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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0화 (130/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0화]

김성일은 대외적으로 우정파크빌의 주인으로 알려졌지만, 입주자회의 없이는 관리비라 불리는 예산을 함부로 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견제를 많이 받았다.

이게 그가 이 아파트 단지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차라리 흥신소 쪽 사람을 고용해서 찾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직접 찾자고요? 우리 아파트의 경비가 고작 30명인데 그 사람들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숫자는 너무 적고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이 그 사람, 이름이랑 비록 얼굴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사진을 알아냈는데, 조회가 안 된다면서요?”

그 말에 회의에 참석을 한 사람들의 얼굴이 근심으로 물들었다.

김성일은 석민을 찾기 위해 평소에 잘 관리하던 인맥인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공무원에게 막대한 뇌물과 함께 최석민이란 이름의 검색을 부탁했지만, 헌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범죄자 신원조회에서도 자잘한 범죄자들 말고는 찾을 수 없었으며, 오랜 시간 동안 김성일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헌터들 명부에도 그 이름은 없었다.

그만큼 석민이 자신의 정보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증거였다.

그것 말고 다른 곳에서도 최석민의 자취를 찾지 못했다. 다른 동업자들에게 돈을 주며 탐문을 했는데도 말이다.

이름이 흔해 보이는데 왜 이리 사람이 없거나 적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에 동원된 사람들은 마치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 같은 기분을 공통적으로 느꼈다.

석민을 바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돈도 많이 들었다.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두운 뒷세계와 거리가 먼 얼굴이었고, 실제로 그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경기도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대한민국에서 살던 사람들은 예전부터 한국 정부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상황이 막장이 되었더라도 한국 정부는 국민들의 통제를 잘하는 편이었다. 물론 범죄자들 또한 제대로 등록하고 관리를 했다.

하지만, 석민의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지든 음지든 찾을 수 없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그가 아주 대단한 거물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 자를 괜히 건들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입주자들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안전하게 지내고 주변 깡패 놈들에게 강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의 경비가 철통같고, 또 돈이 많으며, 인맥이 뛰어난 덕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것이 무너질 위기입니다.”

그 말에 김성일이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지금 우리가 이 경기도에서 안전하게 사는 이유는 맞아요. 여러분 덕분이고 여러분들이 나에게 보낸 지지와 투자 덕분이지요.”

그는 평소보다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김 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 우리가 이렇게 안전하게 살게 된 것은 그 덕분이지요. 그래서 여태껏 이 아파트단지 내에서 만큼은 단 한 번도 강도나 도둑 같은 범죄가 없었습니다. 밤중에도 아파트 단지에서 조깅하고,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애들이 뛰어놀아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는 이 사람은 단지 내에서 살인을 했던 자입니다. 게다가 우려하시는 대로 아주 유능한 킬러거나 헌터, 약탈자입니다.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우리 단지 내에서 원한을 가지고 살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오면….”

“말 지어내지 마세요.”

회의에 참석한 아줌마가 말했다.

“김 사장님, 우리 솔직해지죠? 당신은 그냥 자기 아들 복수를 하고 싶어서잖아요? 안 그래요?”

그 말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보이던 김성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버린 얼음처럼 굳어졌다.

“개인적인 복수심에 우리 사람들을 사용하고 막대한 돈을 사용하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런 것까지 할 정도로….”

그녀는 맨 처음엔 매우 도발적으로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 옆에 앉아있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의 허벅지에 살짝 손을 올렸다.

김성일의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아줌마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에 말을 하던 여자의 목소리도 점점 기어들어 갔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닌….”

그녀는 결국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성일의 뒤에서 기관단총으로 무장을 한 남자들이 조용히 반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물론, 겉으로 그들은 어디까지나 계약을 맺어 활동하는 관계이지 갑을이나, 주종관계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금이나 인맥의 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입주자 대표들이라 하나, 무기 거래나 중계 시장을 알선하는 자는 김성일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자들도 많이 알고 있고, 단지의 경비 전체를 관리하는 자도 그였다.

회의실은 이내 침묵으로 감돌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김성일을 바라보았다.

김성일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을 꺼내서 바로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곧 연기가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르고, 그가 입으로 회색 연기를 토해내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네, 맞습니다. 내 아들이 여기서 죽었죠.”

마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매우 차근차근 말했다.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했다.

“원래 나는 강남에서 잘나가는 보안업체 사장이었습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잘 나갔다고 말해도 되겠지요.”

그 말에 입주민 대표자들은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태 때 나는 아들과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사태 초기부터 매우 혼란스러웠던 거는 뭐, 다들 아실 겁니다. 거리에 노숙하는 피난민, 너무 흔해빠진 절도, 강도, 살인, 방화, 강간 같은 거. 여러분들은 그것이 두렵지 않으셨나요? 다른 사람들처럼 지방으로 피난도 떠나지 못하고 재산과 정든 집 그리고 자식,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나 같은 사람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말입니다!”

그의 말에 입주민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태가 터지고 김성일은 인맥과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혼란을 틈타 문서 조작을 해 아파트 단지의 빈집들을 전부 자신의 소유로 돌렸고, 그 집들을 분양했다. 그것을 통해 여러 사업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태가 벌어지고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온존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뭐, 나도 덕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고, 좀도둑과 갱단 놈들에게서 여기를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혹여 공격이 들어오면 가차 없이 보복을 가했구요. 난 당신들을 대신해서 피를 묻혀 온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고결하게 있을 수 있는 건 다 내 덕분이라고요. 내가 왜 그랬겠습니까? 단순하게 내가 보금자리가 없어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사태 때 그는 많은 재산과 집을 잃고 아내도 잃었지만, 은행 예금이 남아있었고 지방에 부동산 같은 재산들이 많았다.

물론 경기도를 벗어나는 건 늦었지만, 원한다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막장으로 변한 이 땅에서 최고로 안전한 곳에 내 아들을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지요. 내 아들이 죽었으니까. 예, 맞습니다. 난 내 아들의 복수를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반대를 해선 안 되지.”

그는 어느새 언성을 높이고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2년하고 24일 전에 내 아들이 죽은 이후로 여기 집값 떨어지고 있는 거 당신들도 알고 있잖아. 지은 지 오래된 이 아파트가 여태껏 집값이 왜 비싸고 다들 입주하고 싶어 안달 냈는지 모를 리 없을 텐데. 이유가 뭐겠어? 경기도에서 최고로 안전한 곳이라 그런 거 아니었나? 이곳의 주인이라 보이는 나의 아들이,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서 죽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 다른 아파트들도 요즘 우리 따라 하고 있는 덕분에 우리보다 오르고 있는데, 우리만 2년 사이 1억 가까이 떨어진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말에 주변 몇몇 사람들이 불편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역시 이들은 감정적인 것보단, 자기들에게 오는 피해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더 잘 통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반대하시는 분은 손들고서 내 개인적인 원한 말고 납득할 만한 반론을 지금 여기서 개신해 주시지요. 이유 없이 그냥 반대만 하실 거라면 뭐, 좋습니다. 나와 내 부하들과의 거래는 오늘부로 끝입니다. 내일 아침부터는 경비가 없을 것이고, 지하에 있는 블랙마켓 또한 여러분들이 알아서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잘들 알겠지만, 거기에 있는 자들은 많이 거칠 테니 관리하는데 특별한 주의가 필요할 겁니다.”

말을 마친 김성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이 부족하단 말은 하지 마세요. 관리비에서 항상 일부 떼다 모아두었던 유보금 있잖습니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씁니까?”

그는 반쯤 핀 꽁초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유보금은 아파트 관리비의 2할을 달러나 유로로 금고에 저금해 둔 것으로, 입주자 회의에서 관리하던 돈이었다. 물론, 그 관리비에서 적지 않은 돈이 김성일이 번 소득에서 충원되었다.

그의 말에 입주자들이 전부 한 인물을 보았다.

아까 김성일의 역린을 건든 아줌마로, 신은숙이라 불리는 여자였다. 회계사 출신으로 머리도 좋고 예전부터 재테크나 돈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관리비도 그녀가 관리했다.

주변의 시선에 신은숙은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한번 상의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1시간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분명 서로 거래관계이지만, 누가 갑이고 을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들은 돈만 많고 소심한 새가슴이며, 나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아마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이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테니깐.

김성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입주민들을 너무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었다.

혼자 방안에 남게 된 김성일은 지갑을 꺼내서 펼쳤다.

지갑은 오래되고 얼룩져 있었다.

지갑 안엔 아내와 자식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안에서 자신의 아들은 흰색 조리복을 입고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사진 안에서도 단정하고 준수한 외모가 드러났다.

요즘 시대엔, 사태 전에도 다들 폰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그는 나이도 많고 신문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진 폴더 폰을 썼었다.

사태 때 집을 버리고 겨우 몸만 빠져나왔기 때문에 챙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갑이 전부였고, 남은 사진이라고는 지갑에 넣어두었던 이 빛바랜 사진뿐이었다.

“주성아, 주성아.”

김성일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사진을 쓸었다.

이젠 눈도 침침할 나이었기에, 사진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쓰고서 다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축 처지고 굽은 어깨가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넌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 그때, 내가 네 녀석 말을 들었으면 네가 살아남았을까?”

그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는 너무 착해서 복수 같은 것도 바라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마 하늘에서 뭐라 핀잔 줄 것 같은데, 너무 화내지는 말거라.”

잠시 과거의 상념에 빠진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만들던 그….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구나.”

그 나이 때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러하듯 그는 서양요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이 해주는 음식도 전부 거절하며 먹지 않았다.

이제 와선 후회로 점철된 기억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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