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40화]
-전동차 방향으로 갔습니다.
아영의 말에 반대편 승강장 쪽 계단에서 대기하던 석민이 몸을 급히 움직였다.
아직 다리 방향으로 저들을 몰아세우는 작전은 유효했다.
그는 승강장을 따라 달렸다.
“적이다!”
석민이 요란하게 발소리를 내며 달리자, 그 소리에 헌터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소총을 단발로 계속 사격했다.
연약한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있는 전동차 특성상 차체 측면이 쏘는 족족 구멍이 났다.
석민은 자신이 달리는 것에 맞춰 전동차에 구멍이 나자 그 또한 슬라이딩을 해서 총알을 피하고는 기어서 후방으로 빠졌다.
석민이 바짝 엎드리고 있을 만한 곳에 총알구멍들이 연달아 생기고, 승강장 바닥에 맞아 튕긴 총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에 박혔다.
위험한 도비탄의 파편이 석민의 머리를 스치자 그는 오랜만에 티타늄 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계단으로 안 내려갔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전동차에서 못 나오게 할게요.
“어”
바이저를 내린 상태에선 지향사격 말고는 제대로 된 조준이 불가능했지만, 그에겐 HMD 같은 조준점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걱정되지는 않았다.
반대편에서 석민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포위되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정석호는 혀를 찼다.
저들 숫자가 천사를 제외하면 2명뿐이었기에 둘의 위치가 확인된 이상 계단으로 내려가면 그 잘난 매복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잠시 주저하는 사이 아영은 승강장 위로 올라가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맞은편 계단을 향해 이동했다.
헌터 하나가 아영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방향을 보다가 가까이 있는 계단에서 아영의 머리가 나오자 기겁을 하며 몸을 숨겼다.
“여기에 있어! 여기에!”
그들이 움직일 새도 없이 아영은 수류탄 파우치에서 수류탄 한 발을 꺼내 그들을 향해 던졌다.
수류탄은 스크린도어에 막혔고 폭발하면서 주변의 유리와 전동차 벽면을 박살냈다.
일반적인 수류탄보다 작약이 많아 강력한 러시아제 방어용 수류탄이 지근거리에서 터지자 그 진동에 중랑역 역사의 천장에서 흙먼지가 흘러내렸다.
의도적으로 적을 죽이려는 것이 아닌 적들이 물러나게 하려는 계략이었다.
크게 폭발음이 나자 그들은 이를 악물고 낮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가까이서 터진 폭음에 그들은 귀에선 이명이 들려왔다.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잔뜩 당황한 동료가 그렇게 말하자 정석호도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당할 것이라 판단해 수류탄을 1발 꺼냈다.
상대는 2이고 천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는 3명이니, 한쪽만 공격한다면 이곳에서 벗어나고 각개격파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같이 제압사격을 가하죠.
그리고 그것을 염려한 아영은 연발로 같이 사격하자고 무전을 보냈다.
“알았어.”
석민도 조정간을 연발로 바꾼 직후 대기했다.
“준비 완료.”
-3…. 2…. 1….
두 사람이 십자포화마냥 양쪽에서 연발로 사격을 가하자, 수류탄을 아영의 방향으로 던지려던 정석호는 몸을 숙이고 수류탄에 안전핀을 다시 꼽았다.
그들은 몸을 바닥에 바짝 숙이며 총에 안 맞길 기도했다.
“이쪽으로!”
정석호는 사격이 잠잠해지자 전동차의 운전석의 문을 억지로 열었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열쇠 구멍에 총알 몇 발을 쏘자 쉽게 열렸다.
그는 운전석 측면에 위치한 문을 열어서 연막탄을 던졌다.
이 상태면 개죽음이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서 다리 방향 철로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로프 가지고 있지?”
“가지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로프를 연결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 말고는 퇴로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연막탄을 주기적으로 던지면서 방음벽이 없는 다리까지 열심히 뛰었다.
그들 뒤쪽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사격음이 들려왔고 그들의 머리 위나 바닥 근처로 총알들이 박혔다.
정석호는 고개를 돌렸다.
연기 속에서 바이저를 내린 석민이 단발로 계속해서 사격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석민이 의도적으로 다른 곳에 쏘는 것도 모른 채, 몸을 돌려 앉아 총 자세로 석민의 머리를 노리고 총을 쏘았다.
주변에 총알들이 박히자 석민이 기겁하며 옆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머리에 총알이 맞는 걸 피할 순 없었다. 다행히 티타늄 헬멧을 쓰고 있었고, 거리도 떨어져 있는데다가 정석호가 숨도 모르지 못한 채 무작정 쏜 거라 충격에 뒤로 넘어지는 것 빼곤 부상은 없었다.
‘시발, 더럽게 잘 쏘네.’
석민은 투덜거리면서 총알이 맞은 자리를 어루만졌다.
머리에 총알을 맞았는데도 석민이 기어서 옆으로 숨어들어 가자 정석호는 악물고 다시 도망치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들은 낼 수 있는 가장 전속력으로 달려 눈먼 총알들을 피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장비를 비롯해서 총에도 무게가 있는지라 금세 지쳐갔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미약하게 연기가 나던 침목이 쌓인 방향으로 가서 몸을 숨겼다가 석민이 조악하게 만들어 둔 담배 뭉치를 보더니 그대로 잡아 던졌다.
그 순간, 아영의 모습이 보이자 그들은 침목에 총을 견착하고 몇 발을 쏘았으나, 거리가 제법 되는지라 맞지 않았다.
아영은 적들이 자신에게 직접 사격하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바닥에 두었던 저격총을 잡았다.
그녀가 이쪽을 노리고 조준을 하는 것이 조준경을 통해서 보이자 정석호는 급히 위험을 알렸다.
“엎드려!”
그들이 몸을 숨기기 무섭게 콘크리트 침목의 모서리에 총알이 박히면서 박살 나 버렸다.
“라푸아 매그넘탄인가?”
소리만으로 무슨 탄인지 알 만큼 정석호는 노련했지만, 그렇다 한들 지금 도움이 되진 못했다.
“무장점검.”
그들은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점검했다.
연막탄 2발과 무기들이 충분히 있었으나, 이미 교전의 의지를 일은 상태였다.
그들은 연막탄을 터트렸다.
“움직여.”
그 직후 콘크리트 침목에 사격각이 안 나오는 것을 의지한 채 천천히 기어서 다리 쪽으로 움직였다.
거리는 30미터가 채 되지 않았고 다리난간에 밧줄을 연결해서 간다면 안전할 것이다.
“시발, 이거 완전 똥 밟았네.”
아까 다리 쪽에서 발견했을 때 쏴 죽였어야 했는데….
벌써부터 후회막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와이번이다!”
설상가상 머리 위에서 와이번의 괴성이 들리자, 정석호의 동료 중 하나가 마지막 연막탄을 터트리고 다리 위로 달렸다.
정석호와 다른 동료도 다급해진 나머지 그를 따라 달렸다.
이윽고 가장 먼저 달리던 동료가 베르가 말했던 선을 넘어섰다.
“뭐, 뭐야?”
바닥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더니 철교를 지탱하던 콘크리트 기둥에 크게 금이 가고, 곧 엄청난 고성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무언가 비명을 낼 새도 없이 바닥이 꺼지면서 그들은 아래로 내동댕이쳐졌고, 다리가 무너지면서 커다란 흙먼지를 일으켰다. 철교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지상 쪽 고가철교도 무너지고 있었다.
정석호와 남은 동료는 다시 중랑역 방향으로 뛰려고 했지만, 이미 바닥이 꺼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뒤덮었다. 정석호는 급히 옆으로 피하려고 했으나 철교 위에 있던 전력선과 전신주가 무너지면서 정석호의 몸을 덮쳤다.
‘언제 여기에 폭탄을 설치한 거야?!’
정석호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철골기둥을 보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상식적으로 석민과 아영이 폭탄을 설치할 시간 따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억지로라도 자기합리화를 하고야 말았다.
괴성을 지르며 먹이를 노리고 급강하를 하려던 와이번이 크게 놀라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흙먼지가 잔뜩 일어나는 통에 아무래도 먹이를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이내 멀리 날아가 사라졌다.
“…굉장하네.”
석민은 무너진 다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새로운 위협이 찾아왔다. 총성을 들은 드레이크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석민과 아영은 몸을 숨긴 채 그것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드레이크 무리는 킁킁거리면서 시신들을 찾아다녔고, 압사당하거나 추락한 헌터들의 시신을 기어이 찾아내서 물고 가버렸다.
드레이크에게 물린, 아직 죽지 않은 헌터 하나가 미약한 비명소리를 내며 권총을 꺼내 마구 발사했지만, 입이 비어있던 드레이크 하나가 그 팔을 물어 잡아 뜯었고 저항은 끝이 났다.
드레이크에게 산채로 잡아먹히기보단 차라리 죽은 게 축복이었을 지도.
“끝났군.”
석민의 눈앞에 사라졌던 천사 베르가 나타나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그건 무슨 능력이야.”
“우리가 가진 능력 중 하나이지. 덕분에….”
“그런 능력이 있으면 앞으로 자주 써야겠어. 네 키가 너무 커서 쉽게 들키니깐.”
석민은 투덜거리면서 헬멧을 벗어 총알 맞은 자국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헌신자 괴수한테서 맞은 것도 그렇고 계속 머리에만 총알이 맞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맞아서 헬멧이 멀쩡할까? 걱정스러웠다.
‘조만간 헬멧을 바꿔야겠어. 그런데 이걸 또 구할 수 있을까?’
석민은 다시 헬멧을 쓴 직후 아영과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방음벽을 따라 걸어갔다.
다리는 말 그대로 아주 깨끗하게 무너졌다.
어디 측면으로 기울어져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무너졌다. 그 덕분에 다리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강물 위에 안착했다.
강물은 다리 위에 범람하지 않았다.
“완벽해, 내가 예상했던 대로 되었어.”
석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지랑 맞닿은 부분은 경사져 있었고, 그도 아주 완만한 덕에 지나가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럼 지나가 볼….”
“다음에 지나가죠.”
아영이 자신이 저격소총의 볼트를 당겨 빈 탄피를 빼내고 새 탄약을 약실에 밀어 넣었다.
왜? 라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다리 너머로 수많은 드레이크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숫자가 족히 30은 돼 보였다.
그것들은 이쪽을 빤히 보더니 이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뛰어!”
석민과 아영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하지만 네발로 뛰는 드레이크 무리를 두 다리로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천사 베르가 두 사람을 양 겨드랑이에 껴서 끌어안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망우역에 도착하자 석민과 아영을 내려주었다.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고속으로 나니 석민과 아영은 동태처럼 얼어버렸다.
“한 가지 안… 사실이… 있는…데….”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석민은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려는 게 아닌, 그 작은 불꽃에라도 몸을 녹이고자 그랬던 거였다. 그조차도 손이 덜덜 떨려 몇 번의 시도 끝에야 붙일 수 있었다.
입술 또한 파랗게 변했고 발음도 샜다.
“드래곤의 주문이고 자시고 널 통해 날아가는 것은 사양해야겠어.”
아영도 손을 녹이기 위해 라이터 불 위에 양손을 올렸다.
다리는 무너졌고 그 덕분에 길은 개척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너머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았는데, 용의 주문에 의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길 빌어야지.’
망우역 근방에 마련한 근거지에 들어온 그들은 각자 손난로 5개씩 개봉하며 몸을 녹였다.
“너희들은 너무 약하군.”
“아, 그래?”
석민은 화가 났지만, 딱히 반박은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영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풀이 죽고 사기도 꺾인 그들은 더 이상 임무수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