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59화]
그들은 교주에게 연신 굽실거리며 교주의 손등이나, 발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교주의 몸이 미약하게 떨려왔다.
그는 종교적인 카타르시스에 너무나도 만족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러한 모션은 구원받은 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매우 좋은 구도를 보여주었다.
교주는 구원자이자, 선지자로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버림받은 이들을 구원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본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휴대폰을 꺼내서 해당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해당 장면을 찍으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고성능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도대 대원은 인상을 썼지만, 그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역사적인 순간이라 생각했고,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것이 장엄한 구도와 유화채의 색감으로 칠해진 기록화로 남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을 넘다.
석민과 아영은 혜원의 집에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 그 뒤 그녀의 집을 빠져나와 서울로 들어갔다. 경기도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베르가 기다리는데다가, 실마리가 잡힌 이상 자신들의 사명을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혜원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괜찮은 듯 행동했지만, 석민이 보기에 그녀는 자신에게 짐이 될까봐 두려워 억지로 그렇게 보이려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잠을 잘 때마다 악몽을 꾸는 통에 석민은 2시간에 한 번꼴로 깨야만 했고, 아영은 아예 사격장 쪽에다가 라꾸라꾸 침대를 따로 설치해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또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던 성향은 더욱 심해졌다. 이젠 점심을 먹으러 자주 내려가던 중화요리집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석민 또한 대놓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영만 밖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사 왔다.
“물건 납기일을 맞춰야 해서 요즘은 바빠.”
라고 혜원이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석민이 보기엔 그저 그녀의 트라우마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최근엔 종종 석민보고 당구장에 가자고 조르기도 했는데,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석민과 아영이 떠나는 날 혜원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들을 위해 특식을 준비했다.
비록 재료는 아영이 사와야 했지만, 혜원은 그들을 대접할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미리 준비했다.
“이게 다 뭐야?”
석민이 눈앞에 차려진 상에 놀라 물었다.
“뭐긴 뭐야? 밥이지. 너희 오늘 서울 들어간다며.”
그녀가 준비한 요리는 굴림만둣국이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두부, 숙주, 백김치를 섞은 고기완자(굴림만두)를 밀가루와 물에 여러 번 담가 굳힌 후 소 양지머리 고기 덩어리로 우려낸 육수에 넣어 끓인 것이었다.
혜원은 석민과 아영에게 고기완자가 가득 담긴 대접을 권했다.
보기에도 좋으라고 만둣국 위엔 달걀지단에 잘게 썬 파까지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다.
거기에 육수를 냈던 양지머리는 편육으로 얇게 썰어서 식초를 넣은 양념간장과 함께 식탁에 올라 있었다. 심지어 느끼하지 말라고 김치까지 주었다.
육수를 낼 때도 파를 듬뿍 넣었는지 국물이 아주 시원했다.
이런 음식은 사태 이후로 처음 보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다. 게다가 너무 맛있었다.
“많이 했으니까, 많이 먹어.”
그들은 셋이서 겸상을 하며 아침을 즐겼다.
석민은 세 그릇은 너끈히 해치웠고, 아영 또한 두 그릇을 먹을 정도로 크게 포식했다.
음식 하나에 크게 감동을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석민의 마음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얼마나 있을 거야?”
“최대한 길게.”
혜원은 아무런 기색도 없이 편육을 한번에 3점씩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몸 건강히 돌아와.”
“너야말로… 걱정하지 마.”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것만큼, 석민은 자신 때문에 그녀가 휘말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 때문인지 서울에 들어와서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석민은 통 집중하지 못했다. 아영도 슬슬 걱정이 되어 석민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상념에 사로잡히니 평소보다 기민하지 못했는데, 또 이런 날 유독 괴수들이 득실거렸다. 덕분에 평소와 달리 그들이 목표했던 망우역 쪽으로 오는 데까지 거의 8시간 넘게 걸렸다.
“왔구나.”
헤어졌을 때와 같은 자세로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천사, 베르는 그들이 오자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무감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없는 동안 괜찮았어?”
석민의 물음에 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었다. 괴수 무리가 몇 번 지나가긴 했지만, 여기를 발견하진 못하더군.”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도 이 천사는 몸에서 체취가 나지 않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씻지 않았던 것 같은데.
‘축복받은 몸 같으니.’
석민은 눈동자를 위아래로 굴리며 천사의 몸을 훑었다.
그를 비롯한 헌터들은 장기로 서울에 있다가는 몸에서 나는 체취 때문에 괴수들에게 냄새로 걸릴 수 있어서, 되도록 씻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래도 대부분의 괴수들은 개보다도 더 코가 민감하기 때문에 그다지 도움 되지 못했다.
‘그나저나 설마 저 자세로 계속 있던 것은 아니겠지?’
석민은 자신이 챙긴 무장들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그는 SVDK와 최대한 챙길 수 있는 9.3×64mm 탄환을 잔뜩 챙겼고, 여분의 보급품도 챙겼다.
이곳 은거지에 두고 간 것까지 합치면 대략 2주 동안 충분히 활동하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기에 그들은 이번엔 상황에 상관없이 1주일간 서쪽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그 함정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석민은 지도 어플로 길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탄약을 최대한 확보해야 해서 그는 자신의 군장에 탄창파우치를 끼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넣었다. 그 때문에 탄약 무게가 지나치게 나가서 무게중심은 물론이거니와 단단히 결속했는데도 불구하고 파우치가 앞으로 늘어졌다.
아영 또한 평소에 챙기던 T-5000 저격총을 두고 aks-74u소총만 챙겼고, 45발짜리 대용량 탄창만 탄창 파우치에 끼워놓았다.
탄약을 일원화시켜서 최대한 많은 양을 챙길 목적이었다.
탄창만 12개를 챙겼고, 보조 가방엔 포장을 뜯은 여분의 탄약상자까지 들어있어서 무게가 심하게 나갔다.
보통은 스탯 덕분에 웬만한 무게로는 부담도 느끼지 않았지만, 이번엔 대규모 교전까지 예상해 작정하고 준비했던 지라 석민과 아영에게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허리를 숙이는 것조차 조금 아찔할 정도로 척추에서 위험한 신호가 나왔다.
그들은 그나마 무게를 줄이겠다고 방탄헬멧 대신 방한모자를 쓰고, 무릎보호대도 챙기지 않았으며 방탄복도 내려놓았다.
어차피 강추위 때문에 헬멧보다는 방한모자가 필요했고, 두꺼운 의류 덕분에 무릎보호대도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가능하다면 서쪽에서 새로운 은거지를 마련할 것이다.
“출발하죠.”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직후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아영이 말했다. 그때가 오후 3시였고 그나마 가장 따뜻할 때였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매우 심하게 부는지라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이 철로를 걸어서 무너진 다리 쪽으로 갈 때까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리는 그대로네.”
석민이 말했다.
전에 다리 너머로 보았던 감염자들과 괴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말라버린 것인지 얼어버린 것인지 모를 핏자국이 있는 것을 봐선 다른 자들이 여길 넘어가려고 시도한 듯했다.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는 다른 다리들도 무너져 있는 걸 봐서 그들이 없는 동안 다리를 건너려고 시도한 자들이 있었고 다리가 무너진 게 분명했다.
무너진 중랑철교를 따라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려갈 준비를 했다.
“내가 먼저 내려가지.”
석민은 그렇게 말한 직후 미끄럼틀 타듯이 슬라이딩해서 내려갔다.
경사가 별로 심하지 않아서 미리 챙겨놓았던 밧줄을 사용할 필욘 없었다.
두꺼운 방한 바지를 입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마찰열로 그의 엉덩이가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는 착지를 잘못해서 바닥에 굴렀다. 짊어지고 있는 장비의 무게가 너무나도 나가는 통에 벌어진 불상사였다.
낮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그는 일어났다.
“원한다면 들어서 옮겨줄 수 있다.”
어느 틈에 같이 내려온 베르가 말했다.
“저공비행으로 잠깐이라면 드래곤에게 걸리지 않고….”
“사양하지.”
호의로 한 말이었지만, 석민은 차갑게 답한 후 따라 내려와 엉덩방아를 찧은 아영의 손을 잡았다.
이 추위 속에서 그에게 안겨 날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나도 비행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이 상황에 비행했다가는 얼어붙을 거야.”
“하긴, 그렇긴 하지.”
베르는 별로 불쾌해하지 않고 빠르게 납득했다.
경사가 심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군장과 가방의 무게 때문에 중심 잡기가 힘들었다.
너무 무리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강물 위로 무너진 다리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중랑천의 강물은 여전히 시커멓게, 그리고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도강을 시도했었는지 강에 죽은 자의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그런데, 강은 흐름에도 시체는 부표마냥 흐르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무슨 해괴한 경우이지?
그때, 강물 속에 해골과도 같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고 그들과 눈을 마주치자 석민의 초점이 풀리려 했다.
“강을 바라보지 마라.”
베르가 석민의 어깨에 손을 올려 주의를 주자, 초점이 풀려있던 석민의 눈이 돌아왔다.
“강에 걸린 주문이 풀린 게 아니니 자칫 잘못하다간….”
“어떻게 되는데?”
약간 까칠한 석민의 질문에도 베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들처럼 강에 들어가서 혼을 빼앗기겠지.”
“그거 아세요? 방금 석민 씨 두 눈이 풀려있었어요.”
아영이 석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뭐?!”
석민은 놀라 되물었다.
“정말?”
“네, 멍하니 강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홀린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녀까지 그렇게 말하니, 석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안하게 되었네.”
“괜찮다.”
베르는 괘념치 않았다.
그들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베르는 아까 전부터 석민의 반응이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같이 걸으면서 석민을 살피더니, 곧 입을 열었다.
“너희한테서 안 좋은 감정이 느껴진다.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있긴 있었어.”
석민이 말했다.
“그런데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네. 너무 사적인 것이라… 말하기 싫어.”
“알겠다.”
앞장서서 걷던 아영이 철교 경사면의 난간을 붙잡아서 올라갔다.
“먼저 올라가지요.”
이쪽 방면은 경사가 심해서 단순히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간이 단단하게 고정된 덕분에 그들이 팔로 잡고 올라가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