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52화]
이승철은 혜원의 몸을 끌고 자신의 차 뒷좌석에 태웠다.
혜원을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1층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신의 가게로 올라가던 혜원의 뒤를 기습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는 약품으로 적셔진 손수건으로 재빠르게 혜원의 입과 코를 막은 후 기절한 그녀를 조심스레 끌어냈다.
너무 허무하게 잡아채서 왜 이리 쉽게 끝났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은 별것 없었다. 그저 혜원이 그날 유독 무방비했을 뿐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히죽히죽 웃고, 제멋대로 뻗어 나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지거나 휴대폰을 보기도 하면서 딴짓을 할 정도로 자신의 가게에서 나온 뒤에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물론 완전히 무방비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바로 주머니에 숨겨놓은 총을 꺼내 들었다.
이승철이 조금만 늦었다면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녀를 기절시킨 후 장소적으로 불리한 곳임을 잘 알고 있었던 이승철은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이승철에게도 대단히 낯설어서 혹시 함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 그는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녀의 몸을 수색해서 혹시 모를 함정을 대비했지만, 예상했던 것은 나오지 않았다.
‘기우인가.’
그는 자신이 주로 시체를 처리하던 북한 강변으로 차를 몰았다.
휴대폰을 만지고 있던 터에 기습해서 다행히 휴대폰 잠금장치는 풀려 있었다.
이승철은 ‘낭군놈’이란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저장된 전화번호를 보고 비웃음을 날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여자는 내가 데리고 있다.”
그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여자를 살리고 싶다면 당장 내가 문자로 보내는 곳으로 나와라. 무기는 챙기지 말고, 네 동료와 같이. 허튼 수작 부리면 네 여자는 죽는다. 2시간 주지.”
그런 직후 그는 GPS지도에 찍힌 화면을 캡처해서 보낸 뒤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재미난 한판을 벌일 생각이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며, 사람을 잡아먹는 들개 떼가 산다고 흉흉한 소문이 난 곳이기도 했다. 물론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그는 고성능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진공 포장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내장을 준비했다.
그 외에 무선 기폭이 가능한 뇌관과 C4 또한 준비했다.
대충 작업 준비물이 마련되자,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혜원을 갈대가 무성히 자라난 곳으로 끌고 갔다.
그곳엔 콘크리트 바닥에 고정된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의자엔 날카로운 무언가에 할퀴어진 자국이 가득했고, 주변은 거뭇하게 변한 얼룩들이 무성했다. 이미 이승철이 자주 애용하고 있단 증거였다.
그는 혜원을 의자에 앉혀서 어디서 구한지 알 수 없는 군용 통신선으로 감아서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입에 재갈까지 씌웠다.
준비가 끝나고 이승철은 혜원의 휴대폰으로 그 모습을 사진 찍어 석민에게 보냈다.
-기다릴게♥
도발하는 문자를 보낸 뒤 이승철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즐거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키득거리며 의자에서 300미터 떨어진 폐건물로 갔다. 그곳 창가는 이승철이 이곳에 올 때마다 자주 이용한 장소였다.
카메라와 캠코더엔 연장 후드가 달려있어서 렌즈가 반사될 걱정은 없었다. 또 이승철은 총을 잘 쐈다.
석민이 이승철을 알 듯, 이승철 또한 석민을 알았다. 잠시 부딪힌 것만으로도 석민의 힘과 실력이 자신 혹은 그 이상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최대한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고 자신의 즐거움만 가득 취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이는 반복해서 봐야 하므로 녹화도 할 예정이고.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총을 장전하고 석민과 동료를 기다렸다.
m110반자동 저격소총에 삼각대가 달린 물건이었다.
혜원과의 거리는 대략 300미터.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스코프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혜원을 살폈다.
들개들
“지금 그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석민이 씩씩거리면서 총을 챙기자, 아영 또한 무기를 챙기면서 그를 말렸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야 당연히 대책을 세워야지요.”
석민은 잠깐 동안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기를 챙기지 말라고 했지요?”
“그랬지.”
하지만, 석민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전부 챙기고 있었다.
“근데 그곳에 도착하면 아마 몸수색을 통해서 가지고 있던 무기를 쓰지 못하도록 다 버리게 할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자가 혼자인지 여럿인지도 모르고요.”
“누군지는 알아.”
그는 목소리만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이승철. 사람 죽이는 걸 즐기는 아주 변태 같은 새끼야.”
그는 이전에 이승철의 22구경 스팀루거 권총의 설명글을 설명해 주었고, 설명을 들은 아영은 인상을 썼다.
“적어도 혼자이군요.”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통해 이승철이 알려준 지역을 검색했다.
“차로 딱 30분 거리입니다. 대책을 생각할 시간은 있어요.”
그건 이승철의 가장 큰 실수가 되었다.
설마 그가 준비한 장소와 석민과 혜원이 사는 안전가옥이 가까운 줄 몰랐기 때문에, 대책 세울 시간이 넉넉하게 생겼다.
“시간을 아주 길게 줬네요. 우리가 사는 위치를 몰라서 그런 걸까요?”
아영의 말을 듣고 잠시간 생각한 석민은 차분해져 갔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그저 오만한 건지, 자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전처럼 다시 냉철하게 머리를 굴리며 아영과 함께 의견을 나눴다.
“이런 소총이나 저격총류는 당연히 못 챙기겠지요.”
“아니지, 못 챙기는 것은 아니야. 놈한테만 못 챙기는 것처럼 보이면 되잖아.”
석민이 말했고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네요. 그렇다면 우리가 챙길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챙긴 후에 그곳으로 가서 한번 상황을 확인해 보죠. 그 뒤에 대책을 세우는 게 좋겠어요.”
“좋아, 그러면 일단은 챙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기지.”
그들은 안전가옥으로 가서 가진 모든 것을 챙겼다.
석민은 RPG-7과 여분의 수류탄 20발을 챙기는 추태를 부렸다. 반면 아영은 군용드론 2개를 비롯해서 무선탐지기, 전파방해기 등 쓸모가 있어 보이는 것들 위주로 챙겼다.
그녀는 석민이 준 단검을 꺼내 보다가 그것을 자신의 발목 양말 안에 찔러 넣었다.
준비를 다 마친 아영은 짐을 챙겨 나왔다가 석민이 싼 짐들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쟁 나가십니까? 그 정도는 필요도 없고, 차 서스펜션이 못 버틸 텐데요?”
서스펜션에 과적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아영이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흘렸다.
“게다가 RPG는 뭡니까? 설마 그놈한테 쏘려고요?”
그녀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눈으로 열압력 탄두를 노려보았다. 너무 과하게 오버하는 석민의 모습에 아영은 낮게 혀를 찼다.
“손에 잡히는 것은 그냥 다 챙겼어. 혹시 모르잖아.”
“그런 건 쓸모없어요. 괜한 행동하지 마세요.”
아영은 석민이 짐들을 다시 정리하려고 안전가옥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혜원 씨 때문인지도 몰라도 허둥지둥거리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론이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가용 가능한 모든 장비를 챙긴 그들은 차를 몰고 움직였다.
그들은 이승철이 말한 지역의 뒷산에 차량을 멈추고 기본무장만 한 채, 목적지 방향을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고 썩은 갈대밭 한가운데에 의자에 앉은 혜원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녀는 기절을 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머리카락만 쓸쓸하게 휘날릴 뿐이었다.
그것을 본 석민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양발에 달린 거 보이시나요?”
아영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석민은 그쪽을 보았다. 벽돌같이 생긴 것이 그녀의 발목 부분에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C4 같네.”
그는 이를 갈았다. 혜원의 발목에 감긴 C4의 양을 보건데 혜원뿐 아니라 주변 일대는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는 양이었다.
그들은 스탯 능력을 이용해 시야를 확대하며 이승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내가 그놈이라면….”
석민은 혜원에게서 좀 떨어진 작은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안에 있을 거야.”
석민과 아영이 있는 곳에서는 너무 멀어서 건물 안을 볼 순 없었지만, 건물의 위치만으로도 납득가기에 충분했다.
“동의합니다. 저 건물은 지대가 높고 주변 시야를 가릴 만한 것이 없어서, 앉아있으면 어떤 방향에서든 접근하는 사람이나 차량을 전부 감시할 수 있어요. 혜원 씨의 다리에 달린 C4는 무선기폭인 것 같아요.”
아영은 공략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일단 혜원 씨에게 접근해야 해요. 저한테 휴대용 무선방해 장치가 있지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효과를 볼 수 있을 테니, 녀석의 말에 따라 접근을 해야 할 겁니다.”
“무기는 어떻게 해야 하지?”
“권총 같은 것은 당연히 숨길 수 있겠지만, 저기와 혜원 씨와의 거리를 생각하면 권총만으론 무리겠지요.”
석민과 아영은 서로의 총을 보면서 어떤 무기를 숨겨서 쓸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를 흘려들으며 석민의 VSS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거 분해하실 줄 알죠?”
“그럼.”
석민은 아영이 보는 앞에서 VSS를 분해해 나갔다. 탄창을 뺀 뒤 고정형 소음기를 빼내고, 기본으로 달려있던 4배율 조준경도 빼냈다.
“스코프는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너무 커서 분해를 해도 넣고 다니기 좀 그러네.”
러시아제에 사이드 레일을 통해 달리는 그것은 성능에 비해 크기가 너무나도 컸다.
“그렇긴 하지만 가늠쇠, 가늠좌로 충분히 가능하십니까?”
불안해하는 아영의 얼굴에 석민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자신의 실력을 못 믿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걱정하는 게 다 보여서였다.
“물론 가능하지.”
석민은 권총 손잡이와 일체형으로 된 개머리판을 풀어서 건네고, 10발짜리 탄창도 내밀었다. 아영은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 그걸 쑤셔 넣었다.
석민은 20발짜리 탄창 2개를 챙겼다.
이걸 이제 어떻게 숨길지가 관건이었다.
“테이프.”
석민은 허리띠를 푼 직후 널널하게 잡아서 등허리에 탄창을 넣고 허리띠를 조여서 고정했다. 아영은 자신의 구스다운 재킷의 안쪽에 소음기를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석민이 덕 테이프를 아영에게 주며 자신의 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뜻을 이해한 아영은 등에 개머리판을 딱 붙이고 상의째로 옷에 감았다.
“좋아.”
제대로 고정됐는지 확인한 뒤, 그는 총기 본체를 들었다.
건슬링이 여전히 걸려있어서 석민은 그것을 줄여 자신의 어깨에 딱 맞춰 끼웠다. 그렇게 외투를 입으니 감쪽같았다.
아영은 자신의 외투 안주머니에 드론용 무선 조종기를 넣었다. 아영이 챙긴 드론은 군용으로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고성능이었다.
아영은 드론에 무선격발이 가능한 C4를 붙여놓았다.
“보험이에요, 보험.”
석민의 시선을 의식한 아영이 말했다. 그런 직후 그녀는 연막탄도 두발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