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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54화 (154/226)

[게이트 오브 서울 154화]

그는 상황이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틀어지는 것을 매우 재미있어했다.

“이거 진짜 한 방 먹었는데?”

그는 씩 웃으며 2번째 격발기를 들었다.

이승철은 심혈을 기울여 이 무대를 준비해왔고 저런 변수를 대비해서 이미 대응책으로 준비해 놓았다.

2번째 격발기는 무선이 아니라 유선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빨리!”

그때, 석민은 VSS를 조립하고서 탄창을 끼웠다.

석민의 재촉 속에 아영은 다리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서 혜원이 베이지 않게 매우 심혈을 기울이면서 잘랐다.

‘더럽게 튼튼하네!’

전선이 군용 통신선이라 잘 잘리지 않았다.

주변의 소란과 다리를 찌르는 따끔한 감각에 기절해있던 혜원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검은 구름이 가득 낀 하늘과 휑한 주변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그녀는 뼈와 살을 파고들 정도로 단단하게 묶인 전선의 고통을 느껴 당황한 나머지 몸부림을 쳤고 혜원은 그녀의 살을 벨 뻔했다.

“진정해!”

“진정해요!”

석민과 아영이 동시에 소리쳤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구할 수 없어.”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연막이 걷힐 것이다.

조급함에 기다리다 지친 석민은 혜원에게 묶인 전선을 직접 자르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폭음이 들려왔고, 그는 저도 모르게 혜원과 아영을 감쌌다.

다행히 폭발은 그리 크지 않았고, 땅속에서 터진 것이라 소리도 작았다.

하지만, 커다란 흙기둥이 일어났고 흙기둥 속에 하늘 높이 오른 무언가의 파편들이 우수수 그들의 머리에 떨어졌다.

진흙이 아닌 찐득한 물체였다. 석민이 눈을 뜨며 자신의 머리에 묻은 오물을 치우려 손으로 털어댔다. 그러자 질척한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알 수 없는 생명체의 고기와 피, 내장의 파편들이었다.

“이런 씨….”

“꺄아악!”

그 장면에 놀란 혜원이 비명을 질렀다.

서울에서 사태 때 생긴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거의 이성을 상실했고, 아직 덜 풀린 전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미친 사람 마냥 몸부림을 쳤다.

혜원의 두 눈은 거의 흰자위만 보였고 얼굴에서 침이 나왔으며, 얼굴색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 때문에 전선이 살을 더욱 파고들며 핏기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어서 빨리.”

“개소리.”

아영이 말했다. 석민은 아영이 자기에게 욕한 줄 알았다.

“뭐라고?”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진다고요.”

“아!”

석민은 주변 갈대들을 보았다. 반쯤 썩어가는 갈대들이 위태로운 모양새로 서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매우 빠르게 석민과 아영, 혜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래서 그 자식이 들개라는 소리를 했구나.

‘뭔가 이유가 있는 줄은 알았는데.’

“자르고 있어.”

그는 VSS를 내려놓고 오른손엔 권총을, 왼손엔 단검을 쥐었다.

2번째 트릭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은 이승철이 유도한 것이었고 저 개 짖는 소리는 잔뜩 굶주린 들개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소리였다.

이승철은 함박미소를 지으며 자주 하는 대사를 지껄였다.

“자, 밥 먹을 시간이다!”

그게 그가 2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석민과 아영에게 준 이유였다.

어디 흩어져 있을지 모를 들개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주변에 냄새가 심한 내장을 뿌려놓고, 개들이 주변에 몰려오면 폭탄으로 터진 희생자의 육편을 개들이 뜯어먹게 했다. 그리고 그걸 녹화해 두고두고 보면서 즐기는 것이다.

물론 오늘은 뜻처럼 되지 않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사냥해 잡아먹는 장면도 꽤 재미날 것이다.

“하하, 어디 한번 발악해 보라고!”

그는 캠코더에 녹화 버튼을 누르고 사진기는 연속사진 촬영에 들어가게 했다.

더 재미난 영상이 나올 거라 그는 생각했다.

***

석민은 혜원과 아영의 앞에 섰다.

“되도록 빨리 끝내.”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고 눈가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오른손이 풀린 혜원이 석민의 옷자락을 잡았다.

평소라면 안쓰러운 감정에 안아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석민은 혜원의 손을 쳐내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착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리끝까지 치민 분노에 열이 나는 것 같은데도, 머릿속은 점점 차분해지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는 여분의 탄창을 입에 물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팔을 곧게 뻗은 자세로 권총을 조준했다.

순간, 갈대숲에서 덩치 큰 검은 개가 튀어나왔다. 코앞까지 닥친 들개의 입이 쫙 벌어져 빨간 입천장이 훤히 보일 정도였고 그것을 노리고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개의 머리가 박살 났다. 그러나 옆에 있던 개가 겁도 없이 바로 덤벼들었다.

인육의 맛을 수없이 본 짐승만이 할 행동이었다.

“역시 무기가 있었잖아!”

이승철이 소리쳤다.

이제 그의 얼굴은 광기로 가득했다.

석민은 절도있게 상체만 좌우로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총을 쐈다.

그 모습은 마치 기계 같았다.

그가 들고 쏜  9mm 파바벨럼탄은 평소엔 저지력이 부족하단 평이 있었으나, 개들을 저지하기엔 충분했다.

석민은 주로 개들의 머리나, 폐가 있는 흉부를 노리고 쏘았다.

개 한 마리가 가슴에 총을 맞고 깨깽거리면서 도망쳤고 갈대숲에 들어가기 무섭게 풀썩 주저앉아 쓰러졌다.

주변 갈대가 개의 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꽤 하는데?’

너그럽게 내린 평가는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이승철의 내면의 이성과 본심이 자기도 제법 총을 쏜다 해도 석민만큼 쏠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예리한 눈에 석민의 한 발, 한발 쏘는데도 손목이나 팔엔 조금의 미동도 없는 것이 들어왔다.

아무리 그라도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주변에 개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이승철은 고성능 확대경이 달린 캠코더의 화면을 통해 석민이 개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주시했다.

‘저게 가능해?’

탄창이 비자, 석민은 입에 물고 있던 탄창을 급히 갈아 끼우고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개를 향해 바로 쏘았다.

석민이 시간을 버는 사이, 아영이 혜원을 완전히 풀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지만, 혜원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버렸다.

‘그래도 발버둥 치던 것보단 이게 낫겠지.’

아영은 혜원의 모습을 살피고, 심장이 뛰는지, 숨을 쉬는지 확인한 뒤 그녀를 뒤로 끌고 갔다.

아영이 움직이자, 고개를 살짝 돌려 상황을 파악한 석민도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아영은 갈대밭 쪽으로 혜원을 옮기고는 석민이 입 떼기 전에 이승철이 있는 곳으로 연막탄을 새로 던졌다. 그 틈을 타고 덤비는 개를 향해 아영은 얼른 권총을 들어서 쐈다.

눈앞에 새로운 연막이 나타나자, 이승철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40마리도 넘는 개들이었다.

그런데 단 한 마리도 저들을 물어뜯지 못했다.

“아, 시발!”

슬슬 조급해진 그는 자신의 m110을 들어서 스코프로 주시했지만, 이미 연막으로 크게 가려져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충 짐작을 하고 총을 쏘았다.

석민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탄환의 소리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움찔거렸다.

그는 다시 탄창이 떨어지자, 크게 소리쳤다.

“재장전!”

“좋아!”

아영도 크게 답하면서 권총으로 석민 주변에 달려드는 개들을 쏘았다.

개들의 시체가 엄청나게 쌓여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개들은 보통 총소리를 들으면 도망가는데 도망가지 않고 달려든다. 게다가 자기네 무리가 이렇게 죽어 나가는데도 말이다.

인육에 미친 건가? 광견병에 걸린 것일까?

실상은 들개들이 오랫동안 굶주린 데다가, 인간을 뜯어먹게 하기 위해 소량의 내장만 주변에 뿌려서 식욕을 돋워 놨기 때문이었다.

석민은 총을 쏘면서 조금씩 혜원과 아영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석민에겐 마지막 권총 탄창이었다.

“재장전!”

아영이 소리쳤다. 그녀가 가진 마카로프 권총은 장탄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했다.

“좋아!”

석민은 3마리씩 달려오는 개들을 향해 쐈으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커다란 개가 그의 팔뚝을 물렀다. 다행히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기에 개의 이빨이 깊게 박히지 않았다.

개는 으르렁거리면서 앞발톱으로 석민의 상체를 할퀴었다. 패딩이 발톱을 따라 찢어지면서 거위털이 날렸다.

석민이 팔을 휘두르며 떼어내려 했지만, 개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빨은 더욱 깊숙이 박혀 들었다.

석민은 인상을 쓰면서 왼손에 꽉 쥐고 있던 단검으로 개의 머리에 찍었다.

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팔에 느껴지는 악력이 줄어들자, 단검째로 휘둘러서 개의 시체를 날렸다.

칼에 피와 뇌수, 뇌 조각이 잔뜩 붙어 나왔다.

그는 권총을 조준할 새도 없어 목을 노리고 달려든 개의 목을 노리고 단검으로 찍어 눌렀다.

깨갱거리는 개의 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바닥에 처박힌 개한테서 단검을 뽑으며 그는 2마리의 개를 더 사살했다.

그때쯤 되자 굶주리고 사나운 개들도 이성을 찾았는지 꼬리를 말고 낑낑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석민은 도망치는 개들도 노리며 총을 쏘았다.

사람 피 맛을 알게 된 야생동물이었으니 살려둘 수 없었다.

살아서 도망간 개들은 3마리도 되지 않았다.

“연막이 끝났어. 은폐.”

석민은 아영이 던져주는 10발짜리 탄창을 받아서 끼웠다.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할 땐 짧은 탄창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저지대 쪽으로 움직여서 엄폐에 들어갔다.

“드론을 이용할게요. 저 녀석은 이젠 죽은 목숨입니다!”

석민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드론을 이용해서 끝내는 방법은 분명 가장 쉽고 완벽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까 한 말도 있고 그는 자기가 직접 놈을 죽이고 싶었다.

석민은 VSS의 탄젠트식 가늠자의 거리를 300으로 맞췄다. 감으로 대충 거리가 그 정도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는 주변에 쌓인 개들을 이용했다.

연막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개들의 배를 단검을 찔러서 뱃가죽은 길게 베었다. 가죽이 갈라지면서 창자를 비롯한 온갖 내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석민은 자신의 앞에 개들의 시체를 이중으로 쌓았다. 엄폐용은 아니지만, 도움은 될 것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내장 조각이나, 피로 젖은 진흙을 손으로 떠서 얼굴에 고루 발랐다. 몸속에서 역겨움이 올라오는 통에 그는 헛구역질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 뒤 그는 앞을 가리는 갈대 몇몇을 거두어냈다.

행동이 신속했고 쓸데없는 움직임은 없었다.

살면서 여태껏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가늠쇠 가늠자를 정렬했다.

거리 예상은 놀라울 정도로 딱 맞았다.

눈앞에 나타나는 십자선 조준점이 가늠쇠, 가늠자의 정렬과 일치되었다.

석민이 김이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콧바람을 흘리자 안타깝게도 옅은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당연하긴 하네.’

영하권이니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는 추위도 못 느꼈던 것이다.

이제 완전히 연막이 사라졌다.

석민이 자세를 취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영은 휴대용 전파방해기의 전원을 껐다.

‘드론으로 처리하면 되는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론의 전원을 켜고 안테나를 올렸다. 그리고는 컨트롤러에 달린 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드론은 완벽하게 가동되었다.

그녀는 혜원의 옆에 누운 채 피와 오물이 묻은 손으로 드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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