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47화]
대원이 가지고 있던 탄약고 수류탄들도 유폭이 나면서 요란한 폭음과 화염이 2층을 감쌌다.
3층으로 올라갔던 박선우와 대원들이 그 소리에 다시 내려오다가 화염에 기겁하며 몸을 계단 쪽으로 뺐다.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아영은 자신의 기관단총을 꺼내서 1층에 있는 인원들을 노리고 쏘았다.
동료 하나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자, 남은 자가 총구 화염이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겨우 야시경을 통해 그녀를 발견한 그 대원은 총을 쏘려 했으나 아영이 더 빨랐다.
그 대원까지 쓰러지고 석민은 불타는 건물 2층에서 뛰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죽은 대원 옆에 나뒹굴던 방패를 잡았다.
족히 무게가 30킬로는 될 것 같았다.
3층에 있던 자들이 불길을 피해서 1층으로 쿵쿵거리면서 내려갔다.
“다 죽은 거야?”
그자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석민은 방패를 잡고 자세를 취했다. 방패를 써본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대충은 알았다.
아영은 정원에서 나와 그와 합류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김성훈!”
박선우가 소리쳤다.
“나와! 이 새끼야!”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울분, 악과 독기로 가득했다.
석민은 일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너와 선재의 죽음을 애도한 것만 생각하면!”
박선우는 수신호를 보냈고, 남은 대원 2명은 2층 창문을 통해 대문 쪽 지면으로 착지했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접근했으나, 석민과 아영에겐 들렸다.
‘시간을 끌 속셈이네.’
그런 것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석민은 자신이 박선우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전력을 다해 박선우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믿음과 신뢰를 배신당한 사람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탄창멈치를 눌러 탄창을 빼내고 얼른 새 탄창을 넣었다.
탄창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는 금속 소리에 반응하듯 계단 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석민은 주저 없이 총을 쏘았다.
“으윽.”
박선우는 방탄방패에 가해지는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그의 시점에선 여긴 너무 어두워서 사람의 형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박선우는 다시 야시경을 꼈다.
그는 석민이 야시경을 쓰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물을 식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감염자 천사를 처리했을 때도 석민은 인간 이상의 능력을 보이곤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의 다리는 주저했고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다.
“대답도 안 하는 거야? 어?!”
그의 목소리는 그의 다리만큼 크게 떨렸다.
석민은 여전히 침묵했다.
1층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박선우의 입장에선 솔직히 답변도 안 해주니 분노를 넘어 섭섭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게 본색이냐?!”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원래 석민의 모습일 거라 판단했다.
‘그래, 어디 계속 입을 다물고 있나 보자!’
그는 대원들에게 도망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다량의 수류탄과 소이탄, 섬광탄까지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2발의 섬광탄 안전핀을 뽑아 총성이 난 방향으로 던졌다.
그것을 본 석민과 아영은 놀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몸을 숙였다.
폭음과 섬광이 연달아 들리기 무섭게 석민은 숙였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돌격해 들어오는 박선우를 노리고 권총을 쏘았지만, 방패를 앞세우고 돌격하는 박선우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리를 노리려 했으나 박선우가 너무 빨리 다가와서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 결국 탄창에 총알이 비면서 권총 슬라이드가 후퇴고정 되었다.
석민은 잇몸이 보이도록 이를 악물었다.
아영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aks74u 카빈총을 쏘려고 조준을 했지만, 박선우와 석민이 너무 가까워져서 순간적으로 총 쏘는 것을 주저했다.
‘가만.’
이윽고 그녀의 시선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박선우의 전투조끼엔 한 다스는 되어 보이는 폭발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유폭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무리 총을 잘 쏘는 그녀라도 쏠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석민 또한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나 평정심을 유지하길 노력하며 뒷걸음질 쳤다.
박선우가 그 틈을 타 석민의 머리를 노리고 권총을 쏘았지만 총알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기대를 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자, 그는 인상을 썼다.
‘근접전인가?’
석민은 눈앞까지 다가온 박선우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그가 자폭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나한테 발렸던 것을 기억 못 하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박선우는 그를 근접전으로 싸워 이기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수류탄을 저렇게 주렁주렁 단 것은 아영의 방해를 막기 위해서인 듯했다.
석민은 자신이 들고 있던 방패로 박선우의 방패에 부딪쳐 밀어냈다.
박선우는 밀리지 않게 자세도 잡고 달리는 속도에 맞춰 체중 또한 실었는데도 밀려서 뒤로 넘어지자 인상을 가득 썼다.
‘사람의 힘인가?’
박선우가 바로 권총을 그에게 조준하자 석민은 방패를 몸 앞으로 내밀면서 몸을 웅크렸다.
아영의 시점에서는 박선우는 소파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튀어나온 총구를 통해 팔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주의 깊게 조준하고 총을 쏘자 권총을 내민 박선우의 팔이 총에 맞아떨어져 나갔다.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든 그때에도 아직 박선우의 투쟁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방패를 잡은 손으로 품속에서 석민이 준 단검 뽑아서 달려들었다.
그에 아영이 다시 다리를 노리고 쐈으나 맞지 않았고, 잘못하다 석민이 다치거나 유폭이 날까봐 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영은 자리를 옮겨 박선우를 처리하려 했으나, 박선우의 발이 더 빨랐다.
석민은 권총을 버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면서 단검을 뽑아 던졌다. 박선우는 방패를 비스듬하게 해서 그것을 비껴 튕겨 나가게 만들었다.
‘전에 이렇게 말을 했었지.’
이제는 필요 없어진 야시경을 간신히 올려 치웠다.
‘근접전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선우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박선우는 달려들어서 석민의 옆구리에 찌르기를 시도했다.
석민은 방패를 든 손으로 그것을 쳐내고는 박선우에게 박치기를 했다.
눈앞에 별이 떠다니는 환상을 보며 박선우가 뒤로 나자빠졌다.
‘더럽게 아프네.’
석민은 약간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점프해 박선우의 몸을 찍었다. 모든 체중이 실린 군화가 박선우의 몸통을 가리고 있는 방패에 떨어졌다. 박선우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석민의 무자비한 오른발이 박선우의 방패를 차고는 그 충격으로 이상하게 뒤틀려버린 팔의 손목을 꽉 눌렀다.
무시무시하게 분노하고 있는 박선우의 눈을 빤히 노려보며 석민은 수화로 아영에게 정문 쪽을 주시하라고 했다.
아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탄창을 버리고 새 탄창을 끼워서 그 방향 창가로 이동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이 새끼야.”
아직 투쟁 의지를 버리지 않은 박선우가 말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석민은 어둠 속에서 밝은 형광빛으로 빛나는 그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별로 할 말 없다.”
석민은 상체를 숙여 박선우의 단검을 빼앗고 바닥에 떨어진 그의 단검도 회수했다.
생각을 해보니 단검을 줄 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 진심으로 대하며 준 거였다.
우정의 상징이라 볼 수 있겠지? 그러면 회수해야지.
석민은 잘려 나간 박선우의 팔을 주시했다.
가만히 있으면 쇼크사나 과다출혈로 죽을 거라 판단했다.
그는 손을 뻗어 박선우의 전투 조끼에 달린 수류탄과 소이탄들을 전부 빼내서 그의 덤프파우치에 넣거나 자신의 수류탄 파우치에 넣었다.
왜 자폭 공격을 안 했을까?
아마 그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었을 텐데.
석민은 박선우가 근접전으로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리석게 보지는 않았다.
천국의 문 교단의 교리를 잘 모르는 석민은 알지 못했지만, 아무리 광신자인 교단이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살, 혹은 그에 준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선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음과 우정, 신뢰의 상징으로 받았던 그 단검을 석민의 몸에 박아 모든 것을 청산하고 싶어 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석민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너무 원망하진 말아.”
석민이 말했다.
박선우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일말의 양심 때문인지 몰라도 박선우의 허리띠를 벗겨 그의 잘려 나간 오른팔을 꽉 조여 지혈을 해주었다.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간 박선우는 저항도 하지 못할 만큼 무력했다.
숨을 쉴 때마다 박선우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게 분명했다.
그 순간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냈다.
엄청난 생존본능이라 할 수 있었다.
“네가 믿고 있는 거짓된 사명을 완수하는 것처럼, 나도 사명을 가지고 하는 거니깐.”
‘뭐?’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박선우는 의문을 품었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 그게 내가 받은 계시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희랑 엮일 일도 없었지.”
석민은 너무 수다를 떨었다고 생각하며 박선우의 임종을 지켜보며 말해주었다.
“그 천사라는 것은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천사가 아니야. 이계인일 뿐이지.”
마치 10년 묵은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와 미신을 이용해서 이곳을 침략하려고 하는 것들이라고.”
비밀을 간직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었다.
비록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박선우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시선에 박선우라는 존재는 근래에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비록 광신도였지만 그 신앙만큼은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사연이나 친구 이선재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모습은 아무리 냉혹한 성격의 석민이라도 흔들기 충분했었다.
“네가 믿는 것이 거짓으로 기반 된 것이라는 걸 너는 모르겠지.”
박선우가 눈을 감아버리자 그는 한마디 더 해주었다.
“네가 나쁜 게 아니라 교단이 나쁜 거야. 그리고 널 이용한 나도 나쁜 놈이겠지.”
박선우는 눈을 감았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박선우의 신체에서 발을 떼었고 방패를 버리고 권총을 회수했다. 그리곤 다시 소총을 들고 재장전에 들어갔다.
아직 일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기관총의 총성이 들려왔다.
“도와줘요!”
아영의 다급한 음성에 석민은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
“박선우 성도는?”
박재만의 물음에 빠져나온 대원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자기가 시간을 끌 테니 건물을 박살내서 같이….”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
박재만은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들을 보며 낮게 혀를 찼다.
대답하는 대원에게 아까 박선우는 배신자라고 그렇게 말해두었는데도 주저하는 건 아마도 박선우가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건물 크기와 주변 부지의 넓이에 비해 인원이 부족하긴 했어. 너무 자책하진 말아. 아무래도 박선우 성도는 목숨 걸어서 회계하려고 한 것 같으니.”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가 회계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건물채로 박살 내버리는 방법은 폐기하기로 했다. 그런 화기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석민과 아영의 시신을 가지고 교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교주는 그들을 잡았단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