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61화]
어디선가 괴수의 울음소리가 나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너무나도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석민과 아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개찰구를 뛰어넘고, 주변에 잔뜩 쓰러진 시체들을 밟고 지나가 화장실 쪽으로 움직였다. 아래쪽 계단에서 다리가 많고 묵직한 발소리가 났기에 숨을 만한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빨리 좀 와.”
석민은 허리를 숙이며 간신히 오고 있는 베르에게 재촉을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은 언뜻 보기에도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입구가 좁고 남녀로 갈라진 부분은 더 좁아서 방어에 유용해 보였다. 다만 퇴로도 없었기 때문에 방어선으로 삼기 좋은 곳이라 볼 순 없었다.
그들은 거기서 숨을 죽이고 대기했다.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근처에서 코를 킁킁대는 소리까지 나자 석민은 조용히 총을 준비했다.
그와 동시에 석민이 아영에게 수류탄을 준비하라 수신호를 보내자,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류탄 파우치에서 러시아제 방어용 수류탄 1발을 꺼냈다.
이것은 쓰면 쓸수록 정말 놀라운 놈이었다.
비록 무게가 더 나가지만, 그만큼 파편의 양이 많았고 지연신관과 더불어 충격신관도 장착되어 있었다.
석민은 바닥에 버려져 있던 거울 조각을 하나 집어 들고 모퉁이 너머를 살펴보았다.
나타난 괴수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웠다.
석민의 신호에 아영은 모퉁이에 몸을 내밀어 수류탄을 있는 힘껏 던졌다.
갑자기 등장한 인간의 모습에 괴수 하나가 괴성을 지르려 입을 연 순간, 수류탄이 들어갔다.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굉음과 함께 육편들이 마구 튀었다.
서울 안에서 큰 소리는 좋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긍정적이지 못한 것과 별개로 유쾌하진 않아도 재미난 일이 벌어지자 두 사람은 실실거렸다.
“좋아.”
석민은 혜원에게서 주문했던 특제 드럼탄창을 끼운 SVDK를 가지고 나머지 괴수들을 향해 쏘았다.
총신과 대검이 너무 길어서 움직이는 건 좀 어설펐다.
같은 무리의 파편과 육편 조각을 뒤집어쓰고 당황하고 있던 괴수들이 석민이 쏜 총탄에 맞아 고통에 몸부림쳤다.
5발의 총탄에 맞고 겨우 쓰러진 괴수 한 마리를 타넘으려 하던 또 다른 괴수가 양 앞발에 총탄이 박혀 쓰러졌다.
석민의 눈으로 대충 가늠해 보건데 괴수는 최소 10마리 넘을 것 같았다. 너무 많았다.
그나마 입구가 좁아서 한 번에 1, 2마리 이상 들어오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석민은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괴수들의 선두만 노리고 쏘았고, 죽은 괴수들의 시신이 점점 쌓이면서 통로가 막혔다.
분을 풀지 못한 것들이 죽은 무리의 시신을 발톱으로 잡아 밑으로 끌어내고는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석민은 재민하게 그 부분을 노려 또 방아쇠를 당겼다.
두개골을 노린 총탄이 처음엔 괴수의 표면을 덮은 비늘과 뼈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지만, 두 번째 탄이 머리를 뚫었고 괴수는 단번에 절명했다.
괴수들의 시신으로 입구가 막힌 직후 너머에서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잠깐 시간을 버는 것밖에 안 돼.”
석민이 말했다.
이대로 버티며 이곳에 있는 괴수를 전부 처리할 만큼 군수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버티다가는 끝없이 다른 곳에서 총성을 들은 괴수들이 몰려들 판이다.
더불어 석민과 아영, 베르의 주목적은 왕십리역으로 가는 루트 개척이지, 괴수 처리나 드래곤하트 채취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계속 버티며 군수품을 사용하는 건 낭비였다.
“퇴로를 어떻게든 만들어보지요.”
아영은 화장실 안쪽을 둘러보다가 환풍기가 달린 창을 확인했다.
창을 뜯어내면 그들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올 것이라 판단한 그녀는 창틀을 뜯어내려다가 실패하고는 자신이 가진 총 개머리판으로 유리창을 깼다.
괜히 유리 조각에 베이거나 가방이 찢어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녀는 세심하게 유리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베르가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다.
“잠시 비켜봐라.”
그는 엉거주춤하는 자세로 환풍기를 잡더니 매우 간단하게 뜯어내었다.
단단한 철제 환풍기이고 고정되어 있는 틀과 나사가 삭지도 않았는데, 그의 손가락으로 잡은 부위가 악력에 의해 손가락 모양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구겨졌다.
그것은 스탯을 찍은 그들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좋아, 먼저 넘어가.”
석민이 말했다.
화장실의 위치가 2층이기 때문에 석민은 자신이 가진 밧줄을 아영에게 던져주었다.
석민이 다시 시체들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괴수의 머리를 노리고 사격을 가하는 동안, 아영은 밧줄을 연결하고 가방을 던진 후에 창문 밖으로 몸을 옮겼다.
“제가 나간 직후 따라 나와요.”
그녀는 베르에게 말한 뒤 밧줄을 타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빨리 가!”
석민은 새 탄창을 꺼내며 베르에게 말했다.
“알았다.”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베르가 아영이 보여준 방법대로 나가기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그들에겐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베르에겐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석민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졌다.
총을 쏘고 있는데도 괴수들은 시체들을 치워서 자기들이 돌입할 공간을 만들었고, 석민의 총격을 피해서 입구 모퉁이로 숨는 영악함을 보였다.
“아, 빨리 좀!”
창가에 엉덩이가 낀 채 낑낑거리는 베르의 모습이 보이자 석민은 인상을 쓰며 새로운 탄창을 꺼냈다. 이대로 등을 돌리고 도망갔다가는 제대로 물릴 것 같았다.
‘젠장, 적어도 내 가방은 먼저 맡겼어야 했는데.’
석민은 적잖게 후회를 하며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자, 그는 잠깐 여유가 생기기 무섭게 수류탄을 꺼냈다.
그 순간 괴수들이 있는 곳에서 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뭐지? 라고 중얼거리며 석민은 총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입구 오른편에 있는 괴수를 왼쪽 모퉁이에서 기다란 창 같은 것이 움직이면서 접근하지 못 도록 하는 것을 보았다.
괴수의 발톱이 창을 쳐내고 달려드는 순간, 창끝이 괴수의 턱에 꽂히면서 폭음과 함께 쓰러졌다.
저게 무슨 무기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어쨌든 덕분에 시간을 번 것 같자, 석민은 얼른 창가로 가서 가방을 던져 밖으로 떨어트린 뒤 무기를 짊어지고 창문을 올랐다.
기다란 총검이 창틀에 걸려 그는 낑낑거리면서 간신히 창문을 넘었다.
그리고는 밧줄을 잡아 족히 6미터는 넘어 보이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려고 했는데, 화장실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석민은 좀 더 빠르게 움직였고 거의 떨어지듯이 바닥에 착지했다.
무릎이 그 충격으로 비명을 질러댔으나, 쓰라린 기분을 억누르며 가방을 메고는 건너편 건물에서 손짓을 하는 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위험했어요.”
아영이 말했다.
“엄호할 테니 위층으로.”
그 말에 석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은 통째로 카페로 된 건물이었다.
석민은 2층으로 올라간 후 주변을 경계했다.
베르는 그에게 걸리적거리지 않기 위해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잠시 동안 석민이 주의를 경계하다가 아무런 위협이 없자 아영을 불렀다.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네요.”
아영이 말했다.
“베르, 우리 좀 도와줄 수 있어? 밖에 누가 있는지. 망을 봐줘.”
“알았다.”
그들은 비어버린 탄창을 꺼내고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탄환들로 다시 채웠다.
“위험했어.”
석민은 한숨을 쉬며 드럼탄창의 상태를 확인했다.
“탄환은 얼마나 썼어?”
“2탄창 정도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탄을 많이 챙겼으니깐.”
잠깐 동안 괴수 몇 마리 때문에 탄환을 꽤 많이 썼다. 1주일은 여기에 있을 생각이었는데, 소모율이 너무 높았다.
“최대한 교전을 피해야 했는데, 이거 짜증나게 됐네.”
그는 일단 회기역을 기점으로 은거지를 만드는 것이 어떨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아영은 부정적이었다.
“글쎄요, 다리와 회기는 거리상으로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요. 되도록 청량리이나 그 근방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청량리와 왕십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접근하기까지 여러 시도를 하기에 좋아 보이고, 게다가 청량리가….”
“아니, 아니지.”
석민은 반박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한 명은 추위로, 또 한 명은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제대로 작전을 생각지 못했던 그들은, 몇 번의 교전으로 그나마 정신 차리고 진지해졌다.
“일단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최대한 접근을 해 보자고.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청계천에도 중랑천처럼 다리라든가, 모든 길이 막혀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베르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일부러인지는 몰라도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단지 석민과 아영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아영과 석민이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은 이 천사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적어도 안전해지고 시간이 있다면, 나중에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
혜원은 자신이 주문한 물건들을 전부 확인하고는 수령확인증에 사인을 했다.
“좋아.”
배달원들이 나가고 그녀는 상자 하나를 열어서 안에 든 총기들을 꺼내보았다. 오래된 건 줄 알았지만, 대충 상태를 살펴보니 멀쩡했고 새것처럼 깔끔했다.
만족스럽게 물건들을 확인한 그녀는 소총을 도로 상자에 넣고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1상자에 총기가 무려 10정이나 들어있어 체구가 작은 그녀가 하기에는 조금 힘들었다.
“아.”
그녀는 자연스레 석민을 부르려고 입을 떼다가 다물었다.
지금 여기에는 그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녀는 간신히 그것들을 들어서 창고에 넣었다.
근래에 들어서 석민에게만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고자 했다.
‘쓸데없이 짐이 될 수 없지.’
그 생각이 들자 혜원은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애도 아니고.’
석민의 생각이 떠오르자 혜원은 그가 두고 간 빈토레즈가 생각났다. 그녀는 총기 가방에 든 그것을 꺼냈다.
그를 위해서 정비를 해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뭐야 이거?’
총기를 분해하던 그녀는 인상을 잔뜩 썼다.
그녀는 상태창을 볼 수 없었지만, 상태창을 보았다면, 아마 이런 문구가 나왔을 것이다.
[VSS, Vintorez]
내구도: 65%
품질: 하상
탄약: 9X39mm
러시아제 저격소총, 꽤 오래 사용해서 탄착군이 심하게 벌어졌고 탄매가 심하게 낀 상태라 장전 불량이 벌어질 수 있다.
혜원은 총기를 더 세심하게 분해해서 확인에 들어갔다.
그녀는 이 총을 처음 만져보는 거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기가 너무 오래되고 석민답지 않게 정비를 게을리 했는지 탄매도 많이 껴 있는 데다가, 강선이 너무 닳아서 총기의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