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26화]
드래곤은 사방으로 불을 뿜어댔고 그것은 벌집을 구제하는 사람과 벌들의 싸움 같았다. 천사들은 드래곤을 찌르거나 마법 같은 것을 사용했지만, 드래곤이 뿜는 불길에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석민은 거기서 뽑힌 9명의 천사가 매우 강한 전사인 것을 알았다. 대략 30분간 전투가 이어졌고 드래곤의 모습이 조금 굼떠졌다. 드래곤은 매우 높이 날아올라 주변에서 말벌처럼 창을 찔러대는 천사들을 피하려고 했다. 단 한 번의 날갯짓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천사들이 따라 올라가려고 했지만, 드래곤의 비행이 훨씬 빨랐다.
드래곤이 입을 벌려 다시 괴성을 질렀다. 그것은 일반적인 괴성이 아니었고 무언가 특별했다.
드래곤의 날개 주변에 별무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천사들이 쓰던 마법과 비슷했다. 천사들이 그것을 목격하고는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별무리가 유성으로 변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보다 빨랐다.
유성이 천사들에게 작렬했고, 운 없게 걸린 천사 몇몇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천사들의 왕이 창을 집어던졌다. 날아가던 창은 은색으로 변해 화살처럼 드래곤의 날갯죽지에 꽂혔다.
드래곤의 날개가 부러지고, 그 충격에 근막까지 찢어져 드래곤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추락하지 않았다.
드래곤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굉음이 뿜어져 나오더니 두둥실 떠올랐고, 곧이어 투명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이윽고 드래곤은 입을 벌렸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불 대신 태양 빛의 구체가 나왔다.
천사들의 왕이 주문을 외웠다. 천사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이윽고 주변에 드래곤과 같은 보호막이 생겨났다.
레이저 광선과도 같은 브레스가 작렬했다. 광선은 사선을 그으며 천사들을 공격했지만, 보호막에 가로막혀 천사들을 불사르지 못했다. 하지만 천사들의 도시를 불태웠다.
도시가 무너져 내리며 부유섬들이 조금씩 추락했고, 게이트에 광선이 닿자, 게이트도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천사들의 왕은 자신의 품속에서 2개의 보석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붉은색 보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푸른색 보석이었다. 그것은 드래곤 하트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는 그것을 서로 부딪쳐 깨트려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부유섬이 무너져 내렸다. 아래 기반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니 그 위에 있는 건물들도 너무 쉽게 무너져 내렸다.
바위와 돌들이 비처럼 내렸다. 그 사이를 거대한 무언가 가로지르며 떠올랐다.
그것은 사각뿔모양의 거대한 배였다. 표면은 도자기처럼 매끈했다. 둥둥 떠 있으니 배보단 SF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것이 베르가 말한 방주가 분명했다.
방주는 하강하는 게이트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드래곤이 아까와 같은 브레스를 뿜었지만, 브레스는 방주에 맞아 튕겨 나갔다.
천사들과 왕이, 9명의 선택받은 천사들에게 손짓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석민은 베르를 보았다. 베르는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명령은 지엄했고, 9명의 천사들은 먼저 게이트로 들어갔다.
베르는 고개를 돌려 게이트로 향하는 방주와, 드래곤을 필사적으로 막는 천사들을 보았다.
드래곤의 영향인지 몰라도 부유섬을 보호하던 태풍 같은 바람과 구름이 사라지고, 맑아진 하늘에 수많은 와이번들이 나타났다.
석민은 시선을 내려 육지를 보았다. 육지엔 드레이크들이 추락하는 부유섬과 천사들을 올려보고 있었다.
게이트는 추락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게이트로 들어갔다.
***
석민의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를 걱정하던 아영이 입을 열었다.
“괜찮은가요?”
“…어.”
그 말에 아영은 마카로프 권총을 내려놓았다. 석민은 자신이 본 것에 놀라 평소보다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본 일들이 그가 보기엔 진짜 같았다. 거기에 나오는 건물의 양식이나 장식이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짜인 건가?
“왜 그러세요? 뭘 본 거죠?”
조바심을 느낀 아영이 보챘지만, 석민은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여념이 없었다.
“너도 보겠나?”
베르가 아영에 손을 내밀었다.
이미 석민을 통해 안전하단 것을 안 아영은 석민과 다르게 주저 없이 천사의 손을 잡았다. 이어 그녀의 눈도 검게 변했다.
그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까진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영의 얼굴은 조금 심각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자신들을 정복하러 왔다는 천사들의 멸망 스토리 영화 한 편을 4D로 본 기분인 듯했다. 솔직히 스토리와 생생한 감동으로만 보면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어쩔 거지?”
베르가 말했고, 석민과 아영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어서 오게나.”
박재만이 직접 방탄차량으로 걸어가 문을 열자, 지팡이를 쥔 김성일이 나왔다.
‘며칠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군.’
박재만이 안 본 사이에 김성일은 많이 늙어 보였다. 일단 전과 달리 등이 아주 굽어 있었고, 주름도 깊어져 있었다.
추위로 털모자와 구스털 파카, 그리고 목도리와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지만, 야위었는지 아주 왜소해 보였다. 추위에 덜덜 떠는 꼴이 궁상맞았다.
‘결국, 지 아들 죽인 놈 찾지 못하더니 폭삭 늙었군.’
그는 김성일이 근래에 자기 아들은 죽인 자의 단서를 찾았다며, 있는 돈 없는 돈 쓰며 이곳저곳을 들쑤셨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그에 따른 실망 때문에 저리된 것이겠지. 그리고 돈이 궁해져 결국 자신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여전히 의뢰비가 비싸 그다지 동정은 들지 않았지만, 찾던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은 똑같으니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내가 봐야 할 게 정확히 뭐지?”
묻는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고 많이 갈라져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마른기침 소리를 내었다.
“시체에 박힌 칼자국.”
박재만이 답했다. 김성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자, 이쪽으로.”
김성일은 썩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박재만을 따라 군말 없이 영안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적지 않은 돈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원 중 하나가 흔하지 않은 칼에 찔려 죽었는데, 이 칼에 주인을 찾으면 그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어.”
“네 밑에 부하들이 못 찾은 걸 내가 어떻게 찾지?”
“적어도 칼 찔린 상처를 보고 그게 무슨 칼인지 알아맞히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선 당신이 최고거든.”
시신들이 든 냉동 창고의 문을 연 박재만은 안에 있던 검시관에게 대충 눈인사를 했다.
“시신을 꺼내게.”
검시관은 대답하지 않은 채 시신을 꺼냈다.
“이 친구 말로는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한 단검이라더군.”
김성일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목에 찔린 칼자국을 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주머니에서 매우 큰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찾던 놈인데 여태껏 우리 대원들을 아주 힘들게 한 놈이야. 시신들에서 나온 총알도 대조해 봤는데, 같은 놈으로 밝혀졌지. 전에 네게 도움을 요청해서 찾던 놈 말이야.”
그 생각이 나자 박재만은 한숨을 쉬었다.
“범인은 둘째치더라도 배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야. 그것 때문에 교주님도 많이 화가 나셨어.”
그는 교주의 분노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웠다. 그는 교주의 인내심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단서는 여태껏 9x39mm 쓴다는 것과 특별한 단검을 사용한다는 걸 알아냈지. 물론 이것만으론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새로운 단서와 다름이 없으니까.”
“이 칼…….”
김성일이 뭐라 중얼거렸지만, 박재만은 듣지 못했고 자기 말만 계속했다.
“이 탄환 말고도 다른 무기도 쓰는 거 같은데, 뭐, 당연하지만.”
“닥쳐!”
갑작스러운 노성에 박재만은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욕을 먹은 바람에 그는 잠시 얼굴이 붉어졌지만, 칼자국을 살펴보는 김성일을 보고는 꾹 다물었다.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김성일은 돋보기를 치우고는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 후 상처를 벌리고 안을 살펴보았다.
“어, 어? 그러시면 안 됩니다.”
검시관이 소리쳤지만, 김성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시관이 한 발짝 나섰지만, 박재만은 손짓으로 그의 행동을 막았다.
“목을 찔렀다고?”
“그렇습니다.”
검시관이 답했다.
“뭔가 발견했나?”
조금 시간이 지난 후 기다리다 지친 박재만이 보챘다.
“목을 찌른 것이 동맥과 더불어 목뼈의 연골을 제대로 끊어버렸군.”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단숨에 죽어버렸죠.”
“페어번사익스(Fairbairn–Sykes).”
“뭐라고?”
박재만은 처음엔 김성일이 뭐라 말한 지 알아듣지 못했다. 김성일은 수술용 고무장갑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영국 SAS에서 사용하는 단검이지. 이건 그 단검의 자상이야.”
“아니, 그걸 어떻게 단번에 알지?”
당연한 질문이었다. 김성일이 말한 단검은 박재만도 처음 들어보는 단검의 명칭이었다.
물론 박재만도 모든 단검을 알 순 없었기에, 그의 말이 맞다 쳐도 이걸 단번에 알아본다는 게 놀랍고, 한편으로는 의심스럽기도 했다.
“재만이, 이 여자를 죽인 놈은 내 아들을 죽인 놈과 같은 놈인가 보군. 같은 상처야. 같은 방식으로 찔렀어. 완전히 똑같군. 분명해.”
김성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도 점점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이 인간이 드디어 맛이 간 것 같군.’
박재만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검시관을 쳐다봤다. 검시관의 입 꼬리도 살짝 올라가 있었다.
“네가 아들 잃은 것은 잘 알지만, 이렇게 자상을 보자마자 그러는 것은….”
김성일의 품속에서 단검이 튀어나왔다.
도신이 영안실의 어둑한 불빛 속에서도 반짝였다. 그것을 본 두 사람은 어! 하면서 뒷걸음질 쳤고 박재만은 드디어 이 새끼가 노망났다고 생각했다.
그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려는 순간, 김성일의 단검이 시신의 목, 자상의 바로 위에 박혔다. 칼끝이 쉽게 시신에 박혔고 목뼈를 부스면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봐라.”
김성일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칼자국을 보라고.”
칼자국은, 박재만이 보기에도 똑같았다.
“똑같아. 내 아들을 죽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찔렀어.”
칼에 묻은 피를 닦은 김성일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듀퐁 라이터 특유의 땡~! 하는 소리가 나면서 뚜껑이 열리고 그는 불은 붙였다.
“이 칼, 내 아들이 죽은 이후로 계속 들고 다녔어. 그 자식을 찾으면 내 아들이 죽은 방식대로 죽여 버리려고 말이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성일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가만히 숨을 죽였다.
“재만이.”
“왜.”
“이 자식 발견하면, 나한테 말해줘라.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
그는 거칠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흥분의 영향인지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러면, 정말로 우리의 적이 같은 놈이란 건가?”
“뭘 바보같이 물어? 맞다니까.”
그는 불씨도 끄지 않고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던졌다.
“다른 정보는 없나?”
“없어.”
박재만은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같이해야지. 내가 아는 정보를 줄 테니 너도 더 내뱉어 봐.”
‘새끼가 단어 선택이 짜증나네.’
박재만은 인상을 잔뜩 썼다.
“아, 진짜 없어. 철두철미한 것들이야. 사진 자료가 몇 있긴 하지만, 그다지 도움 되는 게 아니야.”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났겠지. 몇 시간 이내로 줄 수 있나?”
“2시간.”
박재만은 김성일이 다시 회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굽은 등이 펴졌고, 얼굴에도 생동감이 넘쳤다.
이후 그는 자잘한 것을 물어본 뒤 아까와 다른 힘찬 걸음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