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58화]
“그 천사는 다른 감염자들처럼 죽어서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진흙으로 뭉친 것 마냥 감염된 사람과 붙은 채로 피부가 바짝 마른 미라의 모습으로….”
“허튼소리.”
대답하는 백은호의 목소리가 많이 떨려왔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 박재만은 말없이 슬그머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영적인 존재인 천사가 현실에 강림할 땐 육체를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이 감염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나 저는 보았습니다. 그게 선재를 공격했고 선재는 죽었습니다.”
박선우가 말했다.
백은 호는 그가 단언하듯이 확고하게 말하자 교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진실인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재만은 수술실 문을 닫았다.
“누구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겠습니까?”
“너는 적에게 속은 것이다.”
“아닙니다, 교주님. 저는 보았습니다. 심지어 적, 최석민과 함께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아니, 아니다.”
백은호의 대답은 억지에 가까웠다. 그는 지금 눈앞에 들리는 현실을 애써 부정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날개를 가진 분들이다. 주께서 보내신 전령이란 말이다. 우리들을 위해….”
“진짜로 그들이 거짓된 전령이면 어찌합니까? 교주님. 천사가 아니라 천사라고 속이는 것들이라면….”
백은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은호는 절대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믿음은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감염되고 죽어버린 육신과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믿음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것이었다.
“가련한 아이야, 너에게 의심의 안개가 끼었구나.”
가장 신성한 진리이자, 믿음의 근간이 위협받았다.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본 것입니다. 교주님, 저는 그것 때문에 그동안….”
백은호는 박선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은 그가 듣고 싶어 했던 정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거짓으로 기반 된 악마의 유혹이자 간교한 음성이었다.
“사탄아 물러나라.”
엄숙한 목소리가 나왔다.
“교주님?”
교주가 박선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행동은 천사들이 그에게 준 권능의 힘을 발휘하는 듯 보였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진 않았다.
“사탄아 물러나라.”
“교주님, 저는.”
수술실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었다.
교주의 붕대 감은 차가운 손에 내려가더니 이윽고 박선우의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히고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진 박선우가 몸부림 쳤다.
“사탄아 물러나라.”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엄한 시선으로 박선우를 노려보며 교주가 말했다.
빈사 상태에서 교주의 권능으로 정신만 차린 박선우였기에 그의 저항은 부질없었다.
박선우는 허공을 응시했고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움직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몇 분 동안 발버둥 쳤으나, 숨을 3번도 채 내쉬지 못하고는 영원히 멈춰버렸다.
삐- 하는 소리가 심장박동 기계에서 들려왔다.
박선우의 몸에서 손을 뗀 교주는 자신의 품속에서 빛을 받은 루비마냥 반짝이는 혈액 주머니를 꺼냈다. 천사들이 그에게 준 깃털을 축성해서 만든 성혈이었다.
원래 이것은 감염된 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내 너에게 성혈을 베풀리라.”
교주는 그렇게 말하며 그것을 직접 연결했다. 혈액 주머니가 링거처럼 걸렸다.
죽은 박선우의 몸에 바늘을 연결하는 그의 손이 떨리고 조급했다. 지독한 부정을 당한 것에 대한 반박마냥 그는 급히 행동했다.
“무슨 일입니까?”
박재만이 급히 수술실을 나왔기에 교단 연구원들이 궁금함에 물었다.
“나도 몰라.”
박재만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애써 방금 들은 것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애초에 그는 신앙심이 깊지 않았지만 천사가 강림해서 계시를 받은 이후로는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것과 교주의 행동과 답변은 그에게 의심을 생기게 만들었다.
‘그냥, 불신에 찬 불신자의 뱀 혓바닥인 거야.’
그는 애써 이 사실을 덮었다.
궁금증이 생긴 연구원 몇몇이 용기를 내어 수술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어깨 너머로 박재만은 백은호가 기도를 읊고 있는 모습과 성혈이 박선우와 연결된 것을 보았다.
연구원 몇몇이 들어간 직후 문이 닫히자, 그는 뒷걸음질 치며 수술실에서 조금 떨어졌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 연구원들이 조심스럽게 교주에게 접근했다.
“교주님?”
그는 심장박동 기계가 계속 삐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교주가 죽은 박선우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교주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기도를 읊을 뿐이었다.
그 순간 기적이 펼쳐졌다. 삐 소리를 내던 기계에서 다시금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소리는 매우 일정했다.
“오오.”
근래에 자주 기적을 목도하는지라 그들은 다시금 무릎을 꿇고 찬송의 기도를 했다.
“감사합니다.”
“성도여.”
백은호가 말했다.
“일어나라.”
갑작스럽게 눈을 뜬 박선우의 눈은 흰자위는 온데간데없고 검은 눈동자로 가득했다.
그 직후 수술실에서 소란이 일어나더니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주님?!”
연구실 안에 있던 사도대 대원 하나가 급히 무기를 고쳐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 타일이 피로 인해 너무 미끄러워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수술실 안에서 벌어진 참상에 놀란 연구원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물러나라!”
백은호가 소리쳤다.
“너희는 감당 못 한다!”
일갈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환희가 묻어나왔다.
“아아!”
안으로 들어온 사도대 대원은 얼른 수술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리고 기어서 나가려고 했지만 짐승과도 같은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이 낚여 도로 끌려들어 갔다.
“우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수술실 문 아래로 새로운 피가 흘러나왔다.
연구원들은 각자 살기 위해 몸을 뒤로 뺐다.
“…너는 나의 영을 따르라!”
백은호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굴복하는지 짐승의 울부짖음은 줄어들더니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났다.
사태가 진정되는 듯했다.
“그래, 잠들거라.”
대략 20분의 시간이 지난 뒤, 핏자국으로 가득한 흰옷 차림으로 백은호가 밖으로 나왔다.
박재만은 지금 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교주는 검붉은 피가 묻은 가면을 쓴 채 연구원들을 둘러보았다.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이제 행하라. 그는 진정을 되찾았다.”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연구원들의 얼굴이 호기심과 환희로 변해갔다. 그들은 슬금슬금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주님?”
박재만이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박선우 성도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교주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지나쳤다.
그가 지나가기 무섭게 진한 피 냄새가 풍겼다.
수술실 안에서 미약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저러는지 박재만은 알고 싶지 않았다.
‘미친놈들 같으니.’
근래에 교주가 다녀간 직후 활기가 생겼다는 것 말고는 그는 저들을 잘 알지 못했다.
최근에 중상이나 빈사를 당한 교인들이 있으면 그들을 위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니 유사시에 연구소로 보내달라는 공문만 받았다.
그는 설마, 설마 하기는 했지만 저런 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너도 다 듣지 않았는가?”
교주의 말에 박재만은 숨을 헉하고 마셨다.
그의 머리가 아니라 대답해야 한다고 빨간 경고등을 울렸으나,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입막음으로 끌려갈 것 같아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들었습니다만, 저는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안다.”
백은호의 말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렇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말하지 말거라.”
아마 모른다 하거나 그의 말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으면 박선우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재만은 진땀을 흘리며 교주에게 머리를 숙였다.
“내일 교구장들을 불러 모아라. 무기는 이제 충분해진 것 같으니 분배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재만은 앵무새마냥 조아렸다.
“그렇지만, 적은 이제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는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구나.”
그렇게 말하는 교구장의 목소리에서 미약한 슬픔이 나왔다.
“박선우 성도의 말을 들어 종합해볼 때, 그자에게 배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간파했다. 그것은 바로 현 정부다. 정부가 그들의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분명하다.”
무슨 근거로? 그는 되물을 뻔했지만 지금 누구 앞에 있는데,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아 입을 닫았다.
교주는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으로 석민의 실력과 장비를 보건데 정부가 뒤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따로 박재만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면 어찌하겠습니까?”
“내버려 두어라.”
“예?”
“성전이 시작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처리하겠다. 여태껏 그자가 성전 중에 방해하지 못 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 또한 운명이자 시험일 터.”
뭔 소리지? 그럼 뭐야? 여태껏 한 게 헛짓거리란 건가?
대충 운명이라고 넘어갈 생각인가?
‘이런 식으로 그냥 넘어가겠다는 건가?’
박재만은 여러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당장 입 다물고 있었다.
수술실 안을 본 그 끔찍한 장면을 생각해 보건데, 지금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간 그 또한 그 꼴이 날 게 뻔했다.
그의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교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지막 무기 구매는 어찌 되었지?”
“1주일 안이 끝납니다.”
1주일 뒤에 혜원이 약속한 나머지 물량을 수령할 예정이었다.
“그것 말고도 탄약구입은 2주 뒤쯤에 마지막 수령이 끝납니다.”
“3주 뒤에 성전을 시작하겠다.”
“예?”
‘성전!’
박재만의 머릿속이 크게 울리는 기분이었다.
‘성전을 진짜로?’
맨날 그날이 임박했다고만 듣다가 이제 구체적인 계획을 듣게 되니 그는 막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경기도에서 활동을 모두 일시적으로 종료한다. 정부가 뒤에 있는 것을 안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구나.”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박재만을 일으켜 세웠다.
“돌아가라. 돌아가서 교구장들에게 모임이 있음을 말하고, 내가 말한 것은 모두 함구하라.”
“네, 알겠습니다.”
박재만이 물러난 직후 백은호에게 사도대 대원이 찾아왔다.
“교주님, 구원받은 자들이 교주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런가?”
대답하는 교주의 목소리에서 환희가 가득했다.
보고를 하는 사도대 대원 또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동료가 죽었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알았다.”
“저쪽입니다.”
백은호는 실험실을 빠져나와 거주공간으로 개조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오자 5명의 남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환자들이 입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피부색이 마치 감염자들처럼 회색에 전부 대머리였으나, 이성과 과거 기억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일어나십시오.”
백은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