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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2화 (132/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2화]

CCTV

그날 밤 7시가 되자 석민과 아영은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장비를 챙긴 후 안전가옥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몸을 움직이기 편하게 하기 위해 겨울용 라이더 슈트를 입었다. 허리춤에 찬 택티컬 벨트는 라이더 재킷을 여며서 가렸다.

택티컬 벨트부터 소음기가 장착된 채 끼울 수 있는 홀스터, 권총 탄창을 끼울 수 있는 파우치까지 전부 석민이 돈을 부담했다.

자신의 일을 아영이 도와주니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 됐어. 뒤에 타.”

“네.”

아영이 석민의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올라 그의 허리를 붙잡자 석민은 바로 오토바이를 몰아 출발했다.

안전가옥에서 우정파크빌은 제법 거리가 있어서 석민은 속도를 점차 올렸다.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영은 몸을 조금 움츠렸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와주는 사람이 나오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들은 단지 입구 근처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

“믿고 안 믿고는 만나봐야 알겠지만, 용석 형은 신용이 가지 않는 사람을 함부로 소개해 주지는 않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직 약속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그들은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아영은 석민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성일 아들은….”

아영은 목소리를 낮췄다.

“왜 죽은 거예요?”

석민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가 들었을까 봐 걱정됐다.

“…그런 건 알려고 하지 않아. 그런 거 알아봤자 기분 더러운 건 똑같거든.”

그 말에 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커피를 다 마신 석민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편의점 밖으로 나갔고, 아영도 그를 따라 나왔다.

무언가 제스처를 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담배를 싫어하지만 군대의 오랜 경험으로 상대가 흡연을 하든지, 혹은 간접흡연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사실 알고 있어. 용석 형이 말해줬거든.”

석민이 말했다. 아영은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기까지 기다려 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김성일 쪽이 피해자라고 할 수 있어. 자업자득도 아니거든. 정부 입장에선 더러운 일을 하는 게 맞겠지만, 마약류 유통 혹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짓은 안 해. 어디까지나 아파트 단지의 안전만 신경 쓰고, 외부의 일엔 관심을 두지 않거든. 블랙마켓이나 운반꾼, 헌터들 중계도 아파트 관리비와 아파트를 지키기 위한 무기를 구입하는 방법의 일환 중에 하나니깐. 그런데 거기에 있는 총무? 경리라고 해야 하나? 그쪽 사람이 그 공금을 좀 많이 빼돌렸던 거 같아.”

“아.”

그 말에 아영은 미약한 한숨 같은 탄성을 내쉬었다.

“그래서, 아들을 죽이라고 의뢰를 한 건가요?”

“일을 한 다음에 물건 하나를 회수해서 파기하라는 요구사항을 받았었지. 아마 김성일 아들, 김주성이 비리를 혼자 몰래 조사 중이었던 거 같아. 그래서 죽게 된 거지.”

그것을 들은 아영은 이상할 만큼 지독한 인간 혐오를 느꼈다.

“자기 비리를 덮기 위해서 남의 아들을 죽이고 그걸 모르는 아버지는 미친 듯이 자기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니….”

“뭐, 이런 일을 요청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뒤가 구리지. 그만큼 돈은 아끼지 않고 주고. 그런데 웃긴 건 또 이런 걸 하청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야. 그 하청을 받은 사람은 또 거기서 하청을 주기도 하지. 그렇게 보면 참 더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담배 필터를 빨아들인 그는 꽁초를 그냥 길바닥에 버렸다.

“참 재미있는 사회야.”

아영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뭐, 하여튼 됐어. 이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천사 쪽 일이나 얼른 처리하자고.”

이윽고 약속 시간이 되자 편의점 앞으로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나타났다.

그 차량은 선바이저 코팅이 진하게 되어 있어서 안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스탯 덕분에 눈이 좋은 석민과 아영의 눈엔 투실투실하고 호사스러운 장신구를 잔뜩 착용한 중년 여자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저 여자가 그 총무인 거 같네.’

아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혐오로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밤인데다 차량에 선바이저 코팅까지 해놓고도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 차량은 그들의 앞에서 상향등을 2번 깜빡였다. 그것을 본 석민은 새 담배를 문 직후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서로를 표시하기로 약속한 제스처였다.

석민을 알아본 여자가 운전석 쪽 유리를 살짝 내리더니 뭔가를 창밖으로 떨어트리고는 다시 차를 몰아서 단지 안으로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운 아영은 그것을 석민에게 보여주었다.

아파트 출입 방문증이었다.

“방문증이 있으면 검문 받지 않고 안에 들어갈 수 있어.”

명찰마냥 달 수 있는 것이었는데, 뒤쪽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석민은 장갑을 벗어서 그것을 열어보았다. 단정하고 또박또박하게 쓴 글씨였다.

-지금 경비 반수는 외부로 나간 상태입니다. 입구를 지키는 자들은 내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일 보세요.

그게 전부였다.

석민은 라이터로 그것을 태워서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는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멀리 날려버렸다.

“가자.”

그들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그대로 아파트 단지 출입문으로 향했다.

입구엔 2병의 경비가 나와서 경계 중이었고, 경비실 창문을 통해 안에서 대기 중인 경비 1명이 보였다.

그들을 본 경비가 정지신호를 보냈다. 석민이 오토바이를 멈춘 후 시동을 끄자, 경비 2명이 잔뜩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영업시간은 진작에 끝났는데 지금 오다니….”

석민은 아파트 방문증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경비의 시선이 변했다. 경비 2명은 서로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경비 하나가 출입증을 가지고 경비실 안으로 들어갔다. 차단기를 올리려면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경비실 안에서 대기 중이던 경비는 창문을 통해 석민과 아영을 훑어보며 출입증 서류에 무언가 써 내려갔다.

이윽고 그 경비가 창문을 통해 출입증을 내밀고는 차단문을 올리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검문소 안의 전화가 울렸다.

안에 있던 경비가 수화기를 집어들 때 석민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경비가 무어라 말을 한 직후 출입문을 열려던 경비를 불러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경비 하나가 나와 밖에서 대기하던 경비와 또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검색대로 들어가서 검문 받으세요.”

아영은 뒤에 있던 경비가 기관단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방문증이 있는데.”

“경비가 강화되어서 방문증이 있어도 검문은 받으랍니다.”

그러면서 2명의 경비는 다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들은 아까 그 여자에게 포섭되었지만, 일이 틀어지자 배신하려는 듯했다.

석민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감시카메라에 시선을 주었다.

“내려.”

아까와 다른 강권의 목소리였다.

석민이 아영에게 말한 직후에 헬멧을 벗었고 왼쪽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사전에 따로 합의를 한 무언의 대화였다.

그것을 본 아영도 헬멧을 벗었다.

아영은 자신의 품속에 있던 고출력레이저를 생각했다.

중국산 레이저로,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 비해 사람의 눈에 닿으면 순식간에 시력 손상이 될 정도로 강력한 놈이었다. 이런 레이저는 여러 개 묶고, 출력을 좀 손보면 감시카메라의 감광센서를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들이 망가트려야 하는 카메라는 1대밖에 없었다.

경비 한 명이 앞장섰고, 한 명은 바리케이드 앞에 남았다.

경비실 안으로 들어서 복도에 도달하기 무섭게 석민은 왼쪽 팔뚝 아래에 숨겨 둔 단검을 꺼내서 앞서가던 경비의 입을 막고 목을 찔렀다.

목뼈의 연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신경과 혈관을 잘라내는 섬뜩한 움직임이 단검 손잡이를 통해서 느껴졌다. 석민은 단검을 비틀어서 빼내었다.

목이 반쯤 너덜해진 경비가 피를 뿜으며 천천히 몸이 허물어졌다. 석민은 재빨리 경비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경비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당직실의 앞에서 기척을 확인했다.

안전한 것을 확인한 그는 시신을 질질 끌고 가서 배전기실 문을 열고 시신을 넣은 뒤 경비의 무전기를 챙겼다. 석민은 무전기에 연결된 이어폰을 자신의 귀에 끼면서 경비가 입고 있던 방탄조끼를 확인했다.

“합성고분자 방탄판이야.”

그 말에 아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건 말한 석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플라스틱이라 강철판보다 1/3 정도 가볍고, 한곳에 여러 번 맞아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신소재로, 비싸서 국내에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제품이었다.

‘이놈들 자금 사정이 아주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가슴을 노리지 말고 목이랑 얼굴을 노려.”

배전기실 바닥이 복도보다 깊었기 때문에 다행히 피가 복도로 흘러나올 일이 없었다. 신속한 일 처리로 바닥에 떨어진 피도 거의 없어서 복도는 깨끗했다. 다만 석민의 몸에 피가 잔뜩 묻었다는 것이 흠이었다.

검은색 라이더 슈트를 입은 덕분에 심하게 티 나진 않았다.

그는 안쪽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카메라.”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라이더 재킷의 지퍼를 내려 개조한 레이저기를 꺼냈다.

카메라의 위치는 미리 알고 있었다. 경비실에 있던 또 다른 경비가 검색대 쪽을 종종 살피는 듯했으나, 검색대의 입구 쪽을 보는 것 같진 않았다.

아영은 조심스럽게 문을 연 직후 레이저를 조준해서 버튼을 눌렀다.

석민은 당직실의 문가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방음이 전혀 안 돼서 밖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검색대 카메라가 나갔다고요? 오래 쓰긴 했지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석민은 권총을 꺼내 준비했다. 곧 문이 열리고 그자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노리고 쏘았다.

소음기를 낀 5.45x18mm 탄환은 그자의 얼굴 뼈를 뚫었지만, 뒤통수는 뚫지 못했다.

얼굴에 총을 맞았는데도 죽지 않았는지, 경비에게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석민은 재차 확인 사살로 그의 이마에 한 발 더 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경비의 시신은 다른 경비처럼 배전실에 버려졌다.

석민은 총을 힐끔 봤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총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찰칵거리는 슬라이드 소리뿐이었다.

“가자.”

아영이 먼저 문을 열었고 바깥 사정을 확인한 직후 그들은 쏜살같이 달렸다.

원래의 계획은 틀어졌고, 임기응변으로 한 이것은 시간을 잠시 번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계 중이던 놈이 언제 눈치를 챌지 알 수 없었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있는 CCTV실에서 언제 또 전화할지도 알 수 없었다.

직선거리로 대략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김성일의 집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시간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도중에 CCTV가 몇몇 보였지만, 대부분 찍힌대도 그들의 몸의 일부나 한 귀퉁이에 살짝 찍힐 정도였다. 그들을 제대로 찍을 법한 카메라는 1개뿐이었다. 제발 당직자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을 보지 않길 빌 뿐이었다.

귀에 낀 이어폰에선 아직 별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아파트 관리실에 도착한 그들은 다시 권총을 꺼내서 당직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복도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2층이 타깃인 김성일의 거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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