫는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방주에 있는 동족들을 해방해서 이곳을 정복하는 것이지.”
“방주에 있는 네 동족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나?”
그 말에 베르는 잠깐 상념에 잠겼고 후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문을 넘기 전까진 우리는 종족의 생존이 목적이었지 정복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말은 석민과 아영이 그들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혹시 베르 혼자 이단아적인 생각하는 게 아닐까?
“좀 더 제대로 설명을 하자면, 정복을 결정한 것은 우리 선발대의 대장인 오르곤의 결정이다. 그는 우리 왕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결정에 반박할 수 없었지.”
“오르곤? 그 날개 4쌍을 가진 천사를 말하는 건가? 이름이 오르바와 비슷하네.”
“오르곤은 오르바의 큰형이다.”
“아, 그래?”
석민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르바를 잃은 것으로 그가 크게 힘들어했지만, 그 의지는 꺾지 못했지.”
“큰형이라면, 둘째가 있다는 소리겠군.”
석민은 오르바의 창을 들고 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천사가 생각났다.
“오르나라고 있지. 3형제는 예전부터 우리 동족을 위해 많은 헌신을 해왔지.”
석민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말한 대로 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머지 천사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지?”
“방주에 있는 인원들은 너희를 알지 못한다. 이 세계도 모르지. 충분히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어. 방주만 넘어온다면 어떻게든 너희와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대책이 아닌가?
이 천사를 속여서 일단 문에 접근한 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계획에 근본적인 재수정이 필요한 게 아닌가 두 사람은 생각했다.
“그래, 너희도 무대책이라 생각이 들겠지. 하지만 너희에게 장담하건대, 방주에 탄 인원들은 너희들의 말대로 하면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민간인이 대부분이다. 어디를 정복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너희보다 고등종족이지만 너희들만큼 강한 무기와 과학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는 이곳을 넘어오기 전까지 너희가 가진 화기를 알지 못했고 단단한 장갑을 가진 전차와 헬리콥터, 전투기의 개념조차 모른다. 오르곤은 충분히 너희를 지배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 글쎄.”
베르는 무언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지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국군이나 다국적군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는 듯했다.
“너희를 적으로 만들어서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전멸을 면치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적은 수이지만 너희는 이미 충분히 괴수들을 사냥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게 말하니 나름 납득이 갔다.
‘베르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영은 상념에 잠겼다.
‘자기 동료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데.’
혹여 베르가 말하고 있는 대로 천사들 몰래, 그리고 용들 몰래 방주를 들이고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평화적으로 이주한다는 게 얼마나 안일한 말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이 녀석 뜻대로 하기로 했지만 너무 이상주의거나, 무대포 방식 같은데 다른 천사들이 없는 상태에서 설득이 가능할까?’
석민은 베르를 믿을 바에 그냥 문을 닫았으면 해다.
아영은 잠깐 매우 심각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혹여 만약에 실수로 방주가 넘어가서 천사들이 방주에서 해방이 된다면, 정부에게 해당 사항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 엄청난 대혼란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 것이다.
‘그래, 적어도 대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그리 생각했으나 차마 석민과 베르 앞에서 말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석민은 여기서 베르가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에 빠졌다.
‘함정을 해체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겨우 탐지밖에 못 하는 데다, 덩치는 너무 커서 좁은 데는 못 지나가고 괴수들을 아주 잘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드래곤이 만든 주문을 탐지하는 건 매우 좋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드래곤이 깨어나면 도움은 되겠지.’
“차 한 잔하겠어?”
석민은 보리차가 담긴 법랑을 내밀었다.
“그건 사양하지 않지.”
일단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고 그들은 서울시립대 쪽으로 길을 잡아보기로 결정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석민과 아영은 서울시립대를 살펴보려고 고지대를 찾았으나, 서울시립대 자체가 지대가 높은 곳이고, 또 주변에 성한 높은 건물이 없어 서울시립대를 살펴볼 수 없었다.
“배봉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건?”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길을 개척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대신에 그녀는 다른 제안을 하기로 마음먹고 짐가방에서 드론을 꺼냈다.
회색과 흰색으로 얼룩덜룩하게 도색이 된 드론이었다.
“무작정 가는 건 어렵기 때문에 드론을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회기와 거리도 가깝고, 주변에 건물들이 많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그 정도쯤은 가능할 것 같은데요.”
게다가 풀 충전은 했지만, 아영은 강추위에 배터리가 닳아버려 나중에 쓰지 못할 걸 우려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좋은 생각인 것 같네.”
추위에 몸이 잔뜩 떨리고 있던 지라 석민은 그녀의 제안에 찬성했다.
그들은 임시로 두었던 아지트로 돌아가서 드론을 움직였다.
근래에 드론을 이용하니 상당히 편해서 석민은 드론이 마음에 들었다. 이승철을 처리할 때도 드론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와이번들이 물어가진 않을 것입니다.”
아영은 추위로 예상보다 많이 닳은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 후 드론을 작동시켰다.
베르는 아영이 드론을 움직이는 걸 매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영은 드론을 띄우고 거의 거북목 자세로 드론을 움직였다. 위장색을 발랐지만 너무 높은 고도로 날면 괜히 와이번에게 걸려서 낚일 수 있으니 그녀는 최대한 저공비행으로 서울시립대 방향으로 드론을 몰았다.
이미 사전에 길을 파악해두었기 때문에 드론을 움직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태 때 서울시립대는 군에서 기지로 이용한 전적이 있습니다.”
아영이 말했다.
“어느 부대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번 찾아갔던 적이 있어요. 무슨 여단의 전진기지로 기억해요. 왕십리로 진입을 하려고 했는데 사방에서 괴수가 나타나서 제대로 된 교전은 못 벌이고 겨우 후퇴했던 것으로 압니다.’
“군수품이 많을 수 있겠네.”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입구로 보이는 길목을 화면으로 보았다. 거의 다 무너져 있었지만 모레 주머니를 쌓아서 만든 진지와 바리케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군부대가 주둔한 흔적들이었다.
아영은 길을 따라 시립대 캠퍼스로 드론을 몰았다.
성한 건물이 별로 없었다. 교전의 흔적인지 유리창들이 전부 깨져 있었으며 건물 외벽엔 괴수 특유의 발톱 자국으로 가득했고 총탄 자국도 잔뜩 있었다.
또한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한곳에 쌓여 있었다.
“가만, 누가 저렇게 정리를 한 거지?”
“누가 있나 보군요.”
그들은 축구장에 임시로 그려진 헬리콥터 착륙장을 확인한 직후 드론 화면을 주시했다.
이륙을 하다 습격을 받았는지 박살난 헬리콥터 잔해 속해서 백골로 변한 조종사의 시신과 사람의 팔다리뼈가 보였다. 백골에 불탄 흔적이 보이는 것을 봐서 구조를 못 한 듯했다.
그런데 그것 또한 한쪽 구석에 제대로 치워져 있었다.
석민은 캠퍼스의 건물 중에 과학기술관 건물에 주목했다.
건물이 상대적으로 가장 잘 정돈되어 있었고 깨진 유리창은 판자로 막은 흔적까지 보이는 유일한 건물이었다.
“고도를 조금 올려봐.”
석민의 말에 아영은 주의 깊게 드론을 조작했다.
최신형 드론이라 건물 안에 들어가도 전파가 차단되어 조종불능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주의를 할 필요는 있었다.
화면 속에서 그는 건물 안쪽에 빛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전등의 빛이 아닌 누군가 직접 불을 피운 빛이었다.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창문이 다 막혀 있어서 힘들 것 같아요.”
아영은 1층 정문을 통해 들어가 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그곳도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문이 전부 막혀있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최대한 시도를 해봤지만 들어갈 수 없자 결국 그녀는 단념했다.
“배터리가 46퍼센트 남았네요. 일단 귀환하지요.”
드론이 빠져나와 다시 축구장으로 가는 순간, 카메라에 3마리의 드레이크가 들어왔다.
드레이크들은 전부 드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드론을 향해 폴짝거리며 낚아채려고 하면서 쫓아왔다.
“귀환시켜.”
아영이 드론의 고도를 올려 원래 왔던 방향으로 움직이자 드레이크들이 그것을 쫓아 달려들었다.
4발 달린 드레이크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니 은거지로 드론을 불러들이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아영은 반쯤 부서져 기울어져 있던 건물 옥상에 드론을 올렸다.
드레이크들이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으나, 그것들이 외벽이 발톱을 찍기 무섭게 외벽이 박살나면서 그것들은 밑으로 떨어졌다.
단념하게 만들어야 드론의 안전한 귀환이 가능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났는지 모를 감염자들이 나타났다.
숫자는 대충 30명쯤 되는 큰 무리였다.
감염자들은 많이 낡았지만,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일부 사복도 있었으나, 대부분 군복 차림이었다. 날씨와 관계없는 존재라 그런지 외투는 걸치고 있지 않아서 보는 이가 더 추워 보였다.
그것들은 3미터 정도 되는 길이의 창처럼 보이는 물건을 드레이크에게 겨누면서 대형을 갖춰 접근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감염자들에 드레이크들은 앞발을 휘두르고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며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감염자들은 매우 침착하게 움직이며 드레이크들을 압박했다.
드레이크들은 그들이 쥐고 있는 창 같은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이윽고 가장 가까이 있던 감염자가 그것을 드레이크에게 찌르자, 창에서 폭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맞은 자리에서 피와 박살난 비늘이 튀어 올랐다.
드레이크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물러나려고 했다. 그 순간 나머지 감염자들도 드레이크에게 달려들어 창을 찔렀다.
그들이 있는 은거지에도 은은한 폭음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드레이크들에게 감염자들이 달려들어 계속해서 창을 찔렀고, 드레이크들은 절명했다.
드레이크들이 쓰러지자, 감염자들은 달려들어 날카롭게 간 군용대검으로 드레이크들 시체의 배를 갈라서 드래곤하트를 꺼냈다.
그들은 매우 신속했고 드래곤하트를 꺼내는데 3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드래곤하트를 꺼낸 후 감염자들은 드레이크들의 시신을 건물 구석으로 밀어 넣어 깔끔하게 길을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