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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6화 (136/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6화]

“여기 있는….”

백은호는 박선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박선우 성도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네. 그간 모은 자료와 적을 찾고 있던 인력들을 전부 박선우 성도에게 맡기고, 그대는 무기 쪽에 집중해.”

교주는 당연히 박재만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귀찮으면서도 진척은 없고 지지부진하기만 한 과중한 업무를 줄여준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고개를 있던 박재만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져 갔다.

제기랄,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거의 모든 단서를 모았다.

비록 깨끗한 화질은 아니라 번호판을 찍지는 못했지만, 석민과 아영을 추격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 오토바이 생김새나 색을 구별해냈다. 또 경찰 인맥을 통해 도로변에 설치된 CCTV와 과속단속카메라의 데이터를 확보해 도망친 그들이 간 방향도 추론할 예정이었다.

그러면 그들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거라 그는 그리 판단했다.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이것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든 정보를 넘기라니?

억울한 마음에 박재만은 항변을 할까 고민했지만, 지엄한 교주의 명령에 토를 달 순 없었다.

교주야 그를 생각해서 내린 명령이겠지만, 그에겐 모든 정공을 넘기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교주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그런 짓을 하진 않는다는 건 알기에 박재만이 따로 오해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1달 전에 그 말을 해줬었어야지.’

그는 교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짓고 속으론 이를 갈며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를 데리고 가게.”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박선우에게 공을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박재만은 바로 딴마음을 품었다.

그는 교주의 눈에 벗어난 직후 차의 운전석의 문을 열고 쌀쌀맞은 어조로 박선우에게 말했다.

“쳇, 타라.”

박선우는 침묵을 유지한 채 차에 올라탔다.

성남교구로 돌아가는 차의 내부는 어색하고 분을 삭이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박선우는 교주가 자신에게 새로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을 했지만, 박재만과 합류해서 일을 하는 건 그리 좋지 않았다.

지난번 일 또한 박재만이 감언이설로 잠시 교주의 눈을 속인 것에 불과할 뿐, 김지형이 한 말이 진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타락한 박재만과 같은 자리에 앉게 된 게 못마땅했다.

그렇다 해도 다시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그는 마음을 추스리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는 사이 박재만은 한 손에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론 휴대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교주님의 허락이 떨어졌어. 당장 진행시켜. 지금 시간이 몇 시지?”

그 말에 박선우는 저도 모르게 차량 안에 비치된 전자시계 쪽에 시선을 두었다.

밤 10시 32분, 시간이 너무 늦었다.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우정파크빌 놈들 지금쯤 대책회의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혼란이 가라앉을 테고, 그러면 우리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맞아, 김성일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갱들이 거길 노릴 거야. 거기는 황금으로 가득 찬성과 다름이 없으니깐. 성주가 죽었으니 다들 성을 차지하려고 하겠지.”

그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머지 입주자들? 그 잡놈들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김성일 뒤에서 떵떵거리며 살아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별것 아닌 것들이야. 김성일 없으면 그놈들 인맥은 인맥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고. 경비들도 그놈들 사람이 아니라서 별로 적극적이지 않을 거야. 어서 빨리 과천경찰서장에게 연락해봐. 그래, 경찰 병력이 없으면…. 대원들 준비는 다 됐어? 무장은?”

그는 이미 교주의 허가를 받기 전부터 대원들을 대기시켜 놓고 차량까지 시동을 걸어 놓았을 만큼 만반의 대비를 해둔 상태였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결려오는 전화를 받아 다시금 떠들어댔다.

“좋아, 그러면 바로 이동해. 경찰병력은? 서장이 벌써 자고 있다고? 당장 깨워! 형사들 중에도 우리 사람 있잖아. 영장은 이미 받아 놨어.”

도대체 영장을 어떻게 미리 받아 놨다는 거지? 박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걸 준비할 만큼 시간이 있었나?’

그가 의문이 들 무렵 박재만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 그러면 나도 거기로 가도록 하지.”

전화를 끝낸 박재만은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박선우에게 입을 열었다.

“박 성도, 아무래도 지금은 당장 우정파크빌로 가봐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무기는 가지고 있나?”

그의 물음에 박선우는 자신의 mp5k기관단총을 보였다.

“장전되어 있나?”

“그렇습니다.”

박재만은 흘끗 총의 조정간이 안전인지 확인했다. 그럼에도 장전된 총이 차 안에, 그것도 타인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약실에 탄을 빼두고 조정간 단발로 해둬. 총을 쏠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앞쪽 창문이 습기가 차면서 뿌옇게 변하자 차량 유리창의 열선을 켰다.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고 박재만은 속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는 눈엣가시 같은 박선우가 공을 가로채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

박재만은 단단히 준비해서 대비하고 있었기에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우정파크빌은 대단히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늦은 밤에 찾아와서 갑자기 압수수색이라뇨!”

그 엄청난 소란에 아파트의 모든 불빛이 켜지고, 소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내민 입주민들의 검은 실루엣들이 보였다.

우정파크빌을 지키는 경비들이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아섰지만, 그 너머엔 1개 중대쯤 되어 보이는 군경병력들과 그들을 태운 버스 그리고 경비업체로 위장 중인 교단 소속 대원들 100명과 그들이 끌고 온 여러 차량들로 북새통이었다.

“여기에 불법무기를 거래하고, 집적하고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왔어! 영장 안 보여? 당장 비켜! 비키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 혹은 현행범으로 사살하겠다!”

경비들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영장을 내미는 형사가 조금 떠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솔직히 현행범으로 사살한단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다들 당혹스러움에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형사는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안색이 좋지 못했고 몸이 떨렸다.

그 뒤에 선 의경들은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경비들을 쏘아보았다.

당직과 비상대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일과를 전부 마치고 전부 취침준비에 들어갔다가 급한 출동명령에 끌려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예민한 상태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우정파크빌의 경비팀장을 맡고 있는 이석현은 잔뜩 당황한 나머지 발만 동동 굴렸다.

김성일의 명령으로 밖으로 나가 석민의 정보를 모으다가 사장의 유고소식을 듣게 된 그는, 일단 이 일이 밖에 세어 나가는 것을 막고 입주자 대책회의가 열릴 수 있도록 했다.

우정파크빌을 노리는 자는 많았기에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손을 쓰기도 전에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로서는 뭔가 커다란 음모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 게 당연했다.

김성일은 나이가 많은 노구의 몸이지만, 강렬한 카리스마와 수많은 인맥들 간의 거래 덕분에 경찰이 외곽 순찰을 돌아주는 등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자 바로 이렇게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니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바리케이드 치워! 비켜! 들어간다.”

경찰병력들이 몰려와서 바리케이드를 치워버리고는 경비들을 거칠게 밀어서 경비실 벽 쪽으로 몰았다.

아무리 나라가 많이 막장화 되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경찰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비들은 무력하게 뒤로 밀렸다.

무장이 잘 되어있고 장비들이 좋은 그들이지만, 공권력 앞에서는 한낱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았다.

“무기 내리고 손들어.”

경찰들이 총을 겨누며 말하자, 경비들은 무기에서 손을 뗐다.

그나마 경찰이 무기를 회수하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황한 경비들은 생각이 많아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의문을 품었다.

경비 몇몇은 코를 훌쩍이고 소매로 눈을 비볐다. 존경하고 그들을 아끼던 김성일이 죽었는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니 더 서러운 느낌이었다.

김성일은 경비들에게 매우 좋은 사장이었다.

야근수당 포함, 임금도 매우 푸짐하게 주었고, 일하는 여건이 좋을 수 있도록 장비는 물론이거니와 시설도 신경 써 주었다.

더불어 월급의 20%만 월세로 제하면 아파트 입주도 가능했다. 단순하게 직장에서 근무, 혹은 경비를 서는 것보단 내 집, 내 가족을 지켜야 좀 더 성실하게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김성일의 지론 덕분이었다. 또한 그들의 가족이 안전해야 적들로부터 약점을 잡히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그 때문에 경비들은 김성일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집이 구하기 어려워 길바닥에서 생활해본 이들은 더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이 분노를 어디에 표출해야 할지 몰랐다. 앞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미래까지 걱정스러웠다.

사장이 죽었으니 그들이 계속 고용될 것이란 보장은 없었으니까.

이 사건의 원흉이 누구인가?

이석현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경찰들을 따라 들어가는 경비업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는 그 제복을 기억했다.

이윽고 그는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멀찍이 떨어진 고급 승용차에서 나온 2명의 남자를 보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키가 작은 남자의 실루엣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박재만!’

박재만 교구장은 입에 담배를 물고 흡연 중이었다.

이석현의 얼굴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면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박재만의 입장에선 필요 이상으로 죄가 생겨 억울하겠지만, 그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이석현은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박재만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과 어긋난 오해와 추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그래, 모든 아귀가 들어맞아.’

그러지 않고서야 저자가 김성일이 죽기 무섭게 이딴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감히 우리 사장님을 죽이고 네가 온전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당장은 눈앞의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박재만은 그걸 알리는 없었다.

박선우는 코를 찌르는 박재만의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훌쩍였다.

잠시 뒤 박재만의 폰이 울렸고,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각종 소총이 무려 5,000자루, 그중 유탄발사기가 달린 버전은 300, 각종 탄약과 경기관총 30자루, m2중기관총이 2자루입니다. 권총과 기관단총도 각각 300자루씩 있습니다.

그것들은 만약 괴수가 서울 방벽을 넘어 아파트 단지로 침입하게 되었을 때나 유사시 다른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들 자위용으로 지급하기 위해 마련해 둔 무기들이었다.

그것들 말고도 지하 블랙마켓에서 판매하기 위해 둔 무기들도 많았지만, 경찰 인맥이 그것들은 빼돌릴 수 없다고 통보를 했기 때문에 챙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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