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44화]
‘새끼가, 이제 그렇고 그런 사이로 갔으면 동거해도 괜찮을 텐데.’
다 씻은 후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으며 음울한 눈초리로 칫솔 2개를 보았다.
그녀는 석민이 여기에 계속 있기를 원했지만 차마 그 욕망은 말하지 못했다.
‘왜 스스로 그 말을 못 하는 거야?’
그녀는 석민이 눈치를 챌 수 있게 싱글이던 침대도 더블로 바꾸었건만, 전혀 알아보질 못했다.
그녀는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속옷의 색상까지 몇 번이고 고민한 뒤 하나를 골라 입으려고 했다.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혜원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 그대로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할 사람은 오로지 석민뿐이었다.
“어, 생각보다 늦지….”
-문제가 생겼어.
석민의 말속에서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지금 바로 가지 못할 것 같아.
평소보다도 매우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라 혜원은 그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했다.
“무슨 문제인지 말해 줄 수 있어?”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석민이 대답하길 주저하는 것을 알고 기다렸다.
-교단 애들한테 정체가 들켰어.
“뭐?”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큰 문제에 혜원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가득했다.
-일단 이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거야. 그 녀석들은 너와 내 관계를 모르니깐….
“어떻게 모르겠어? 교구장 놈이 우리가 같이 있는 것을 봤는데!”
울분이 터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바로 주륵 흘러내렸다.
“아니, 너 대단한 놈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일을 그렇게 해.”
-미안.
석민도 마음이 아파왔다.
-걱정하지 마. 걱정할 필요 없어. 다 생각이 있어.
그는 혜원을 달래주기 위해 애써 말했지만, 혜원은 진정되지 않았다.
-일 마치는 대로 바로 찾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래 통화 못 해. 기다려 줄 수 있지?
“아니, 기다리는 건 지긋지긋해! 기다리라고 해놓고 다들 그렇게 떠났어.”
-난 다르잖아.
그 말에 짜증이 난 혜원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르긴 뭐가 달라! 이 새끼야! 너 어디야? 내가 도와줄게! 지금 바로 가서!”
혜원은 현실적으로 그게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아니야, 이건 내 일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나 있어.
“하 참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몸을 씻고 기다리라고 한 건가?
“이 미친 변태 새끼, 지금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너 말고 내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
대답하는 목소리가 장난기로 가득했다.
혜원은 한숨 쉬면서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친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따뜻하고 습했던 화장실에서 바로 나와 찬 공기를 맞는 통에 온몸에서 닭살이 돋고 있었다.
“그래, 이 새끼야. 이미 몸 다 씻었다. 그래,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래, 시발 기다려 줄게! 걱정하지 말라고? 퍽이나 걱정하겠다. 시발 새끼야. 니가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빌어먹을 개만도 못한 새끼야. 직업도 그렇고, 서울 들어갈 때부터 사람 마음 졸이게 하더니 꼴좋다. 어디서 뒈져서 뉴스에 신원불명 변사체로 나와도 걱정 안 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을 게 됐냐?”
그녀는 훌쩍이며 매우 빠르게 말을 토해냈다.
-내 직업에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많이 침울했다.
-이 직업 아니면 너 못 만났을 텐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혜원의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그래, 시발, 끼리끼리 만나는 거지. 니도 변태고, 너한테 욕정 품은 나도 변태고.”
그 말에 석민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돌아가면 가게를 이틀 동안 닫게 해줄게 그래. 씻고 기다려.
“3일.”
대답하면서 혜원은 부끄러운 나머지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라고?
이젠 석민이 황당해할 차례였다.
“아, 3일이라고!”
갑자기 괴성에 가깝게 소리치는 바람에 이어폰을 끼고 있던 석민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야, 듣고 있어?”
-어, 음…. 알았….
“대답하는 게 좀 늦다?”
-아냐! 알겠어. 기다려.
“살아 돌아와.”
그녀는 나지막하게 얼른 말을 덧붙였다.
-어.
“제발.”
통화가 종료되고 혜원은 휴대폰을 자신의 침대로 던져버렸다.
“시발새끼야….”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젖은 머리와 앙상하게 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오빠, 나 어떻게 해…. 보고 싶어. 엄마, 아빠.”
차갑고 어두운 공기로 가득한 집에서 그녀는 흐느끼다가 결국 목 놓아 울었다.
***
“교구장님?”
박선우는 자신의 대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교단 지부로 갔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나고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구장 박재만은 대포만큼 커다란 렌즈가 달린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교단 대원들이 찍은 사진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박선우가 그를 부르든 말든 시선을 거기에 고정한 채 석민과 박선우가 찍힌 사진을 보았다.
“아, 마침 무기 생산을 감독하러 왔다가 온 거야.”
되도 않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며 그는 사진 속 석민의 모습을 주시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김성훈이던가? 그래, 이 친구가 그놈이란 말이지? 이름이 김성훈이 아니라 최석민인 거고.”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박선우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언제 찍은 거지? 그는 대원들을 바라보다가 이들이 성남교구 소속인 것을 깨달았다.
일단 자신의 부하로 배속 받았지만 원래 소속은 성남교구이니 자신보다 박재만을 더 따를 것이다.
‘감시했구나!’
그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 일을 전적으로 맡긴 것은 오직 교주뿐인데, 교구장이 월권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확신하는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박선우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용의선상의 1순위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단검을 가지고 있는데도?”
박재만은 석민과 박선우가 단검을 서로 꺼내는 것을 보며 물었다.
“페어베어 샤익스. 이걸 요즘 구하기 힘들지. 이런 우연이 있나?”
그는 낮게 혀를 차며 다시 사진을 주시했다.
“둘이 아주 죽이 맞는데? 이거 혹시….”
“괜한 오해 사게 하지 마십시오!”
주변인들이 오해에 들기 전, 박선우가 먼저 소리쳐 생각을 막았다.
“애초에 교구장님이 이자와 함께 일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교구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맞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땐 정체를 몰랐으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넘어가고.”
얼렁뚱땅 넘긴 그는 사진을 계속 넘겼다.
“왜 아직 확신이 아닌 거지?”
쉽게 확정 지어 전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고, 또 여전히 석민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같이 싸우고 서로 돕고 전우애도 싹트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오토바이의 도색을 확인했지만, 순전히 오해일 수 있는데다가 그것 말고도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를 찾지 못해서입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나?
이 어수룩한 녀석은 지금 자신이 여기에 끼어들자, 어떻게든 손을 떼게 만들려고 말을 주어 섬기는 듯했다. 박재만은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야 미행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지금 미행 중이지?”
“…그렇습니다.”
교구장 박재만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는 박선우가 아직 석민에게 미련이 남아 보였던 것이다.
“등신같이 주저하지 말고 지금 바로 추격해서 생포를 하든 죽이든 해.”
“하지만 아직은!”
“야, 이 새끼야. 너 정말 배신자인 거야?”
교구장의 일갈에 박선우는 안면근육이 흔들거렸다.
“네가 확신이 들게 해주지. 이거 보이냐?”
교구장은 석민이 흡연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라이터 보이지? 뭔지 알아? 듀퐁 라이터야. 김성일이 가지고 있던 고급라이터. 라이터 하나에 족히 200은 하는 거라고. 난 김성일이 담배 피울 때마다 이 라이터를 사용한 걸 알지.”
교구장의 투실투실한 볼살도 분노로 흔들거렸다.
“이것만 봐도 빼도 박도 못한 증거야! 그런데도 자꾸 헛소리할 건가?!”
박재만의 분노 어린 말에 성남교구의 대원들이 박선우를 에워쌌다. 일부는 벌써 권총을 쥐고 아차 하면 쏠 준비를 한 상태였다.
“네가 배신자가 아니라면, 직접 가서 이 자식 목 따와. 그놈이 네게 선물해준 단검으로 놈의 머리를 썰어오라고. 지금 있는 대원들 10명 붙여주지. 실력 좋으니까 당장 완전무장하고 그놈에게 가. 미행 중이라니깐 놈의 집을 알아내서 급습하라고. 여자는 그 집에 있겠지. 알겠어?”
“알겠습니다.”
“바로 가도록 해. 지금 추격 중인 건 내가 교주께 보고하지. 움직여.”
박재만은 단서가 아주 많아서 조만간 찾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
박선우와 대원들이 나간 뒤 박재만은 따라 나가려는 대원 하나를 붙잡았다.
“저놈은 배신자다. 일 끝나면 바로 처리해버려. 너희가 간 직후에 나도 대원들 이끌고 찾아가지.”
“알겠습니다.”
마지막 대원이 나간 직후 박재만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끝난 직후 그는 교주에게 자랑스럽게 보고할 것이다.
어리석고 약해빠진 박선우가 아닌 자신이 일을 마무리 지었노라고.
그리고 모든 칭송과 천사의 축복은 그가 받을 것이다.
‘사도대에서 가장 실력 좋다는 놈이 너 수준이면 다른 놈들은 볼 필요도 없겠지. 흥.’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교단 대원들을 호출하면서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용인에 있는 우리 경비회사로 가지.”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뒷좌석에 올라탄 그는 그 뒤를 추격하는 봉고차를 눈치채지 못했다. 교구장은 자신에게 새롭고 위험한 위협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만, 그래도 그 자식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
차에 올라탄 박재만은 혹여 석민이 빠져나갈 것을 대비할 보험을 들기로 했다.
휴대폰을 열어 전화번호부 목록에 저장해둔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추격은 있었다.
석민은 치킨집에서 치킨을 주문해서 치킨 2마리를 챙기고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보았던 검정색 승용차가 주차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선바이저 코팅이 거의 불법 수준으로 매우 진하게 되어 있어서, 이런 늦은 시간엔 일반인 눈으로는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탯을 찍은 석민의 눈에는 그 안에 탄 자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스탯을 찍은 그라도 내부에 있는 인원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스탯이 부족해진 건가?
그는 코를 훌쩍이며 인상을 썼다.
‘그러고 보니 계속 바쁘다 보니깐 레벨이 올랐는데도 스탯 분배를 안 하고 그냥 있었어.’
석민은 오랜만에 상태창을 불렀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7
지구력:5
체력:4
활력:6
시력:5
스탯 1
솔직히 말해서 지금 능력도 매우 만족 중이었다.
일반인들보다 곱절은 강했고, 스탯 몇 번만 더 찍으면 사람의 두개골도 손으로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면 망할 놈의 괴수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시력이 부족한 거 같은데, 시력이나 찍을까?’
고민은 깊지 않았다. 그는 시력 스탯을 올렸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7
지구력:5
체력:4
활력:6
시력:4
[열상합치 야간시력능력이 해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