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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25화 (12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25화]

그는 턱과 혀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렸다. 입과 성대를 사용하지 않다가 사용하게 되니 힘든 듯했다.

“우리의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고, 종족의 보존도 힘들었다. 그래서 현자들은 그것들이 없는 곳으로, 새로운 세계로 가고자 했지. 방주를 만들어 마지막 종족의 생존자들을 모아 이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을? 그러면 당신들이 그런 것이군요.”

아영이 말했다. 애써 침착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떨렸다. 베르는 기민하게 그것을 눈치 챘다.

아영은 당장이라도 베르를 치고 싶어 했다.

저것들 때문에 우리는….

“그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피해를 줄 의도는 없었다. 문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안전해야 했다. 그리고 처음에 열렸을 때도 안전했다. 방주가 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9명의 선발대를 보냈다.”

베르는 잠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크기가 커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지. 드래곤들이 방주를 덮쳤다. 그래서 방주는 무리하게 문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때문에 문이 불안전해졌다. 문은 닫히지 않았고, 통로는 불안정해졌다. 결국 이쪽 출구는 문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고 방주는 문과 문 사이에 끼이면서 이동하지 못했지. 문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면서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해졌고, 지금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괴수들이 줄어들고 있는 건가? 석민은 그리 생각했다.

“우리는 문을 고치려고 했지만, 드래곤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드래곤이 또 있다고?”

석민이 되물었지만, 아영은 이미 알고 있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손으로 석민을 제지한 직후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함부로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요. 만약에 이주가 목적이었으면, 왜 우리들, 정부와 접촉을 하지 않은 거죠?”

베르의 눈이 아영에서 꽂혔다. 동공이 확장된 베르의 눈에 석민은 섬뜩함을 느꼈다.

“우리의 이주는 단순한 정착만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정찰목적은 정복을 전재로 하고 있기도 하다.”

“뭐라고? 정복?!”

아영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우리의 정신지배에 너무 쉽게 당한다. 정신이 우리에 비해 매우 열등하고 나약하지. 그러니 드래곤에게 권속으로 부림당하는 게 아닌가? 우리 일족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

“권속?”

“너희가 감염자, 좀비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드래곤의 정신지배를 당한 것들은 죽어서 권속이 되고 다른 자들도 같이 감염시키지.”

석민과 아영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우연하게도 너희들이 믿는 종교 중 하나가 우리의 형상과 매우 연관성이 있었다. 그 종교적 미신 덕분에 추종자와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천국의 문 교단.”

석민이 말에 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와 연관이 있는 것은 그들밖에 없으니까.

‘거짓된 전령이 그것이었군. 이것들은 종교를 이용해서.’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르는 자신의 종족 무리에게 배척당하고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천사는 그들의 생각에 반대한다고 볼 수 있었다.

“당신은 왜 그들을 배신했지?”

석민이 물었다.

“배신이 아니다. 생각이 다를 뿐이지. 나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입장에서, 다른 세상 주인들의 땅을 점령하는 것을 반대했다.”

의외의 말이었지만, 나름 짐작이 가는 것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종족의 생존을 위해 다른 세계로 이주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이 땅을 점령하고 지배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이주할 우리의 종족은 대부분 민간인이고, 전사는 별로 있지 않다. 너희는 분명 우리보다 저급한 족속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복할 만큼 나약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저급한 족속’이란 말에 석민과 아영이 둘 다 울컥한 표정을 지었지만 베르에게 뭐라 말하지 않았다.

아영은 분노를 다스리고 다시 원래 목적으로 돌아갔다.

“방주에 있는 이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죠?”

“너희들의 단위로 따지자면, 겨우 300만쯤 된다.”

그게 겨우인 건가? 석민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이걸 우리에게 말하는 이유는?”

베르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는 것은 나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드래곤이 조금의 정신만 집중해도 권속이 되었을 테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사실 지쳤어.”

그 말을 하는데 천사에게서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의 뜻을 알리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찾으려고 했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했지. 너희와 만난 날, 나를 묶었던 자들 또한 내가 접촉했던 자들 중 하나였다.”

석민은 그 말이 미심쩍었다.

그들은 헌터들이었다. 무장을 하고 있었고, 이 천사도 무장한 자들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기의 성능이 얼마나 대단할지도 말이다.

순진하게 먼저 대화를 한 건가?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진 않았는데, 조심성이 없었던 건가? 불신의 먹구름이 드리웠고, 석민은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믿을 수 없어.”

석민의 말에 아영이 고개를 돌렸다.

“애초에 네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 넌 신용이 없고 우리에겐 그저 외부인일 뿐이야.”

아영은 스마트폰의 녹음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석민은 베르를 노려보았다.

베르는 인상을 찡그렸고 석민을 마주 보았다.

“너희들 말을 배우긴 했지만, 역시 믿음을 주기 힘들군.”

“그럼 믿음을 주는 방식이 따로 있단 건가.”

“너와 나의 텔레파시는 막혀있지만, 손을 통한 교감은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너희들에게 내 기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하지.”

“네가 날 정신지배하지 않는다는 건 또 어떻게 증명하지? 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진짜인 걸 어떻게 알아?”

베르가 정신지배가 가능했기에 한 말이었다. 그 말에 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맞는 제스처인지 모르겠지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텔레파시가 안 되는데 정신지배가 될 리가 있나. 그리고 교감은 내가 네 머리를 침투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대에게 내 기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은, 왜곡되는 것이긴 하지만 또렷하게 보여줄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디 내 말을 믿어라.”

천사는 손을 내밀었다.

“난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걸 증명하려면 이걸 보여줄 수밖에 없다. 선택은 네게 달렸다. 한 번 보겠는가?”

석민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는 베르의 손을 보다가 이내 아영을 보았다.

잠시간 대화가 오갔고 아영은 마카로프 권총을 꺼내 들어 장전하고 천사의 머리를 겨누었다. 그 모습에 천사는 고개를 살짝 뒤로 당겼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해보지. 만약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 전우가 가만 안 둘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석민은 손을 내밀었지만, 내심 무서웠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고 주저하는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베르는 거리낌 없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끝이 닿자 깜짝 놀란 석민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 그 순간, 석민은 눈앞이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검게 변하자, 깜짝 놀란 아영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고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라.”

천사가 말했다.

“절대로 그대에게 위험이 가게 하지 않겠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석민은 기억 속으로 빠졌다.

***

석민은 짙은 구름 속에서 눈을 떴다, 너무 어두운 나머지 처음엔 어둠 속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얼굴에 매서운 바람이 쏟아졌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석민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의 손을 베르가 여전히 잡고 있었다. 그녀는 석민의 손을 잡아 구름 속을 한 쌍의 날개로 날았다.

그녀는 맞바람 속에서도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은 깃발처럼 휘날렸다.

거대한 날개는 바람에 순응했고 맞바람을 타고 올랐다. 석민은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베르가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석민은 그녀가 자신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빛이 눈으로 쏟아졌고 그제야 석민은 이제껏 구름 속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릴 정도로 밝고 푸른 하늘과 백색의 거대한 초신성이 3개나 보였다. 하늘을 하얗게 물들인 3개의 태양이 아름다웠다.

그 아래에 3개의 거대한 섬들이 보였다. 섬의 주위로 구름 섞인 바람들이 빙빙 도는 것이 마치 태풍의 눈처럼 보였다.

섬들은 베르의 말대로 하늘에 떠 있는 부유섬들이었는데, 그 섬들 위에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마 도시인 듯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층수가 낮았고 둥근 모양이었다.

일부 탑들은 오랜 기간 바람의 영향으로 곧지 않고 휘어 있었고, 대부분의 건물들은 지붕이 무너져 내부의 서까래가 갈비뼈처럼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멀리서 보면 고색창연한 도시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폐허처럼 보여, 사람이 사는 도시로 보단 유적지 같았다. 버려지거나 영락해져 가는.

베르는 거기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콜로세움 경기장처럼 외벽에 아치로 되어 있었고, 층이 높아질수록 폭이 좁아져 멀리서 보면 돔처럼 보였다. 아치는 그 높이와 폭이 좁았지만, 그들보다 작은 석민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외벽은 아치였지만 내부는 두꺼운 암반으로 되어 있었고 통로는 좁았다. 그곳을 지나자 광장이 나타났다.

안에는 천사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중심에 6명의 도열한 천사들이 보였다. 베르는 그 위를 날아 그들의 근처로 착륙했다.

도열한 그들의 앞에 백금과 별처럼 빛나는 왕관을 쓴 천사가 보였다.

그 천사는 수많은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9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어떤 천사들보다 날개가 거대했고, 가장 아름다운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무장한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는 그들은 대화가 필요 없었기에 당연했다.

천사들은 무장하고 있었고, 도열하는 것이 임무를 대비하는 듯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주변에 있던 천사들이 박수를 쳤다.

천사들의 왕이 양손을 들어 올렸고, 무장을 하지 않은 천사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이 몸을 웅크렸다.

그들의 주위로 푸른 막이 생겼고, 막은 천사들의 육신을 감싸더니 이내 작아졌다.

물방울처럼 작아진 그들은 지하로 들어갔다. 족히 수만은 될 듯 한 천사들이 지하로 사라지니, 그 모습이 기괴하고 무서웠다.

그들이 사라진 후 베르를 포함한 9명의 천사들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천사들의 눈앞에 반지처럼 원형으로 된 물체가 하늘에 둥둥 뜬 채 그들을 맞이했는데, 그 안에 비눗방울처럼 영롱한 막이 보였다. 차원의 문이 분명했다.

천사들은 그곳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지만, 곧 엄청난 괴성이 울렸다.

천사들의 얼굴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구름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윽고 구름을 뚫고 나온 것은 붉은색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은 무섭게 9명의 천사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천사들은 능숙하게 그 불을 피했다. 그들은 재빨리 드래곤을 향해 예전에 보았던 마법 같은 불빛을 쏘았다.

그것을 맞은 드래곤은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천사들이 나왔던 건물에서 그들처럼 무장을 한 천사들과 왕관을 쓴 천사가 기다란 창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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