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37화]
솔직히 지금 보고받은 무기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박재만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좋아, 전부 우리 트럭이 실어. 의경 중대장에게 미리 말해놨으니까 도와줄 거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해선 안 돼. 김성일은? 확실하게 죽은 건가?”
-네, 관리사무소에서 죽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자는 따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도 죽은 김성일의 시신을 직접 찍어서 올렸다. 처참하게 죽은 모습에 박재만은 인상을 썼다.
-지금 경찰들이 현장보존을 위해 폴리스라인을 설치 중입니다.
보고를 하는 사람은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경찰이 관리사무소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알렸다.
입주민 대표자들도 매우 당황한 나머지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거나, 경찰들에게 자신들이 아는 법을 들먹이며 저지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불법무기를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김성일의 회계자료도 압수하고 관리사무소에서 보관 중인 현금도 압류조치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박재만과 박선우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박재만의 무심한 시선에, 진하게 코딩된 선바이저 안으로 일가족이 탄 것이 포착됐다.
그들은 몰랐지만 차 안에 타고 있던 이는 신은숙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었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애들 우는 소리와 히스테릭한 여성의 목소리에 통화 중이던 박재만은 인상을 썼다.
‘꽤나 시끄럽군.’
그는 휴대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반대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렇게 통화가 이어지던 중 그 옆에 서 있던 박선우는 경비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른 경비들을 향해 입을 여는 게 보였다.
경비들은 잠시 뒤 박재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들은 노려보기만 할 뿐, 따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날 선 눈치에 박선우는 뭔가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끼고는 경계를 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 모든 분노가 교구장에게 몰린 것 같은데.’
박선우는 박재만에게 이 새로운 위협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로 간에 악감정이 있긴 했지만 박재만은 교단에서 중요한 사람이었고 박재만에게 가진 악감정이 이런 위협을 숨길 만큼 깊은 건 아니었다.
“실례합니다만, 교구장님. 아파트 경비들이 지금 교구장님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앙? 뭐라고?”
박재만은 시선을 돌려 경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과 눈을 마주쳤지만 박재만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경비들인데 지들이 뭘 어쩌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통화에 집중했지만, 또 아주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닌지 방탄화 되어있는 자기 차에 다시 탔다.
박선우는 박재만이 자신의 말을 너무 가볍게 흘리는 것 같아서 걱정됐으나 그 이상 충고하는 것도 그의 기분만 더 나쁘게 만들 것 같아서 더 말을 잇지 않았다.
***
다음날, 우정파크빌은 벌컥 뒤집어졌다.
지하 블랙마켓에 입주하고 있던 조직이나 업체들은 출근하자마자 자신들의 물건을 전부 압수당했기에, 당연히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항의와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정파크빌 또한 모든 회계자료와 현금, 계좌조차도 압류당한 상태였다. 결국 모든 공금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동안 모아서 숨겨두었던 유보금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던 신은숙은 연락을 받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땐 문이 잠겨있었고 인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경비들을 불러 문을 강제로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급히 나갔는지 난장판이었다.
서서히 사람들 사이로 불안이 스며들었다. 그녀가 돈을 들고 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개인금고에 돈을 맡긴 건, 혹시나 아파트 공금이 모두 막혔을 때를 위해서였다. 정교하게 속인 회계자료를 통해 빼돌린 돈을 아무 데나 둘 수 없으니 가장 큰 신뢰를 받았던 그녀의 개인금고에 둔 것이다.
신뢰의 일환으로 입주자대표회의 사람들은 장롱만큼 커다란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안에 나타난 것은 달러와 유로들이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를 속일 리가 없지. 괜한 오해를 했어.”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돈다발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맨 위의 돈만 진짜였을 뿐, 아래에 있는 것은 전부 위조지폐였다.
처음엔 위조인지 몰랐으나, 서서히 종이의 질감이나 그림의 상태, 위조방지 장치가 부실한 점 등이 눈에 띄었다.
안에 있는 돈의 대부분이 가짜였다.
깜짝 놀란 그들은 다급히 신은숙을 비롯해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무리 해봤자 사기꾼 부부가 전화를 받을 리 만무했다.
신은숙 부부는 아파트 유보금, 한국 돈으로 환산 시 총 32억 3505만 원을 그대로 가지고 날랐다.
절대 한 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오랜 계획 하에 돈을 빼돌린 것이었다.
눈앞에서 날아가 버린 돈에 그들은 분노했으나 곧 강제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 보상을 원하는 질 나쁜 블랙마켓 조직이나 입주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정파크빌의 안전은 그렇게 박살이 났다.
계획
“심사숙고를 해서 상의를 한 결과….”
이틀 뒤 서울에 들어온 아영은 천사 베르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당신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아영의 말에 천사 베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는 점점 말을 잘하게 되었고, 목소리도 편안하게 낼 수 있었다. 다만 자세히 들어보니 천사의 목소리는 남자와 비슷했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가?
겉으로 보기엔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체형이었다. 석민과 아영 둘 다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물어보진 못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르는 추가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너희가 나의 뜻을 이해해 주니까 기쁘다.”
“흥.”
천사 베르의 말에 석민은 작게 코웃음을 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말하는 본새가 마치 어른이 철없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듀퐁 라이터의 뚜껑이 열렸고, 석민은 궐련에 불을 붙였다.
“왜?”
한 사람과 천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그가 되물었다.
“그건 어디서 난 물건이냐.”
베르가 매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듀퐁 라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리품.”
석민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뚜껑을 닫아 주머니에 넣었다.
서울이지만 천사를 둔 이곳만큼 안전한 곳이 없었기에 담배를 꺼내 물 수 있었지만, 아영은 그래도 혹시 담배 연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결국 그는 반쯤 피고 그것을 떨어뜨려 신발로 짓이겨 꺼버렸다.
“그건, 다시는 여기서 꺼내지 마세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고 이제 본론에 들어갔다.
“그러면 우리는 문으로 가면 되지? 어떻게 가면 되지? 네 손에 안겨서 날아가면 되는 걸까?”
“날아가면 좋긴 하지만, 위험이 있다.”
베르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드래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아영이 대답했다.
“그것은 저곳에 있다.”
베르가 손가락을 뻗어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그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지만 다른 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단번에 알아채지 못하자, 천사는 말을 덧붙였다.
“작은 산에 있는 작은 탑이 있던 곳에, 그것은 잠들어 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석민은 살짝 울컥했고, 아영은 인내심을 가지며 다른 질문을 했다.
그들의 경험으로 용이 잠들어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다고요? 우리가 싸운 용처럼 잠든 척한 것은 아니고요?”
“아니다. 그건 잠들었다. 잠들어서 다음에 있을 향연을 기다리고 있지.”
향연이란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많이 심각해져 갔다.
헌팅 트로피에 걸린 드라니트의 머리에서 비슷한 문구가 있으니깐.
‘헌팅 트로피’
석민은 베르의 말에 별로 마주 하고 싶지 않은 화면을 열었고, 다시금 용의 대가리와 그 밑에 달린 설명글을 보았다.
[드래곤 드라니트]
탐욕스럽고, 즐거움을 위해 살육과 포식을 하는 드래곤은 결국 자신이 사는 세계를 멸망시켰다.
끝없이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탐욕으로 물든 그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세계로 넘어왔으나, 미래에 이어질 향연과 포식을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기다려왔다.
창을 닫은 석민이 입을 열었다.
“그 드래곤의 향연이라는 것은….”
“드래곤은 오로지 재미를 위해 포식을 하지. 먹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살육을 멈추지 않지. 그것들은 우리가 살던 세계에서도 그랬다.”
“드래곤이 문을 통해 우리 세계로 오려는 건가요?”
아영의 물었다.
“정확하겐 그걸 원하고 있을 거다.”
“와이번이나 드레이크가 있는데. 그것들이….”
“아종들은 너무 흔하고 그것들 입맛에는 맛이 없는 거지. 그래서 우리 동족들을 노려왔다. 그 파괴적인 힘으로 우리의 성스럽고 영화로운 도시들을 파괴하는 재미도 있고. 그것들은 원래부터 그래왔다.”
그 말에 석민은 더더욱 그 문을 닫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충 사명도 그것에 맞겠지.’
“수는 어떻게 되지요? 드래곤들의 수요.”
“가장 많이 본 것이 너희들의 단위로 수백은 되었어. 하지만 아마 더 될 것이다.”
그 강력한 생물들이 수백 단위로 이쪽에 넘어온다면, 운이 좋아 전부 처리한다고 해도 적어도 대한민국은 쑥대밭이 될 것이 분명했다.
천사 베르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하며 석민과 아영에게 드래곤의 강력함을 설명해 나갔다.
그것들은 천사들보다 더욱 고등 생물이지만, 문명을 이루는 것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죽이고 먹고 부수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것들이었다.
“전에도 설명한 것 같았지만, 우리는 매우 강력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의사소통, 너희가 텔레파시라고 칭하는 것과 마법, 정신 세뇌 같은 것은 드래곤도 가능하다. 오히려 더 강력하지.”
베르의 설명과 함께 석민과 아영의 눈앞에 천사들의 도시가 환영처럼 떠올랐다. 그곳은 영겁의 세월 동안 드래곤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천사들의 도시는 처음엔 지상에 존재했다. 돔 형태의 강력한 암반구조물이나 마법처럼 보이는 방어막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드래곤의 괴력과 그 방어막을 중화시키는 드래곤의 능력에 하나둘 도시가 불타고 천사들이 통째로 잡아먹히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천사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야만 했다.
종종 투구를 쓴 전사들이 단단한 무장으로 드래곤을 처지하고는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모습들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는 아주 작은 일이었다.
천사들의 도시와 나라들은 점점 평지에서 높은 산으로 그리고 강력한 주문을 통해 산을 띄워 만들어낸 부유섬으로 내몰렸다.
천사들이 몰리면서 도시의 방어에 치중할수록 이상하게도 드래곤의 수는 더욱 불어났다.
베르의 말이 끝나자 천사의 도시는 사라지고, 어둡고 추운 안전가옥의 모습이 대신 시야를 메웠다.
인정하기도 싫은 현실에 그들은 몸을 살짝 떨었다.
“산이 어디에 있죠?”
“도시 한가운데에 외로이 있는 산 정상에 작은 탑이 있었다. 그것은 거기에 있다.”
애매모한 스무고개처럼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지만, 그들은 거기가 어디 있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남산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