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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4화 (134/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4화]

어부지리

석민과 아영이 추격을 따돌리고 1시간이 지날 무렵, 박재만은 교주 백은호를 만나기 위해 용인에 있는 한 의학연구소로 직접 차를 몰아서 갔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 위치한 곳으로, 겉으론 버려진 곳이었지만 감염자들과 괴수들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교단에서 직접 운영했다.

‘정확하겐 교주가 운영하는 거지만.’

겉으론 성전이 다가올 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것들을 제압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여기에 일하는 연구원들이 누구인지 박재만을 비롯한 교구장들도 알지 못했다.

이곳의 관리는 교주의 직속 사도대가 했으며, 교주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보안이 매우 삼엄하여 30명의 경비가 상시 대기 중이었고, 전기 철조망을 비롯해 강력한 전파방해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통신도 불가할 정도로 까다로운 보안을 자랑했다.

연구소의 정문으로 박재만의 차가 다가오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정지신호를 보내면서 가지고 있던 총을 장전했다.

경비업체로 위장을 하고 있는 사도대의 대원들이었다.

박재만은 운전석 유리를 내리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교단 증명서를 내밀었다.

“급한 일인데, 되도록 빨리 교주님을 만났으면 좋겠군.”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그 말에 박재만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매우 중요한 일이야. 최소한 교주님께 가서….”

“그것은 저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네들은 들어가서 최소한 여쭈어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가 언성을 높이자, 맞은편에 있던 경비가 박재만에게 조준사격 자세를 취하고 조정간을 안전에서 연발로 바꾸었다.

딸깍거리는 조정간 소리에 박재만은 깜짝 놀라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누군지 알지?”

심드렁한 목소리가 바로 대답했다.

“압니다.”

“그럼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겠지? 교주께서 내게 내리신 임무가 뭔지도 알 테고?”

그 말에 목석같은 경비는 잠깐 눈을 돌려 생각한 직후 입을 열었다.

“예, 압니다.”

“지금 내 임무에 지장이 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작 주먹으로 싸우게 생겼다면? 일분일초가 매우 중요한 순간이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틀어질 수 있는데, 그게 네가 막아서서 그렇게 된 거라면?”

그 말에 경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거리며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그래, 교주님의 명령은 지엄하지.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이야. 오죽하면 내가 이렇게 직접 차를 끌고 나왔겠어? 부탁하네. 혹여 교주께서 분노하시더라도 그게 나에게 가지, 자네한테 가지 않을 거야. 들어가서 내가 알현을 청했다고만 말해주게.”

박재만은 언뜻 보기엔 매우 비굴해 보이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결국 빙산 같던 사도대 대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총을 조준하고 있던 자도 곧 총구를 내렸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시동은 꺼주십시오.”

박재만은 그들이 요구한 대로 시동을 끈 직후 사도대 대원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기랄, 이놈의 사도대 들은 위아래가 없어.’

그는 등을 보인 사도대 대원을 짜증스레 바라보다, 그가 다시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여긴 절대로 감염자나 괴수들을 연구하는 곳이 아닐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교주가 여길 자주 찾아가지 않겠지. 도대체 뭐 하는 곳인데 일주일에 3번을 여기에 틀어박히는 거야?’

그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연구실 건물을 바라보았다.

연구실의 불은 켜져 있었다.

***

“아무리 해도 불가능합니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처럼 보이는 이가 말했다.

그는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간곡한 어조로 비굴한 변명을 이어나갔다.

“교주님, 감염자들은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최대한 비슷한 사인을 추론하자면 심장마비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바이러스나 감염균은 그 어떤 방식으로 찾아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강화유리 캡슐 안에 갇힌 감염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강화유리 너머에 있는 연구원들과 교주, 그리고 교주를 지키는 사도대의 대원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유리벽에 막혀 부딪히길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뇌파검사에서 뇌가 살아있듯이 뇌파가 감지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연구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서로를 보았다.

“저희도 뇌파가 어떻게 감지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혈액이 죽어서 굳어있고 세포가 죽어있는데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물리를 모르겠습니다. 감염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인간 육포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기 위해 너희들을 이곳에 둔 것이 아닌가? 막대한 월급을 주면서 말이지. 너희들이 원하는 장비를 맞추는 데만 무려 3년이나 걸렸어.”

노기를 띤 목소리에 연구원들은 목을 움츠렸다.

자칫 잘못하다가 숙청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잔뜩 진땀을 흘렸다. 이미 무능하다는 이유로 6명의 연구원들이 끌려가서 다시는 보지 못했다.

여기에 근무하는 인원들은 다른 사람들이 꿈에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월급을 받는 대가로, 비밀유지를 위해 연구소에서 숙식하며 감금에 가깝게 갇혀 지내야만 했다.

대신 남겨진 가족들에게 월급이 전달되는 방식이었는데, 연구원들 가족의 안전을 핑계로 사도대 대원들이 그 곁을 지키고 있어서, 만약 무능하다는 것이 판명 나면 자신들 뿐 아니라 가족들도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장비를 다 갖추고 지원한 지 6개월이나 되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그들이 요구했던 고가의 의료장비 하나하나가 전부 기본 억이나 되는 장비들이었고, 아무리 돈 많은 교단이라도 그것을 장만하는데 매우 긴 세월이 걸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 봐. 수혈을 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

“일단 해보긴 했습니다만….”

담당 연구원이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속으로 어차피 뒈진 시체에 산 사람의 피를 수혈해 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투덜거렸다.

애초에 그가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만 해도 정말로 단순하게 괴수에 대한 연구로만 알고 있었다.

여기만큼 주는 매우 높은 연봉은 없었다. 나라가 많이 어려워진 지금, 그와 같은 인텔리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경기도에 남은 대학이나 연구소는 많지 않았다.

수도권 사람이라 지방에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교주가 들어보지도 못했을 온갖 비싼 연구 장비를 달라는 것으로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수는 실패해 버렸다.

“특별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주님.”

“그런가.”

교주는 살짝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가 강화유리에 바싹 다가갔다.

산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던 감염자는 교주가 다가가자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을 본 자들이 침을 크게 삼키고, 몇몇은 낮게 탄식을 흘렸다.

가면을 쓴 교주의 눈이 감염자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 적어도 생전의 기억을 되찾고 자아를 되찾을 방법이 있을 거야. 난 그것을 믿어.”

그의 말 뒤로 비관스러운 콧바람 소리가 길게 나왔지만 교주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교주님….”

“그만.”

그 말에 안에 있던 자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교주는 잠깐 등을 보인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내 너희들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예?”

교주는 천천히 몸을 돌린 직후 그들 앞에 가면을 쓴 얼굴을 보였다. 그의 손이 천천히 가면으로 향했고 가면을 고정하는 구속구를 풀었다.

교주가 남들 앞에서 맨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긴장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가면을 벗기 무섭게 교주의 얼굴에서 엄청난 광명이 비쳤다. 어찌나 밝은지, 안에 있는 집기들도 너무 빛나서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을 본 이들이 그 눈부심에 모두 눈을 가리거나 혹은 그대로 엎드려 절을 하며 몸을 내렸다.

“두려워 말고 날 봐라.”

빛이 점점 줄어들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이들이 간신히 눈을 떠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광명이 줄어들면서 교주의 얼굴 윤곽이 드러났다. 그런데 거기에 보여야 하는 얼굴이 제대로 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연구원 하나가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교주의 얼굴은 감염자의 얼굴이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바짝 말라버린 것처럼, 교주 백은호의 얼굴이 그러했다.

입술과 눈꺼풀은 말라 올라가서 감기지 않는 눈과 잇몸이 그대로 보였고, 머리카락은 이미 다 빠져 몇 올 남아있지도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신의 눈이 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이렇게 서 있는지 궁금하겠지? 난 축복받은 덕분에 지금 이렇게 움직일 수 있고 기적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선택을 받았기에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

바짝 쪼그라든 미라가 말을 하자, 연구원들은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향해 교주가 달려들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심복인 사도대의 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몇몇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교주의 눈이 사람의 그것처럼 젖어있고 총기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겉의 거죽은 바짝 말라 미라와 같은데도 눈은 생기가 가득하니, 이질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 서울에 남은 감염자들 중 몇몇은 나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연락을 최대한 자주하고 있지만, 근래에 연락이 두절되었지.”

그 말을 하는 교주의 목소리가 약간 쓸쓸해졌다.

“그들 또한 선택받았고, 성전이 오는 날 그들도 함께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자들은….”

그는 손바닥으로 유리벽 안에 있는 감염자를 가리켰다.

“단순하게 저주받았다.”

“저주가 의학적으로….”

“증명할 테니 봐라.”

교주는 직접 움직여 혈액 보관창고로 가서 수혈팩 하나를 꺼내 직접 바늘을 연결하고는 자신의 목에 꽂았다.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일이 그의 몸에서 벌어졌다. 그의 얼굴이 점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짝 말랐던 피부가 점점 불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산 사람의 피부처럼 변했고, 말려 올라갔던 입술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며 눈도 다시 깜빡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모습이 산 사람처럼 변한 것이다.

“오오.”

그것을 본 이들이 크게 탄성을 질렀다.

눈앞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니 당연했다.

“수혈만 하면 나는 다시 부활한다. 이러한 효과는 고작 1주일밖에 가지 않지만, 나의 육신은 부활한다. 다만, 머리카락은 돌아오지 못하더군.”

그 말에 정신머리 없는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사도대의 대원들이 부릅뜬 눈으로 그자들을 노려보았다.

냉혹하고 단호한 눈빛이 그들을 향하자, 연구원들은 그제야 다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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