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53화 (15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53화]

그녀는 석민의 앞뒤, 좌우를 둘러보며 감쪽같이 총을 숨긴 걸 감탄했다.

“총이 가벼워서 그런가 절묘하네요.”

빈토레즈는 기성 소총보다 상당히 작고 가벼운 축에 속하는 것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총기 무게가 2.6킬로그램이거든.”

슬슬 너무 오래되어서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좋은 총을 못 봐서 그는 잠깐 동안 애정을 담아 그것을 보았다.

그 모습에 아영은 이 총을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것인지 궁금해했다.

빈토레즈 같은 러시아제 아음속 저격총들은 러시아에서 매우 엄하게 관리할 정도로 수출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묻는 것은 지금 상황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 질문을 묵혀 두었다.

석민은 소매에 끼워둔 단검을 한 번 뽑아 확인한 뒤 다시 안으로 쑥 넣었다. 가능하다면 이걸로 당장이라도 그자의 목을 찔러버리고 싶었다.

“가자.”

그들은 상대가 무장해제 하라고 하면 쓰려고 각자 권총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약속장소로 차를 몰았다.

길은 딱 하나였다. 비포장도로 위를 차가 흔들거리며 달려 나갔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석민과 아영이 탄 차는 금세 이승철의 눈에 띄었다.

곧 석민에게 혜원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차에서 내려.

이승철은 기분이 좋은지 폰 너머로 히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민은 스피커로 맞춘 뒤 아영에게 말했다.

“멈추고 내리자.”

-좋아, 그래야지.

아영은 갈대밭 쪽으로 차를 빼서 멈춘 뒤 운전석 문을 열면서 슬며시 드론을 내려놓았다.

갈대와 운전석 문 때문에 이승철은 그걸 보지 못했다.

그때, 주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길을 따라 와. 괜한 헛수작 부리지 말고.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 니 애인의 발에 폭탄 있다.

이승철은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종합풍속계로 측정된 수치를 확인했다. 그리곤 그 또한 휴대폰은 스피커모드로 바꿔서 근처에 놓인 탁자에 내려놓고 카메라와 캠코더의 전원을 켰다.

-손 보이게 똑바로 걸어.

이승철은 자기와 같은 부류이자 실력이 뛰어날 것으로 추정되는 석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김성훈 씨.’

그건 예전에 석민이 이승철을 속일 때 쓴 이름이었다.

“내 이름, 김성훈 아닌 거 알잖아.”

-아, 그렇지. 석민아.

명백하게 조롱하는 말투에 석민은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석민아, 기분이 어때?

석민은 인상을 쓰며 앞을 보았다.

“뭘 당연한 것을 묻고 있어? 그야 안 좋지.”

-그래? 그건 의외네 무감각할 줄 알았는데.

그게 가능한가? 일을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죽이는 사람이라도,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감각하다고? 그게 가능한가? 넌 사람이 아닌가?”

-넌 가능하지 않나 보군.

석민은 혜원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대략 400미터. 제법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역겨운 대화를 걷는 내내 해야 한단 생각에 석민은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실력이 나처럼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석민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찐따 같은 새끼.’

자만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나처럼’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석민은 이승철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대충, 먹고 살 만큼 하지.”

-그래서 먹고 살기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죽였냐?

그 말에 석민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대답했다.

“왜? 그런 걸 묻지? 니가 내 죄를 심판하려고?”

그 말에 이승철이 웃음을 터트렸다.

심판이라고? 본인이 아무리 미쳤어도 자신도 타깃을 처리하는데, 뭘 위해 자신이 석민을 심판하겠는가.

-석민아, 쌉소리 하지 말고 그냥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 새끼가, 자꾸….’

석민은 그가 자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충 3자릿수. 숫자는 세어본 적이 없어.”

-뭐라고?

그 말에 이승철은 더욱 크게 웃었다.

-거짓말. 그게 가능하나? 석민아~, 겨우 그거밖에 안 돼?

이승철의 비웃음에 석민과 아영은 인상을 썼다.

그의 말과 비웃음에 한 치의 거짓도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석민이 너무 적게 죽였다 생각하고 있었다.

-아, 제발. 거짓말하지 말고.

“이 상황에서 거짓말이 가능한 사람이 어딨어?”

잠시 휴대폰은 침묵에 싸였다.

-…난 너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가 동급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많이 침울했지만, 장난기 가득했다.

석민의 인상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이승철은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매우 특별하다 여기는 듯했다.

“동급이 아니야.”

불쾌감에 석민은 얼른 대답했다.

-그래, 이제 보니깐 아니네. 넌 그냥 쓸모없는 잡종 들개네.

김이 빠졌는지 그는 한숨을 쉬며 스코프로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주시했다.

“들개라고?”

뜬금없는 비유에 석민이 뭔 개소리냐는 늬앙스로 되물었다.

왜 갑자기 굳이 들개라고 했을까?

그러고 보니 계속해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설마 그거 때문에?

‘완전 또라이잖아.’

석민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했다.

-혹시 너도 나처럼 사람을 죽일 때 쾌감을 느끼나?

“우린 동급이 아니라니깐. 품종개 양반.”

-우호우!

이승철은 석민의 비유가 재미있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정확하겐 그래도 동류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잖아. 동급은 아니더라도 동류겠지.

석민은 신나서 나불거리는 이승철을 보며 과거 자신이 이자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꼈던 게 어이없게 느껴졌다.

“그래, 동급이 아니지. 그리고 동류도 아니야.”

-아니라고?

목소리에서 약간의 노성이 섞여 나왔다.

“난 살인청부 일에서 이제 손 뗐거든.”

-그래봤자 사람 잡는 건 똑같은 것 같은데.

“적어도 돈 때문은 아니야. 아주 중요한… 사명이 있지.”

사명 때문이라고는 하나 챙길 건 다 챙기는 석민을 아영이 살짝 째려봤으나, 석민은 뻔뻔하게 앞만 봤다.

물론 그의 말은 나름 그의 진심이었다.

석민은 아영을 만나기 전까진 삶의 목표도 방향성도 없었다. 의뢰가 없을 땐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만약 사명을 받아들이고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저 미친놈처럼 머리가 돌아버렸거나, 여전히 무기력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명이라고? 놀고 있네. 이봐, 깝치지마, 이 새끼야. 어디서 깨끗한 척을….

이승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승철은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는 것 같았다.

“아, 적어도 너보단 깨끗하긴 하지. 기억나나? 너 예전에 혜원이을 죽이려고 만든 수제 폭탄의 파편에다가 쥐약까지 발라놨던데, 미친 거 아냐? 난 적어도 그런 짓은 안 해.”

-확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나저나 쥐약에 대해 잘 아는군.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사이코패스, 아니,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인가.’

아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놈한테 단단히 걸린 것 같았다.

그들이 걷는 길 뒤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석민과 아영이 가까워지자, 이승철은 스코프조준경의 영점을 새로 맞췄다.

-너도 알겠지만, 쥐약에는 혈액응고를 방해하는 성분이 있지. 타깃이 죽지 않고 고통에 몸부림칠 때 막타를 쳐야지. 그래야 더 재미있지 않겠어?

“지금 막타라고 했어?”

석민은 진심으로 그를 비웃었다.

“하하, 그거 참 웃기네.”

-…뭐가 웃긴 거지?

노기 섞인 이승철의 목소리에 석민은 살짝 놀랐다. 어이없어서 던진 가벼운 도발이었는데 바로 넘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만, 이거 혹시….’

석민은 더 도발해보기로 했다. 저런 부류는 종종 봤었다. 모두 같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했다.

보통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진짜 사이코. 하나는 컨셉충. 보통 후자는 겁 많은 놈들이 상대에게 이겨 먹고 먼저 겁주기 위해서 써먹는 짓이다.

이승철은 전자였다. 그런 부류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그런 놈들은 자존심에 작은 기스만 생겨도 아주 볼 만해 진다.

잠시간의 대화를 통해 이승철이 이 통화로 자신들을 통제하고 짓누르는 상황을 즐기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마 볼만할 거다.’

그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폭탄에 연결된 버튼을 눌러도, 터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놈은 그저 상대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빌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그런데 상황이 다르게 흘러간다면?

아마 반격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답해라. 뭐가 웃긴 거야?

“막타라고 하길래.”

-뭐?

석민은 건물 쪽을 빤히 보았고 이승철은 그와 눈이 마주친 기분을 느꼈다.

‘위치를 알고 있네?’

그는 최대한 침착해지려고 숨을 깊게 마시고 내쉬었지만, 석민의 도발이 시작되자 참지 못하게 되었다.

“진정한 킬러라면 그딴 보험을 들 필요 없이 한 번에 확실하게 끝내야지. 게다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폭탄이라니, 정말 재미없군. 시체가 온전하게 남지 않으면 의뢰자가 그거 핑계 대고 돈 안 줄 텐데?”

그 말에 이승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말문이 막힌 것이겠지.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 다른 것이지.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달되었다.

석민의 의도를 알게 된 아영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야, 인마. 이쪽 세계도 급이 있는 거야.”

석민은 있는지도 모를 이쪽 세계라는 단어와 급이란 말을 강조했다.

“조용히, 냉혹하게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단 한방, 그리고 가능하면 사고로 위장해야 완벽한 거 아니냐? 폭발물 같은 거만 써서 요란하게 일 처리 하는 건 킬러가 아니….”

-입 닥쳐.

“얼마든지.”

-그리고 난 폭발물만 쓰지 않아.

“아이고, 그러셔? 퍽이나 믿겠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혜원의 앞에 설 수 있었다.

혜원은 여전히 혼절해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으나 석민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자, 그러면 이제 뭘 할 거지?”

석민은 왼쪽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영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을 준비했다.

-좀 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아직도? 석민은 이 미친 자식과 그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럼, 심도 깊은 대화는 그만하고 몸을 볼까. 자, 스트립쇼를 시작하지.

“뭐?”

석민과 아영이 동시에 되물었다.

-너희 다 옷 다 벗어. 천천히 내가 감상할 수 있도록. 무기검사 시간이야~.

그냥 무기나 버리라 할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개또라이 새끼였다.

‘이런 시발.’

석민은 인상을 썼다.

도저히 더는 못 들어주겠다. 이 이상 저 미친놈의 장단에 맞춰서 움직이는 건 질색이었다.

석민이 고개를 돌려 아영을 보자, 아영이 고개를 까딱거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전파방해기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연막탄의 핀을 뽑아서 던졌다.

갑작스럽게 통화가 종료되자 이승철은 인상을 쓰며 스코프를 주시했다. 연막탄이 퍼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격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뇌관부터 뽑아!”

석민은 외투를 벗고 총기를 조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아영은 혜원의 발밑에 묶여있는 C4의 뇌관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보다 이승철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손에 무선격발기를 쥔 채, 쌍안경을 꺼내서 그쪽을 주시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게 되었지만, 잘 가라.”

그는 격발기를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더 달칵달칵 버튼을 누르다가, 마지막엔 부술 듯 콱 눌렀다. 그런데도 격발이 되지 않자, 그는 분노하기보다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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