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57화]
“혜원이의 말이 맞아. 일단 혜원이네 가게로.”
“우리 집으로.”
“그래, 집으로.”
혜원이 정정을 하자, 석민은 머쓱함에 뒷머리를 긁었다. 아직은 이런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가게 안쪽은 밖에서 볼 수 없으니까, 혹여 그놈들이 찾아오더라도 안쪽을 살피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미안하게 되었네.”
석민의 말에 아영이 물었다.
“뭐가요?”
“우리 옷 상태가 이렇다 보니 네 차 시트를 엄청 더럽히겠어.”
아영이 자신의 차를 매우 아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아영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지요.”
“그치?”
세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며 주차된 차량으로 걸었다.
생각보다 일은 잘 풀렸고, 혜원 또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석민은 안심할 수 있었다.
***
“왜 전화를 안 받아!? 이 씹새끼야!”
이승철이 차디찬 얼음물 속에 가라앉은 줄도 모른 채 박재만은 1시간 넘게 전화기를 붙들었으나 소득이 없자, 이성을 잃은 그는 결국 분노에 찬 음성사서함을 남겼다.
그의 괴성에 주변 경비를 서던 사도대 대원들이 놀라 박재만이 있는 휴게실로 오거나 주변 상황을 살피는 등 우왕좌왕했다.
교단에서 운영하는 이 엄숙하고 비밀스러운 연구소에서 이렇게 큰 괴성이 난 것은, 이 연구소가 세워진 이래 처음이었다.
현재 박재만은 열이 받아 장소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에게 주요한 거래 상대인 혜원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것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히도 혜원과 석민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건 이승철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 혜원에게 으름장을 놓았단 사실뿐이었다.
이승철과의 관계는 자신이 필요할 때 뒤처리를 위해 구축한 관계는 맞지만, 자신과 교단의 이름을 이용해 되도 않는 짓거리를 하란 소린 아니었다.
“너 이 새끼, 좀 하는 줄 알았더니, 미행 놓치고 그거 만회하겠다고 내 이름 팔아서 내 거래처를 핍박해?! 표적은 어떻게 되었어? 이 새끼야! 네 방식대로 하는 게 도대체 뭔데? 계약 취소야! 취소!”
“교구장님, 이곳에서 이러시면….”
“씨발, 상관없어!”
분노로 박재만의 눈이 번들거리자 사도대 대원은 더 말도 못 붙이고 돌아갔다.
“너, 시발, 경기도 바닥 좁은 거 알지? 다시는 의뢰 같은 거 못 받고 살게 해줄 테다! 길 가다가 내 눈에 뛰기만 해봐! 네놈의 머리통을 직접 날려버리겠어! 이거 빈말 아니야! 알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애꿎은 휴대전화를 또 던져버렸다. 이번엔 휴대전화에 커버를 씌운 덕분에 박살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박재만을 분노케 하는 건, 이승철은 상대방의 발신이 조금만 늦어도 짜증을 내면서, 정작 본인은 1시간 넘게 자신의 전화나 문자를 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 하나 똑바로 못하고 잠적한 것이 분명해. 빌어먹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안 좋았나? 뭐 이딴 쓰레기가 다 있지?’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씩씩거리면서 휴대폰을 다시 주웠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언제 왔는지 교주 백은호가 와 있었다.
백은호가 뒤에 있자, 시뻘게져 있던 박재만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더니 얼른 무릎을 꿇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교주님!”
수없이 압박을 가하던 교주에게 실패를 들켰으니,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박재만은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크게 떨었다.
그는 여태까지 교단을 위해 어떻게 헌신해 왔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교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용서하지.”
엥? 그렇게 간단하게?
그렇게 살해 협박을 할 때는 언제고?
박재만은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교주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도로 아래로 시선을 두었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 일이 그대한테 어울리는 일이 아닌데도 그대한테 맡기고 또 다른 과업을 주었으니, 그대가 짊어진 게 너무 많았지. 이는 내 잘못이기도 하다.”
교주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숨을 내쉴 때 쉭쉭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적이 너무 강하군. 겨우 2명인데…. 게다가 영리하고. 나중에야 깨닫고 그대의 짐을 덜어주고, 박선우 성도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너무 늦은 것이지.”
“좋게 봐주시니 저로서는….”
“그만.”
교주의 말에 박재만은 입을 다물었다.
단호하게 끊는 목소리에서 박재만에 대한 분노가 아주 풀린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그대의 무능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 말에 박재만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대를 오늘 부른 것은 박선우 성도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다. 실험실로 들어가지.”
교주인 그를 제외하면 그 어느 누구도 거기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박재만은 교주의 말인데도 바로 들어가길 주저했다.
“제가, 들어가도 되는 것입니까?”
“들어가지. 박선우 성도가 거기에 있으니까.”
교주의 시선을 의식한 사도대의 대원이 문을 열었다. 교주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박재만이 얼른 뒤따랐다.
“박선우 성도와 같이 일했던 그자가 적인 것을 알았을 때, 제대로 된 정보를 듣지 않고 무작정 공격을 준비한 그대의 안일함이 이렇게 된 것이다.”
그 말에 박재만은 똥 씹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 다른 자들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바꿨다.
“게다가 너무 노골적으로 적을 떠보는 바람에 적이 눈치채고 대비를 하게 만들었다.”
‘그래, 너 잘났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는 결국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실은 최첨단 기기장비로 훌륭하게 갖춰져 있었다. 실험 목적이긴 하나 수술실 또한 가지고 있어서, 박선우는 옮겨지자마자 높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비록 빈사 상태에 정신도 못 차리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실험실에는 따로 병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수술실에 있었다.
“박선우 성도를 만나겠다. 나는 그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박선우는 화마 속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어서 폐가 크게 손상되었기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교주와 교구장이 안으로 들어오자 실험실에 있던 연구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알고 있다.”
교주는 그리 말하며 직접 수술실로 거동했다.
박재만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밤중에 보았을 때보다 더 끔찍한 그의 몸 상태에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겨우 숨만 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을 따라 들어온 연구원이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대로… 소생하는 것은….”
그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딱히 박선우를 살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그를 살리지 못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 두려워할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교주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교주는 천천히 걸어가 박선우의 이마에 붕대로 감은 손을 올렸다.
가면 속 교주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성도여, 일어나라.”
그리고 눈앞에서 기적이 펼쳐졌다.
당장 일어나기 힘들어 보였던 박선우가 교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뜬 것이다.
상처가 눈에 보이도록 치유된다 거나하진 않았지만, 그는 눈을 떴다.
“오오!”
박선우가 눈을 뜨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낮게 탄성을 질렀다.
“박선우 성도, 내 말이 들리는가?”
“네…. 들립니다. 교주님.”
박선우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목이 막히는지, 그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다가 기침을 했다.
교주가 눈짓을 했고 그것을 본 연구원들이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그대와 적이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맞는가?”
“맞습니다.”
박선우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을 다 말하게. 전부 다.”
“…알겠습니다.”
박선우는 낮은 기침과 가래, 그리고 아직 낫지도 않아서 손상 입은 폐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했는데, 교주는 계속 그에게 재촉을 했다.
그것을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했겠지만, 백은호와 박재만은 그저 재촉만 할 뿐이었다.
“원래 출신이 일개 킬러 따위란 말인가?”
“곧이곧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백은호의 말에 박재만이 조언했다.
“자기 이름도 거짓으로 말하는데 그의 말이 전부 진실일 리 만무합니까?”
“아뇨, 그자는 전부 말하지 않았을 뿐, 진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박선우가 말했다.
“어째서인가?”
빈사의 박선우에게 반박을 당해서 그런가 질문을 하는 박재만의 목소리에서 불쾌함이 감춰지지 않았다.
“그자는 우리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기 사연을 비롯해서 경험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접근 및 잠입을 위해 지어낸 생각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 상상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자기 신분이 들통나지 않는 선에서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딴 것은 백은호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 들은 것을 이야기하게.”
“혼절하던 중에 그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저의 믿음이 거짓을 기반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무엄하다.”
박재만의 말에 백은호는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제지했다.
“그런 말도 했었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사명이 바로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라고 했습니다.”
“공신력이 있는 말인가?”
박재만이 물었다.
“다 죽어가는 제게 마치 고해성사 하듯이 그가 말해 준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계속하게.”
백은호가 말했다.
“그자가 하는 말이, 우리에게 계시를 내려주시는 천사는 천사가 아니라 천사를 가장한 이계인이라고….”
“교주님, 이 이상 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박재만이 말했지만, 백은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와 미신을 이용해서 이곳을 침략하려는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백은호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 덕분에 기적을 펼칠 수 있다고 여겼고, 또 신도들 앞에서 기적을 행했다.
“적이 너의 믿음을 흔들려고 한 술책이다.”
교주의 말에 박선우는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주는 허리를 숙여 박선우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눈을 빤히 응시했다.
“네가 믿음을 잃은 게 보이구나, 아이야.”
가면 속 그의 눈동자는 믿음과 자애로움으로 가득했다.
“아, 교주님.”
박선우는 낮게 흐느꼈다.
“실은 제가 교주님께 숨긴 것이 있습니다.”
“그래, 말하거라. 나는 너를 용서할 것이다.”
교주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 네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보았었습니다.”
박선우는 흐느끼느냐고 제대로 말을 못 했다.
“그래, 무엇을 말인가?”
“죽은 천사를 보았습니다.”
“음?”
그의 말에 드디어 백은호에게서도 이상한 기류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