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33화 (13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3화]

하루 일과를 마친 김성일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하루 종일 부하들을 풀어서 다그치고, 인맥을 동원해 이것저것 조사를 하며 바쁘게 보냈다. 그래서 평소보다 피곤한 기분이었다. 그는 자양강장을 위해 박카스 한 병 따서 들이켰다.

아들이 죽은 후 김성일은 항상 집 안에 무전기를 두고 생활했다.

아들이 죽은 이상, 언제든 자신에게도 암살자가 들이닥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음침하고 썰렁한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소파에 누워서 뉴스 시작 전 광고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의 귀에 치직 거리는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졸음으로 반쯤 감기던 눈을 뜬 김성일은 억지로 눈을 뜨고 무전기를 보았다.

-당직실, 들립니까?

-네, 말씀하세요.

그는 자신이 고용한 경비들의 목소리를 전부 기억했는데,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순찰 도중에 101동 610호 입주민께 단지 내에서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달리는 것을 보았다고 연락받았는데, 들은 거 있습니까?

같은 채널일 텐데도 이상하리만치 잡음이 심했다.

-아뇨,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방엔 호신용으로 장만해둔 글록 17 권총이 있었다. 만일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글록을 찾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

CCTV당직실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석민이 입을 열었다.

“이런 건 제대로 먹히지 않아. 시간이 없어. 그냥 CCTV 하드를 전부 파기해.”

그는 아직 덜 죽은 경비가 손에서 떨어진 권총을 다시 잡으려고 하자, 손목을 발로 누른 뒤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쐈다.

시간을 확인한 석민은 초조함에 살짝 혀를 찼다. 아영은 CCTV를 통해 순찰을 도는 경비들을 확인했다.

“길어봐야 5분이에요.”

그것도 충분히 길었다.

“채널을 27번으로 맞추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 좀 해줘.”

“네.”

석민은 이어폰을 꽂았던 무전기 채널을 바꾼 후 밖으로 나갔다.

석민이 나가자 아영은 CCTV 녹화용 컴퓨터 본체를 분해하기 위해 공구함을 뒤져 드라이버를 찾았다.

처리해야 할 하드디스크는 총 4개였다.

이것을 어떻게 파기할 것인가?

아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경비들이 야식을 데울 때 쓰는 전자레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하드디스크들을 전자레인지에 넣은 뒤 시간을 10분으로 맞춰서 돌렸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났다.

그때, 김성일 집으로 향하던 석민은 문을 열 방법이 없다는 걸 떠올리고는 밖으로 나가 도시가스 파이프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손에 묻은 피 때문에 미끄러워서 그는 잠깐 멈칫거렸다. 간신히 위로 올라온 그는 창문을 잡았다.

창문엔 다행히 잠금장치가 없었다. 그는 창문을 단숨에 연 직후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다. 사용하지 않는지 가구와 바닥, 책상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밝은 색상의 담백한 무늬의 가구를 보아 젊은 연령대의 방처럼 보였다. 그러나 방의 주인 따위 관심이 없는 석민은 이내 조심스레 창문을 닫고는 문가 옆으로 다가가 문밖의 인기척을 확인했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움직이려는 순간, 김성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대원은 들어라. 사장이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관리사무소로….”

깜짝 놀란 석민은 방문을 거칠게 열고 김성일을 조준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아들 방에서 석민이 나타나자, 김성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분노 가득한 얼굴로 석민을 노려보았다.

“네가….”

석민은 김성일이 자신을 노리고 총을 조준하려는 순간, 먼저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첫발은 총을 쥐고 있던 김성일의 오른손 어깨에 맞았다.

김성일은 낮게 신음소리를 내며 권총을 다시 조준하려고 했지만, 석민의 손가락이 훨씬 빨랐다.

두 번째는 그의 목에, 세 번째는 두 번째 총격에 그가 쓰러지면서 몸이 틀려 왼쪽 겨드랑이에 맞았다.

석민은 가까이 다가가 김성일의 머리에 총알을 3발 더 쐈다. 그리곤 새 탄창으로 갈 끼운 후 김성일의 권총을 집어 그대로 거실 창문을 노리고 2발을 쏘고는 총을 밖으로 던졌다.

유리창이 요란하게 깨지는 걸 보면서 석민은 무전기를 들어 원래 채널로 맞춘 뒤 발신 버튼을 눌렀다.

“여기 CCTV 당직실, 괴한들이 관리사무소를 빠져나와 북쪽 담벼락으로 도주 중! 정문 당직자들은 정문을 지키고, 나머지는 그쪽으로 출동 바란다. 사장님은 내가 확인하겠다.”

답신을 무시하고 그는 무전기를 다시 27번으로 맞춰 아영을 불렀다.

“경비들은?”

아영은 카메라를 확인했다.

-북쪽으로 가고 있어요.

“좋아.”

그는 현관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가서 아영과 합류하려는 순간, 거실 소파에 눈에 띄는 아주 멋진 라이터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챙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전리품이었다.

“화단을 따라서 서쪽으로 간 후에 정문으로 내려가자.”

“네.”

두 사람은 아까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딴 교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이 날 것이 뻔했다.

경비들은 아직 무전기 채널을 이쪽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보고들이 들려왔고, 엄한 사람을 거수자로 판명했는지 멀리서 고함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정문 경비, 경비실 인원 2명이 당했어! 경비가 지금 나 혼자야! 아까 정문 들어온 남녀 두 명이 그놈들이야. 그놈들이 벌인 거라고! 지원요청!

정문에 혼자 남았던 놈이 눈치를 챈 듯싶었다.

정문 경비한테 정문을 지키고 있으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놈은 석민과 아영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의 번호도 알았다.

그래서 제거를 해야 마땅했다.

정문에 도착을 한 석민과 아영은 혼자 아무것도 못 한 채 갈팡질팡하는 경비원을 확인했다. 그자는 CCTV 당직실과 연락을 하기 위해 경비실 안쪽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처리해.”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두운 곳에서 권총 소음기를 빼고 앉아 총 자세로 그자를 겨누었다.

바깥은 어둡고 경비실은 환하게 밝아서 석민과 아영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총을 쏘았고 경비가 경직되듯이 잠깐 몸을 떤다 싶다니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확인사살하고 바로 나와.”

석민은 오토바이로 가서 헬멧을 착용하고 시동을 걸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고, 석민은 조급함을 느꼈다.

이윽고 3발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영에게 헬멧을 넘긴 석민은 그녀가 타자마자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 챙기고 나온 종이 뭐야?”

“출입 관리대장이요.”

아, 맞다. 잊고 있었네. 석민은 아영의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머리 위로 총알이 휙휙 지나가는 소리가 나자 아영이 몸을 돌려 권총을 쏘았다.

당연하기 그지없이 총탄을 맞은 경비 하나가 뒤로 자빠졌다.

가슴에 두 발, 왼쪽 대퇴부에 한 발 맞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소리를 배경으로  그들은 단지를 빠져나왔다.

석민은 더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리곤 대략 벗어났다고 생각한 그는 괜히 경찰과 군대의 검문이나 순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안전속도를 유지하며 운전했다.

빙빙 둘러 가야겠지만, 안전하게 방범용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길을 골라서 안전가옥으로 향했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뒤에 추격하는 차량이 있어요!”

석민은 백미러로 뒤에서 따라오는 연식이 오래된 사륜구동 차량을 확인했다.

조금 떨어져 있긴 했지만, 확실히 자신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어디서 온 거야?”

“모르겠어요? 아까 골목 근처 지날 때 갑자기 나타났어요.”

“이런.”

아파트에서 추격해오는 차량은 아닐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경찰일 것 같지도 않았다. 경찰이었으면 진즉에 경광등이 울렸을 테니깐.

이유야 어쨌든 저것을 따돌리지 않고는 안전가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내를 빠져나오고 시골길로 들어서자 석민이 소리쳤다.

“꽉 잡아!”

그는 버려진 밭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가랑이로 전해지는 큰 충격에 아영은 인상을 쓰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길을 벗어나자 그 차량도 길을 벗어나 밭의 흙길을 따라 움직였다.

“사륜구동 차량이라 이런 야지에서는….”

“나도 알아.”

석민은 속도를 올리려 했으나, 길이 험한 만큼 어쩔 수 없이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차는 사륜구동 모드로 전환을 했는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까이 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석민과 아영이 지나가는 밭의 흙 덕분인지도 몰라도 흙먼지가 잔뜩 일어나는 통에 그들의 오토바이 차량 번호판을 못 본다는 것이었다.

아영은 달리는 오토바이가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 석민의 허리에 손을 넣어 권총을 꺼냈다.

“몇 발 남았어요?”

“약실까지 9발.”

그녀는 상체를 돌려 차량의 운전석을 노리고 쏘았다.

총알이 차량의 앞 유리에 박히기 무섭게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탄두가 깨졌으나, 유리는 멀쩡했다.

“네, 방탄유리네요.”

“별로 놀랍지는 않네.”

그 말에 아영은 작게 키득거렸다.

“다시 꽉 잡아.”

석민은 눈앞에 4차선 교차로가 보이자 그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속도를 더욱 올렸다. 경사가 높아 오토바이가 뒤집어질 뻔했다.

간신히 올라온 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석민이 고개를 돌리자, 차량도 길 위로 쑥 올라와 있었다. 석민은 다시 앞을 보고 속도를 올렸다.

한적한 곳이라 그런지 검문을 하는 군경은 없었다.

뒤따라오는 사륜구동 차량이 속도를 올리자, 그는 교차로를 지나가기 무섭게 유턴을 해서 반대편차선으로 옮기고는 우회차선을 따라 속도를 올렸다.

오토바이가 갑작스럽게 유턴을 하자 추격하던 차량도 급히 유턴을 하려고 했지만, 털털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차가 그대로 멈췄다.

타이트 코너 브레이킹 현상이었다.

아마 소리가 난 것은 연식이 오래 돼서 그런 것이겠지.

차가 추격을 멈추자 아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하셨어요.”

그녀는 권총을 다시 석민의 허리춤에 끼우고는 그의 허리를 꼭 잡았다.

“하핫.”

뿌듯함과 그리고 허리의 간지러운 감촉에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다음부터 오토바이는 그만 타고 싶네요. 토할 것 같고 엉덩이가 너무 아파요.”

“토는 참아줘. 그 헬멧 내 거거든.”

석민과 아영이 완전히 멀어져 점처럼 보일 쯤, 사륜구동 차량의 보조석에서 내린 사내가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그러니까 이딴 똥차 주지 말고 다른 거 달라고 했었어야 했는데.”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는 목을 삐었는지 말 대신 목만 만지작거렸다.

보조석에 내린 사내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교구장님, 놓쳤습니다.”

그들은 박재만 교구장의 명령으로 우정파크빌을 감시하던 교단인들이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 네, 아무래도 김성일은 죽은 것 같습니다. 예, 예…. 어…. 그렇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네, 정말 확실합니다. 그럼, 네.”

코앞에서 타깃을 놓친 아쉬움에 입맛만 쩝쩝 다시며 석민과 아영이 사라진 방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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