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56화 (156/226)

[게이트 오브 서울 156화]

뒷정리

석민은 근방에 있던 철망형 울타리를 잡아서 뜯었다.

철망을 고정하던 볼트와 너트들이 대부분 없어진 데다, 철망 자체도 녹이 잔뜩 슬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스탯 덕분인진 몰라도 석민은 그것을 매우 쉽게 뜯어낼 수 있었다.

족히 2미터쯤 되는 철망을 뜯어낸 석민은 차갑게 굳어가고 있는 이승철의 시신을 철망으로 감았다. 무게를 더하기 위해 그자의 무기들도 발로 대충 끌어서 같이 엮었다.

평소라면 무기를 거둬서 팔았겠지만, 이 역겨운 놈의 무기를 들어서 알림창에 뜰 단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에 있었던 22구경짜리 권총이 생각나자 그는 저도 모르게 경기를 일으켰다.

석민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로 이승철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잠금이 된 스마트폰이었다.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자의 군장과 허리띠를 떼어내서 감싼 철망에 묶어 고정한 직후 그는 이승철의 시신을 어깨에 멘 채 옮겼다.

이 자의 시신을 이 들판에 버리고 싶었지만, 예전처럼 시신을 남겨두면 그들을 추적하는 세력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단서만 제공하는 게 될 터였다.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이 꼴을 당했으니까, 이번엔 철저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석민은 그대로 아영과 혜원에게 갔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혜원은 상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아영은 그 옆에서 물티슈를 꺼내 혜원에게 넘겨주었다.

혜원은 건네받은 물티슈로 자신의 몸에 묻은 피들을 닦아내었다.

‘의외로 차분하네.’

석민은 그녀가 비명을 질렀을 때 미치거나, 혹은 PTSD가 재발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던 거 같았다.

아니 정확하게 그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혜원은 기력이 쇠한 나머지 아무것도 못 한 것이었다.

혜원이 거의 영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자, 석민은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떻게 처리하시려고요? 그냥 여기에다 버리면 개들이나 새들이 먹지 않을까요?”

아영이 물었다.

“아예 찾을 수 없게 만들어야지. 철저하게 말이야. 교단 놈들은 생각보다 추격을 잘하는 것 같으니까.”

그는 이승철의 시신을 가지고 강가로 가 얼음을 깨트렸다. 날씨에 비해 깊게 얼지 않아서 돌과 총으로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물속에 버린다고 못 찾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콘크리트로 굳혀서 버려도 나중에 떠오른다고 들었는데. 예전에 보았던 범죄 영화에선 드럼통에 콘크리트를 붇기 전에 입을 통해 사람 안에다가 콘크리트를 붓던데.”

그 말에 석민은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었다.

“예전에나 그렇게 했지, 요즘은 그렇게 안 해.”

예전이라고? 아영도 석민의 대답을 듣고 웃었다.

“얼음도 있고, 물속에 고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철망으로 감아두면 철망 무게 덕분에 시체가 썩어서 떠오르지 않은 채로 물고기들이 뜯어 먹을 테니, 물속을 일부러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서야 찾을 수 없을 거야.”

그 말에 아영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죠?”

석민은 대답하지 않고서 그대로 이승철의 시체를 던졌다.

그는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손으로 강물을 떠서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었다.

어디선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시체 냄새를 맡고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예?”

“안 알려 줄 거야.”

석민은 아영이 내미는 물티슈로 젖은 손과 얼굴을 최대한 닦아낸 후 도로 장갑을 꼈다.

아영은 석민이 예전에 했던 일로 시체를 처리했을 때 이와 같은 방식을 썼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만 해도 매우 오싹했다.

아마 이런 것을 매우 익숙하게 여기는 석민은 농사짓는 농부마냥 부지런하게 잘 처리할 것이다.

지금처럼.

‘어쩔 땐 전우 같으면서, 또 지금 같은 걸 보면….’

그녀는 석민과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을 알고 그를 이해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면을 볼 땐 어쩔 수 없이 불편해졌다.

그녀는 화젯거리를 돌리기 위해 다른 문제를 꺼냈다.

“혜원 씨는 어쩌지요? 석민 씨와 혜원 씨의 관계를 아무래도 교단 놈들에게 들킨 것 같은데.”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나 아영이야 이런 일에 이골이 났지만, 혜원은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석민에게 혜원은 겁이 많은 여자였다.

안 좋은 경험이 추가됐으니,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 그는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면 혜원을 우리가 있는 안전가옥으로….”

“아니.”

혜원이었다.

“난 어디에도 안 가.”

언제 왔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정신을 차렸는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교단 놈들은 너와 내 관계를 몰라.”

그녀가 말했다.

“이승철은 단순하게 교단 놈들에게 고용된 거잖아. 날 납치해서 널 끌어내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예전에 널 고용해서 같이 있었던 걸 이승철이 보았지.”

“그리고 성남교구장 박재만도 보았었잖아.”

석민이 반박했다.

더구나 그때는 두 사람이 사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놈은 우리 관계를 몰라.”

단호하고 확신에 찬 혜원의 대답에 석민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내기해도 좋아. 그걸 그 돼지새끼가 알고 있었다면 진즉에 내게 찾아왔을 거야. 놈은 몰라. 얼마 전에도 나한테 대량으로 무기구입 계약을 맺기도 했어. 내 휴대폰 가지고 있어?”

그에 석민이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휴대폰을 건네기 주저하자, 혜원은 약간 언성을 높였다.

“어서 줘.”

혜원이 낚아채듯 휴대폰을 잡아당기자, 석민이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약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아, 달라고.”

짜증으로 가득하고 언성이 높아지자 석민은 살짝 움찔했다.

“너, 괜찮은 거야?”

석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

약간 무심한 대답 직후 그녀는 힘으로 낚아채듯이 빼앗아서 전화번호를 찍은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착신음이 들린 직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혜원은 평소와도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난데.”

혜원은 의도적으로 휴대폰의 통화내용을 석민과 아영이 들을 수 있게 스피커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웬일이지?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하다니.

전화를 받은 박재만은 매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엔 혜원이 먼저 연락한 적 없었고, 또 전화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재만의 목소리를 들은 석민은 숨을 들이마신 채 멈췄고, 그것을 지켜본 아영은 통화 상대가 박재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항의를 하고 싶어졌지만, 통화 중이기 때문에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이승철한테 무슨 의뢰 줬냐?”

-음? 그걸 어떻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자식이 찾아와서 내 고객을 찾는다고 사업장 찾아와서 고객정보를 달라고 지랄 발광하던데? 게다가 나한테 협박까지 하고. 니네 교단이 자기 뒤에 있다는 뉘앙스로 말이지.”

그 말에 대경실색한 석민과 아영은 입을 딱 벌리며 그녀를 보았다.

-뭐, 뭣?

대답하는 목소리가 엄청 당황한 눈치였고 혜원은 의기양양하게 두 눈썹이 떠졌다.

“우수고객이라서 이번 한 번은 넘어가겠는데 또 나한테 이딴 개짓거리하면 나머지 무기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지.”

-지금 거기에 이승철이 있나?

정중했으나 그 목소리 속에 억누른 분노가 서린 것이 느껴졌다.

“아니, 그 새끼 몇 시간 전에 갔어.”

-그렇군, 잘 알겠어.

“그리고, 내 고객 명단에는 이름과 얼굴은 있어도 다른 개인정보 없어. 난 무기를 파는 사람이지, 그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군. 다음에 또 네놈들 문제로 나한테 괜한 불똥이 튀면… 두 번 다시 전화하는 일 없게 만들어주지.”

상당히 도발적인 경고였지만, 박재만은 혜원과의 거래가 틀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점은 사과하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어.

“그리고 또 그 자식을 찾는다고 우리 가게에 사람 붙이면….”

박재만은 당황한 듯 얼른 그녀의 말을 잘랐다.

-물론 당연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보증하지.

“좋아.”

혜원은 통화를 끝냈다.

통화가 끝난 직후 주변에 있던 자들이 숨을 겨우 내쉬었다.

“쫄보들도 아니고…. 하여튼, 봤지? 난 이제 안전해.”

“너도 참….”

석민은 그녀의 대담함에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까지 오들오들 떨고 연약해 보였던 가련한 여인 대신 여장부가 눈앞에 보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재만은 너와 이승철이 붙었던 그때를 강렬하게 기억해서 이승철을 고용한 거지, 우리 사이의 관계는 전혀 몰라. 그 자식을 몇 번 보지 못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어.”

지금 이렇게 말하는 혜원의 태도는 아까 봤던 나약한 모습을 완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난 겁쟁이가 아니고 나약하지도 않아.”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마치 석민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듯했고 석민도 뜨끔했다.

“원래 같았으면, 너한테 이런 민폐를 끼치지도 않았겠지.”

“그렇지만 박재만이 진짜로 우리 생각대로 행동을 할까요?”

아영이 말했다.

“석민 씨가 혜원 씨의 고객이란 것은 알 텐데요.”

“지금 나와 척을 지게 된다면, 박재만이 주문한 대량의 군수품은 사라지는 거야. 이미 선금을 받았고 물건을 준비 중이니까 적어도 모든 무기를 받을 때까진 내 말을 따를 거야. 게다가 그 자식은 수전노야. 무기 조달에 안달 났고. 경기도에서 나만큼 안전하고 대량으로 무기를 확보하는 무기상은 몇 없어.”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아영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

그때 석민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승철의 휴대폰이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서 물끄러미 보다가 발신자를 그들에게 보여주고는 그대로 강물에 빠트렸다.

“이것으로 증명된 것 같네.”

발신으로 밝게 빛나는 휴대폰이 어두운 강물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가자, 여기에 더 이상 있긴 싫어.”

그녀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오물 냄새에 인상을 썼다.

“우리 가게로 가자. 거기서 오늘 같이 저녁이나 먹자.”

어느새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혜원의 작은 체구가 추위에 몸을 떨었다.

“여기서 우리의 안전가옥이 더 가깝습니다. 일단 거기에 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혜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면 안 돼요. 박재만, 일단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놈이 의심을 한다면 분명 내 가게에 사람을 보낼 거예요. 가게가 정상적으로 열려있는 모습을 보여야 의심이 사라질 겁니다. 난 얼른 가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혜원의 말에 두 사람은 잠깐 고민하더니 일리가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이승철의 캠코더와 카메라도 강물에 버리고 손을 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