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45화 (14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45화]

스탯을 올리기 무섭게 그가 보는 세상이 바뀌었다. 석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주변의 환경이 야시경을 낀 것처럼 녹색으로 보였다.

‘이게 뭐야?’

석민은 두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았다.

혹시나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고개를 흔들거나, 고장 난 텔레비전을 두드리는 것처럼 머리를 툭툭 치기도 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 낮처럼 밝은 편의점을 보자 편의점은 일반인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FPS게임과 같은 십자선은 그대로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증강현실처럼 보였기에 처음엔 적응을 못 해 고생했는데.

그는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다시 차량 쪽을 보았다.

내부의 인원이 잘 보였다.

형광색으로 밝게 빛나서 눈은 점점 피로해졌으나, 차 안에 있는 그들의 표정이나 옷의 실루엣은 그대로 드러났다.

피로해진 눈을 잠시 돌리자 빛이 밝게 들어오는 곳들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개 같아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석민은 이게 능력이 아니라 저주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좋게 생각하자, 좋게.”

그는 피다 만 담배를 던지고는 다시 헬멧을 쓰고서 오토바이에 올랐다.

적어도 이제 밤중에 안 보이는 건 없을 거라고 그는 자위했다.

아직 아영에게서 연락 오지 않아서 석민은 어떻게 시간을 끌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여기에 있을까?

원래 편의점에서 사려고 했던 물품들은 혜원과 긴 밤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사서 품에 잘 넣어두었으나 그걸 오늘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 통화할 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게 그런 거밖에 없었다.

뭔가 다정한 말이라든가 좀 더 괜찮은 말이 있었을 텐데,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혜원이 울먹거리면서 소리를 지르니 당황한 나머지 무슨 말이든 하려다 보니 그런 말이 튀어 나간 것 같았다.

‘뭐 맞는 말이긴 하잖아.’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잔잔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살려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우리만 이러는 건가?

빈약한 그의 아이디어엔 그거 말고 딱히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좀 어딜 나가서 놀아야 다른 걸 할 게 아닌가?

‘일이 마무리되면 설득해서 다시 한 번 어딜 나가봐야지.’

지난번 당구장 일 이후로는 혜원이 어딜 나가는 걸 더욱 꺼려했다.

그녀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평생 한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조금씩 나가도록 유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생각을 마칠 때쯤 석민은 아영에게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고, 그녀가 말하는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자 가만히 있던 교단의 승용차가 시동을 걸고 따라 움직였다.

불타는 집

아영은 이 일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는 보고를 올리고 답변을 기다릴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지도 어플을 이용해 버려진 건물을 알아보았다.

사태가 터지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풀고자 정부에서 옛 펜션이나 모텔들을 징발 혹은 매입을 해 잘 곳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지만, 버려진 폐공장이나 호텔 같은 주거 건물은 많았다.

이윽고 그녀가 발견한 것은 북한강 상류를 따라 지어진 풀하우스 펜션이었다.

그녀는 여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은퇴를 한 그녀의 옛 상관이 경영하던 곳으로 사태 때 그 상관은 죽었다. 이름 모를 먼 친척이나 가족이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매우 한적한 곳이었고 원래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곳이었다.

거기다 상관은 결혼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 아영이 아는 선에선 버려진 곳이었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트렁크엔 장비와 탄약을 미리 챙겨두었다.

그녀는 석민에게 연락을 취했다.

“장소 구했어요. 문자로 확인하시고 그쪽으로 이동해주세요.”

-알았어. 최대한 시간 끌면서 가지. 미리 가서 준비해.

“알겠어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한적했다. 덕분에 아영은 빠르게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민에게 전달한 건물 앞에 선 그녀는 그곳을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나 노숙인들이 몰래 들어와서 살 법도 한데, 다행이었다.

그녀는 차량을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 주차해놓고 총 가방과 짐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외부인이 침입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높은 담장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대문과 담장을 넘으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아영은 일단 차단기를 올리고 전기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준비에 들어갔다.

평수가 크고 앞마당과 수영장도 있었으며, 3층이나 되는 건물이었다.

그 앞으로는 북한강이 얼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구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강원도여서 그런 듯했다.

장비를 내려놓고 방탄복과 무장을 마친 그녀는 석민의 ak-107 소총을 꺼냈다.

[AK-107]

내구도: 90%

품질: 상중

탄약: 5.54x39mm

러시아,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사제 소총, 권총 손잡이와, 조정간, 핸드가드가 커스터마이징 된 상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탄매가 심하게 낀 상태.

석민은 자신의 동료인 아영이 애국심과 사명을 사이에 두고 어떤 것을 고를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뭐지?’

알림글이 변경되어 있었다. 그 속엔 석민의 적나라한 속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아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날 의심하는 건가?’

하지만 이윽고 그녀도 석민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녀는 석민을 찾고 사명과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문을 닫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아니길 바라고 있지만.

그 생각이 들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존경하고 있는 대통령은 드래곤하트를 통한 에너지 독점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어 했고, 아영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대통령을 설득해서 그들이 서울에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것도, 다른 국가에서 드래곤하트를 빼돌리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뭐가 어떤 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

결국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직 사명이 뭔지는 모른다. 예상일뿐이지 확실한 건 아니다.

천사 베르는 차원의 틈새에 끼어버린 방주를 구하고 차원의 문을 닫길 원하고 있지만, 사명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고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코앞에 닥친 싸움이 더 중요했다.

‘일단은 다음에 생각해야지.’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근처 어두운 풀숲에 몸을 숨겼다. 전기 빛도 안 들어오고 어둠이 짙어 몸을 숨기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물론 상대가 야시경을 끼고 있다면 들킬 수도 있지만.

그녀는 총구 화염을 가리기 위해 마카로프 권총에 소음기를 끼웠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적의 방탄복이나, 방탄모를 피해서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

시간이 흐른 후 석민은 아영이 알려준 주소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주변에 불이 들어온 곳이 여기뿐이었다. 그는 자연스레 아영이 열어 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그의 장비와 총이 있었다.

그는 아영과 통화했다.

“어디 있어?”

-지금 밖에 수풀 속에 숨어 있어요. 미행은요?

그는 커튼으로 막힌 창가의 옆에 서서 커튼을 살짝 들추는 것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한적한 도로로 접어든 이후 대놓고 따라오면 걸릴 것 같으니까 멀리서 추격하더라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격해 오던 차량이 시선에 들어왔다. 차량은 근방 도로 가장자리에 틀어서 멈췄다.

아까 그가 확인해 두었던 차량번호를 확인했다.

-얼마나 끌고 올 것 같아요?

“많지는 않을 거야.”

석민은 그렇게 말한 직후 3층으로 올라가 침실 불을 켰다.

“이 집 좋은데?”

-좋긴 하지요. 원래는 휴양지로 각광받은… 곳이었지요.

석민은 그녀가 이곳을 알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술 한 잔하고 고기 굽고 싶네.”

대화는 길지 못했다.

“요금 나가니까 무전기를 쓰지. 채널은 01번으로.”

석민은 사복 위에 방탄조끼와 군장을 입었다.

“주기적으로 문자 확인해. 채널 감청당하고 싶지 않으니깐.”

아영은 평소처럼 매우 침착하게 기다렸고, 석민은 집안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라디오가 눈에 띄자, 켜서 음악방송으로 맞췄다.

혹시라도 레이저 도청기가 이쪽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석민은 굳이 찾아 나서지 않고 1층에 있는 노래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리 잡고 누웠다.

정말 좋은 집이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영이 무전으로 새로운 차량들이 접근한다고 알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전부 장전한 뒤 조정간 단발로 맞췄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교전해줘.”

그는 개머리판을 접었다. 실내에서 교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스탯을 찍은 그라도 개머리판을 접은 채 쏘면 명중하기 좀 힘들었지만, ak-107의 놀라운 반동 억제력이라면 그래도 해볼 만했다.

준비는 다 마쳤다.

“어디 한 번 찾아오기 쉽게 해볼까.”

그는 침실로 가서 침실의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켜 영화채널에 맞췄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마침 성인영화가 한창 방영 중이었다. 그는 볼륨을 올린 채 두었다.

밖으로도 크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아영은 인상을 팍 쓰다가 이내 피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석민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무기 점검을 하다가 석민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채널 47번으로 무전을 돌렸다.

***

‘좋은 집에서 사는구나.’

박선우는 석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집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 사이 교단의 대원들은 무장을 점검했다.

그들은 기관총에도 소음기를 장착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지금 상황이 어떻지?”

“방금 전에 실내등이 꺼졌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소리랑 불빛이 보이는 것을 봐선 제가 보기엔, 텔레비전을 보며 잠을 청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박선우는 대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석민과 함께 서울로 들어갔던 때를 떠올렸다.

“어떻게 돌입하시겠습니까?”

재촉하는 대원의 말에 생각에서 깬 그는 짜증이 났다.

“가만.”

박선우는 인상을 쓰며 그들을 보다가 장비를 점검하는 대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파 방해기는 준비됐어?”

“그렇습니다.”

반경 300미터 이내에 있는 유선전화, 휴대폰, 인터넷, 라디오, 심지어 텔레비전까지 전부 먹통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장비였다.

그는 돌입하길 주저했다.

‘건물이 생각보다 큰데?’

그가 데리고 온 대원들은 고작 그를 포함 10명이었다.

‘인원이 부족한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 대원들에게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꼴인데, 아니 심지어 배신자 취급까지 받게 생겼다. 그래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에게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선우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석민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들어가 그와 교전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으리라 판단했다.

“왜 안 들어가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나는….”

그러나 좋은 수가 딱히 떠오르지 않은 박선우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