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38화 (138/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8화]

석민이 말했다. 봉화산에 있던 드라니트처럼 그 용도 거기 산꼭대기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자고 있다면 우리로선 좋은 게 아닌가? 방해가 안 될 테니깐.”

“그것은 문을 지키는 파수꾼이야. 높은 곳에 있고 불안정한 문에서 떨어진 안전한 곳이지.”

“그 말은 즉.”

“자고 있지만, 문으로 접근하는 자들이 있으면 용은 깨어날 것이다.”

“아니, 자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내는 거죠?”

아영이 물었다.

“주문을 걸어놓았지.”

참 쉬운 설명이라고 석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힘이 저쪽 세계에선 흔한 것이었다.

그나마 소설이나 영상매체, 게임을 통해 그런 개념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드래곤은 가장 놀라운 주문을 쓸 수 있는 생물이기도 하지.”

베르가 말했다.

지난번에 보았던 환상에서도 그런 점들은 이미 파악했다.

그것을 상기한 석민이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진입해야 하지?”

“일단은 그곳으로는 날아서 갈 수 없다. 나 같은 천사는 주문 말고 바람을 통해 전달되는 냄새만으로도 드래곤이 깨어날 것이야. 나의 동료들도 그쪽으로 날거나 접근하지 않는다. 그러니 안전한 길을 찾아 가야 한다.”

그 안전한 길을 찾는 것은 당연히 베르와 함께해야 했다.

“주문은 해제할 수 없나요?”

아영의 물음에 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주문이 걸린 것은 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석민은 혀를 낮게 찼다.

‘원래 중앙선 철로를 따라갈 생각이었는데.’

직행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니 분명 거긴 주문에 막혀 있을 것이다.

“주문에 걸리면 용만 깨어나나요?”

“아니, 그러한 행위는 용의 짜증만 일으키게 되니 깨어나는 주문은 많지 않다. 다만,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지.”

그 함정은 그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릴 수 있는 함정들이라고 천사가 말했다.

석민은 베르가 드라니트에게 발사하던 마법 같은 빛줄기를 생각했다.

‘지뢰나 부비트랩과는 다른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그의 말에서 모순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강북에도 헌터들이나 괴수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그 함정을….”

“함정이 눈에 보이는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베르가 말했다.

“가령 길에 함정이 있다고 치면, 갑자기 옆에 있는 건물이 무너지면서 함정에 설치된 곳에 들어선 사람들을 덮치겠지. 건물 자체에 강력한 주문이 걸려있어 마치 노후화된 건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면 어디선가 보이지 않던 너희가 말하는 감염자들 수백이 나타나 덮칠 수도 있지. 주문이란 그런 것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 마법이라는 것과 크게 다르다. 네가 말한 헌터라는 인간들은 단순하게 자기가 사고 당했다고 생각하겠지. 즉 그들도 함정에 당하고 있다 이 말이다.”

“그렇군.”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그럼 우선 가보자.”

석민은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휴대폰 지도 어플을 켰다.

“중앙선 철로를 따라가는 걸 구상했지만, 아무래도 함정이 있겠지? 그러면 일단은 중앙선 철도를 따라 중랑천을 넘을 수 있을지 알아보자.”

“네, 그러는 것이 좋겠지요.”

그녀는 세심하게 지도를 살펴보며 중얼거리듯 작게 답했다.

“최대한 어디쯤에 함정이 있는지 알아낸 직후에 다른 길을 알아내며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들은 1주일 치 식량을 준비했고 탄약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

계획이 잡혔으면 이제 움직이면 될 것이다.

아영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역 하나를 가리켰다.

“망우역, 망우역을 통해서 움직이죠. 그리고 망우역 주변에 새로운 은거지를 만들어내죠. 여기는 역과 너무 떨어져 있어요.”

“좋은 생각이야. 베르, 널 베르라고 불러도 괜찮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베르는 살짝 인상을 썼다. 마치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자신의 이름을 마구 부르는 것을 목격한 반응이었다.

“뭐, 그렇게 불러도 좋다.”

“좋아, 그러면 우리가 짐을 옮길 수 있게 도와줘. 같이 짐을 옮기면 우리가 하는 일이 매우 쉽게 진행될 거야.”

“…알겠다.”

찝찝한 표정으로 허락했음에도 석민은 그런 베르의 행동을 깔끔히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탐탁지 않은 베르의 대답이 들린 순간, 석민과 아영의 눈앞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거짓된 전령이 합류하였습니다.]

[거짓된 전령을 따라 문으로 가서 사명을 완수하라.]

아영의 눈에도 새것이 나타났다.

[선택받은 자를 인도하고, 거짓된 전령을 따라 문으로 가서 사명을 완수하라.]

두 사람은 문구가 나오자 흠칫 몸을 떨었다.

베르는 갑자기 두 사람이 몸을 떨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없어.”

석민이 대답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ak-107 소총을 쥐었다.

“그러면 일어나지.”

무너지는 다리

예상은 했지만 베르는 인간이 절대로 낼 수 없는 엄청난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베르는 양 겨드랑이에 그들이 쓰는 커다란 가방을 끼우고 자신의 무구까지 들었음에도 매우 가뿐하게 움직였다.

“별로 무겁지 않다.”

그들의 경탄 어린 시선에 베르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네.”

 석민은 저것들도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쑥스러움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망우역에서 겨우 도로 하나 떨어져 있는 다세대주택의 3층에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했다.

건물이 제법 멀쩡한데다가 외부 유리창도 깨지지 않아서, 여전히 한기가 가득했지만 집안에 널브러진 이불로 대충 막을 순 있었다.

다만 덩치가 매우 큰 베르가 안으로 들어오기 매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짐들을 옮겨놓은 후 그들은 담을 넘어 철도로 들어갔다.

망우역은 3개의 노선, 경춘선, 중앙선 그리고 경강선 KTX가 모두 모이는 역이자 나눠지는 역이라, 대피선로를 비롯해서 철도가 아주 많았다.

버려진 화물열차들은 붉게 녹이 슬어 있었고 전동전철은 난리 통에 불탔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들은 철로를 따라 걸었다.

하늘이 개방된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짝 주의하면서 걸었다.

간간이 괴수의 비명을 지르는 듯 한 괴성이 들려와서, 가끔 그들은 불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와이번에게 낚이는 불상사를 피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철로 옆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방음벽에 붙어서 걸었다.

베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다란 창을 고쳐 잡고 하늘을 주시했다.

“내 동료들은 구름 속에서도 충분히 지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로 가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군.”

그렇지만 왕십리역 쪽으로 가는 일반도로 또한 같은 조건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석민은 베르의 말을 흘리고는 찬바람에 총을 끌어안고는 몸을 바짝 움츠린 채 앞으로 걸었다.

그들은 망우역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완전히 불타버린 상봉역을 따라 걸었다.

용이 이곳을 불태웠는지 까맣게 타버린 시체들로 가득했다.

마치 검은 숯을 사람의 모양으로 만든 것과 같았는데, 표정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다행일 지경으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강북지역에 헌터들이 보이지 않는 건 그 때문이려나? 석민이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아영이 입을 열었다.

“여길 따라가다간 얼어 죽을 겉 같네요.”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야.”

그리 말했다가 온도를 확인하려던 석민은 괜히 사기만 떨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들은 선로를 따라 그대로 중랑역을 지나갔다.

그곳엔 벽이 많아서 그런지 더 이상 찬바람이 몸을 치지 않았다. 덕분에 깎이기만 하던 체력이 좀 회복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이대로 쭉 가면 중랑천 위를 지나는 철도교다.

일행은 아까와 다르게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추위 때문에 평소보다 빠른 걸음이었지만 중랑천 쪽 철도교, 중랑철교가 눈앞에 들어왔다.

“다리가 멀쩡하네.”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은 환해졌다.

다리가 멀쩡하니 걸어서 쉽게 동대문구 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중랑철교 말고도 대부분의 다리가 멀쩡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다리를 통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석민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중랑천을 보다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왜 그러시죠?”

의아함을 느낀 아영이 물었다.

“강을 봐봐.”

검은 강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있었다.

“이 추위에?”

아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최소 영하 30도는 될 것 같은 날씨인데 강은 흐르고 있었다.

석민은 중랑구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과거 중랑천은 길을 따라 여가시설이나 체육시설, 자전거 도로 등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였지만, 강은 깨끗한 편이 아니었고 강바닥이 다 비칠 정도로 얕았다.

그런 곳이 이런 강추위에도 얼지 않고 흐른다니, 이치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원유마냥 검은 강물도 이상했다.

“너는 눈썰미가 좋구나.”

베르는 그리 말하고는 석민을 앞지르고 걷다가 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베르는 양손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아마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데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일 테다.

몇 초 후 베르의 손에서 흰빛이 퍼져 나왔다. 그 빛을 중심으로 감춰졌던 장벽이 드러났다.

검은 아지랑이나 연기 같은 장벽은 흰빛과 부딪히며 요동치듯이 흔들거렸다. 그 속에서 검은 연기의 사람 형상이 절규를 지르며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주문이 걸려있다.”

베르가 말했다.

“드래곤의 사악한 주문이다. 죽은 원혼들을 다리에 묶었다. 죽은 자들의 원혼은 산 자들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며 자기들처럼 고통 받아 죽기를 원하지. 우리가 지나가는 순간 다리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천사는 빛을 강에도 쏘았다. 마치 시체에 달라붙은 벌레들 마냥 온갖 얼굴들이 강물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런, 세상에.”

석민과 아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비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한 아영과 석민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강물에 절대로 닿아서는 안 된다.”

베르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석민과 아영은 절대 닿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겪은 용은 이런 것을 하지 않았잖아요.”

아영이 말했다.

그들은 사명을 수행하게 된 이래로 온갖 비현실적인 것들을 보아왔지만, 원혼이니 주문이니 이런 일은 또 새로운 비현실이었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아무리 뛰어난 생물이라도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단순하게 하지 않은 거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드래곤도 급이 있고 종이 다르지.”

베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산에 있는 것은 드래곤들 중에도 가장 뛰어난 존재군.”

석민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런 다른 길로 들어가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베르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다리가 이 상태다.”

그 말은 즉 중랑천을 비롯해서 모든 다리가 이 상태라는 것이다.

“일단 여기서 물러나지.”

석민은 혐오스러운 눈으로 검은 아지랑이들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막혔으니 그로선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면….”

순간, 고개를 돌리던 석민은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본 듯했다.

그것은 다리를 기준으로 남동쪽 강변에 있는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직사광선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아닌, 미약한 빛을 받아 유리가 반사되는 그 특유의 작은 반짝임이었다. 오랜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조준경이 빛을 받아 비치는 것일 테다.

당연히 석민은 잠시 몸을 멈칫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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