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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5화 (13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5화]

“괜찮아. 그건 사실이니까. 난 그저 분위기를 다시 부드럽게 하고 싶어서 한 말이니, 두려워 말고 화내지 말라.”

그 말을 끝으로 바짝 긴장되어 있던 방 안의 공기가 많이 훈훈해졌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고 목소리들도 아까와 다르게 많이 누그러워졌다.

“나는 단순하게 수혈하면 돌아오지만, 아직 다른 감염자들은 불가능하지. 그렇기에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다시 가면을 썼고 머리 뒤에서 나오던 후광이 사라졌다.

“성전의 때가 오면 저들도 부활해서 같이 방주를 타고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저들은 버림받지 않았어. 위에 계신 그분은 그렇게 야속하신 분이 아니야. 그분은 우리에게….”

순간, 펑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소리는 컸지만 충격파는 없었고, 실험실의 기물이 파손되는 일도 없었다.

아까와 같이 큰 광명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키가 큰 천사가 나타났다.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엎드렸고 교주는 몸을 돌렸다.

천사가 이렇게 계시 없이 나타난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엔 놀람이 한가득 이었으나 가면 덕분에 다른 이들에게서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너희가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은 내가 잘 안다.

그들의 머릿속에 천사의 말이 울렸다.

높은 실험실의 천장을 가득 채우는 천사는 우뚝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날개가 4쌍이나 되는 천사였다.

석민이 보았다면 베르를 포함한 선발대를 이끈 대장이라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백은호는 그 천사를 대천사라 칭했다.

-내 너희들을 돕겠다.

돕겠다고?

백은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렇게 쉽게 도와준 적이 없었기에 의문이 들었으나, 결국 천사의 도움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이끌 신의 사자일 테니까.

-이 저주는 너희들이 말하는 과학과 의술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백은호가 물었다.

-내 성물을 너희들에게 줄 테니 너희는 그것을  재단에 가져가 축성의 기도를 올리고 피를 성물에 담가라. 그리고 그 피를 쓰거라.

그렇게 말한 직후 그 천사는 자신의 날개의 깃털들을 한 움큼 뜯어서 교주에게 내밀었다. 뽑힌 깃털들은 금방 다시 자라나 날개를 채웠다.

“감사합니다.”

백은호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들어 올렸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 말은 오직 백은호에게만 들려왔다.

“말씀하십시오.”

-너희도 알겠지만 타천사가 우리의 손에 벗어나 우리의 적의 편에 붙었다.

“네?”

백은호는 서울에 들어갔던 인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2명에게 전멸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타천사가 적들과 합류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아니, 백아연 성도가 찍은 사진에서 천사의 존재를 보았지만, 그것이 타천사인 걸 몰랐다.

백아연을 비롯한 정탐군들이 공과 영광을 모두 차지하고자 교단본부에 보고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단은 단순하게 천사가 적들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진 속 베르의 모습은 포로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대천사는 백은호의 동요를 감지했다. 대천사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은 적지 않게 짜증이 났다.

-타천사는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지.

천사가 말했다.

-그 천사는 자애롭고 현명하지만, 그 지나친 자애로움이 신의 뜻을 거스르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그 뜻은 아름답기 때문에 계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타천사를 발견하면, 절대로 그를 죽이지 말고 데리고 오도록 하거라. 그자는 너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천사의 말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백은호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신의 사자가 신의 뜻과 그릇되게 행동하는 증거는 현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영적인 존재인 천사를 죽인다?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백은호에게 의심의 안개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천사에게 받은 ‘기적’을 발휘하고 감염이 되어 사망 권세의 나락에 빠진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았는데 의심을 할 리 없었다.

그러니 천사가 그를 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교주 백은호가 어떻게 천사의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사이, 문밖에선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

“형제님, 갑작스럽게 이리 오시면 어떡합니까?”

문밖의 경비를 서고 있던 박선우가 들어오는 동료 대원을 나무랐다.

박선우는 원래 사도대 내에서 소대장이자, 교관급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경비업무에 투입되지 않았지만, 지난번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근신의 의미로 경호‧경비업무에 투입되었다.

그가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교관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소대장 지위에서 강등당하지 않고 매우 가벼운 처벌로 그칠 수 있었다.

“근무 중에 자리 이탈은….”

박선우의 말에 정문 쪽 경비는 우물쭈물 거리며 잔뜩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정문에서 성남 교구장님이 와 계셔서…. 너무 중요한 것이라고, 그리고 시기를 놓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박재만 교구장님이요?”

박재만의 이름에 박선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다. 그 이름에 그리 좋은 기억이 없었다.

“그분이 왜….”

“무기 구매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무기구입이라는 말에 박선우는 목 관절을 풀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교단은 성전을 위해서 무기 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매우 주요사항은 맞았다. 그래서 박선우는 썩 마음에 안 들어서 혀를 낮게 차면서도 어떻게 처리할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예.”

그럼 이제 누가 들어갈 것인가? 두 사람의 머리에 공통의 문제가 떠올랐고 순간적으로 서로 매서운 눈으로 서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형제님이 들어.”

“성도님이….”

두 사람은 서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교주가 내린 지엄한 명령을 어기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그들은 담대하지 못했다.

사도대는 기본적으로 교주를 숭배하고 충성을 맹세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괴수들보다 더 무서워했다.

교주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들이 없었던 것이다.

약간의 눈싸움 후, 먼저 입을 연 건 박선우였다.

“교구장님께 직접 들은 것은 성도님이니 직접 가셔야지요.”

“하지만 여기를 지키는 것은 성도님 아닙니까? 정문 경비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여기까지 왔으니 보고도 마저 드리시죠. 저 말고 건물에도 당직자들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 지나서 왔을 것 아닙니까?”

피 말리는 기 싸움과 말싸움이 벌어졌다.

“뭐, 들어가도 혼나는 것은 교구장이겠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하,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잠시간의 언쟁이 이어지고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어쩔 수 없단 듯이 교단 경비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문 앞에 섰다.

“그러면, 그냥 들어가겠습니다.”

박선우는 적어도 문에 노크를 한 직후에 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몸을 돌려 노크를 하려던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다른 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얼른 몸을 비켜섰다.

천사는 이미 가고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천사를 보지 못했다.

“너는 누구인가?”

교주가 정문 경비가 자신의 앞에 서 있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문 경비인 김하늘입니다, 교주님. 지금 정문에 박재만 교구장이 와서 교주님을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

평소 깐깐하기가 이를 데 없던 교주는 자신이 맡은 직책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오늘 대답하는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따로 용건도 묻지 않았기에 박선우를 비롯한 김하늘 성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으로 들여보내라. 1층 로비에서 만나자고 하지.”

한시름 놓게 된 김하늘 성도는 교주가 혹여 무슨 변덕이 생겨 분노할까 봐 뛰는 걸음으로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교주는 몸을 돌려 안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반드시 함구하게. 알았나?”

대답하는 목소리들이 매우 활기차고 미소로 가득했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오늘 눈앞에 기적과 신의 사자를 직접 만났으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확답을 받아 안심한 교주가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오려다가 옆에서 목례를 하고 있던 박선우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 박선우 성도인가.”

“그렇습니다.”

박선우는 교주와 눈을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내리깔았다.

교주와 눈을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낀 그는 마음을 간신히 추슬렀다.

그동안 백은호는 박선우를 자신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가 아는 선에선 박선우가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좋은 대원이었다.

백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를 써야겠어.”

“네?”

박선우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되물었다.

근래에 박재만에게 업무가 가중되는 것을 교주도 지극히 잘 알고 있었다.

별로 자비롭지 않던 교주의 마음이 갑자기 무한하게 관대해져 갔다.

아무리 다그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안 그래도 박재만은 성실하지 못한 인간인데, 대천사의 계시까지 전해들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빨리 일을 처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한사람에게만 주어진 부담을 이제 나눠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따라오게.”

박선우는 교주를 뒤따라 걸었다.

그 사이 박재만의 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고, 백은호와 박선우가 계단을 내려가 메인 로비가 시야에 들어올 쯤에는 이미 로비 문 앞에 서 있는 박재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박재만은 따뜻했던 차 안에서 추운 밖으로 나왔음에도 이마에 진땀이 줄줄 흘러 손수건으로 계속 닦아냈다.

“저와 함께 적을 추격하던 김성일이 저와 교단의 경고를 무시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적을 추격하다 적으로 추정되는 2인조들에게 살해됐습니다.”

“뭐라고?”

백은호는 놀라 되물었다.

“김성일을 살해하고 도주하는 그들을 추격하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광주 근방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회입니다.”

갑자기 난데없이 뭔 기회란 말인가?

박선우는 의문이 들었지만, 가면 속  백은호의 두 눈은 살짝 가늘어졌다.

“김성일의 무기를 강탈하자는 건가?”

교주도 우정파크빌에는 막대한 양의 군수품들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박재만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정예롭게 무장을 하고 인맥도 많은 곳이었지만 머리가 사라진 우정파크빌은 그저 손쉬운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군. 당장 군경 쪽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연락하게. 우리 대원들도 차출하고, 무기를 실을 차량도 준비하고.”

무기를 구입할 돈도 아끼고 대량의 무기와 군수품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교주의 목소리는 조급해졌다.

“바로 준비해서 보내겠습니다. 그럼.”

박재만은 고개를 까딱 숙이고 나가려는 순간 교주가 다시 그를 불러 붙잡았다.

“잠깐 기다리게.”

“무슨 일이십니까?”

박재만이 물었다.

“적을 찾는 일은 이제 귀관이 하지 말게.”

“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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