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31화]
석민과 아영은 장비를 점검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김성일, 하나였기에 그들은 은밀하게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서, 김성일만 처리한 후 빠져나올 계획을 잡았다.
“단지 외부는 말 그대로 철통 경계야.”
석민이 말했다.
“7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벽, 일단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들지. 바닥 2미터도 벽으로 되어 있어서 땅을 파는 것도 무리이고.”
그는 ‘예전에’ 썼던 자료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각지대가 없는 CCTV, 거기다 CCTV도 적외선 서치라이트와 일반 서치라이트, 그리고 움직임 센서까지 있어서, 움직임을 발견하면 화면테두리에 녹색 선이 생기면서 감시자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
아영은 석민이 꺼낸 자료들을 살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담벼락 높은 곳은 원래 철조망이 있었었는데 아파트 미관상 보기 안 좋다고 없애서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다만, 누군가 이것을 뛰어넘을 것을 대비해서 벽 반대편에 스파이크가 잔뜩 심어져 있어. 두께는 1미터 정도, 입주민들이 혹여 다칠까봐, 형광색 페인트로 칠하고 주변에 제초 약을 뿌려서 풀이 안 자라나게 만들었지.”
석민의 말이 끝나자 아영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여튼, 여길 넘어서 들어가는 것은 무리겠네요. 입구는 하나라고 하셨죠?”
“응,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해.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총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도검류 정도는 소지할 수 있어.”
“칼만 가지고 들어가신단 말인가요?”
그 말에 석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네.”
그가 전에 김성일의 아들, 김주성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주기적으로 밖에서 운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성일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데다가, 아들이 죽은 이후 자신의 경호도 한층 더 강화했다.
석민은 그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었지만, 경비가 어떻게 강화되었는지는 몰랐다. 정보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칼만 가지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해. 적어도 권총 정도는 챙겼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도 공항검색대 뺨칠 만큼 엄격한 곳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담벼락 너머로 던진 다음에 안으로 들어가서 줍는 것은 어떨까요?”
아영의 제안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가 외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구역 전용 카메라도 있어서 무리야.”
카메라를 지켜보는 경비가 다른 데에 눈을 돌린 사이 던진다면 뭐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우연과 행운만 믿고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들 성격상 그런 것을 생각하고 일하지 않았다.
“그러면 차량이나, 오토바이 안에 숨기는 건 어떨까요? 차량을 분해해서 수색하는 것이 아닐 테니 그 방식대로 하면 쉽게 가지고 안에 들어갈 수….”
“외부인은 차량 방문이 금지되어 있어. 입주민 차량만 통과가 가능해. 그것 때문에 블랙마켓에서 구입한 걸 옮겨주는 일로 부업을 하는 입주민도 있지.”
두 사람은 골머리를 앓았다.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검문소에 있는 놈들 전부 처리하고 급히 들어가서 김성일만 잡는 방법도 있었지만, 검문소에도 CCTV는 있는데다가, CCTV실은 단지 중앙 관리사무소 건물에 있었다. 김성일 집이 바로 그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경보가 울릴 것이다.
“CCTV부터 무력화를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아영의 생각에 검색대에 배치된 CCTV가 하나뿐이니, 그거라도 잠깐 무력화시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고출력 레이저를 사용하면 CCTV의 감광센서를 망가트릴 수 있어요.”
검문소엔 3명의 경비가 있었다. 자신들의 실력이라면 경비들을 처리하고 시신을 어디 구석에 유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은 그렇게 처리한다. 쳐도, 무기는 새로 장만해야 했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소음기를 장착해도 소리가 아주 작진 않아서, 좁은 건물 내부에선 총성이 울릴 게 분명했다. 경비 처리 과정에서부터 아파트 주민들에게 들키면 골치 아플 게 뻔했다.
“새로운 무기를 구해야겠군.”
무기를 구할 곳은 딱 한 군데뿐이었다.
***
“너, 정말 적이 너무 많아,”
혜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이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다 교단 놈들 때문이야.”
석민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혜원은 이내 사무적인 얼굴로 돌아왔다.
“소리가 극단적으로 작으면서 방탄조끼를 뚫을 수 있는 무기라….”
혜원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가 권총들이 포장된 상지를 꺼냈다.
“당연히 캐블러 방탄조끼를 뚫을 수 있는 거여야겠지?”
“그렇지. 뭐, 그보다 더 단단한 녀석도 뚫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권총이 그 이상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깐.”
우정파크빌에 있는 경비들은 캐블러 방탄복이 아닌 안에 세라믹 방탄판까지 들어 있는 바디아머를 사용했지만, 혹시 몰라서 한 주문이었다.
“내가 아는 선에선 이게 최고이긴 한데.”
그녀가 꺼내 든 것은 검은색 리볼버였다. 그것을 본 석민은 얼른 도리질했다.
“나강 리볼버는 안 돼. 방아쇠 압이 너무 높아서 연사로 쏘는 것이 힘들고, 재장전하기 너무 번거로워. 다른 거 없어?”
나강 리볼버는 총탄의 탄두가 탄피 안에 들어있으며, 실린더와 약실이 꽉 맞물렸다. 보통 리볼버의 특징인 가스샘이 없어서 소음기를 달면 찰칵거리는 소리 말고 총성이 거의 없었지만, 연사 쏘기 불편하다는 단점은 너무 컸다.
애초에 왜 저런 구닥다리 유물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 석민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 혜원은 다음 상자를 개봉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PPK?”
그 말에 혜원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정확하겐 PPK가 아니라 그것의 짝퉁이라 할 수 있는 PSM이라는 권총이야.”
혜원은 총을 꺼내 석민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5.45×18mm 탄을 사용하는데 32.acp보다 탄속이 약하지만 탄두가 강철이라서 지근거리 한해서는 방탄복을 꿰뚫을 수 있어. 대신 사거리가 최대 25미터밖에 안 돼.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10미터가 한계일 거야.”
석민은 그것을 들어보았다. 권총이 너무 작아서 장난감 총처럼 보였다.
무게가 500그램도 안 나간다는 걸 감으로 알 수 있었다.
[PSM]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5.45×18mm MPT
러시아에서 생산한 권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상태가 매우 좋다. 매우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우수한 관통력이 특징이다.
혜원이 추천해주는 거지만 석민은 처음 보는 총이었고, 아영이 쓰는 마카로프 권총보다도 더 작아서 솔직히 별로 믿음이 가는 무기는 아니었다.
“총이 엄청 작네요.”
아영이 석민에게서 건네받으며 말했다.
“예전에 이승철이 쓰던 스텀루거인가? 그건 어때? 소음 효과가 그렇게 좋은 총은 처음 봤는데.”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혜원은 살짝 몸을 떨었다. 그에게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잊겠는가. 건 스미스로서 자신의 추천도 믿지 않은 채, 석민이 아무런 배려 없이 함부로 말하자 괜스레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건 철갑탄이 없어서 방탄복을 뚫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어. 그리고 5.45×18mm 탄은 22구경보다 더 약해서, 오히려 소음효과를 보려면 이게 더 나을 거야.”
“그래….”
“아, 그리고 상대방을 확실하게 보내려면 되도록 명치라던가, 아니면 1탄창을 전부 다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탄의 크기를 보면 알겠지만 저지력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거든. 들리는 평에 의하면, 명치를 맞아도 바로 죽지 않고 몇십 분 동안 피를 흘리다 과다출혈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물론 소음기를 장착하게 되니 안정적으로 방탄복을 뚫으려면 교전 거리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 거야.”
“그래?”
석민은 장탄수를 확인해 보았다. 고작 8발, 약실에 한 발을 장전하고, 새 탄창을 넣는다고 해도 고작 9발이 전부였다.
작은 권총이니 당연한 거지만 대용량 복렬탄창에 익숙한 석민으로서는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더 좋은 대안이 없었던 석민과 아영은 서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 쓰도록 하지.”
소음기를 달 수 있는 어댑터를 달아야 했기 때문에 따로 공임이 필요했다. 거기에 여분의 탄창도 각각 8개씩 주문했다.
“호신용으로도 쓰기엔 너무 약해서 팔리지 않던 것인데 덕분에 2개 팔 수 있게 되었네.”
그녀는 석민을 위해 밀린 주문을 뒤로 하고 소음기를 달 수 있게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서, 1시간쯤 지났을 무렵 그녀는 권총보다 더 긴 소음기를 장착해 석민과 아영에게 내밀었다.
“바로 시험사격 해볼 거지?”
“그래야지.”
석민은 탄환들을 일일이 들어서 탄약의 상태를 확인한 후 탄창을 장전했다. 총기의 매카니즘이 마카로프와 비슷해서 아영은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사격장에 도착한 그들은 사격준비를 마쳤고, 10미터 앞의 표적지에 조준을 했다.
“준비하고, 쏴.”
그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은 소음기를 달기 전과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작았다. 얼마냐 적었냐면 슬라이드가 움직이는 찰칵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매우 만족스러운 소음 효과에 석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네요.”
아영이 말했다.
“좋아, 그러면 바로 가지.”
그 말에 아영과 혜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가신다고요?”
“그래, 바로 가야지. 시간이 지체되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니깐.”
마침 그 순간, 석민의 전화기가 울렸고 석민은 발신자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보세요?”
그가 먼저 통사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용석이었다.
그가 전화를 하다니?
석민은 그가 잠적 중인 걸로 알고 있었다.
“왜 전화하셨죠?”
-오래전에 너에게 의뢰를 맡겼던 사람이 연락을 했어.
석민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인상을 썼다.
애초에 지금 그는 의뢰를 받고 있지 않았고, 그는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네가 관심을 가질 것 같아서. 우정파크빌.
그 말에 석민은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쪽 의뢰인이 다시 연락을 했거든. 이번엔 김성일을 없애달라고. 너 지금 김성일에게 추적당하고 있지 않아?
뭐지? 용석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안전하게 숨어 있다고 해도 정보를 모르는 건 아니니깐. 네게 목숨을 빚졌으니 이번엔 내가 갚을 차례겠지.
그의 말에 석민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네 성격상 그걸 안 직후라면 김성일을 처리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의뢰인이 이번 일을 승낙한다면 이번엔 우정파크빌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는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이 많이 편해질 것이다.
“어떻게요?”
-그것은 승낙을 하면, 가능하겠지. 어떻게 할레?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석민은 자신에게 온 행운을 감사하게 여겼다. 타이밍도 딱 좋은 것이 아무래도 이번 일은 운명이라고 여길 만큼 괜찮았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좋아, 그러면 승낙하는 것으로 하고, 언제 할 거야?
“지금 바로. 오늘 밤에 하는 것으로 하지요.”
-오늘? 빠르군.
의외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마침 오늘 들어가려고 했거든요.”
-좋아, 그러면 좀 있다가 다시 전화주지.
통화를 종료한 석민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될 것 같았다.
그는 혜원에게 키스를 해준 후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모레 올게.”
“알았어.”
꽤나 낯 뜨거운 장면이었기 때문에 아영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