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42화 (142/226)

[게이트 오브 서울 142화]

도검 애호가들이나 가질 법한 물건이고 현재로서는 제대로 구하기 힘든 단검이었다.

이걸 소유한 사람들만 알아내면 아마 쉽게 적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

그는 품속에서 그 단검을 꺼내 보았다.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있으니 살벌한 기분이 들었다.

잔 기스가 많았고 끝이 살짝 뭉툭한 게, 분명 많이 사용한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훈 형도 청부업자였지?’

그는 당연하게도 여전히 석민의 이름을 김성훈으로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청부업자에 같은 단검, 게다가 아주 실력이 좋음.

아무리 봐도 석민 같았다.

‘에이, 그래도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는 석민이 어디에서 사는지 몰랐다.

‘우연이 계속 맞으면 필연이라고 하지만.’

그는 인상을 쓰며 오토바이 속 석민과 아영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그가 아는 석민은 혼자 일을 한다고 했지 동료가 있다는 말은….

‘가만!’

지난번 감염자의 모습을 한 천사 때문에 교회에 갇혀 있었을 때, 석민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저격수도 여자였다.

의심은 더욱 짙어져 갔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그는 아직은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의심은 괜한 화를 부른다.

그 마음가짐으로 그는 신앙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말이 여전히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단 건 아니었다.

의심 없는 믿음만이 자신의 신념을 흔들리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배웠지만, 여전히 그때 감염자의 모습이었던 천사는 그의 신앙을 흔들리게 했다.

영적인 존재가, 신의 대리인이자 전령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사람과 같은 감염이 되는 건 그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적이어야 하는 존재가 총이나 폭탄에 맞아 고통스러워하고 울부짖었다.

‘괜한 생각하지 말자.’

그는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잡념이 많아지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그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머릿속은 다시 석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한번 연락을 해보고 만나볼까.’

연락해서 만난다면 모든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만날 것인가?

‘술 마시자고 하지 말고 밥만 먹자고 하면 되겠지?’

그렇게 하면 석민이 타고 오는 차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박선우는 휴대폰을 들었다.

***

오토바이를 재도색을 하기 위해 석민은 락카 스프레이를 샀다.

우정파크빌에서 추격을 받은 뒤, 그 상태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살행위라 생각했다. 그래서 혜원을 만나러 가는 것도 미룬 채 불법으로 새로운 번호판을 구해두고 재도색을 위해 시간을 마련했다.

“도와드릴까요?”

아영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어차피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색깔이 확 튀는 유광 빨강보다는 무광 검정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만 도색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작업이 매우 어설펐다.

어떤 부위는 스프레이를 너무 뿌려서 눈물 자국이 생기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너무 크게 발라서 이상한 자국이 났고, 또 어떤 부위는 너무 얇게 발라서 빨간 부분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전체적인 색깔만 바꾸는 것이고 그는 오토바이를 소모품마냥 험하게 몰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색을 마치고 그것이 마른 후 재조립이 끝날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어, 선우야. 오랜만이네?”

-네, 형. 잘 지내시고 계시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나야 뭐 잘 지내지.”

-근래에 자주 통화도 못 하고 일이 많아서 한 번 전화 드렸어요.

“교단 일이 바쁜가 보지?”

석민은 교단인이라도 박선우는 딱히 싫어하지 않았고, 그가 나름 교단 내부 사정을 술술 불기도 해서 이 관계를 계속 지속시키고자 했다.

-아뇨, 이제 다 끝났어요.

“뭔 일 하는데 그렇게 피곤해해?”

그는 살짝 박선우를 떠보았지만 원하는 대답이 아닌 약간 조심스러운 답변을 받자, 살짝 긴장했다.

-전화로 말씀드리기엔 좀 그렇네요. 오늘 일은 끝났는데, 이참에 한번 만날까요?

“오늘?”

-예.

오늘 혜원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렇긴 하지만 박선우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했다. 그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오늘 몇 시? 어디?”

-판교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어요? 거기에 맛있는 갈빗집을 아는데.

“술은 안 마시고?”

그는 킥킥거리면서 되물었다.

박선우는 석민과 함께 서울에 들어갔다 나온 뒤 종종 술을 마시며 일탈을 즐겼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고 사심이 없는 대화였고, 진심 어린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휴대폰을 든 박선우도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하핫, 이젠 힘들어요. 아시잖아요? 저 교단 사람인데.

“이참에 계속 마시지, 안타깝게 되었네.”

석민은 아영이 펜과 종이를 가지고 오자, 손짓으로 거부를 했다.

“그래, 그러지 뭐. 나도 오늘까지는 한가하니깐.”

-알겠습니다. 그러면 판교역 사거리에서 뵈어요. 저녁 6시까지 오세요.

“6시?”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0분.

“집이 좀 멀어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

그 말에 박선우는 자신의 메모지를 열어 글을 적었다.

[판교역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범위]

-그러면 7시로 할까요?

“그렇게 하지. 좋아, 좀 있다가 보자고.”

석민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자 아영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 교단 사도대 사람인가요?”

“어.”

“만나자고 했어요?”

“응, 같이 잡담을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국내에서 지금 교단에 관한 정보를 가장 쉽게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석민 씨뿐일 거예요.”

“국정원이나 군대, 경찰이 있는데 뭘 그리 말해.”

석민은 그녀가 과도하게 자기를 띄운다고 생각했다.

“아뇨, 진짜예요. 뭐, 저도 정보 쪽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거기는 다른 나라에서 파견 온 휴민트들 견제하느라고 바쁠걸요? 외국 군대가 진주한 이후로 많이 힘들어졌지요. 게다가 교단의 고급정보는, 정말로 얻기 힘들어요. 그놈들이 보통 사이비예요? 무슨 프리메이슨마냥 비밀 결사같이 행동하니깐요.”

“그래?”

그 말에 석민은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또 들어볼게. 그 녀석, 생각보다 입이 싼 놈이니깐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은 들을 수 있을 거야."

평소보다 들떴다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나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중랑철교에서 왕십리역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고작 1시간 30분 거리였다.

용이 걸어 둔 주문하며 괴수나 감염자들을 피해서 가야 하겠지만, 전동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더욱 빠르게 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고 이 모든 걸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명이란 생각에 그는 잠깐 침울해졌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지만, 짐작하건데 그것이 문을 닫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정부의, 대통령 성현제의 뜻과 위배되는 일이었다.

일단 베르의 제안을 아영이 받아들였지만, 만약에 그렇게 이권이 충돌한다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녀가 자신의 뜻에 따랐지만, 대답이 어중간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근래 계속 일이 생기다 보니 금방 새 기억으로 채워져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물거렸다.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생각을 마친 그는 움직였다.

***

-뭐? 오늘 온다고 했잖아. 왜 내일 오는 건데?

“급한 볼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어.”

상황은 상황이고, 어쨌든 석민이 약속을 취소하는 입장이라 혜원의 목소리는 갈수록 올라가고 험악해지고, 상대적으로 석민은 비굴해져 갔다.

“매우 중요한 만남이야.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미안해.”

하지만 혜원은 그리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다. 말 대신 혜원의 씩씩거리는 콧바람만 들려오자, 잔뜩 초조해졌다.

-알았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석민은 혜원에게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내일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