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39화 (13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9화]

적에게 조준당하고 상태였다.

그러나 이어서 왜 쏘지 않고서 조준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석민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육지 쪽 방음벽을 향해 걸었다.

“자연스럽게 날 따라와.”

석민의 말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영은 바짝 긴장을 하며 그의 말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방음벽에 붙은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시발.”

석민이 뭣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눈치 챈 아영은 텍티컬 잠망경을 꺼냈다.

“어느 쪽이죠?”

석민은 아파트 방향을 가리켰다.

“베르, 여기 붙어서 앉아. 제기랄, 감시당하고 있었네.”

그는 긴장으로 입안이 바짝 마르자 반쯤 얼어버린 수통을 흔들어서 살얼음들을 깨트리고는 물을 마셨다.

강추위 속에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식도를 따라 들어가니 오한이 들었으나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여기를 주시할지도 몰라. 다른 곳으로 간 뒤 살피지.”

그의 말에 아영은 조금 떨어져서 아파트를 보았다.

그녀는 깨진 유리창과 포격에 생긴 콘크리트 속 구멍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와 스코프 렌즈를 볼 수 있었다.

“숫자가 적어도 3명인 것 같아요. 왜 우리를 안 쏜 거죠?”

“나도 모르겠어.”

혹시 베르의 존재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근거는 없었고 단순한 추리였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문제는 놈들이 여길 주시했다는 거야.”

그게 호의적인지, 단순하게 경계를 하는 건지, 혹은 노리고 있는 건지, 지금으로써는 가늠할 수 없었다.

“돌아갈까요?”

그녀의 말에 석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만약에 저들이 적대 목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이곳에 지나치게 오래 있으면 안 됐다.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 방향이 막힐지도 몰랐다.

“베르, 아까 산 사람이 이 다리 위로 올라가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했나?”

“그렇게 말했지.”

천사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빨리 돌아가면….”

“잠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석민은 품속의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아영의 눈이 뾰족해졌다.

“제가 여기서 다시는….”

“혹시 고무줄이나 머리끈 가진 거 있어?”

그제야 석민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영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찾아서 그에게 주었다.

석민은 1개비밖에 안 피고 그대로 남아있던 담배 1갑을 모두 꺼내서 머리끈으로 한 번에 말아 모았다.

“제길, 이거 너무 아까운데.”

그가 낮게 투덜거리자, 아영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 적어도 담배가 도움이 되긴 하네요.”

석민은 손바닥으로 바람을 가리며 간신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궐련 같은 담배의 종이에는 화약을 포함한 첨가물이 있기 때문에 담배를 빨지 않아도 알아서 잘 타들어 갔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석민과 아영은 그것을 기차 신호등 옆에 두었다.

그 뒤엔 콘크리트로 만든 침목들이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에 중랑역 쪽에서 다가온다면 침목과 신호등에 가려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함정인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중랑역 승강장 밑으로 가자. 베르, 너 숨을 수 있어?”

“너희 족속끼리의 싸움인가?”

그의 물음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다면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그러더니 그것은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 석민은 허탈한 웃음 한 번 내뱉고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의문을 품기도 전에 몸부터 움직였고, 그 뒤를 아영이 따랐다.

족히 400미터쯤 되는 중랑역으로 그들은 단숨에 달려서 승강장 밑 대피공간에 몸을 웅크렸다.

“은폐하고 준비해.”

***

헌터의 일을 하면서 가끔 동업자를 만나면 약탈꾼 일도 서슴없이 하는 정석호의 일행이 그 아파트에 자리를 잡은 것은 동대문구로 진출하려고 안전한 루트를 찾기 위해서였다.

중량천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주변이 탁 트여 있어 괴수나 다른 동업자들에게 걸려 죽을 확률이 높은 곳이었다. 그래서 가장 높아 보이는 아파트에서 대기하며 주변을 관측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동업자로 보이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바로 총을 쏘지 않은 것은 석민의 단순한 생각대로 베르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천사 비슷한 존재에 크게 놀라 당황했고, 바로 총을 쏘지 못했다.

“저게 진짜인가? 소문이나 괴담으로 듣던 게 사실이었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 천사라는 존재를 잡아 정부 쪽이나 암상인을 통해 넘기면 큰돈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행동에 들어갔다.

“아니면, 그 뭐더라? 천국의 문이라고 불리는 사이비들이 비싸게 살지도 모르고.”

이런 결정을 빨리 내렸어야 했는데!

그들은 방음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석민 일행을 입맛 다시며 보았다.

팀에서 스나이퍼를 담당하는 지선호를 그들의 은신처에 남겨두고 나머지 일행 3명과 함께 움직였다.

중랑역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간 그들은 매우 숙련된 모습으로 각자 주변을 경계하며 승강장에 도달했다.

그들이 승강장에 도달한 건 석민이 연기를 피운 지 고작 10분이 지난 후였다.

자리를 잡은 정석호는 무전기의 발신 버튼을 눌렀다.

“선호아, 걔네 아직도 거기에 있어?”

그의 물음에 지선호는 바로 대답했다.

-많이 희미해졌지만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처음엔 담배 연기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추위로 모닥불을 만든 것 같네요.

그 말에 정석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너무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은신처도 안 만든 채 탁 트이고 바람 부는 한 가운데서 모닥불을 피운다?

크게 싸우리라 생각했던 정석호는 쉽게 풀려가는 일에 긴장이 탁 풀리며 어이없어졌다.

‘혹시 함정이 아닐까?’

한편으론 의심이 들었다. 그는 만일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여기고 자신의 ak-103 소총에 달린 4배율짜리 조준경으로 그곳을 관찰했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다곤 하나,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나오는데도 인기척은 확인이 되지 않았다.

특히 연기가 청회색 빛인 게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알기론 담배에서만 보이는 연기 색이었다.

‘이건 함정이야.’

그의 오랜 경험으로 심사숙고해 보건데 저것은 함정이었다.

‘우리가 살펴본 걸 어떻게 안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저들은 눈치 챘고 도망치려는지, 역으로 함정을 준비하는 건지 몰라도 매복을 할 거라면 이곳에서 하리라 판단됐다.

그는 말을 하는 대신에 수화를 통해 동료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신호에 내리자 다른 헌터들은 바로 움직였다.

그들은 중랑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중랑역은 역사 내에 2개의 전동철이 있었기에 그들은 바로 승강장 아래를 수색하지 못했다.

***

‘들켰네.’

석민은 입맛을 다시며 머리 위의 인기척을 감지했다. 소리들이 흩어지는 것이 나눠져 수색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영은 이미 가지고 있던 T-5000 저격소총을 내려놓고 마카로프 권총과 AKS-74U을 꺼내 들었다.

버려진 전동철의 문을 억지로 여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승강장 아래도 조사할 것이다.

석민은 수화로 승강장 뒤쪽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아영이 알았다고 신호를 보내고 그들이 천천히 움직이려던 그때, 석민은 눈앞에 사람의 하체가 착지했다.

석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자의 엉덩이를 보게 되었다.

아직 총을 쓸 수 없었다.

아무리 소음기가 달린 권총이라도 소리를 완전하게 막아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사용하면 저들의 귀에 들린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이르게 들키게 될 것이다.

그는 무기들을 최대한 조용히 내려놓고는 왼쪽 소매에 손을 넣어서 단검을 꺼냈다.

‘한 번에 끝내야 해. 한 번에.’

그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자를 주시했고 천천히 접근했다.

잠시 바깥쪽을 경계하던 헌터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석민의 손이 그자의 군장 뒤쪽에 달린 손잡이를 꽉 잡아당겼고 그대로 단검을 그자의 가슴팍을 찔렀다.

“흐윽!”

스탯을 찍어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는 석민이 당기자 그자는 뒤로 그대로 나자빠졌고 가슴에 단검이 찔리면서 폐에 바람이 빠지자, 제대로 된 비명도 내지 못했다.

그자는 살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무자비한 손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선 목을 다시 찍었다.

바짝 긴장한 채 처리했더니 단검을 회수해보니 끝이 살짝 부러져 있었다. 아마도 뼈에 박힌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찌르기엔 적합했다.

그자의 옷에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직후 쓰러진 헌터를 끌어 구석에 밀어 넣은 후 석민은 아영을 따라 뒤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주변의 소음에 집중했다.

전동차 안을 수색하던 헌터들은 다행히 그 미약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단검을 다시 소매에 넣었다.

남은 것은 이제 3명이었다.

헌터들이 전동차를 수색했지만 바짝 말라버리거나 얼어버린 시체들만 보이자, 반대편 출입문을 열어 전동차에도 올라타서 수색을 했다.

“진석아, 승강장 아래쪽은 어때?”

정석호가 작은 목소리로 승강장 아래쪽으로 간 동료를 향해 무전을 쳤으나 답신이 없자, 가까이 있던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무언의 대화와 수신호가 오간 뒤, 그들은 서로 떨어진 거리를 좁히고는 아영이 있던 승강장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서로 엄호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고는 사방을 주시했다.

지하철역 특성상 숨을 곳이 많지 않았다. 거기다 이미 아군 한 명이 당한 상태여서, 동료 중 하나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 이 매복지를 벗어나자고 했으나 정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들, 프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아군을 처리한 실력을 보면 분명 이들은 프로였고, 같은 부류일 확률이 높았다. 약탈자들은 한 번 발견한 무리는 끝까지 추격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나중에 추격당해 더 호되게 당할 게 분명했다.

‘방심했어. 흩어져서 수색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2인 1조는 해야 했어.’

처음부터 승강장 밑에 있던 것을 보아 저들은 우리와 싸울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도 교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선호야, 진석이가 당했어.”

그는 무전으로 자신의 팀 스나이퍼에게 말했다.

“은거지 정리하고 이동해. 예전에 보아두었던 곳으로 미리 가 있어.”

그는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전동차 앞칸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그들 반대편 승강장 아래에서 아영의 머리가 나타나더니 자신들을 노리고 사격을 가했다.

정석호는 몸을 날려 승강장 구석으로 숨었다.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담벼락 덕분에 그들은 총에 맞지 않을 수 있었다.

반격을 가하기 위해 그들은 총구를 아영에게 돌려 사격을 가했고, 아영은 급히 몸을 숙였다.

“함께 움직여야 해!”

정석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기 위해 전동차의 문이 열린 방향으로 슬라이딩을 해서 넘어갔다.

그는 총을 반대로 잡아 엄호 사격을 가했고 그사이, 나머지도 급히 그가 있는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