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43화 (14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43화]

“헌터 쪽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근래에 서울에 나타나는 괴수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더군요.”

그건 이미 알렉산드라를 통해 들었었다.

그러고 보니 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문이 불안정하게 열려서 방주가 못 나오고 있다고 했었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는 건가? 그거 말고는 괴수가 넘어오지 않는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면 헌터들도 일이 없어서 힘들어지겠네.”

“그렇죠.”

석민은 끝나고 혜원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일부러 많이 먹지 않았다.

박선우는 석민이 교단에 들어와 성전에 참가하라고 말했었다.

“니네 교단은 정말로….”

박선우의 오른쪽 귀에 낀 무선 이어폰이 깜빡였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이어폰을 눌렀다.

“잠시 실례할게요.”

“어.”

박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갔고 전화를 받았다.

“말하세요.”

-네, 성도님. 지금 오토바이를 확인했는데, 유광 빨강이 아니라 무광 검정입니다.

“그렇습니까?”

답변을 들은 그는 속으로 안도했다.

석민은 적이 아니었다.

‘괜한 걱정을 했잖아.’

-그리고 차량번호를 조회했는데 다른 사람 것이더군요.

“뭐, 그건 당연할 겁니다. 그러면 이제 철수하시죠.”

-알겠습니다. 근처 공장에서 철수하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예전에 판교에서 석민이 원성한을 처리하고 화약 창고를 망가트린 공장이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한결 밝아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온 그의 모습에 석민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탄산음료 병을 땄다.

“뭐 좋은 일 있나 봐?”

“네, 일이 잘 안 풀리던 게 지금 풀리고 있거든요.”

“뭔지 물어봐도 돼?”

석민은 쌈을 싸서 한번 먹은 직후 새로운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긴장이 풀린 박선우는 아까와 다르게 술술 입을 열었다.

“교단의 적을 찾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정보를 거의 다 모았거든요.”

그 말에 석민은 가슴이 살짝 철렁거렸다.

이미 표정 관리 중이었기 때문에 박선우가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조심해야 했다.

“뭐, 니네가 적이 많아 보이긴 했어.”

“2인조 킬러들 같은데. 이번에 그놈들이….”

그들의 귀에 익숙한 단어가 나오자 자연스레 그 소리가 나오는 텔레비전 방향으로 향했다.

-지난번 우정파크빌에 있었던 사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 추정되는 신은숙 씨가 가평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신은숙 씨의 가족인 남편 A 씨와 자식들 또한 잔인하게 칼로 여러 번 찔린 상태로….

“저런.”

박선우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신 씨는 우정파크빌에서 불법적인 무기 거래를 통해 모은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었고,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던 와중에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신 씨가 죽었기 때문에 그들 부부가 횡령한 돈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습니다.

‘결국 저렇게 되었군.’

석민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김성일을 죽인 이후로 우정파크빌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전혀 몰랐었다.

‘뭐, 그래봤자 나랑 이제 연관된 것은 전혀 없겠지.’

그는 시선을 돌려 여전히 텔레비전에 눈을 못 떼고 있는 박선우를 보자 의문이 들었다.

“왜 그래? 우정파크빌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저기의 주인이 죽고 나서 교단에서….”

박선우는 자기가 너무 떠벌리는 것 같아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성일이 죽은 직후 교단이 저길 건든 것이라는 정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기에서 무기 거래를 많이 했었지.”

석민은 고기 한 점 먹으며 말했다.

“무기 구하기 좋은 곳이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어. 그래서 너희는 정말 서울에 갈 생각이야?”

“네, 조만간.”

박선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할 텐데 정말 자신 있어?”

“자신 있고 자시고 간에, 그것은 신앙의 행동이자 우리의 사명이에요.”

“하! 사명이라.”

석민은 이제 사명이란 단어가 나오면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그것은 구원이기도 하고요. 형도 우리와 동참해요.”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석민은 코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그가 불쌍했다.

현 상황에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는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이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천사들은 그걸 노리고 이딴 짓거리를 한 거고.

교인들이 믿는 방주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사들이라 불리는 이계인들 것이지.

천국으로 가는 배가 아니라 그들의 난민선이다.

“난 아니야. 됐어.”

그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말하고 싶어 하던 이발사의 기분이 이런 건가.’

석민의 거부에 박선우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때쯤에 그들의 대화는 거의 끝이 났다.

고기도 다 먹었고 석민의 거부 이후로 박선우도 이 이상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가 계산하지. 먼저 일어나.”

박선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는 제가 사고요.”

“그래?”

그 정도까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먼저 나가서 기다려. 난 화장실 좀 들렸다가 나갈게.”

그는 음료를 많이 마신 덕분에 화장실이 급했다.

먼저 가게 밖으로 나온 박선우는 매우 아쉽긴 하지만 그간 괜히 의심을 해서 마음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뒤 크게 숨을 내쉬며 석민이 주차를 해 둔 오토바이 쪽으로 갔다.

“괜한 걱정을 했어.”

그는 오토바이 뒷좌석을 손바닥으로 땅땅 두드렸다. 그때, 그의 예리한 눈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오토바이의 도색 일부가 거친 돌의 표면마냥 작은 기포 자국들이 있었고, 도색 끝이 살짝 일어나 그 속을 채우던 붉은 빛이 보였다.

“뭐야?”

그는 손톱으로 그곳을 살짝 만졌다.

페인트가 일어난 부분이 바스러지면서 안에 빨간 도색이 제대로 드러났고 그는 숨을 크게 삼켰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였지만 진실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을 돌아와 계산을 마친 석민은 자신의 오토바이 앞에 서 있는 박선우를 발견했다.

박선우는 급히 문자를 누군가와 주고받다가 석민이 오자,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네가 오토바이에 관심 많을 줄 몰랐네.”

“솔직히 추위 때문에 싫습니다.”

박선우의 말이 많이 떨렸다.

“성훈 형, 저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석민은 아쉬운 감정을 표현했다.

좀 더 이야기하면 더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화 받은 거 때문에?”

“그건 아니고, 방금 전에 또 급히 호출전화를 받았거든요.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여기 근처에 우리 교회가 있거든요. 거기로 가야 하는데 바쁘지 않으시면 같이 가서 기다려 주실래요?”

과거의 석민이라면 그는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고는 하나 적대 상태가 본거지로 부르는 건 자칫 함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석민은 제법 박선우를 안다고 생각했고, 근래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기에 만약 혜원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밤이고 여기서 조금 더 늦으면 그녀의 인내심이 달래지 못할 만큼 폭발할 게 자명했다.

“미안, 이후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래요?”

석민은 박선우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그의 손이 자연스레 허리춤에 가는 것을 보았다.

“여자인가 보죠?”

“어.”

석민은 혜원의 생각에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고, 박선우도 따라 겉으론 미소를 지었다.

‘여자친구군.’

그의 내면의 말이 살벌해졌다.

“그러면 다음에 또 보지.”

석민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박선우는 그것을 빤히 보다가 자신의 품에서 단검을 뽑아 보였다. 석민은 그것을 지켜보았다.

본능적으로 그의 몸이 긴장했으나 아직은 박선우에게서 적의를 느끼지 못했다.

“이 단검, 정말 좋더군요.”

“그렇지? 좋은 거야.”

석민도 자신의 소매 속에서 단검을 꺼내서 보였다.

“이제 나에게도 이건 한 자루밖에 안 남았네. 잘 써. 네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에 박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이걸 쓰는 상황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는 그제야 악수를 받아주었다. 악수를 받는 손의 힘이 너무 약했다.

석민은 품속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듀퐁 라이터 특유의 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럼 먼저 가봐. 바쁘다며? 난 한 대 피우고 갈 거야.”

“…네.”

박선우는 단검을 도로 집어넣고 그에게 등을 보이며 갔다.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석민은 담배를 한 모금도 빨지 않은 채 사람들 속에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그제야 그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제기랄,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네.’

갑자기 단검을 뽑은 것도 그렇고, 말투가 다시 바뀐 것도 그렇고.

그 때문에 석민은 그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다.

‘가만.’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 앞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고서 오토바이를 살펴보았다.

오토바이의 도색이 벗겨진 것을 확인한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들켰다.’

그래, 들킨 게 분명하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제기랄, 빌어먹을 시발 이런 미친, 세상에.’

여기에 오래 있어선 안 되었다.

‘그럼 아까 자기네 교회 쪽으로 부른 것도?’

그는 오토바이의 잠금을 풀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헬멧을 쓰기 전에 이어폰을 꺼내서 아영에게서 받은 비화폰에 연결해 통화버튼을 눌렸다.

-네, 석민 씨 일은 잘….

“잘 들어.”

석민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는 무장을 점검했다.

권총 1정에 여분 탄창이 고작 3개였다.

“내 존재가 발각되었어.”

-네?

그만큼 아영도 놀라 되물었다.

“지금 당장 무기 챙겨놔서 대기해줘. 내 것도 마찬가지. 원래 혜원네로 가려고 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안전가옥도 갈 수 없어.”

그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진정하시고 설명을 해주세요.

아영은 휴대폰을 통해 석민이 속도를 올리는 것을 감지했다.

“아니 설명은 나중에 하지.”

그는 백미러로 뒤에 누군가 추격하는지 살폈다.

“들킨 것을 안 이상….”

-그게 사실이라도 지금 과장되게 행동하면 그놈들이 확신을 가지고 더 빨리 행동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석민은 오토바이를 모는 속도를 줄였다.

-침착하게 제 말을 들으세요. 지금은 원래 하려 했던 대로 행동하세요. 일단은 운전을 하시면서 미행이 있는지 확인하시고 평상시대로 평범하게 행동하면서….

그녀도 당황했기에 말을 계속 반복했다.

-제가 준비할 시간을 주세요. 미행이 있다면 제가 안전한 곳을 찾을 테니, 그곳에서 그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요.

“알았어. 일단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어. 이따 다시 통화하지.”

석민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거리엔 차가 별로 없었다.

그는 잠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에 혜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그날 하루를 마친 혜원은 석민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안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항시로 석민이 오길 학수고대했다. 그의 방문은 항상 그녀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는 기계와 총만 가득한 이 외로운 곳을 훈훈하게 만들고, 자신을 달래주었다.

바쁜지 종종 온다는 약속을 어겼지만 오늘은 그래도 늦게라도 온다 했으니 간만의 만남에 기분이 한껏 고조됐다.

혜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온몸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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