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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29화 (12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29화]

“찾았다고?”

박재만은 놀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그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무능했던 건가?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실마리도 제대로 찾지 못했고, 김지형은 뒤통수나 치려고 혼자 나대다가 자료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교주는 보채고 압박을 가하지….

온갖 고뇌와 분노, 절망, 초조감에 별로 없는 머리털도 많이 빠지는 중이었는데, 자료를 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았다고?

“어떻게?”

-그걸 말해줄 것 같냐?

조소 섞인 목소리에 박재만의 이마에 살짝 핏줄이 잡혔다.

‘이 자식 봐라.’

그는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린 직후에 입을 열었다.

“공동의 적이니 같이 협력하자고 한 게 아니었나?”

-생각보다 네가 무능한데 그럴 필요가 있나?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박재만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찾지 못했던 석민을 김성일은 단 하루 만에 찾아냈으니,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둘러대거나 지어낼 말이 없었다.

‘나보다 발이 넓을 줄은 몰랐군.’

-내 부하들이 조만간 놈을 찾을 거다. 찾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을 거야. 너 바쁘지 않나? 그냥 나에게 맡겨둬. 내가 다 처리하지.

“그래, 그럴까?”

전화기를 쥐지 않은 반대 손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하지.

그가 전화기를 끊기 무섭게 박재만은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힌 휴대폰은 박살이 나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가 화가 잔뜩 난 박재만과 얼굴을 마주치고는 다시 나가려고 했다.

“거기 있어.”

박재만은 그리 말한 직후 씩씩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휴대폰 좀 줘 봐.”

그는 자기 직속 대원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김성일을 방해하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가 실패했을 때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김지형도 실패했었는데.’

김성일은 김지형과 완전히 급이 달랐지만, 상대는 교단 소속의 무기창고와 무기공장을 공격한 놈이었으니, 그놈도 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김성일이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적의 정보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문뜩 그는 김성일이 실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김성일은 발이 넓고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부하가 많아봤자 30명 조금 넘었다.

동네 건달보다 적은 숫자로 우정파크빌을 안전하게 지키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그가 소유한 무기가 매우 많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엔 그저 중계자일 뿐이라고 했지만.’

김성일이 무기 거래를 대량으로 취급하는 것쯤은 박재만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선에선, 아마 죽은 상덕 다음으로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지.’

그래서 김성일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최고로 좋은 무기와 방어구들로 무장해 주었다.

심지어 주기적인 사격훈련을 받을 정도로 탄약 사정이 좋았다. 특수부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의 부하들은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부 인맥도 많지.’

또한 그는 교단에선 접근도 제대로 못 하는 고위층과의 인맥도 정말 뛰어났으며, 그에게 돈을 받는 이들의 숫자는 A4용지에 글자 크기를 8로 두고 봐도 꽉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다른 세력들이 함부로 그곳을 건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작정하고 김성일의 우정파크빌을 공격하는 순간, 5분대기조마냥 경찰이나 아니면 진짜 5대기 군대가 나타나 지원을 해준다.

아무리 나라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지만, 이 나라엔 군대만큼 강력한 무력집단은 없으니까.

만약 그 상태에서 김성일이 실패한다면?

김지형 때처럼 다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려나?

그러면 우정파크빌을 접수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아니, 그딴 아파트 단지는 필요 없다.

거기 지하에 잔뜩 쌓여있을 무기와 탄약들이 필요했다.

‘그것만 가지게 되면 돈을 아끼고 무기구입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그것은 그의 희망사항일 뿐이기에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김성일과 동시에 알렉산드라는 새로운 번호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오래 가지 않았고,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같은 통화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녀는 바로 용건을 말했다.

-내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었는데.

-뭔데?

석민은 감흥 없는 목소리로 유창한 러시아어를 내뱉었다.

석민와 아영은 천사 베르 문제로 독한 술 한 잔 나누며 심도 깊은 대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렉산드라의 전화가 오자, 김빠지는 기분에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혹시 김성일이라고 알아?

석민은 알렉산드라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그 이름에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던 석민은 앉아있던 자세를 바꾸고 약간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양반이 왜?”

그는 긴장한 나머지 러시아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물었고, 알렉산드라 역시 한국어로 대답했다.

“널 찾던데. 우리 호텔에 전화해서 네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면서 거기에 오면 알려달라고 하던데.”

그는 놀라 약간 언성을 높였다.

“내 이름을 알아냈다고?”

“그 사람이 알아낸 것인지 아닌지는 난 모르지.”

석민은 이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너는 어떻게 김성일을 알고 있지?”

말을 좀 길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도 이번엔 알렉산드라는 러시아어로 대답했다.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내 사업을 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주변 사람들 그리고 경기도 지역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지. 설마, 내가 그들을 전부 무시하고 서울에서 장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김성일은 나와 거래를 하는 사람이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석민은 여전히 무언가 석연찮음을 느꼈다. 절대로 그의 사진이나 이름이 퍼질 가능성은 없었다.

더구나 김성일에게는 더더욱 알려질 이유가 없었다.

김성일의 아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그의 손에 죽었고, 그는 일말의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김성일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몇 년 동안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알아냈고 사진까지 찍어서 알렉산드라에게 탐문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믿을 수 있나?’

석민은 알렉산드라가 그 정보를 넘긴 게 아닌가 의심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긴 하지만, 그걸 넘겨서 그녀가 얻는 이득이 무엇이지?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알렉산드라가 자신이 받았던 이미지 파일을 그에게 보냈다. 이런 일을 할 땐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알렉산드라에게서 이미지 파일을 받은 석민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뭔데 그래요?”

아영이 물었다. 석민은 이미지 파일을 보여주었고, 아영도 깜짝 놀랐다.

‘확인사살을 제대로 안 해서 벌어진 일이니, 이거 도저히 할 말이 없네.’

“이거….”

그녀가 말하기 전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김성일이 천국의 문 교단이랑 연결점이 있나 본데. 그런데 어떻게 김성일이 날 찾는 것을 도와줬지? 그 자식 자기네 아파트 단지 외부의 일은 절대로 신경 쓰지 않는데.’

석민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사태까지 벌어진 게 짜증났다.

“이거, 좀 곤란해졌는데.”

그 말을 들은 알렉산드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할 거야? 네가 뭔 일 하는 진 몰라도 적이 많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김성일까지 적으로 두고 있을 줄 몰랐네.

“글쎄, 그런 이제 생각해 봐야겠지.”

그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이내 안심했다.

아마 정보를 준 것은 전에 그녀가 말한 대로 자기네 나라의 이익과 부합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샤샤, 정보 고마워. 뭐 다른 정보는 없어?”

석민이 말했다.

-글쎄? 잠시 생각 좀 해보고.

그 말에 석민은 입술을 혀로 핥으면서 눈이 작아졌다. 무언가 또 공작질을 하거나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것이라고 본 것이었다.

-김성일이 널 찾는 것이 꽤나 절박해 보이더군, 숨도 거칠었고…. 마치 원수를 찾는 것 마냥 그랬어.

‘이런 제기랄.’

원수질 일이 딱 하나 있었기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린 석민은 김성일이 자기 아들의 원수를 알아냈다고 여겼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자, 알렉산드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아.

석민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왠지 어깨도 축 쳐지고 고개도 거북목마냥 축 처졌다.

“이게 뭔 일이야.”

아영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석민만큼 많이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석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정한 말투로 그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해서 모든 정보가 말소되었기 때문에 찾을 가능성은 낮아요. 게다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군장과 군복만 나오지, 얼굴이 나오거나 하진 않잖아요. 군복과 군장, 헬멧을 바꾸고 활동한다면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겁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사진을 보면 알겠지. 이건 천국의 문 교단 놈들이 찍은 거란 말이지.”

석민은 사진을 주시했다.

“천국의 문 교단이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찾는 거란 말이야. 게다가 김성일은 너도 알겠지만, 나에게 원한이 있지.”

그 말에 드디어 기억이 난 아영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고 안면근육이 움찔거렸다.

“아, 네. 그랬었지요.”

그녀가 석민의 원래 직업을 상당히 안 좋게 생각하고 있던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석민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천사 때문에 고민할 것이 많은데 이 새로운 위협을 안고 살 수는 없지. 안부 걱정은 서울에서만 해도 족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아영은 석민이 도와달라고 할 것이라고 보고 그의 요청을 기다렸다. 그러나 석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말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가자.”

“예?”

“우정파크빌로 가서, 처리하자고 김성일을.”

너무나도 뻔뻔하게 당연하단 듯이 말을 하고 있기에 아영은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 당연하단 듯이 말하는군요.”

아영은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가 장난친다는 것을 알았다.

“뭐, 당연히 도와줄 거라 생각했지. 예전부터 그 사람 별로 안 좋게 봤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김성일은 무법자나 다름이 없었고,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파트 단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바르지 못한 일이었다.

난리 중에 그걸 자기 돈으로 샀을 리가 없지 않은가.

‘기존에 살던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단지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의문을 가슴 한편으로 넣어두었다.

***

“나는 반대입니다.”

우정파크빌, 옛 관리사무소의 건물에서 벌어진 입주자 회의에 참석한 남자가 말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김성일의 오랜 후원자들이자,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 말고는 다른 입주자들, 나중에 입주한 자들은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로지 이들을 통해서만 우정파크빌의 정책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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