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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49화 (14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49화]

“우리 교인들 시신은 최대한 수습하고, 이놈들 시신은 강에 버려. 장비째 버리면 시신이 강 밖으로 나오진 않을 거야. 마침 살얼음도 껴있네.”

총에 맞아 죽었으니 시신이 썩어서 배가 부풀 리 없었고, 장비가 무게추 역할을 대신해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가서 휴대폰을 꺼냈다.

교전을 하는 동안 확인을 할 수 없었기에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체크되어 있었다.

박재만이 잘 알고 있는 번호였다.

그는 문자를 마저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 받은 상대는 인사말도 없이 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지금 추격 중인데 어떻게 할까요? 차량에 탄 사람은 2명인데.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상하게도 반말과 존대를 섞으며 말했다.

“계약대로 합시다. 1인당 2천만 원씩 주도록 하죠.”

박재만은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금으로?

“현금으로.”

-계약금으로 1천만 원, 미리 보낸 문자에 적힌 계좌번호에 입금하면 계약성립입니다.

“알겠습니다.”

박재만은 그렇게 말한 직후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는 박재만이 마련해 둔 마지막 보험이었다. 석민과 아영을 놓친 지금이 바로 보험을 사용할 때였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오산이다.

박재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정리하다가 급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신경질적으로 발차기를 했다.

그가 아끼던 구두가 전투로 인해 다 까진 상태에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잡으려던 놈들은 놓치고, 자신의 대원들을 잃은데다가 추가 지출까지 해야 하다니.

보험이라고는 하나, 고용한 이 인간은 돈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지만.’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그 말에 박재만은 차에서 나와 교단 대원들이 옮기던 인물을 보았다.

“박선우?”

의외의 인물에 박재만의 눈이 크게 뜨였다.

기적적으로 박선우는 살아있었다.

팔에 총을 맞았고, 갈비뼈와 남은 한 팔도 부러진 상태에, 과다출혈까지 있었음에도 그는 살아 있었다. 심지어 화재로 일산화탄소도 대량으로 마시지 않았는가.

눈앞에서 미약하기 숨을 쉬고 있는 박선우의 모습은 곧 숨넘어가기 직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데리고 가지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처치 해. 내 차에 태워서 먼저 보내고.”

“어디로 가죠?”

지금 상황에서 총 맞은 사람이 일반병원으로 가면 경찰의 수사를 피하는 건 무리였다.

박재만은 잠깐 박선우를 내려다보다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교단 연구소로.”

“교단 연구소로 말입니까?”

“어, 그곳에 의료시설이 있어.”

마침 그놈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박재만은 속으로 키득거리면서 그가 차에 편히 탈 수 있게 자신의 차 뒷문을 열었다.

“빨리 옮겨.”

“알겠습니다.”

건물이 다 타 무너지면서 연소될 재물을 잃은 화재는 알아서 꺼졌다.

교단의 대원들은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 시선도 주지 않으며 강가의 살얼음을 개머리판으로 깨고 거기에 죽은 옛 우정파크빌의 경비대원들 시신을 넣었다.

“더럽게 춥네.”

아까는 싸우느라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추운 줄 몰랐는데, 그게 식으면서 평소보다 큰 추위를 느꼈다.

교단 대원들은 조금이라도 한가하면 손발을 구르고 입김을 불며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강물이 깊어서인지 시신은 던지기 무섭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스탯을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피곤으로 지쳤던 몸은 생각보다 회복이 늦었다.

석민과 아영은 건물을 빠져나와 차를 몰고 이동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이 들자 긴장이 풀린 아영은 피곤함에 숨을 길게 내쉬며 차량 히터의 온도를 올렸다.

“이것으로 이제 추격당하지 않겠지요?”

“아직은 일러.”

석민이 말했다.

“오늘은 안전가옥에 들어가지 말고 일단 흩어지자. 흩어져서 3일 정도 있다가 안전가옥에서 만나지. 차도 될 수 있으면 버리고 새 차를 구하는 게 좋을 거야.”

차를 버리라는 말에 아영은 잠깐 주저했다.

차를 새로 마련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자신의 차를 워낙 아꼈기 때문이었다.

석민은 아영의 주저함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오토바이는 결국 버리게 되었다.

뭐 어차피 들킨 마당에 그 기종을 계속 가지고 있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지금 이렇게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위협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 차는 누구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어?”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 주민번호가 말소된 이후로는 등록된 차량으로 안 나오거든요.”

“그거 잘됐네.”

석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차량을 버리는 것보다는 재도색이 나을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카센터로 가서 도색을 하고 휠도 바꾸면 못 알아볼 겁니다. 그거 말고도 여분의 차량번호판이 있으니깐….”

‘어지간히 이 차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바꾸면 말해줘. 비용은 내가 낼 테니깐.”

강변 국도에는 그들의 차 말고는 다른 차량들이 없어 어둠 속을 주행하는 기분이었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아영이 입을 열었다.

“그 건스미스 분에게 데려다줄까요?”

석민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잠깐 동안 뜨끔했다.

“그러면 고맙고.”

제법 떨어진 곳까지 오자 슬슬 긴장이 풀렸고, 석민도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석민은 품에 넣어두었던 단검을 하나 꺼냈다. 그가 예전에 박선우에게 주었던 단검이었다.

“정작 이렇게 되니 좀 미안하네. 얕잡아 보긴 했지만 괜찮은 친구였는데.”

그 말에 아영은 살짝 인상을 썼지만, 석민은 단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봤자 광신도예요. 사도대에 있는 놈들은 교단 놈들 중에서 가장 악질이에요. 교주 직속으로, 교단에서 벌이는 더러운 일들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일만 골라서 그놈들이 하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아영의 말에 동의하며 그는 단검을 도로 넣었다.

“얼굴이 들통났으니 예전처럼 이제 돌아다니지 못할 거야.”

그는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 그 건스미스분에게 가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이 맞았지만 석민은 차마 입을 열고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정체도 들킨데다가 얼굴도 알려졌을 텐데 돌아다니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럼에도 혜원에게 간다고 말을 내뱉은 건 자신이었다.

“…그냥 가줘.”

그 말에 아영은 운전 중인데도 잠깐 짜증스러운 얼굴로 석민을 쏘아보았다. 물론 잘한 거 없는 석민은 전방만 주시했다.

“지금 거기로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요? 아니, 그 혜원이라는 분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 알잖아요.”

알고 있다고 마음도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석민은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아영은 생각해보니 흩어졌다가 3일 뒤에 안전가옥에서 만나자고 한 석민의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친이랑 알콩달콩은 해야겠다? 불만이 목 위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아영은 자신이 정한 선을 넘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했다.

“후, 일단 알았어요. 하지만 거긴 안 데려다줄 거예요. 알겠어요?”

“…시가지 나오면 내려줘.”

그는 군장을 벗어서 그녀의 차량 뒷좌석에 두었다.

“3일 후 정오에 데리러 올게요.”

“알았어.”

석민은 권총을 꺼내 약실에 장전되어 있던 것을 빼내서 들어보았다.

[9×19mm Parabellum]

내구도:90%

품질:상중

대한민국, 풍산그룹에서 생산한 탄약. 한번 약실에 장전되어 있다가 꺼내진 상태.

‘이런 능력은 아무래도 쓸모가 없단 말이지.’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탄이 약실에 걸리는 일은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유통되는 탄약들은 수입이고 국산이고 자시고 품질이 안 좋을 때가 많았다.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건 군대에서 유출된 제품, 한 번도 뜯지 않은 나무상자(그것들은 단단한 철사 띠를 꼬아서 봉인되어있다. 철사 띠 상자라고도 부른다.)에서 꺼내서 탄피 아래에 찍힌 로트번호로 확인 가능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제품은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고, 유출된 것들도 대부분 사태 때 군부대가 잃어버린 군수품으로 추정되는 것들이었다.

“왜 우리에게 능력을 준 양반은 마법 같은 능력을 주지 않은 걸까?”

석민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차량의 천장을 올려보았다. 그는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는 마법사들마냥 마법을 사용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아영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이 세상에는 있었나요? 없었죠.”

그 말에 석민은 손에 쥔 탄약을 탄창에 넣었다.

***

잠시 후 시내에 도착한 그는 차에서 내렸다.

“만나는 장소는 내가 따로 연락하지.”

“알겠어요.”

아영은 출발하려다가 차를 멈추고 급히 석민을 불렀다.

“이거, 가져가셔야죠.”

석민은 아영이 내민 단검을 빤히 보았다. 석민이 아까 아영에게 건넸던, 박선우에게 선물했던 단검이었다.

“굳이 2개나 가질 필요는 없겠지. 너 가질래?”

“저 준다고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때가 탔던 건데도 석민이 준다고 하자, 아영은 기뻐했다.

중고라고 해도 좋은 단검이었다. 석민이나 아영 같은 부류들은 사족을 못 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아영이 간 직후 석민은 사색에 잠겼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지금 혜원에게 가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그는 골목길로 들어가서 일단 몸을 안전한 곳에 숨겼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의 어플을 이용해 숙소를 잡으려고 했다.

비싸긴 하지만 다행이 괜찮은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4성급, 조식 가능, 피트니스, 수영장 있음. 그것 말고도 당구장도 있다.

그는 당장 숙소를 예약했다. 저녁 입실이라 돈을 좀 날린 거긴 해도, 뭐 어떠랴.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는 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나타나서 택시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호텔 입구에서부터는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호텔은 호텔의 안전을 위해 입구에서부터 객실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곳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내는 헬멧을 벗었다.

석민이 그 얼굴을 보았다면 아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악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건 생각하지 못했네.’

이승철은 호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을 잡았다. 타깃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다행히 모텔치고 층수가 높았고, 창가를 통해 호텔 입구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면서 호텔 입구만 주시했다.

‘여자 쪽을 추격할 걸 그랬나?’

이승철이 바로 박재만 교구장의 보험이었다.

본래 박재만은 이승철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과거 석민과 이승철이 혜원의 가게에서 싸운 걸 목격하고는 그에게 거래관계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이어져 이번에도 호출을 받은 것이다.

그는 박재만의 호출을 받고 박재만과 거의 동시에 펜션에 도착했었다.

박재만에게 출장비를 지급받은 뒤 일단 대기하라는 말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살피고 다녔다.

그러면서 비교적 최근에 주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들을 파악하고 사진을 찍은 뒤, 가장 의심스러운 차량과 떨어져서 주시하며 대기했다.

그리고 빙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녀 두 명이 차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했다.

게다가 남자 쪽은 그가 아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승철은 그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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