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60화]
그녀는 먼저 올라간 직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철골 전신주에 밧줄을 연결한 직후에 석민에게 던졌고 석민은 그것을 잡아 올랐다.
그것을 본 베르는 답답했다. 자신에게 부탁하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둘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난쟁이들이 올라가는 걸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그들이 다 올라가자 베르는 날개를 활짝 펴 단숨에 올라 착지했다.
석민과 아영은 좌우를 살피며 베르의 얼굴을 주시했다.
“뭔가 있어?”
“없군.”
좋은 소식이었다.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서쪽으로 가면서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매우 찬 공기가 폐를 찌르듯이 아프게 만들었다.
‘이상한데.’
석민은 의아함을 느꼈다. 한 걸음 더 걸을 때마다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단순하게 밖에 체온이 사라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털실을 짜서 만든 방한용 발라크라바를 썼는데도 얼굴에 닿는 바람이 매우 차가웠고 심지어 따가웠다.
추위가 무서울 정도로 그들을 엄습했다.
“괜찮은가?”
베르가 물었다.
“뭐가?”
“추위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 말에 조금 앞에서 걷고 있던 아영이 몸을 돌렸다.
“혹시 이 추위도 주문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설마 몰랐나?”
‘이런 씨.’
석민은 입 밖으로 욕을 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예전부터 그런 말이 있기는 했다.
TV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석민은 과거 학생 시절에 배웠던 대류라던가 고기압이나 저기압이나 단어가 나오는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것을 다 잊어버렸지만, 하여튼 TV에서 MC가 말하길 구름이 사시사철 낀다고 해서 한여름에도 서울과 경기도에 영하권의 날씨가 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하긴 했는데,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서 정말일 줄은 몰랐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울, 경기도의 영향으로 바람이 엄청 분다는 것이다.
그러니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는 건 당연했다.
“너는 추위를 못 느끼나?”
“우리는 상관없다.”
양털로 안감이 되어 있는 양말을 3겹으로 신고 방한화를 썼는데도 발가락에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가 발가락 사이에 얼음을 끼워놓은 느낌이라 석민은 매우 거슬렸다.
아무래도 발가락 사이에 땀이 차서 배로 더 차가워진 게 분명했다.
‘예전에 헌병대 근무 설 때 이랬는데.’
안 좋은 경험까지 떠오르자 그는 더욱 짜증이 났다.
그나마 괴수들이나 감염자들을 만나지 못했기 망정이지 그는 점점 전진하기가 무서워졌다.
마침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망가진 전동차가 나타났다.
“저기를 통해서 걸어가면, 적어도 바람은 막겠지.”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 속도를 올렸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영은 추위 때문인지 말하는데 입을 떨었다.
아무리 훈련받아 체력이 좋고 스탯도 있다지만, 추위를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최대한 추운 기색을 내지 않았다.
비록 추위 때문에 힘이 들더라도 아직 뱃속은 따뜻했고 힘은 들지 않았다. 아침에 먹은 굴림만둣국의 영향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이미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 그녀는 배가 묵직한 기분이었다.
‘나중에 한 번 더 먹고 싶네.’
그러나 그녀의 잡생각은 그리 길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전동차는 유리가 다 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론 석민과 아영이 기대하던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수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은 바로 실망이 되었고, 잔뜩 토라진 그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커브길 너머로 괴수들을 만나기 전까지.
그들의 앞쪽 100미터 지점에서 드레이크 3마리가 둘러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드레이크.”
석민은 작은 목소리로 위험을 알리며 예전 혜원에게서 받은 1미터 길이의 대검을 SVDK에 끼우고 조준했다.
장전을 해놓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전을 위해 장전손잡이를 당긴 순간, 그는 장전손잡이가 단단하게 막혀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길!’
그는 잇몸이 보일 정도로 이를 악물며 장전손잡이를 당기려고 했는데 바로 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지? 설마 총이 얼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너 러시아제 총이잖아!
다른 건 몰라도 니가 그러면 안 되지!
‘노리쇠나 약실에 물이 들어가서 얼어버린 것도 아닌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드레이크 한마리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다른 드레이크들과 다르게 비늘 위에 북극곰마냥 흰털이 잔뜩 달린 것들이었다.
근래 공룡의 시조가 조류라며, 깃털로 뒤덮인 공룡의 모습이 복원되고 있었는데, 그 모습과 흡사했다.
석민은 장전손잡이를 당기려고 힘을 바짝 주었지만 당겨지지 않았다.
나머지 드레이크들도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장전 손잡이가.”
아영도 같은 상황인지 자신의 카빈총을 당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섬뜩한 괴성을 지르며 드레이크 3마리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베르는 그들의 앞으로 걸어 나가 자신이 가진 창을 고쳐 잡고 창끝을 그것들에게 향했다.
“엄호하지.”
석민은 급한 마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장전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베르가 크게 휘두른 창을 피해 드레이크 한 마리가 그대로 석민에게 달려들었다.
이 영악한 짐승은 분위기로 석민이 가진 무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과 덩치가 큰 베르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석민이 상대하기 좋은 먹이라 판단한 것이다.
단숨에 석민을 물어서 저것(베르)을 피해 달아나야지.
괴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였다.
보다 못한 석민은 장전손잡이를 잡은 채로 개머리판을 바닥에 강하게 내리쳤다. 날카롭게 금속이 갈리는 듯 한 소리가 나면서 장전손잡이가 뒤로 당겨졌다.
고개를 든 석민이 장전손잡이를 놓고 아가리를 벌린 드레이크의 입을 노리고 쏘려고 했지만 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장전손잡이가 완전히 전진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빌어먹을!”
그는 욕을 퍼부으며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장전 손잡이를 앞으로 친 후 방아쇠를 당겼다.
드레이크의 아가리가 총검이 닫기 직전에서야 겨우 발사된 9.3mm 탄환에 드레이크의 뒤통수가 작렬탄의 영향으로 폭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석민은 절명한 드레이크의 육중한 신체에 부딪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가슴에 받은 큰 충격에 저도 모르게 숨을 쉬지 못했다.
베르는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기다란 창을 이용해 드레이크가 접근하는 것을 막으며 그대로 찔렀고, 위협을 느낀 드레이크가 뒤로 물러났다.
석민과 같은 방식으로 장전을 마친 아영이 다른 드레이크를 노리고 쏘았다.
흰 털이 잔뜩 달려 있어서 총알이 박히는지 아니면 튕기는지 분간이 안 갔지만, 드레이크가 접근하는 것을 멈추고 몸을 웅크린 채 방어 자세를 취하는 걸 보건데 제대로 먹히진 않는 것 같았다.
몸을 겨우 다시 일으켜 세운 석민은 뒤에 맨 가방을 벗어서 몸을 가볍게 한 직후 아영을 도와 드레이크에게 쏘았다.
지근거리에서 발사된 9.3×64mm 강력한 탄환이 몸에 박히자 드레이크가 낮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다가 갑작스레 뒷발의 힘을 통해 점프하듯 도약해서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그것은 평소처럼 아가리를 벌리는 대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을 휘둘렀고, 석민은 몸을 바짝 낮추어 피했다.
허공을 가르는 앞발톱의 영향으로 착지에 실패한 드레이크는 나뒹굴며 그들의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아영은 새 탄창을 꺼내서 장전한 뒤 그놈을 향해 그대로 쏘았다. 석민도 녀석이 다시 도약할 것 같자, 다리를 노리고 쏘았다.
앞다리 관절에 총탄을 맞은 드레이크의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이면서 등을 보인 채 뻗었다.
그 직후 석민은 척추부분을 노리고 연속해서 3발을 쏘았다.
총탄을 맞은 자리에 피가 퍽 터지면서 나왔다.
2번째 발까지 움찔거리던 괴수가 3번째 총알이 박히자 완전히 멈추었다.
완전히 절명한 것으로 판단한 석민은 바로 베르와 대치 중인 드레이크를 조준해 쐈다.
동료 2마리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드레이크가 총탄에 맞으면서도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그 순간 베르는 날개의 힘을 이용해 길게 도약해서 드레이크의 등을 노리고 창을 찍어 눌렀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드레이크의 등가죽을 뚫고 창이 배 쪽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박혔다. 콘크리트 바닥인데도 창이 깔끔하게 바닥에 박힌 것이 매우 놀라웠다.
몸이 관통당한 드레이크는 마치 산 채로 표본 액자에 박힌 벌레마냥 사지를 아등바등거렸다.
베르는 창을 꽉 잡은 상태에서 석민에게 고개를 돌렸고, 그 시선을 바로 이해한 석민은 총을 들고 가서 드레이크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다.
눈알에 총을 맞은 드레이크가 크게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쓰러졌다.
상황이 종료되고 석민은 빈 탄창을 탄창 파우치에 넣고서 새것을 넣었다.
베르는 창을 뽑아서 크게 휘둘러 피를 흩뿌리는 것으로 창에 묻은 피를 닦았다. 신기하게도 한번 휘두르니 창에 묻은 피가 전부 빠져나왔다.
“괜찮은가요?”
아영이 석민이 벗은 가방을 가지고 오며 물었다. 드레이크와 정면충돌했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난 괜찮아.”
확실히 부딪친 직후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드레이크의 몸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등에 멘 가방 덕분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사격음으로 주변에 괴수들이 몰려들 거야.”
그는 괴수들이 뜯어 먹고 있던 누군가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옷자락을 보건데 이쪽으로 넘어 온 헌터인 것 같았다.
“얼른 이동하지.”
다른 때 같았으면 죽은 드레이크의 드래곤하트를 노려볼 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전으로 몸을 쓰고 흥분해서인지 아까보단 추위를 덜 느꼈다.
그들은 철로를 따라 회기역에 도착했다.
아영이 베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문은….”
“아마 없을 거야.”
석민이 말했다.
“아까 죽은 놈 봤지? 혼자서 돌아다니는 헌터는 없어. 시체가 쓰러진 방향도 보면 동료들이 다 죽고 다리 쪽으로 도망치다가 잡아먹힌 거야.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여길 지났다는 뜻이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석민의 예상은 맞았다.
베르는 주변을 둘러본 직후 아무런 주문이 안 걸려 있다고 말했다.
석민은 계단을 따라 잔뜩 버려진 탄피와 죽은 감염자들의 시체를 보았다. 아마 먼저 지나간 자들이 손을 본 듯했다.
“이대로 철도를 따라 갈 수 있나?”
그의 말에 따라 베르는 움직였고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강력한 주문이 걸려있다.”
그는 전에 보았던 끔찍한 검은 막을 보여주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석민은 애써 고개를 돌렸고, 아영은 새로운 루트를 짜기 위해 휴대폰 어플을 켰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근방에 있는 대로를 따라 청량리역까지 가서 그다음에 용두역, 그리고 왕십리역까지 가면 됩니다. 어플 기준으론 4.5 킬로미터, 1시간 8분 정도 거리인데 넉넉하게 잡아도 4시간이면 도착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