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55화 (15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55화]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야.’

이승철은 자신의 계획이 모두 틀어졌는데도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은 아까처럼 광기에 가득 찬 얼굴은 아니었다.

병신 짓은 여기까지 해야 했다.

그는 석민이 처음 보았던 진지한 표정으로 스코프를 통해 주변을 살폈다.

‘역시 프로긴 프로구나, 석민아.’

죽은 개들과 폭발에 의해 터져나간 고깃조각. 웅덩이처럼 고인 개들의 피.

개들의 배를 왜 갈랐지?

그러나 곧 그 의도를 간파했다.

고깃덩어리들과 피가 주변에 흩뿌려져, 잿빛과 흙빛이 가득한 곳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덧입혔다. 덕분에 이승철의 눈이 어지러워졌다.

‘찾기 힘들게 만들었네.’

하지만, 그는 숨을 죽이며 삼각대의 높이를 조절했다.

그는 완벽히 그늘진 곳에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정조준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승철은 석민이 반드시 여길 노릴 거라 판단했다.

아까 눈 마주친 기분이 든 것도 그렇고 누구든 이 건물에 자신이 있을 거라 추론할 수 있을 것이고, 사실 이는 이승철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가끔 발악하는 놈들을 쏘거나, 숨어서 저격하려는 놈을 제압하는 것도 즐겼기 때문이다.

그의 옷은 매우 두터웠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

석민은 바지 밑단이 깊게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있는 곳이 저지대여서 죽은 개들에게서 나온 피와 오물이 고이고 흘러서 그가 있는 쪽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인데 피가 고이자마자 순식간에 얼어가는 차가운 감각에 석민은 한기를 느꼈다.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엄폐물로 쌓은 들개들의 시신도 굳으면서 진짜 단단한 벽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며 기다렸다.

시야를 확대할 수 없었다. 지금 정조준 상태이기 때문에 확대를 해봤자 가늠쇠, 가늠자에 가려질 뿐이었다.

시야를 확대하기 위해 총을 살짝 내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자신의 움직임은 감지될 것이고, 그러면 반격이고 뭐고, 자신이 죽게 될 것이다.

지금은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그는 코에서 나오는 더운 김으로 들킬까봐 조심조심 숨을 내쉬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내장을 비롯한 온갖 냄새에 코가 썩어들어갈 지경이었다.

석민의 코가 조금씩 빨개져 갔다. 추위에 의한 빨개짐은 아니었다.

‘이런. 이런.’

석민이 집중하건 말건 아영은 드론을 움직였다.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은 군용드론이지만, 이렇게 정적만 감돌고 있으니 프로펠러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해서, 아영은 불안해하며 준비에 들어갔다.

방법은 간단했다.

드론을 건물 안으로 넣은 뒤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격발기를 누르면 끝이었다.

격발기는 이미 안전핀이 뽑혀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매우 신중하게 드론을 몰았다.

드론은 이전에도 몇 번이나 조종해봤다. 심지어 드래곤을 속일 때도 써봤기 때문에 실력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녀는 왜 석민이 대답도 안 하고 총으로 녀석을 잡으려고 하는지 이해는 갔다.

‘뭐, 그래도 결국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이지.’

지금 두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저격수로서 활동을 많이 했던 그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은 누가 먼저 움직이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그녀가 현 상황을 판단해 보건데 석민에게 매우 불리했다.

석민은 저지대에 이승철은 고지대에 있었고, 석민이 오물들을 이용해 시야를 어지럽혔다고는 하나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이승철에게 걸릴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위치가 드러나 있단 점에서 이승철도 좋진 않았다.

그래도 석민의 시야를 가리며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는 사격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아영은 드론을 하강시켰다.

그녀의 계획은 드론을 최대한 높게 띄워서 프로펠러 소리가 나지 앉게 한 다음, 이승철이 있는 건물 천장에 강하시켜 그대로 격발할 생각이었다.

이승철이 있는 건물은 사람이 사는 건물이 아니라 동물들이 살던 축사나 창고에 가까운 건물이라, 석면슬레이트로만 지붕이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즉 천장에 아무런 방어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천장에 무언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나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이승철은 움찔거렸고 고개를 위로 올렸다.

“아, 치사하게.”

이승철은 급히 몸을 움직여 탁자 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것을 포착한 석민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아음속에 장거리 포물선이 너무 큰 VSS의 9x39mm 탄환으로 예측사격 하는 것은 무리였다.

총탄은 이승철의 머리가 있었던 허공을 지나 벽에 박혔다. 그때, 아영이 격발기의 버튼을 눌렀다.

커다란 폭발음이 나면서, 건물의 지붕과 외벽이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좋았어.”

그것을 본 아영이 이승철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때 이른 승리 선언은 폐허 속에서 나타난 그림자에 의해 취소되었다.

그것을 본 아영이 다시 몸을 웅크렸고, 그녀가 있던 자리에 총알 3발이 날아왔다.

머리에 상처를 입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며 이승철이 아영이 웅크린 방향으로 계속 m110 저격총을 발사했다.

그는 무표정했으나 눈엔 다시 여전히 광기가 서려 있었다.

아영은 낮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주변에 박히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기었다.

아직까지 기절해 있던 혜원의 주변에도 탄환이 튀면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아영은 재빠르게 그녀의 발목을 잡아 뒤로 끌었다. 그러나 그 행동으로 갈대가 크게 흔들리면서 이승철의 스코프에 딱 잡혔다.

‘거기냐!’

눈에 핏물이 들어가 시야가 좁아진 이승철은 아영의 모습을 석민이라 착각했다. 그곳만 집중했던 그는 개들 시체 속에서 석민이 일어나는 걸 보지 못했다.

이윽고 이승철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의 오른쪽 가슴에 총탄이 박혀 들었다. 석민이 먼저 방아쇠를 당긴 거였다. 그는 낮은 신음소리만 흘리며 뒤로 쓰러졌다.

“너도 한번엔 못하잖아.”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웃으며 본능적으로 총에 맞은 부위를 지혈하기 위해 눌렀다.

그 사이 석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총기를 바로잡고는 천천히 이승철에게 다가갔다.

총소리가 멈추자 엎드려있던 아영도 상체를 세웠다. 그때 혜원의 앓는 소리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석민이 마무리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승철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홀스터에서 빼내 등 뒤로 숨겼다.

석민은 자신의 빈토레즈로 이승철을 조준했다.

“개또라이새끼, 총 맞으니까 좋냐?”

“좋진 않지.”

이승철은 본심을 말했다. 이미 삶을 자포자기한 나머지 석민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웃으며 되받아쳤다.

“얼마 보진 못했지만… 그래, 마음껏 경멸해라. 그래봤자 너와 나는 같은 동류 아니냐? 사람 죽여서 돈 버는 인간. 난 거기에 약간의 취향을 더 한 것뿐이고.”

석민이 반박하지 않은 채 바라보자 이승철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석민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이승철은 그저 석민이 실수에 의한 여파에 지나지 않았고 그냥 넘어야 할 허들, 아니 그건 너무 고평가이고, 쓸데없는 방해꾼 내지, 운전하는데 방해되는 고라니일 뿐이었다.

“뭐, 적어도 한 가지 똑같은 것은 있네.”

석민은 조준을 풀지 않고 말했다.

그의 시선이 등 쪽으로가 있는 오른쪽 팔을 살짝 본 뒤 이승철의 얼굴을 보았다.

“넌 살인을 즐기는 타입이지만, 나처럼 아무나 함부로 죽이진 않아. 넌 오직 의뢰받은 타깃만 죽이잖아.”

“…그걸 니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거지? 근거는?”

“그때 내가 도발했을 때 안 걸렸으니깐.”

“하. 역시 그건 도발이었군.”

이승철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름 석민도 머리를 굴린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니가 나보다 위….”

“아니.”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둘은 그래, 더러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나쁜 새끼들이야 그건 맞아.”

그의 말에 이승철은 살짝 히죽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 우리는 비슷한 게 없어. 이 개찐따, 변태, 스너프 필름이나 촬영하는 체첸놈들 같은 쓰레기 새끼야.”

알고 있는 모든 욕을 퍼붓고 싶었는데, 이 이상 욕을 해봤자 그만 분을 못 이기고 화를 낼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욕하는 것을 멈추었다.

석민은 총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눈짓으로 이승철의 가린 팔을 가리켰다.

이승철은 자신의 마지막 발악이 걸리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시발, 나를 잘 모르지만, 내가 널 잘 알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너가 나를 닮지 않아서 나한텐 정말 다행이야.”

그는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 짜증을 느꼈다.

그것이 둘의 차이였다.

이승철이 석민을 닮았으면 이딴 허튼짓거리 할 시간에 이미 자신의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너는 말이 너무 많아.”

석민의 말뜻을 이해한 이승철 표정이 썩어갔다.

“너는 절대로 날 닮지 않았고 날 절대로 이해 못 해. 이 개자식아. 너는 내가 어떠한 이유로 교단 놈들이랑 싸우는지 몰라. 그리고 너는 내가 무슨 사명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 너는 그저 단순하게 의뢰받아 타깃을 살인할 겸 그놈이 왜 죽어 마땅한지 억지로 동기 부여하는 정신이 나약한 병신일 뿐이야. 너는 내가 너처럼 마땅히 죽어야 하는 개자식인 것을 세뇌하듯이 강조하면서, 나와 내 동료, 그리고 내 여자친구가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정당성을 억지로 부여하고 있어.”

그 말에 이승철은 불편하게 숨을 내쉬었다.

석민의 말이 맞았기에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석민은 이승철의 과거를 몰랐지만, 아마 이승철은 의뢰받아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에 지치고 정신력의 한계까지 몰아세운 나머지 이렇게 미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름 불쌍한 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처음에 이자를 만났을 때는 극도로 경계심이 들 만큼 대단한 실력자로 여기고 나름 존경심도 가졌었다.

잠깐 그와 싸웠을 때 스탯을 찍은 석민에게 완력으로 밀렸을 뿐 나머진 대등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은 없었고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살다 살다 이렇게 말이 많은 동업자는 처음 보았다.

또 사람이 죽는 것을 즐기는 사례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쓸데없이 정성을 들여서 잔인하게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들의 발톱 자국으로 가득한 그 의자,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묶였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그것을 위해 의자를 구하고 콘크리트, 폭약, 고기와 내장, 군용전선 같은 다양한 것을 장만하고 준비했을 정성이 생각하니 역겹기 짝이 없었다.

또한 인육을 먹는 개들이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은 들개들이 그 상황에 얼마나 많이 익숙한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살면서 온갖 더러운 경험을 해봤지만, 이딴 경우는 처음 보았다.

“너와 내가 다른 게 너한테는 마지막으로 운이 아주 좋은 거야.”

그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죽였다.

“난 너처럼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아. 이제 너한테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내 심판은 너보단 신속할 거다.”

심판이라는 말에 이승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그는 절대로 석민의 의견을 인정하기 싫어했고 석민 따위가 자신을 심판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분노했다.

“심판이라고?! 너 따….”

노기 어린 외침 속에 이승철은 숨겨둔 권총을 꺼내서 뻗으려 했으나, 이미 석민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총성이 울리면서 이승철의 오른쪽 눈에 총알이 박히면서 피와 안구 파편이 튀고 뒤통수의 머리 가죽과 뇌와 두개골 파편이 튀어 벽면을 더럽혔다.

벽에 붙은 살점들이 천천히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신경의 영향인지도 몰라도 이승철이 총을 맞는 순간 권총을 쥔 손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석민의 왼쪽 발목을 스쳐서 총탄이 벽면에 박혔다.

그는 악감정을 담아 확인 사살을 위해 머리에 한 발, 가슴에 두발씩 추가로 신속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